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LDP무용단 제19회 정기공연 무대의 여운
[리뷰] LDP무용단 제19회 정기공연 무대의 여운
  • 이정제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2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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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4/5-7)
윤나라 'Knock Knock' & 정지윤 '사이(間)'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더프리뷰=서울] 이정제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 현대무용 태동으로부터 1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이 시대에 현대무용의 가치는 무엇일까?

초기 현대무용은 미래적 감각의 앞선 사조를 의미하며 시간과 미학적 개념에서 미래지향적 예술을 표현하면서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와 흐름에 비해 지나치게 파격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의 시대에는 같은 단어로 표현되지만 이 시대에 맞는 컨템포러리 무용으로서 가치가 더 어울릴 듯하다.

무용(舞踊, dance)은 가장 원초적인 예술이다. 인류의 역사와 그 기원을 같이하며 인간 내부의 미적(美的)인 정서를 육체를 빌어 율동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한다.

1세기가 지나오며 이 땅의 현대무용은 스스로 진화해왔다. 최승희 뿐 아니라 현시대에 활동하는 무용가들의 땀과 움직임은 더욱 처절하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예술의 한 형태가 무용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을 행하는 데 있다.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개념처럼 인간만이 유희한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1938년에 출간된 호이징하의 <호모 루덴스> 개념에 현대무용이 가장 적절한 문화현상으로 반증되는 것은 아닐까?

무용은 표현하지만 설명하지 않는다. 무대 예술로서 연극과 달리 오직 움직임을 통해서 내용을 전달한다. 무대 위에서 표현되는 모든 움직임이 텍스트 역할을 하며 관객 개개인의 이해에 따라 콘텍스트(Context)로 해석된다. 난해한 예술로서 현대무용이 어찌보면 더 난해한 요즘 세상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하며 LDP 무용단의 제19회 정기공연을 통해 또 다른 무대의 감흥을 리뷰해 본다.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첫 번째 무대 – 윤나라 안무 <Knock Knock>

암전된 상태에서 소리가 들리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빗소리? 무엇인가 쇠붙이를 긁는 듯한 소리? 조명이 밝아오며 무대 3면을 채운 연극적인 세트가 보였다. 고립되고 획일적인, 산업화된 도시 구조물의 형태와 고딕 양식의 교도소 같은 단절되고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전해주는 공간 구성으로 무대는 채워졌다.

극적으로 나지막하게 깔리는 조명 탓에 무대는 어느새 암울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독일, 바우하우스, 폴란드 출신 그로토프스키, 러시아, 단절, 이런 단어와 이미지가 떠올랐다. 단순하면서도 정형화된 듯한 인간의 몸짓이 공간을 채워갔다. 안무가 멋진 것은 무용 공연이니 당연한 듯하지만 음악과 조명의 구성은 다분히 연극적이며 매혹적이다. 그로테스크한 표현을 담은 음악과 전위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조명의 색온도를 통해 무대는 시간과 공간의 황홀하고 현란한 움직임으로 채워졌다.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윤나라 'Knock Knock'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그러나 안무가의 열정과 고뇌의 흔적이 의미 있지만 이번 작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 게 아닐까? 너무 채워져서 숨이 막히는 어지러움과 과도하게 현란해서 혼란스럽고, 너무 뛰어나서 안타까운 무대였다. 천재적인 재능의 신진 예술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넘치는 열정과 애씀을 통해 과하게 보여지는 애틋한 무대가 아닐 수 없다.

음악의 선율과 리듬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몸짓으로 표현하는 안무는 탁월했다. 한 마디로 "BRILLIANT", 분명 신선하고 놀라운 무대였다. 대단히 재능있는 신진 안무가의 자신만만한 무대 구성과 연출이 돋보였다. 그러나 한번 더 하기보단 오히려 한 템포 더 쉼을 담은 윤나라의 다음 무대가 기대된다.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두 번째 무대 – 정지윤 안무 <사이(間)>

아무런 사운드 이펙트나 음악도 없이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무대와 대조적으로 정적인 시작은 예상외로 무대에 주목하게 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간결하여 정중동의 느낌을 주며 절제된 움직임이다.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완벽한 훈련의 결정체 같았다. 각각의 완숙한 몸짓이 뭉치면서 또다른 완전체를 만들고 해체되며 반복적인 확장을 한다.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채워가는 안무가의 솜씨가 동공을 크게 확장시킨다.

잘 갈린 먹과 고운 화선지를 가진 정갈한 여인이 차분하면서도 거침없이 난을 치는 듯했다. 무대 중앙에서 뒤쪽으로 가로로 늘어선 무용수들의 단순한 몸짓은 실루엣 효과 덕분에 미묘한 감동을 주었다.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인간의 희로애락과 삼라만상을 표현하듯 밀고 당기며 힘있고 현란한 유연성을 보여주는 동작은 그 프레임 자체로 작품이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재해석하여 2차원적 회화 작품을 음악과 몸짓으로 3차원 공간에 풀어놓으며 미학적으로 다듬어 표현한다고 하면 저런 표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번째 무대는 한 순간도 지루함이 없이 숨이 죽지 않을 정도로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듯했다. 멈춘 듯 빠르게 흘러가는 무대는 가을 하늘 구름같았고 다시 뒤엉키며 봄 햇살의 찬란함으로 피어났다. 40여분 가량의 무대는 소프트한 멜로인 줄 알았더니 서사가 있는 서스펜스 작품이었다. 중단편 서스펜스 소설처럼 쉼없이 다음 장을 기대하며 넘기도록 했다.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무대구성의 백미는 무대 하수 뒤편에 삼각 모양의 세트 설정. 역사적 거대 담론을 오마주(Hommage)한 듯하다. 골고다를 향하는 십자가를 진 예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발자국, 십자가를 지고 인간세계의 죄를 대속하려 한 그 발자국.

시시포스(Sisypos, Sisyphus) 신화의 바위를 상징하며 멋지게 변주곡으로 편곡한 듯한 무대 구성은 놀라웠다. 시시포스의 거대한 구르는 바위는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형태의 작은 돌덩이로 설정되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현시대의 소소한 일상 속의 끊을 수 없는 부조리성을 암시하는 듯했다.

삼각 형태의 세트는 인간의 성공과 실패, 끊임없는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균형 잡히지 않는 움직임, 중력의 작용을 받지 못하는 모순적 부조화, 이런 불완전성을 독특한 안무로 완성한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몸짓은 무대 상수 앞에서 디지털 영상으로 생중계되어 공간의 이질성을 극대화시킨다.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안무가 정지윤은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자신만의 키워드를 작품에 새겨 넣었다. ‘켜켜이 쌓여가는 불완전성’,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장중한 시간의 개념을 지나며 뭔가를 완성시켜 가려는 과정 속에 부조화를 날카롭게 인식하며 완성 자체보다 그 과정에 집중했다. ‘균형의 불완전함’, 그것을 버텨내려는 의지가 있는 ‘사이’ 그리고 이러한 ‘사이’의 순간들의 합이 결국 우리의 삶이라고 정의하며 자신만의 체험적 삶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춤을 통해 무대위에 풀어놓았다.

정지윤은 이번에 LDP와 15년만에 함께하는 합작품이 나오기까지 수 많은 슬럼프와 60회가 넘는 이사, 무용수-안무가-기획자-제작자-교육자로서 다양한 직업적 역할을 넘나들었다. 이렇게 파란만장하게 겪은 스스로의 삶의 변곡점에서 모아진 ‘불완전성’이 이번 작품의 주제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15년의 긴 시간 동안 정지윤은 수많은 변화를 경험하며 존재론적 갈등과 현실 속에 의미없이 그저 부유하는 듯한 사회적 정체성의 혼란을 아프게 체험했다. 그로 인해 변화된 정지윤과 LDP와의 켜켜이 쌓인 또다른 인연의 그 사이를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그래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하모니의 결정체를 무대에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정지윤 '사이' (사진제공=LDP무용단, ©BAKi)

정지윤은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주제나 움직임을 만드는 메소드 등이 늘 새롭다고 평가받았다. 또한 대부분의 현대무용가들과 달리 무용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뮤지컬과 콘서트의 안무뿐 아니라 무용영화 기획과 제작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쌓았다. 이번 제19회 공연은 LDP의 객원 안무가로 참여해 15년만에 LDP와 함께하는 세 번째 무대이다. 과거 제2대 대표이기도 했던 정지윤은 누구보다 LDP만의 스타일과 성향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정지윤과 LDP의 인연은 2002년 LDP 제2회 정기공연에 올려진 작품 <The Day>의 객원 안무자로 처음 시작되었다. 그후 작품에 대한 좋은 반응을 얻으며 LPD 제2대 대표이자 안무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온 정지윤의 작품을 살펴보면, 2001년부터 시작된 초기 작품들로는 <The Promis>, <The Day>, <창을 부수다>, <독백하듯-Shout Shout> 등이 있다. 젊은 시기에 작업한 작품답게 강한 에너지가 분출될 것만 같은 뚜렷한 정서가 담겨 있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뒤 2012년의 작품인 <Dialogue & Sound>, 그리고 가장 최근에 만든 한예종 레퍼토리 안무작으로 2017년 <그들로부터>, 2018년 <Go Back Home>을 대표작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의 주제와 콘셉트를 상징하는 타이틀을 통해서 정지윤의 작품들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부유하는 개인의 서사를 묵묵히 관조하여 세밀하게 무대에 풀어놓고 있다.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며 더욱 완숙해진 정지윤의 무용세계는 한예종 학생들과의 작업을 통해서 어쩌면 더욱 젊고 강해지며 늘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다분히 액팅이 수반되는 연극적 개념이 작품 제목을 통해서 드러나며 실제 공연을 통해서도 음악과 조명을 놀랍도록 잘 활용한다. 안무가를 넘어서 뮤지컬과 영화 작업까지 경험한 기획과 연출의 감각이 정지윤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이제 완숙기에 접어든 안무가 정지윤의 다양한 창작작업이 단순히 이카루스의 날개가 되지 않고 푸르른 하늘을 향해 끝없이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갈채를 대신해 이 단어를 전하고 싶다.

"Carpe Diem"

공연이 끝난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이어폰을 꽂아 음악을 틀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의 <The Second Waltz> 선율이 들려온다.

공교롭게도 113년 전 태어난 쇼스타코비치는 현대무용의 태동기를 경험한 동시대의 음악인이다.

당시에 유럽 대륙에서 유행했던 왈츠를 위한 음악을 작곡한 그가 21세기에 선보인 정지윤의 무대를 보았다면 어떤 음악을 만들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예술계의 거장들의 움직임이 상상 속에서 펼쳐진다.

시트러스 향으로 시작되는 듯하더니 묵직한 머스크 향으로 채워진 듯한 정지윤의 무대는 봄날의 저녁 달빛에 물들어간다. 부디 뜨거운 피같은 땀방울로 흥건히 적셔진 그 공허한 무대를 허우적거리는 무용수들의 서글픈 몸짓으로 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자유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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