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동의 역사를 한 눈에, 덴마크 노동자박물관
[단독] 노동의 역사를 한 눈에, 덴마크 노동자박물관
  • 이종찬 기자
  • 승인 2019.04.04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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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노동자들의 모금으로 건립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노동자의 일상 전시

[더프리뷰=코펜하겐] 이종찬 기자 = 코펜하겐 시내 중심부에 노동자박물관(Arbejdermuseet, The Workers Museum)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로젠버그 궁전, 왕실정원, 현대미술관 등과 함께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것이다.

1879년 노동자들의 모금으로 노동자회관이 설립됐고 이후 백여 년이 지난 1982년 노동자들의 생활상과 노동운동사를 전하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이 박물관에는 19세기 말-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노동자들의 작업 모습, 당시 가정의 모습들이 재현돼 있다. 언뜻 인천의 근대박물관과 비슷하지만, 당시의 물건만 전시한 게 아니라 생활상, 노동운동 관련 자료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는 점에서 많이 다르다. 박물관 입구에서는 여러 가지 기념품과 함께 노동가요집도 팔고 있었다.

"용접공",
"B&W공장의 용접공", Anker Landberg, 1952(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맨 아래층에는 20세기 초 어린이 노동자들의 모습이 전시돼 있다. 당시 덴마크 어린이들은 10대 초반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림과 사진 속에는 짐을 나르거나 공구를 들고 기계를 만지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을 해야 했던 평범한 가정의 어린이들 모습과 당시 집안의 모습 등이 전시돼있다.

코펜하겐의 어린 노동자들 모습(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코펜하겐의 어린 노동자들 모습(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한 층을 올라가면 1950년대 한센(Hansen)씨 가족이 살고 있던 아파트 모습이 나온다. 5명의 식구가 살던 이 아파트에는 좁기는 하지만 산업발달과 소비문화의 영향으로 점차 물자가 풍요로워지는 듯한 모습이 나타난다.

1950년대 코펜하겐의 방 두개짜리 아파트. 5명의 식구가 살았다. 책장 가운데 구형 라디오의 모습이 보인다.(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1950년대 코펜하겐의 방 두개짜리 아파트. 5명의 식구가 살았다. 책장 가운데 구형 라디오의 모습이 보인다.(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현대적인 모습의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1960-70년대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근로자 모습,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점점 자동화되어가는 공장 모습이 나타난다.

부품을 조립하는 여성근로자의 모습(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부품을 조립하는 여성근로자의 모습(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4층은 노동운동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8시간 노동, 8시간 자유, 8시간 휴식’이라는 문구가 쓰인 당시의 붉은 깃발이 걸려 있다. 또 당시 노동현장 모습을 그린 피터 파이테르센(Peter Peitersen, 1922-1988)의 그림이 여럿 있는데 그는 당시 벽돌공이자 화가로서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 1980-90년대 노동미술과 비슷한 모습들이었다.

도로위의 석공들, 피터 파이테르센, 1962년 이전(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도로위의 석공들, 피터 파이테르센, 1962년 이전(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덴마크는 1899년 혹독한 노동분쟁을 겪으면서 노사간의 대타협을 이루었다고 한다. 현재 노동자 67%가 노조에 가입돼 있고 노동자 80%가 단체협약 적용을 받아 노사간 협약에 의해 노동조건을 규정한다고 한다. 즉 우리 나라와 달리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이 없고 단체협약에서 정한 임금이 최저임금이 된다고 한다.

고된 노동자의 모습.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가 연상된다.(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고된 노동자의 모습.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가 연상된다.(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덴마크가 최고 복지국가중 하나가 된 것은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물관 1층 한쪽의 좁은 복도에는 레닌의 그림이 몇 개 걸려 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곳이 아니라서 전시가 아니라 그냥 방치된 듯한 느낌이었다. 복도를 따라가면 박물관 뒷마당 같은 좁은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레닌의 동상이 서 있다. 이것도 전시가 아니라 그냥 치워놓은 듯했다. 복지를 이룬 지금 레닌은 할 일이 없어졌나 보다.

건물 밖의 레닌 동상(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건물 밖의 레닌 동상(사진=더프리뷰 이종찬 기자)

이 노동자박물관은 화려한 구경거리는 없지만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단순한 추억거리가 아니라 지나온 시대의 분위기, 숨결을 보존해 좀더 공정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정신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나라도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다. 선진국, 복지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지금, 이런 노동자박물관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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