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2 연극중심주의 비판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2 연극중심주의 비판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12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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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베로날_ⓒAkiko Miyake
라 베로날_ⓒAkiko Miyake

헤겔은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자였다. 그의 <역사철학강의>나 <미학>등에는 유럽이 세상의 중심이고 동양은 변방에 지나지 않는다는 서술이 곳곳에 나타난다. 역사는 아시아에서 시작하여 그리스 시대에 청년기를 맞고, 추상적 공동원리에 바탕을 둔 왕국인 로마제국을 거쳐 마지막으로 게르만 세계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막스 베버 역시 ‘합리적 자본주의’가 서양에서 발달한 것은 유럽의 문화가 동양보다 우월하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고다. 르네상스, 과학혁명, 산업혁명,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이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다는 시각이다. 자본주의는 유럽의 합리성과 우수성을 상징한다. 유럽중심주의를 이루는 담론들은 ‘근대성(모더니티)’의 개념과도 유사하다.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진보를 이룬 것이 유럽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급기야 유럽중심주의는 19세기 이후 제국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로 이어진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그 대표적 예다.

유럽중심주의는 예술에도 적용된다. 유럽의 예술사는 곧 세계의 예술사다. 우리는 음악, 미술, 건축, 연극 등 모든 분야의 예술은 유럽이 주도하였다고 알고 있다. 플라톤의 <법률>에는 연극정치(theatrocracy)라는 용어가 등장한다(법률 700-701). 군주정치(aristocracy)에 대비되는 용어로서,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대중이 참여하는 정치라는 의미다. 플라톤은 연극을 매우 혐오했는데 연극정치는 많은 사람이 극장에 모여 ‘날카로운 휘파람, 관객의 교양없는 아우성, 갈채를 보내는 박수소리’가 모여 대중을 자극하고 대중은 ‘즐거움에 대한 광적이고 지나친 욕심에 사로잡혀’ 이성을 상실한다는 비판이었다. 플라톤은 <국가> 제10장에서 예술을 모방으로 간주하면서 예술은 이데아에서 한참 멀어진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공연이론에서는 플라톤의 예술혐오를 반연극주의(antitheatricalism)의 기원으로 본다.

그러나 플라톤이 이렇게 비판한 그리스 문화는 서양문화의 원형이 되었다. 그리스 문명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였다. 르네상스는 그리스 문명을 되살리려는 운동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많은 학자, 예술가들이 모여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학문을 창달하고자 한 운동이었다. 그리스 문명은 18세기에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이의 중심 인물은 빙켈만이다. 빙켈만은 <그리스 미술 모방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그리스 문명은 문명 그 자체임을 역설한다. 그가 제안한 그리스 미술은 ‘고귀한 단순, 고요한 위대’라는 말로 요약된다. 라오콘 군상을 예로 들면서 폭풍우가 몰아칠듯한 동적 움직임 속에서도 고요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고, 평온하고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스 문명은 최고의 문명이며 다른 문명은 문명이 아니었다. 그리스 문화에 대한 칭송은 헤겔, 니체, 하이데거 등으로 이어진다. 헤겔은 <미학>에서 그리스 문화와 동양문화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다.

"고전적인 예술이 역사적으로 실현되어 온 것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찾아봐야 한다는 것은 거의 언급할 필요가 없다. 무한한 영역의 내용과 소재, 그리고 형태를 갖춘 고전적인 미야말로 고대 그리스 민족에게 부여된 선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민족이 예술을 가장 생동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들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동방이 지닌 자유롭지 못한 통일성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동방에서 인간 주체는 주체로서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곳의 종교적, 정치적 전체주의를 초래한 통일성은 사실 아무런 발판도 갖지 못했고, 그 결과 스스로 상실된 보편적인 실체나 그 실체의 특수한 측면들도 모두 몰락했다( 헤겔 미학 2권 266-)." 고대 그리스 신들은 이상적인 표현의 중심이 되었다(338).

그리스 연극이 서양연극의 모델이 된 것도 르네상스 시대부터다. 드라마는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약화되다가, 중세에는 종교극 등의 영향으로 명맥을 유지하지만 아직 활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번역되고, 극장이 지어지고 셰익스피어같은 역량있는 극작가들이 탄생한다. 이후 연극은 서양의 공연문화를 지배하는 주도적 장르가 된다. 한편 세계연극사에는 동양연극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피상적인 일부의 서술만이 있을 뿐이다. 동양미학은 자율적 실체를 갖지 못한 열등한 예술이었다. 반대로 그리스 비극은 최고의 공연형식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최고의 공연이론서가 된다(사실은 공연이론서 자체가 없었다). 니체에게도 그리스 연극은 최고의 예술이었다. "최고의 예술인 그리스 비극의 부활과 함께 심미적 청중도 다시 태어났다(<비극의 탄생>). 독일신화의 부활도 디오니소스 비극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스 문화는 이렇게 서양문화의 원류일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스의 연극을 모방하려는 흐름은 늘 지속되어 왔다. 오페라는 그리스 연극을 되살리려고 16세기 말 피렌체의 지식인들이 만든 장르였고, 바그너의 종합예술도 그리스 연극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으로 태어난 것이다.

서양연극 이론을 지배한 건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격화되고 그의 <시학>의 영향력은 절대적이 된다. "이 뛰어난 천재는 마치 천상계에 있는 듯하며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신들과 완벽히 상의하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정신상태는 모든 자유로운 토론을 금지시키며 그것을 문제삼는 것조차 금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깃발 아래 구축된 교의에 의하지 않고서 극작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연극이론의 역사> p28).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이 된 것이다. 그의 삼일치 법칙은 모든 연극 관계자들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규칙이었다. 삼일치 법칙은 하루에 한 장소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결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지금으로서는 매우 불합리한 규칙이지만, 17-18세기 프랑스 연극계를 지배했던 창작규칙이었다. 코르네이유의 <르 시드> 논쟁이나 빅토르 위고의 <에르나니> 논쟁 등은 삼일치 규칙을 둘러싼 싸움이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발전한 경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양연극의 중심에는 셰익스피어가 있다. 그의 작품은 연극, 발레, 오페라 등등 많은 장르의 젖줄이 되었고 그런 흐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연극중심적 공연문화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라 베로날_ⓒConcha Ferri
라 베로날_ⓒConcha Ferri

연극중심주의의 문제들

유럽의 연극이론이 세계화된 것은 유럽, 특히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이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그들의 연극의 실제와 이론이 각국에 전파되었기 때문이다(James M. Harding et al, The Rise of Perfomance Studies, 2011, p19). 이런 현상은 식민주의적 시각 또는 제국주의적 시각이 제3국을 지배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연극교육 또는 공연교육도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었는데 사실은 일본의 연극이론은 서양에서 유입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시절에 서양문물을 필사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운동이 있었고, 이 때 ‘연극개량 운동’이 나타났는데 이는 서양연극을 도입하여 일본의 전통연극을 개량하고자 한 운동이었다. 가부키를 전근대적인 오락으로 보고 이를 없애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가부키는 오늘날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우리 나라 대학의 연극교육은 대부분 서양연극이 중심이 되었고 서양연극 이론을 최고의 진리로 여기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공연이론의 발전이 늦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정의하는 연극중심주의(theatrocentrism)는 세계 도처에 산재한 수많은 공연양식 중에서도 연극이 최고의 예술로서, 공연예술의 중심이 되고 연극을 통해서 돈을 벌 수도 있으며 연극은 매우 고상한 예술이어서 높은 심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고를 말한다. 여기에는 연극, 오페라, 발레, 무용, 뮤지컬 등은 시민들의 미의식을 높이고 정신적 만족감을 제공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예술이나 연극은 교양과 부의 과시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나를 타인과 구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비싼 돈을 주고 미학적으로 우수한 예술을 감상해야 문화인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지고, 국가적으로도 연극이 장려되어야 문화국가가 된다는 사고방식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연극은 수많은 공연양식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에도 매우 다양한 연극이 있고 미학적으로도 우수한 연극이 많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양식 연극중심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전미숙무용단_연습사진(c)BAKI_0529
전미숙무용단_(c)BAKI

(1) 미학적 문제

서양연극은 텍스트의 재현에 기초한 예술이다. 희곡이나 대본, 원작을 얼마나 잘 재현하는가가 중요하다. 보드리야르는 2천년간의 서양문화는 재현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적어도 18세기까지의 서양예술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대상을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자연주의는 그 극단적 사조였다. 연극은 이러한 재현의 양식이다.

두 번째로 연극은 텍스트를 중시한다. 이를 텍스트 중심주의(textcentrism)라고 부를 수 있다.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입센, 체홉 등 서양연극의 중심을 이루는 대가들의 작품들이 연극의 기둥을 이룬다. 이른바 정전(canon)이다. 따라서 연극은 오히려 퍼포먼스가 아니라 문학중심적이었다. 연극이 문학의 시녀 역할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텍스트 중심주의는 텍스트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연출의 역할은 중요하다. 텍스트 중심주의는 대본의 분석이나 인물의 성격연구에 치중한다. 그러나 공연(퍼포먼스)을 텍스트 중심적으로 보는 시각은 퍼포먼스의 특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텍스트 중심주의는 추상성, 선형성(linearity), 탈체화(disembodiment), 그리고 구술언어보다는 문자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 퍼포먼스는 표현의 확장성과 더불어 준언어적(paralinguistic)이고 역동적인 차원을 갖기 때문이다(Elizabeth Bell, <Performance Theory>).

세 번째로는 공연의 상업화 문제다. 오늘날과 같은 실내극장이 생긴 것은 르네상스 시대다. 이로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는 공연이 돈벌이의 대상이 되었다. 영화와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공연은 최고의 오락이 되었다. 상업화된 공연은 공연을 폐쇄적 공간으로 변화시키면서 공연의 본래적 기능을 약화시켰다.

네 번째로 언어극은 언어라는 매체를 주로 사용하여 텍스트를 재현한다. 언어는 이성적 매체로서 감성을 자극하지 못한다. 아르토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언어를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구체적인 언어는 말과 독립해 있으며 감각을 지향한다.

다섯 번째로 연극은 ‘분리’를 낳는다. 프랑스의 사라작(J.P. Sarrazac)에 따르면 드라마의 위기는 관객과 퍼포머간의 분리, 무대와 객석의 분리, 연극과 사회의 분리에서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관계는 ‘분리의 기호’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인간은 매스화된 인간이고 무엇보다도 분리된 인간이다. 타인과 분리되고 사회조직과 분리되어 있으며 보이지 않는 신과도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스스로와도 단절되어 있으며 입센이나 체홉의 예에서처럼 현재와도 분리되어 있다. 이런 현상들을 연극에서의 파편화(fragmentation)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극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2) 사회경제적 문제

극장은 공연 상업화의 출발점이다. 또한 공연을 어두운 공간에 가둠으로써 공연의 해방적 기능을 훼손한다. 규격화되고 의례화된 행동을 강요함으로써 자유로운 축제정신을 훼손한다. 그리고 극장은 계급적 공간이다. 공연 상업화는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를 초래해 심각한 사회적 비용의 낭비로 이어진다. 공연은 낭비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극장이 발달하면서 연극은 ‘예술’이 되었다. 예술로서의 연극은 관객과 배우간의 상호작용을 약화시킨다. 놀이정신이 약화된다. 연극의 일차적 기능은 놀이다. 그러나 서양의 연극은 20세기에 들어와 사물의 내부를 꿰뚫어보고 삶의 방향을 탐색하는 정신적 기능이 강조되어 왔다. 때로는 체제에 저항하고 현상을 개선하고자 하는 정치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예술적 기능이 중시되기도 했다. 연극은 오락적 기능보다는 지적이고 정신적 기능이 강조되어 왔다. 그래서 연극은 지식인들의 예술이 되었다. 예술이라는 개념은 18세기 중반에 탄생했는데 급격히 지식인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특히 낭만주의 이후에 예술을 절대시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난다. '천재들이 만드는 작품'(칸트), '예술을 위한 예술' 등의 예술관이 생겨난다. 예술은 오락에서 갑자기 인류를 구원할 구원과 치료의 마술사(니체)가 된다. 예술은 ‘인류의 최대 과제’가 되었고 예술가, 문화인은 교양과 동일시된다. 예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 그리고 우리의 공연예술과 극장에 대한 개념도 이 낭만주의적 예술개념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극의 예술화는 대중과의 분리를 유발한다. 연극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을 신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제도와 정책의 문제

예술은 18-19세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제도화된다.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극장이 이 때 생기는데 이들은 국가의 위신, 과시 등의 목적으로 지어진 경우가 많다. 국립극장이라는 제도도 이 때 생긴 제도다. 공연에서는 16세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실내극장이 등장하고 상업화되기 시작하는데 연극의 제도화는 공연이 지니고 있던 개방성, 참여 등의 정신을 훼손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번즈에 따르면 공연이 제도화되기 시작한 건 14세기 경부터다. 중세시대의 연극은 거리, 장터, 귀족의 집안, 궁정에서 벌어졌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실내극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제도화되고 전문화되기 시작한 것은 극장의 문제보다는 공연의 내용 때문이었다. 14세기 초에 종교극들이 교회로부터 벗어나서 ‘성체축일 행진(Corpus Christi Processions)’으로 발전하면서 연행자와 관객간의 분리가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제도는 제도화되지 않은 퍼포먼스를 소외시키는 문제를 야기한다. 극장같은 제도, 연주회나 전시회 등과 같은 제도의 힘을 빌지 않으면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예술제도론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런 예술계의 인정을 받는 작품만이 예술이 된다. 반면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은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제도는 배제와 소외의 원리를 지닌다. 폴 윌리스는 하이퍼제도화(hyperinstitutional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오늘날의 지나친 제도화는 수많은 사회의 영역에서 제도와 비제도 또는 공식적 문화와 비공식적 문화 사이의 차이와 차별을 초래한다. 공연에서는 극장, 후원, 티켓판매, 홍보 등 수많은 제도의 장벽을 넘어야 공연으로서의 자격을 얻게 된다. 제도화된 연극은 상업주의를 낳는다. 극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입장하기 위해서 관객은 극장입장이 가능한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며 이는 공연을 상업화로 연결된다. 극장이라는 제도는 열려 있는 공간이 아니라 폐쇄적인 공간이다.

수퍼가부키 '야마토 타케루' (사진출처=kabuki-bito)
수퍼가부키 '야마토 타케루' (사진출처=kabuki-bito)

동양연극

반면 동양연극에서는 극작가보다는 연기나 무대세트 등이 중요하다. 동양연극에서 작가는 서양연극처럼 중요하지는 않다. 물론 가부키같은 경우에는 치카마쯔몬자에몽(近松門左衛門)과 유명한 작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보다는 연기자들이 훨씬 대중들과 친숙했다. 경극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고전소설이나 민담 등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연기가 오히려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동양연극은 반환영주의적이고 상호작용성이 강하다. 가부키나 경극에는 많은 상징적 표현이 있다. 가부키는 카타(型)의 예술, 즉 형식의 예술이라고 불린다. 특정한 연기는 대대로 내려오는 양식처럼 형식화되어 있고 대도구와 소도구 등은 상징적 의미로 가득하다. 구마도리(隈取)라고 불리는 독특한 분장에서 각각의 색깔은 특정한 성격을 나타낸다든지 미에(見得) 등의 연기는 관객의 주의를 끌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경극의 특이한 동작들도 매우 상징적이고 양식화되어 있으며 각각의 의상들은 등장인물의 신분을 표현하는 등 상징들로 가득하다. 이런 연기와 미술, 세트 등은 관객과의 강한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 경극에도 가부키의 구마도리처럼 검보(臉譜)라는 화장법이 있다. 가부키에서는 끊임없이 관객들의 추임새가 나온다. 가케고에(掛け声)라든지 야고(屋號)와 같은 것들인데 배우들은 관객의 추임새를 유도하기 위한 연기(미에와 같은)들을 도입한다. 우리 나라의 판소리에서도 1고수 2명창이라는 말이 있듯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고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동양연극은 이처럼 강한 관객과의 상호작용, 상징의 사용, 양식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연극의 위기?

연극의 위기, 공연의 위기를 말한다. 연극의 위기는 관객들의 감소를 말하거나 기대보다 관객이 덜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연극의 위기는 1)연극의 상업화 2)연극의 제도화 3)연극의 정치화와 관계가 있고 이들은 위기의 원인이자 결과일 수 있다. 사실 연극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새로움으로 무장해 왔고 다른 장르의 장점을 흡수하면서 개선을 거듭해 왔다. 이를 재연극화(Retheatricalization)라고 말한다. 타 장르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연극은 늘 위기를 맞는다. 연극의 위기는 연극의 흥행이 시작된 르네상스 시기부터, 일본에서는 가부키의 흥행이 시작된 1600년대부터 줄곧 있어 왔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1900년대 초반 연극흥행이 시작되면서 불과 3-4년 사이에 극장들은 문을 닫았고, 흥행주들은 사업에서 철수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연극의 위기는 단순히 흥행의 위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극은 끊임없이 타장르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연극 자체의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연극의 형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앞서 말한 미학적 문제에 해당한다. 사라작은 현대 드라마의 모험은 전통적 형식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될 때 시작되며 이 모험은 새로운 형식에 대한 부단한 탐구라고 보았다. 그래서 사라작은 현대의 연극의 위기는 연극과 세상, 연극과 사회가 분리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이를 ‘분리의 기호’라고 불렀다. 그의 관점에는 연극에 대한 진전된 시각이 들어있다. 그는 연극의 위기를 ‘극형식의 위기’로 진단한다.

다게레오타이프 형식의 사진기 (사진출처=위키백과)
다게레오타이프 형식의 사진기 (사진출처=위키백과)

회화는 왜 리얼리즘을 포기했는가?

1837년 다게르는 사진기를 발명했다. 이는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기술이었다. 그러자 들라로슈는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고 외쳤다. 사진기의 사실성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안 화가들은 회화의 방향을 사실적 회화에서 추상적 회화로 바꾸었다. 이런 사조들은 모더니즘과 추상회화로 이어진다. 20세기에 연극이 위기를 맞은 것은 영화와 텔레비전의 발명 때문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미디어의 발명은 기존 예술, 기존 미디어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다. 연극은 이중적인 매체성을 지니고 있다. 매우 매력적인 매체성을 지닌 예술이기도 하지만, 열등한 매체성 역시 많이 지니고 있다. 우선 사람이 특정한 시간에(시간구속적) 특정한 공간에 직접 가야(공간구속적) 되고, 돈이 있어야 하고(금전소비적) 시간이 소요된다(시간소비적). 사실의 묘사에서도 연극은 경쟁력이 없다. 사실이 재현적으로 묘사되어야 한다는 믿음, 즉 정상적으로 인지된 것과 그것의 예술적 재현 간에 직접적 관계가 있다는 것은 신고전주의 시대 이후로 예술이론과 관습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연극의 리얼리티는 영화에 비하면 현저하게 떨어진다. 에릭 벤틀리는 영화 카메라는 건초더미 속의 바늘도 찾아낸다고 하였다. 반면 셰익스피어는 <헨리 5세>에서 연극무대 재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 투계장 같은 무대에서 어찌 프랑스의 대전장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원형의 목조건물 안에 아쟁쿠르의 하늘을 뒤흔든 그 많은 투구들을 어찌 몰아넣을 수 있겠습니까?"

연극은 영화나 텔레비전, 그리고 최근의 스마트 폰이나 유투브 등에 비하면 그 매체성이 현격하게 낮은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연극은 이 열등한 매체성을 극복할 수가 없다. 논자들은 연극의 위기 극복의 방법을 제시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연극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차를 오늘날의 자동차와 경쟁시킬 수 있을까? 연극의 매체성을 이해하지 못한 위기처방은 모두 잘못된 진단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연극중심주의의 폐해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첫째로 전국 대학교에 설치된 연극이나 공연관련 학과의 과잉이다. 졸업 후의 일자리는 부족한데 대학에서는 연극관련 학과가 넘쳐난다. 공연의 위기를 구하겠다고 나타난 예술경영학 역시 그 본래의 사명을 다하기에는 구체적인 이론이나 실천적 방법이 없다. 두 번째로 극장의 경우를 보자. 우리 나라에는 1000여 개가 넘는 극장이 있고 이 중 230여 개가 문예회관이다. 이들은 시민들의 문화향수 기회를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극장은 ‘하얀 코끼리’에 속한다. 모든 문예회관들이 심각한 ‘비용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세 번째로는 공연의 상업화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의 문제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한 사회적 낭비가 심각하다. 네 번째로 문화정책의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공연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공연관련 지원과 정책비용은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가? 다섯 번째로 연극의 정치화다. 벤야민은 ‘정치의 미학화’, ‘미학의 정치화’라는 말을 썼는데 공연은 정치가 이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르다.

아트프로젝트보라 '꼬리언어학(Tail Language)' ⓒPaulo Cesar Lima
아트프로젝트보라 '꼬리언어학(Tail Language)' ⓒPaulo Cesar Lima

변화하는 매체환경과 공연환경

공연이나 퍼포먼스는 매체환경의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 공연은 영화나 텔레비전이 없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오락이자 미디어였고, 지금도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연극은 영화와 텔레비전과 경쟁했고, 거기서 패배하면서 오락에서 예술로 변화해 왔다. 회화가 사진에게 패하고 추상미술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공연이나 퍼포먼스는 축제적이고 집단적인 제의에서 출발한 것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규격화된 것은 공연을 상업적으로 대하면서부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연을 제도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하려는 태도들 때문이다. 하나됨을 추구하던 공연에 상업성이 파고들고 정치화되면서 공연은 본래의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날에는 대중적 엔터테인먼트가 공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건 매체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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