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부활절 달걀 ‘피산키(pisanki)'
폴란드의 부활절 달걀 ‘피산키(pisanki)'
  • 이종찬 기자
  • 승인 2019.04.2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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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넘은 전통, 지역에 따라 다양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기독교 축일인 부활절에는 서로 달걀을 주고 받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린다. 그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장식을 한 달걀을 주고 받으며 부활의 기쁨을 함께하는 것이다. 폴란드의 저널리스트이자 음악가인 마렉 켐파는 최근 폴란드의 부활절 달걀을 소개하는 글을 폴란드 매체에 실었다.

폴란드의 전통적인 부활절 달걀로는 '피산키(pisanki)'가 있다. 피산키를 만드는 방법은 달걀 껍질에 왁스로 그림을 그린 후 물감에 담가놓는다. 달걀 껍질이 잘 물들면 달걀을 꺼내 적당히 가열, 왁스를 녹여 제거한다. 이렇게 왁스가 물에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염색하는 방법을 바틱 기법(batik technique)이라고 하는데 피산키는 이 바틱 기법을 다양하게 활용해 만든 것이다.

달걀을 가열하여 왁스를 제거해야 한다. 민예학자 Genowefa Sztukowska 작업모습(c)Andrzej Sidor(사진제공=)
달걀을 가열하여 왁스를 제거해야 한다. 민속예술가 Genowefa Sztukowska 작업모습(c)Andrzej Sidor(사진제공=www.culture.pl)

핀이나 바늘같이 뾰족한 것으로 왁스 그림을 그리며 염료는 대개 식물성 재료로 만든다. 즉 붉은색은 양파껍질, 녹색은 호밀 싹, 분홍색은 비트즙, 노란색은 사과나무 껍질 등으로 만든다. 폴란드어의 '쓰다(pisać)' 에서 이름을 따온 피산키의 유래는 약 1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계란 외에 오리알로도 만든다. 최근에는 타조알도 사용되지만 드물다.

바틱 기법이 기본이지만 피클링 기법도 있다. 계란을 물감에 담가 색을 입힌다. 여기에 왁스 무늬를 넣은 후 피클링 용액에 담가 염색된 색을 고르게 한다. 이후 왁스를 제거하여 무늬를 얻는다. 여러 번 반복하면 다양한 피산키 무늬를 얻을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가볍게 긁어서 만드는 것으로, 먼저 염색을 한 후 섬세한 패턴을 새겨 넣는다. 대개 꽃무늬이며 문구를 넣기도 한다. 이 기법으로 만든 달걀을 '크로숀키'라고 하는데 주로 실레지아 오폴레 지역에서 만든다.

실레지아 지방의 부활절 달걀 크로숀키(Kroszonki). 달걀표면에 무늬를 새긴다(c) Edwin Remsburg(사진제공=www.culture.pl)
실레지아 지방의 부활절 달걀 크로숀키(Kroszonki). 달걀표면에 무늬를 새긴다(c) Edwin Remsburg(사진제공=www.culture.pl)

중부 워비츠 지역에서는 속을 비워낸 달걀에 색종이 조각을 붙여 만든다. 다양하고 생생한 색으로 민속 스타일, 수탉, 꽃무늬 등을 넣는다.

색종이
색종이를 붙여 만드는 워비츠 지역의 부활절 달걀(c)Michał Tuliński(사진제공=www.culture.pl)

동부 헤움시에서는 대개 야자나무 모양으로 만든 문양을 사용하며 중부에 위치한 오포치노 지역에서는 어두운 색을 배경으로 직선, 곡선을 사용한 가벼운 문양을 넣는다.

요즘은 아크릴로 그리거나 호박 장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정교한 투조(openwork)를 위해 하이테크를 사용하려는 경향도 있다. 어쨌든 폴란드에서 피산키의 인기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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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문양의 달걀을 만들기 위한 도구(c)Michal Fludra(사진제공=www.culture.pl)

한 때 부활절 달걀에는 어떤 마법같은 것이 있다고 믿어졌다. 예컨대 그 달걀을 삶은 물로 씻으면 건강에 좋다거나 혹은 집을 지을 때 집터에 부활절 달걀을 놓아두면 악마의 힘을 물리칠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부활절 달걀을 만드는 것은 여자의 일로, 부정 타는 것을 막기 위해 남자는 피산키 만드는 곳에 가면 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가 맘에 드는 신랑감을 만나면 사랑의 표시로 이 달걀을 선물했다고 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 이런 관습이나 속설은 약해졌다. 그렇다고 피산키 자체가 잊혀진 것은 아니었다. 폴란드의 많은 문화행사에는 여전히 피산키가 등장한다. 2017년 쿠르피에 문화박물관은 바틱 기법을 이용한 피산키 만드는 법에 대해 워크숍을 열었고 국립농업박물관은 600여개의 전통 피산키를 전시하기도 했다. 또한 폴란드의 현대 조각가, 미술가들은 피산키를 복고풍의 보석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보석장식의 피산키
보석으로 장식한 부활절 달걀.(c)Michał Kazmierczak(사진제공=www.culture.pl)

피산키를 전문적으로 모으는 개인 수집가도 있다. 바르샤바에 사는 여성 사업가 다누타 카민스카는 거의 박물관 수준의 피산키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그녀는 매년 부활절 시장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달걀을 사 모은다. 100개가 훨씬 넘는 피산키를 가지고 있지만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부활절에는 이를 큰 쟁반 위에 올려놓고 부활절 장식으로 쓴다고 한다.

개인 컬렉션
Danuta Kamińska의 개인 컬렉션(c)Romuald Kępa(사진제공=www.culture.pl)

피산키는 부활절마다 폴란드의 집안과 식탁을 장식한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세기 넘게 지속되어 온 부활절의 중요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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