[리뷰] 서울시향, ‘트레몰로 전율’ 속에 호연 펼친 성시연
[리뷰] 서울시향, ‘트레몰로 전율’ 속에 호연 펼친 성시연
  • 강창호 기자
  • 승인 2019.04.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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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상으로 만난 슈만과 말러 그리고 슈트라우스
예술의전당, 서울시향 '말러와 슈트라우스' (3/22)
서울시향 '말러와 슈트라우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허설/사진=더프리뷰 김윤배 기자
서울시향 '말러와 슈트라우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리허설/사진=더프리뷰 김윤배 기자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기자 = “절제했던 사운드의 폭발은 2부 슈트라우스에서부터였다. 전율 속에 펼쳐진 트레몰로는 점점 상승세를 타며 클라이맥스로 향했다. 웅장하게 터져 나오는 팀파니와 금관악기들의 울부짖음은 가슴을 찢는 듯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22일(금) 예술의전당에서 성시연의 지휘로 “말러와 슈트라우스” 정기연주회를 소프라노 아네 슈바네빌름스의 협연으로 펼쳤다. 과거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있었던 성 지휘자로서는 2017년 5월 <말러 천상의 삶>과 6월 <강변음악회> 객원 지휘 이후 2년 만에 만나는 반가움이었다.

서울시향 '말러와 슈트라우스' /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서울시향, 슈만 <만프레드> 서곡, 지휘 성시연/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문이 열리자 객석의 박수 속에 걸어 나오는 성시연 지휘자, 군더더기 없는 큐사인과 함께 터져 나오는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은 2부 마지막 엔딩까지의 순항을 예상케 했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펼쳐내듯 시인 바이런이 알프스에서 영감을 받아 시(詩) '만프레드'를 쓴 것처럼 그 안에 담겨진 슈만의 영혼은 총 16곡으로 이루어진 극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포디엄 위에서 허공을 가로 짓는 성시연의 손끝은 슈만을 불러내어 핏 빛으로 물든 보라색으로 채색해 나갔다. 비정함과 비탄 속에 싸인 슈만의 음악은 아름다움을 펼치며 객석을 매료시켰다.

서울시향 '말러와 슈트라우스' /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서울시향, 말러 '뤼케르트 가곡' with 소프라노 아네 슈바네빌름스/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이어서 등장한 ‘진정한 소리의 화가’라고 불리는 소프라노 아네 슈바네빌름스(Anne Schwanewilms), 그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중요한 해석자 중의 한 명으로 유명하다. 이날 공연에서는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영감의 길을 터준 말러의 <뤼케르트 가곡> 다섯 곡과 죽음을 노래한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중 세 곡을 선보였다. 흔히 만날 수 없었던 그녀의 무대를 통해 말러의 ‘희로애락’이 담긴 노래들은 고요한 강을 지나 거센 바람 앞에 서 있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아네의 독일어 딕션은 아름다운 발성에 실려 공간에 추상화를 그리듯 말러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서울시향 '말러와 슈트라우스' with 소프라노 아네 슈바네빌름스/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서울시향, 말러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with 소프라노 아네 슈바네빌름스/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2부의 마지막 곡은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중 두 번째 작품 <죽음과 정화>, 다른 말로 죽음과 변용(Tod und Verklärung), 과연 죽음의 색은 무엇일까? 에곤 쉴레의 그림 <죽음의 고통>이 연상되는 이 곡을 성 지휘자는 ‘딥블루’라 표현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두고 흔히 블랙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삶과 고통 그리고 투쟁과 죽음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이곡은 어쩌면 블랙보단 딥블루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성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마지막으로 치달을수록 서로 간의 유대가 더욱 견고해지는 느낌이었다. 힘차게 이끄는 지휘자의 비팅에 이끌려 오케스트라는 일치감을 가지며 서서히 엔딩타임으로 향했다. 영원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듯, 긴 시간동안 펼쳐진 현악군단의 트레몰로는 전율을 일으키며 소리의 두터운 융단 자락을 펼쳤다. 불을 뿜는 팀파니와 금관악기들의 다이내믹은 망자의 마지막 울부짖음처럼 가슴을 찢는 듯했다.

서울시향, 슈트라우스 교향시 '죽음과 정화'/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서울시향, 슈트라우스 교향시 '죽음과 정화'/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말러와 슈트라우스, 이들의 음악과 오케스트레이션은 흑백영화의 시대에서 총천연색 영화를 만난 것처럼 소리의 입체감을 경험케 한다. 여기에 소프라노 아네 슈바네빌름스와 함께하는 무대는 ‘진정한 소리의 화가’라는 그녀의 닉네임처럼 가슴으로 와 닿는 ‘소리의 무대’를 새롭게 만나게 했다.

“음악은 테크닉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마음과 마음의 일치감을 볼 수 있었던 무대, 서울시향과 성시연 지휘자는 과연 무엇이 통했던 것일까?

서울시향과 지휘자 성시연, '말러와 슈트라우스' 공연을 마치고 무대인사를... /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지휘자 성시연, '말러와 슈트라우스' 공연을 마치고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더프리뷰 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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