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의 독립무용가들(2)-마리 토프(Marie Topp)
코펜하겐의 독립무용가들(2)-마리 토프(Marie Topp)
  • 이종찬 기자
  • 승인 2019.05.0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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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과 블러링의 시각 탐구 'Liaisons'

[더프리뷰=코펜하겐] 이종찬 기자 = 지난 3월에 열린 코펜하겐 DFFF 축제(본지 3월 29일자 보도)에서 덴마크의 안무가 마리 토프는 독특한 작품 <Liaisons>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구조가 어떻게 인간의 감각 속에 내장되는지를 탐구하는 그녀의 ‘Haptic Series' 3부작의 첫 작품이다.

작품에서 두 공연자(남녀 각1명)는 한 시간 동안 무대를 천천히 걸어서, 기어서, 엎드려서 한 바퀴를 돌며 관객들을 온몸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본다(see)'라는 말은 시각으로 보는 것과 이성으로 보는 것(이해하는 것) 두 가지를 모두 말한다. 이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구별, 분절, 불연속을 전제로 하는데 안무자는 이 불연속을 시각의 흐려짐(blurring)을 통해 지워보려는 것 같았다.

프로그램 노트에는 페미니즘적 담론의 잠재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쓰여 있다. 인간의 인식이 분절과 구분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면 이 작품은 의미가 풍부하고 해석이 열려 있는 작품같았다.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젠더의 문제, 인식에 있어 주체와 객체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온몸으로 보면서도(시각으로) 아무 것도 보지않는다(객체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레비나스의 '타자(他者)에 대한 윤리'가 가장 가깝게 다가왔다.

시각이 촛점을 맟출 수 없다면 우리의 의식도 달라질까(c)Keneth Bruun
시각이 촛점을 맞출 수 없다면 우리의 의식도 달라질까(c)Kenneth Bruun

공연자들은 천천히 플로어 위를 움직이면서 빨아들이듯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관객들도 공연자들을 마주보면서 시야가 흐려져 갔다. 서로 빨아들이듯, 빨려 들 듯 응시하는 가운데 문득 관객들도 공연자들과 마찬가지로 온몸으로 보면서도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정신적인 시선이 멈추자 공연자들의 느릿한 동작들이 만져질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지 못했던 체험적인 공연이었고 조용한 박수가 길게 이어졌다.

안무자 마리 토프(Marie Topp)(사진=이종찬 기자)
안무자 마리 토프(Marie Topp)(사진=이종찬 기자)

안무자 마리 토프는 2009년 덴마크 공연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주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에서 작업하고 있다. 독립무용가로서 아직 많은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2015년 덴마크 보라보라 레지던시 센터 입주작가로 뽑혔으며 2016년에도 팀의 일원으로 레지던시에 참가했다.

인간의 사유와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관심이 있다는 그녀는 감각하는 방식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주변 세계가 어떻게 우리 신체와 정신을 흡수하는가를 탐구한다고 한다. <Liaison>은 2018년 초연 이후 덴마크, 스웨덴 등지에서 투어를 가졌으며 그녀는 현재 'Haptic Series' 두 번째 작품 <Oceanic>을 작업 중이다.

visible effects of force
마리 토프, "The Visible Effects of Force"(c)Anja Beu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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