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4 공연예술=낭비예술?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4 공연예술=낭비예술?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2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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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음. 제20회 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 개막작, 러셀 말리펀트 '숨기다 드러내다'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음. 2017년 제20회 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개막작, 러셀 말리펀트 '숨기다 드러내다'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최근 융복합 공연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새로운 창작의 방식을 모색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고 어려운 공연환경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다원예술을 별도의 장르로 구분하여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융합이나 복합은 ‘분리된 기호’들을 조합하는 시대적 흐름이다. 이들의 결합은 새로운 힘,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어떤 작품들은 무엇을 무엇과 어떤 목적으로 융합하는지, 그리고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애초부터 명확한 창작의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제작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융복합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매체, 여러 가지 예술을 혼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많은 창작자들의 관심의 대상이고, 정부에서도 지원하고 있다. 예술은 ‘매체를 다루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매체들, 다양한 매체들을 새롭게 이용하고 그들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예술은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고 실험과 도전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융복합이 잘못하면 많은 매체와 예술들의 단순한 결합으로 끝나서 오히려 각 매체들의 특성을 무시한 무리한 결합이 되고 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기술들이 다른 예술과 설익은 조합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14년도에 <원 데이>라는 융복합 뮤지컬이 있었다. 견우와 직녀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로서, 딱 하루 공연하고 말아서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차은택이 제작한 작품인데, 당시 정부의 중요 국정과제였던 문화융성정책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인지 아니면 차은택 개인의 발상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말 그대로 원 데이다. 처음부터 하루만 공연하려고 시작한 것인지, 작품내용이 안 좋아서 하루만에 끝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서 대학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직전에 1억 8천만원의 정부지원금이 제공되었고, 대통령은 ‘문화융복합의 첫걸음’이라고 격려하였다고 한다. 차은택은 대통령의 힘을 빌어 작품을 홍보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VIP 마케팅인데, 과거 일본 메이지 유신 때의 천람(天覽)이라는 정치적 행사를 연상케 한다. 천람은 천황이 가부키와 스모를 관람함으로써 천대받던 가부키와 스모의 이미지를 올린 정치적 이벤트였다. <원 데이>에 많은 공연관계자들이 분노했고 언론에서도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 국고지원 이외에도 제작자도 추가로 부담했다고 하니 제작비가 5억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많은 제작비를 들여 하루만에 끝낼 뮤지컬을 왜 기획했을까?

<원 데이>는 과거 중세시대 유럽왕실에서의 공연제작 관행을 연상케 한다. 당시의 유럽궁정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엄청난 비용으로 오페라를 제작하여 한 번 소비하고 버리는 극단적인 사치를 하였다. 그 공연들은 일반대중을 위해 제작된 게 아니라 왕과 귀족들을 위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재공연할 필요가 없었다. 공연은 한 국가의 재정을 파탄시킬 정도의 파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오페라는 제작비가 많이 필요한 장르인데다가 한 번 보고 버렸으니 당시의 재정으로는 제작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17~18세기 궁정오페라를 ‘낭비예술’이라고 부르는 학자가 있다.

영국 르네상스 시기의 스튜어트 왕조에서는 거대한 비용을 들여 궁정 가면극(court masque)을 제작하였는데 이는 국가의 재정을 어렵게 할 정도로 막대한 비용이었다. 제임스 1세 시대에는 매년 한 편씩, 찰스 1세 시대에는 두 편씩 제작되었다. 궁정가면극(Court Masque)은 당시 유럽의 많은 궁정에서 공연되었던 스펙터클로써 왕의 권위를 확고히 하려는 왕권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궁정가면극에는 천문학적인 제작비용이 소요되었다. 캐롤라인 왕조시대에 제임스 셜리가 쓴 <평화의 승리(The Triumph of Peace)>라는 연극은 궁정가면극 사상 가장 큰 비용이 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법학원(Inns of Court)에서 정치적, 사회적인 동기로 제작을 후원하였다. 공연은 1634년 2월 3일 법학원 회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찰스 1세와 왕비가 참관하였다. 왕비 헨리에타는 이 가면극을 너무 좋아해서 2월 13일에 재공연을 지시하였다. 제작비는 어머어마했다. 음악에 1천 파운드, 의상 한 벌에 100파운드가 소요되었는데 모두 100벌이었다. 그래서 총비용이 21,000파운드가 들었다. 그런데 당시 귀족의 1년 수입이 100파운드였다(위키피디아). 오늘날의 우리나라 고급공무원의 연봉을 1억 정도로 추정한다면 당시 21,000파운드는 200억원 이상이 된다. 당시의 경제력으로 보면 엄청난 비용이었을 것이다. 궁정가면극을 매년 제작하였으니 국가재정이 어려울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러자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는 국가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세금을 거둘 궁리를 하였고 이는 정국불안의 원인이 되었다.

궁정가면극은 일반 관객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일반 연극에서도 화려한 스펙터클을 요구하였다. 당시 궁정가면극의 의상들은 화려함이 극에 달하였는데 일반 관객들도 이런 화려한 의상을 요구하였고 이는 연극의 제작비 앙등으로 이어지고 극단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를 궁정에 의한 연극의 ‘식민화’ 또는 ‘침략’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궁정은 연극에 ‘황금수갑’을 제공한 것이다. 권력은 여러 가지 곤란을 겪으면서도 인상깊은 축제를 벌이려 한다. 스펙터클은 이처럼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주고 이의 영향이 매우 강하고 장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다시 소박한 과거로 되돌아가기가 어려워진다. 대형 서커스나 메가뮤지컬들을 관람하고 나면 이보다 약한 스펙터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약화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스펙터클은 또 다른 스펙터클을 부른다. 그래서 스펙터클을 기 드보르는 마약이라고 한 것이다.

1984년 이디오피아는 심각한 기근에 직면하였다. 한발로 인해 500만명 이상이 기아에 허덕였고 100만명 이상의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그러나 이 해는 제정을 타도한 1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74년 멩기스투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축출하고 소비에트식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것이다. 멩기스투 정권은 가뭄을 뒤로 한 채 혁명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성대한 기념식을 기획하였다. 게다가 이를 전국에 알리기 위해 TV중계국을 10개나 신설하였고 대량의 TV수상기를 수입하였다. 당시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은 비난이 쏟아졌으나 멩기스투는 가뭄과 아사를 ‘사소한 인간의 일’로 일축하고 행사를 강행하였다. 그리고 그 기념식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영국에서 10만병 이상의 위스키를 수입하였다. 당시 GNP가 110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던 이디오피아에서 1,000만달러 이상의 돈이 투입되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 일시적으로 위스키의 수출금지 소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혁명 10주년의 기념축제는 멩기스투 정권에게 국제적 비난을 받으면서도 해내야 하는 기념사업이었다(藤田弘夫, 都市と勸力. P 221).

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음. 제20회 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 볘라 온드라시코바 '가이드'/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음. 2017년 제20회 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볘라 온드라시코바 '가이드'/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오늘날은 어떠한가? 거액을 들인 많은 뮤지컬들이 흥행에 실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고 많은 지자체의 축제가 손실을 보고 있다. 대부분의 올림픽(퍼포먼스 학에서는 올림픽도 퍼포먼스로 본다)도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이러한 스펙터클한 공연의 소비는 베블렌이 말한 ‘사치소비’ 또는 ‘과시적 소비’의 경향을 띤다. 금전적 여유와 예술취향의 보유라는 두 가지 조건, 즉 물질적 차별화와 정신적 차별화가 모두 가능한 소비가 공연예술의 소비이기 때문이다. 어떤 공연의 소비에는 거액의 입장료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같은 공연에서도 입장권의 가격 차이에 의해 과시적 소비와 취향의 만족을 위한 소비로 나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공연의 소비는 부르디외가 말하는 타자와의 ‘구별짓기’의 기제가 된다. 공연은 이렇게 개인, 지자체, 국가든 누구에게나 경제적으로 매우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예술이 대중속으로 들어온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의 예술은 궁정이나 귀족 등 소수의 부유층이 즐기는 사치적이고 과시적인 오락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자치도시들은 왕년의 그리스 도시국가와 마찬가지로 예술 활동을 위하여 국고를 탕진하다시피 돈을 쏟아 부었다. 피렌체와 시에나뿐이 아니라 피사와 루카같은, 그보다 작은 도시들도 앞다투어 이러한 예술 활동을 벌였고 건축주가 되어 뽐내고 싶은 그들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막대한 재정적 출혈을 했던 것이다(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pp 59~60). 르네상스 이후 약 2세기동안 유럽의 각 궁정에서는 대규모의 각종 스펙터클이 벌어졌다. 바로크 시대의 유럽의 궁정은 유행의 진원지였다. 고급스러운 문화가 궁정으로 모였고 이들 문화는 물방울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민중들 속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그래서 과거의 궁정은 유행의 산실이 되었다.

중세시대의 마상창시합(Tournament)

중세시대의 궁정에서는 갖가지 구실을 붙여 축제를 개최하였다. 불꽃놀이 열병식, 무도회, 마상창시합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졌다. 독일 남부지역의 뷔르템부르크 공국의 칼 오이겐(1728~1793)은 1763년 그의 탄생일에 맞추어 2주간에 걸쳐 대대적인 축제를 개최할 것을 명했다. 오페라와 무도회, 불꽃놀이, 발레, 연극, 콘서트, 마상창시합 등이 계속 이어졌다. 칼 오이겐은 매년 자신의 수입의 3분의 1을 오페라 제작에 썼는데 이는 국가전체수입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岡田曉生, <オペラの 運命> 2010, pp24~25).

루드비히 2세는 바그너의 후원자로 유명하다. 전혀 경제적 능력이 없던 바그너에게 루드비히 2세가 없었으면 그의 오페라는 세상에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루드비히 2세는 연극, 오페라 등 공연 마니아였다. 1872년부터 1885년 사이에 2개의 궁정극장에서 무려 209회의 사적 공연을 제작하였다. 44개의 오페라(그 중에서 바그너 28회), 발레 11회, 연극 154회였다. 또한 칼 폰 페르팔을 궁정극장장으로 임명하여 셰익스피어, 칼데론, 글룩, 베버 등의 작품을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공연토록 하였다. 또한 그는 건축물을 좋아하여 바그너의 축제극장은 물론이고 ‘백조의 성’이라 불리우는 성과 극장들을 계속 신축하도록 하여 국가재정을 어렵게 하였다(위키피디아).

중세의 왕들의 공연과 퍼포먼스는 왕의 부와 권위를 과시하려는 정치적 행사였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정치성을 갖는다. 문화는 한 집단의 이념이나 신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데올로기적이다. 권력이 자기를 과시하는 방식은 ‘부재’를 통해서다. 명시적으로 또는 공개적으로 나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와 위장을 통해 권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부재와 위장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문화다. 이런 면에서 공연은 매우 적합한 이념의 표현방법이다. 공연을 통해서 정치인은 주민의 이익에 봉사하고, 지역을 사랑한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다. 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공연을 통해 권위를 연출할 수 있다. 권력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를 연출하고 싶어한다.

공연의 정치적 성격은 낭비를 초래한다. 공연은 화려하고 과시하기 쉽고 나를 홍보하기에 좋은 장르다. 공연이나 축제에 많은 주민들이 와 주면 그것으로 정치적 성공을 거둔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문화를 새롭게, 풍성하게 하려는 욕구를 지닌다. 문화국가, 문화융성 등을 말한다. 그러나 문화는 늘 우리의 곁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이나 스마트 폰을 통해서 지구촌 소식을 듣고 컴퓨터를 보고, 책을 보고, 신문을 보고,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영화관에 가기도 하고 공연장이나 전시장에 가기도 한다. 공연이나 전시회는 넘쳐난다. 문화가 적어서 문화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오히려 문화의 과잉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문화가 극장이나 전시장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화국민이 되어야 하고 문화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갇혀 있는 문화를 구출하자.

공연이 낭비적 성격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공연의 일회성 또는 소멸성이라는 특성 때문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현전’이라는 특성에 기인한다. 공연은 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회 배우가 출연해야 하고 일정한 횟수의 공연이 끝나면 세트나 의상 등은 버려야 한다. 히트한 창작물은 재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은 일회적 상품으로 끝나고 만다. 재제작이 되고 재활용이 된다고 해도 거기에는 많은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공연들이 있다. 나만 만족하면 된다는 ‘자위적 공연’,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고 할 수 없이 하거나, 지원금이 없으면 아예 공연이 불가능한 ‘지원금 공연’(우리나라의 문화지원은 아마도 세계 최고수준일 것이다), 입장권 가격에 비해 너무 수준이 낮은 ‘학예회 공연’, 나도 예술을 한다고 과시하려는 ‘과시적 공연’ 이 있다. 공공극장에서는 확보된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 연말에 ‘보도블록’ 공연을 하기도 한다. (연말에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보도블록 공사를 하는데, 이를 패러디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여본 것이다). 그리고 ‘극장을 위한 공연’ 또는 공연을 위한 공연이 있다. 극장이 있기 때문에 해야 하는 공연을 말하는데, 우리는 대개 관객을 위해서, 관객의 필요에 의해서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관객보다는 극장 자체를 위해 실시하는 공연이 있을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극장의 위신을(?) 세워주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극장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주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지자체는 극장을 보유하고 있다. 극장은 매우 힘이 세서 공연의 형식과 심지어 내용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를 ‘극장 구속성’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런 공연은 그야말로 공연을 위한 공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금을 받아 무작정 공연하는 ‘막무가내 공연’도 있다.

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음. 제20회 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 볘라 온드라시코바 '가이드'/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계없음. 2011년 제14회 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까두 & 아따깔라리 '흔적'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공연의 낭비는 공연의 의례적(Ritualistic) 성격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공연이 의례에서 비롯된 것처럼 공연은 많은 기념식이나 국가적 행사, 지자체의 이벤트 등에서 활용된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뮤지컬 붐이 일면서 지자체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뮤지컬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남한산성>, <화랑>, <이순신>, <정약용>, <아리 아라리>, <태화강>, <홍길동>, <문무대왕 실경 뮤지컬 만파식적> 등등. 지역의 뮤지컬 제작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역과 관련된 역사나 문화를 활용하여 지역을 홍보하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제작될 것이다. 지역 이미지를 높이고,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만 이루어지는 각종 공연을 우리도 제작할 수 있다는 생각. ‘뮤지컬 도시’를 지향하는 대구에서는 뮤지컬을 지방분권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문화의 민주화, 문화의 지방분권이다. 이런 면에서 지역의 뮤지컬 제작을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뮤지컬들이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달성한 효과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았고, 지역 이미지 제고에는 얼마나 큰 기여를 하였는가?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야심차게(?) 준비한 어떤 지방 뮤지컬의 경우에는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하였는데 유료관객이 불과 20명 미만이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지역은 늘 국지적인 행사를 중앙으로 확대하여 보다 큰 질서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서울 중심주의에 의해 발생하는 서글픈 현상이기도 하고, 지자체의 정치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지역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라면 뮤지컬 말고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텐데 왜 뮤지컬일까?

바흐친은 19세기에 소설이 인기있었던 문화현상을 ‘소설화’(Novelization)현상이라고 불렀다. 소설은 많은 장르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어서, 다른 장르들은 소설을 모방하여 소설화하려고 했다. 필자는 바흐친을 흉내내어 <뮤지컬의 상호매체성과 혼종의 미학>에서 이를 ‘뮤지컬화’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뮤지컬화 현상은 우리나라 공연산업의 곳곳에 확산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불기 시작한 뮤지컬 붐은 전국적인 현상이고 아직도 뜨겁다. 그러나 거기에는 커다란 경제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뮤지컬 제작실패로 자살한 기획자도 있고 도산한 많은 기획자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뮤지컬 기획사들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영국의 공연프로듀서 연합회의 공연제작시의 첫 번째 주의사항은 이것이다.

“뮤지컬을 첫 작품으로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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