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6 BTS와 한류의 신체성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6 BTS와 한류의 신체성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0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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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일곱 젊은이들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대중문화의 최강국 미국의 거대한 스타디움을 열광시킨 BTS. 그들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공장에서 나오는 노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약간은 비아냥거리는 느낌도 있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우리의 아이돌 그룹은 그 탄생 자체가 ‘공장’ 형식의 규격화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아이돌의 매력이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까?

얼마전 조영남 그림의 대작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조영남이 아이디어를 내기는 했지만 다른 화가가 그림의 대부분을 그렸는데도 조영남이 이를 팔아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미술에서의 대작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주문이 밀리거나 대량생산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이 이미 루벤스나 렘브란트 등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루벤스는 수천점의 작품을 그렸는데, 그것은 그가 운영한 그림공장 덕분이었다. 루벤스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전체적인 그림은 조수나 제자들에게 그리게 한 다음 마지막 정리를 본인이 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의 수천 점의 작품중에 그의 서명이 들어간 작품은 5점뿐이다.

루벤스는 풍경이나 인물, 동물 등에 능한 조수들에게 분업의 형태로 그림을 제작하게 했다. 그의 그림공장은 상품을 제조하는 하나의 사업이었다. 렘브란트도 공장을 운영했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에 일일이 관여하였다(Svetlana Alpers, Rembrandt’s Enterprise, 1990, p100-104).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앤디 워홀이 공장을 운영했다. 워홀은 그의 스튜디오 이름을 ‘팩토리’로 명명하고 거기서 ‘예술노동자’들과 함께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팩토리에는 시인, 화가는 물론 마약중독자, 성전환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마오쩌뚱을 소재로 한 작품은 2000천점이 넘게 그렸다. 최근 중국에서는 다펀이라는 지역에 그림공장을 세워서 8천명 정도의 화가들을 입주시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있기도 하다 .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예술공장이 그림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프랑스의 외젠 스크리브(Eugene Scribe)는 문학공장을 운영했다. 그는 매우 대중적인 작가로서 400편 이상의 보드빌, 코메디극, 비극, 오페라 등의 대본을 썼다. 그가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문학공장을 차려서 줄거리, 대화, 구성 등을 제자나 조수 또는 동료작가들과 분업하여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극작가로서는 드물게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잘 짜여진 연극(well made play)>이라는 창작방법에 기초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이야기의 전개방식을 이용하여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 중심이 되는 정보가 있고 이를 토대로 사건이 진행된다. 사건에 대한 서술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고 운명의 역전, 서스펜스 등을 거쳐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보통 기승전결이라 부르는 통상적인 이야기의 전개방식에 좀 더 극적인 사건을 추가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높이려고 했던 것 같다. 스크리브와 같이 작업을 했던 빅토리앙 사르두(Vitorien Sardou)나 뒤마 피스도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갈등이라고 믿었다.

외젠 스크리브는 이런 대중적 생산방식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빅토르 위고나 고티에 같은 작가들은 시적 감수성이나 서정성, 철학이 없는 작품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스크리브의 극작법을 옹호하는 극작가들도 많았다. 입센은 그로부터 세심한 구성의 테크닉과 여러 가지 효과들의 준비 테크닉을 받아들였으며 그러한 사례들을 통해서 이 잘 짜여진 연극은 극 구성법의 전통적인 모델이 되었다. 마빈 칼슨(퍼포먼스및 연극이론가)도 그의 작품 제작방식과 내용을 높이 평가했다.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19세기의 사실주의 작가들은 스크리브의 극구성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스크리브는 스스로를 어떤 학파의 개척자나 창설자로 보지 않았다. 단순히 어떤 재주의 성공적인 실천가로 보았다. 그는 어떤 서문도 쓴 적이 없고, 어떤 선언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 작품 스스로의 힘으로 말한다. 스크리브의 다음과 같은 연설에서 그의 연극관, 예술관이 잘 나타난다. ‘관객들이 교훈이나 도덕적 증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분전환과 오락을 위해서 극장에 가고, 그들의 주의를 가장 끄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허구다. 당신이 당신 눈앞에서 매일 보는 것을 극장에 가서 다시 보는 것이 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는 당신에게 유용하지 않은 것, 곧 비일상적인 것을 보는 것이 당신을 즐겁게 한다’ (마빈 칼슨, 연극의 이론, 264-265). ‘잘 짜여진 연극’은 이렇게 하나의 연극양식이 되었다. 공연은 이런 식으로 특정한 제작방식과 구성기술에 의해 독립적인 양식을 갖게 된다.

K팝의 아이돌 그룹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처럼 규격화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예술적 자율성의 부족, 자율적인 의지의 결여, 강제적인 훈련, 규격화된 동작, 기계처럼 움직이는 집단성 등이 모두 비판의 대상이다. 자신을 버리고 인큐베이션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상품이 되어가는 것이 한류 아이돌그룹의 운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는 무엇보다도 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본인들의 출세강박, 이들을 통해 돈을 벌려는 ‘공장주’들의 이익동기 등이 결합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장제적 생산방식, 집단적 생산방식이야말로 K팝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그런 호된 훈련과정을 거쳐 그들은 자율적인 인간으로 자라날 것이고 규격화된 집단에서 조직화되고 멋진 조화를 이루는 예술적인 집단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스포츠 스타들의 훈련은 매우 고되다. K팝 그룹도 스포츠 스타 못지않은 훈련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스포츠와 예술은 다른 것이라고.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예술을 한 사람의 천재가 만들어내는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으로 생각해 왔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예술에서의 천재개념을 옹호한다. 칸트가 강조한 천재성의 개념은 독창성이었다. ‘어떤 규칙에 좇아서 습득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숙련의 소질'이 아니라, ‘특정한 규칙에 부여될 수 없는 것을 산출하는 것’이 천재이고 그것이 예술이다. 따라서 공장에서 나온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 우리는 예술에는 높은 정신성이 담겨야 하고 인간을 교화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예술의 개념은 혼돈에 빠졌다. 원숭이가 그린 그림도 미술관에 가면 예술이 된다고 말한다. 안드레스 세라노는 병속에 십자가와 오줌을 담고 이를 <지저스의 오줌>으로 명명하고 예술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똥을 담은 만조니의 <예술가의 똥>은 수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크리스 오필리는 코끼리의 똥을 그림위에 바른 <성모 마리아>를 그려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배를 칼로 그어 유혈이 낭자한 퍼포먼스도 있고 벌거벗은 채 거리를 달리는 퍼포먼스들도 있다.

그래서 아서 단토와 조지 딕키같은 미학자들은 예술제도론을 주장한다. 예술계가 예술로 인정하면 예술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인가? 누구나 예술가가 되고, 아무 것이나 예술이 되는 것인가? 단토는 예술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의미를 가져야 하고 의미는 어떤 식으로든 물질적으로 작품속에 구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물이 작품으로 변형되는 것은 해석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단토는 ‘철학적 미술사’를 주장한다. 아서 단토의 예술정의는 그럴 듯하지만, 철학자의 해석을 통해서 의미가 확정된다면 그게 어떻게 예술이 될 것인가? 소수의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놀이, '문화게임'(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 나오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예술에 철학자의 어려운 해석을 또 다시 거쳐야 한다면 수용자들에게는 삼중 사중의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난해함을 또 다른 난해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난해한 '문화게임'은 점점 대중을 예술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예술은 기술이라는 의미의 테크네에서 출발하였다. 매체를 다루는 기술이 없으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한다. K팝의 아이돌들은 신체라는 매체를 다루는 최고의 기술자들이다. 팝이 아니라 오히려 신체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노래와 퍼포먼스가 잘 결합된 예술이다. 바그너는 오페라 아리아가 민속음악에서 비롯되었고, 발레 역시 민속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Wagner, Opera and Drama 37-38). 고급예술은 민중들의 놀이를 고도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의 구별은 무의미한 것 아닌가? 이런 기술적 고도화, 또는 정교화나 세련화는 예술의 기초가 된다. K팝은 예술로서의 발레나 현대무용과는 전혀 다른 문법을 사용하여 대중적인 춤과 노래를 오랜 훈련을 통해 기술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예술이다. 스포츠와 예술은 또 무엇이 다른가? 고귀한 정신성과 교양과 교훈은 예술에만 있고, 스포츠에는 없는 것인가? 오래 전에 어느 저명한 무용교수가 어느 현대 무용수의 춤을 보고 ‘춤이야 체조야?’하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무용교수에게는 그 현대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 말이지만 사실은 스포츠와 예술 사이의 근친성, 아서 단토의 표현을 빌자면 ‘식별 불가능’함을 말한다. 피겨 스케이팅의 채점항목에는 ‘예술성’이 포함되어 있다. 스포츠에서는 스포츠도 예술이라고 말한다. 스포츠나 음식, 심지어 날씨도 미학의 대상이 된다는 <일상미학, Everyday Aesthetics>은 미와 예술작품만을 사유의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전통미학에 도전하고 있다. K팝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우리의 연예기획사들은 K팝이라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예술공장’이다.

BTS (사진제공=서울시)
BTS방탄소년단 (사진제공=서울시)

퍼포먼스 - 패턴화된 행동

K팝 예술공장에서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는 아이돌의 동작들을 조직화한 것이다. 일상적인 행동을 퍼포먼스로 만들려면 이를 패턴화해야 한다. 퍼포먼스는 패턴화된 행동(patterned behavior), 형식화된 행동, 조직화된 행동이다. 그래서 퍼포먼스 이론에서는 퍼포먼스를 ‘ 패턴화된 행동’이라고 부른다. 예술적인 공연이건 일반적인 퍼포먼스건 모두 패턴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극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행동들의 패턴화를 생각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발레동작의 하나하나가 패턴화된 것들이고 악기의 연주도 마찬가지다. 의례의 절차도 마찬가지다. 제사상에서 제사지내는 우리의 전통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패턴화된 행위에는 ‘사회적 학습’이 필요하다. 인사하는 법은 어른들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처럼. BTS의 퍼포먼스는 고도로 패턴화된 행동들이다. 마치 공장에서 나온 동일한 상품과 같다. 그러나 학습과 훈련을 통해 익힌 패턴화된 행동들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낸다.

K팝은 이제 하나의 공연양식이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이 상당히 유사한 공연형식을 지니고 있다. 공장에서 나오는 음악이라고 비판하는 근거는 아마도 이런 표준화된 양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K팝은 독창적인 공연양식이다. K팝이라는 공연양식이 있고 그 하부에 서로 다른 다양한 음악과 춤과 퍼포먼스가 파생하는 것이다. 이를 스크리브의 개념을 빌려서 <잘 짜여진 퍼포먼스(well made performance)>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K팝의 퍼포먼스는 노래와 역동적인 춤 자체가 일종의 예술이다. 만약 예술이라는 용어가 거북하면 대중예술이라고 부르자. 보기엔 쉽지만 몇 명이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사불란한 퍼포먼스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테크닉이자 아름다운 신체가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K팝의 신체성 - 자기조직화

K팝 아이돌 그룹은 한결같이 4~9명의 집단을 이룬다. 거기에 K팝의 특징이 있다. 이를 ‘집단적 신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집단적 신체가 처음부터 유기적으로 잘 조직화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매우 어설프고 부조화한 신체들일 것이다. 이를 기계적 신체라고 부르기로 하자. (뒤르켐은 노동분업이 완전하지 않은 전통사회의 연대를 기계적 연대로, 복잡한 사회의 연대를 유기적 연대라고 하였다). 한류 아이돌들은 기계적 신체의 과정을 거쳐 유기적 신체로 진화하고 마침내 초유기체로 발전한다. 꿀벌이나 메뚜기, 새들은 집단 전체가 하나의 개체처럼 움직인다. 이렇게 하나처럼 움직이는 집단을 <초유기체>라고 하는데, K팝은 잘 조직화된 초유기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엔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는 ‘자기 조직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자기 조직화란 무질서한 여러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질서있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아름답게 만들어진 모래언덕이나 수많은 새들이 하나가 되어 하늘을 무리지어 나는 모습은 자연스런 자기 조직화의 예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 오리떼가 연출하는 군무에서 우리는 신비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이나 동작에는 전체와 조화를 이루려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으면서도 그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질서있게 피해나가고 걸음의 보폭과 속도를 조절한다. 반면 K팝은 혹독한 인공적 조직화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피나는 연습이다. 아이돌들의 신체는 이 연습과정에서 하나의 신체, 집단적 신체가 되고 유기적 신체가 된다. 처음에 그들의 신체는 타율적인 규율을 받는다. 엄격한 규율과 신체를 어떤 패턴에 맞추어나가는 훈련은 매우 고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인공적인 조직화가 자기 조직화로 발전한다. 그건 그들의 공장에서의 오랜 훈련이 만들어낸 체화된 기술과 이를 넘어선 후의 자유로움이다. 이제부터는 타율적인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독창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실제로 BTS는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안무도 하고 스스로가 창작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K팝의 신체성 - 신체적 동시성

한류 스타들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그 신체성이다. 아이돌은 매우 인공적이고 정해진 훈련방법과 규칙에 의해 철저하게 신체를 규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그들은 외모심사에 통과해야 한다. 못생긴 사람은 이 심사에 통과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아시아 인종 중에서도 용모가 준수한 인종에 속한다. 이런 외모는 한류의 신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다. 그 중에서도 잘 생긴 선남선녀들만을 뽑아놓았으니... 이는 영상시대에 어울리는 신체전략이다. 아이돌 선발의 심사과정에도 어떤 기준이 있을 것이다. 일단 합격하면 마치 군대와 같이 기숙사에서 스파르타식 합숙훈련을 한다. 길게는 7~8년씩.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안무,보컬,연기, 외국어 등을 익힌다. 그들은 같이 합숙하면서 단원들간의 일사불란한 팀웍을 갖추게 된다. 이 또한 신체를 규율하는 방식이다. 미쉘 푸코는 신체를 규율하는 데는 ‘미시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아이돌의 훈련과정에도 미시적 기술이 적용될 것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한 팀에서 연습하면서 각자의 신체가 아니라 집단적 신체가 된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룬 하나의 신체. 이들 신체적 통일성은 모든 힘의 근원이 된다.

2009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100미터 경기에서 우샤인 볼트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했다. 그 레이스를 분석한 결과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이기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뛴 볼트는 경쟁자였던 타이슨 게이의 스텝과 보조를 맞추면서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치열한 경쟁의 순간에도 의도하지 않은 조정(스텝의)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볼트의 스피드를 떨어뜨렸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외부의 리듬에 맞추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행위가 더 효율적이 된다.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윌리엄 맥닐은 이를 <신체적 유대(Muscular Bonding)>로, 스콧 윌터무스와 칩 히스는 <신체적 동시성(Physical Synchrony)>이라는 이름으로 개념화하였다. 맥닐은 사람이 교회, 군대, 커뮤니티에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신체적 유대가 강해지면 동질감과 협동심이 강해진다고 했다. 윌터무스와 히스는 학생들을 동시적으로 스텝을 맞추어 걷는 팀과 통상적 보행을 하는 팀의 유대감을 조사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동시적으로 스텝을 맞추는 팀이 훨씬 유대감과 효율성도 높아진다는 걸 확인했다.

한류 아이돌 그룹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이 신체적 동시성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신체적 동시성을 두 가지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하나는 신체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사실 자체다. 또 하나는 그들 신체가 동시에 움직임으로써 발생하는 조화와 역동성이다. 예를 들면 BTS의 집단적인 춤이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집단적 움직임, 집단체조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수많은 신체들이 하나처럼 움직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낸다. 그러니까 신체적 동시성은 우선 신체들이 아무런 조직화 과정없이 어느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고, 이어서 그들 신체들이 유기적인 결합의 과정을 거쳐 조화로운 통일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인 것이다.

이는 공연에서 말하는 현전(presence)이다. 현전은 공연예술의 기본적 조건이자 핵심개념이다. 신체적 동시성은 ‘현전’처럼 정적인 상태이자 동적인 행위다. 나의 신체가 여기에 있음이고 그 신체가 다른 신체들과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효과다. 그런데 어느 경우든 신체적 동시성은 강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사람이 어느 공간에 모여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힘이다. 히틀러의 뉘른베르크 당대회 연설에서 열광하던 군중들, 축제에 모인 수많은 인파. 이들은 그 자체로 힘이다. 정치는 이 신체적 동시성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지자체의 축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도 신체적 동시성의 효과다. 사람이 모이면 거기에서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BTS의 신체 자체가 힘이고 신비로움이다. 그들이 나타나는 것, 그들이 신체를 드러내는 어떤 공간이건 거기엔 거대한 축제가 기다린다.

BTS의 현전은 신체적 현전(presence)과 원격현전(telepresence)으로 구성된다. 원격현전은 영상을 통한 나타남이다. 유투브나 뮤직 비디오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신체는 세계를 넘나든다. 굳이 폴란드에 가지 않더라도 그들은 영상을 통해 폴란드에 현전하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아미’들과 소통하는 원격현전, 그리고 직접 신체를 드러내서 수행하는 콘서트. 신체적 현전과 원격현전은 변증법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면서 BTS를 이끌어간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나타나는 원격현전. BTS는 이 신체적 현전과 원격현전을 가장 잘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공연단이다. 그것은 미디어의 힘이기도 하다. BTS의 신체는 어느 한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현전한다. 그들의 신체는 서울에 있어도 세계 곳곳에 영상을 보내면서 움직인다. 그들의 신체는 존재(Being)하는 신체가 아니라 행위(Doing) 하는 신체다. BTS는 이제 이 두 가지 신체적 동시성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어딘가에 현전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열광시킨다. 그리고 지구촌을 거대한 축제로 만들어나간다.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K팝의 신체성 - BTS의 촉각성

맥루헌은 텔레비전을 촉각적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맥루헌은 미디어를 마사지라고 하였다. 텔레비전이 어떻게 촉각적인가? 맥루헌은 미디어에서는 시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동시에 끌어들이는 능동적, 탐색적 접촉감각의 확장이 일어난다(맥루헌, <미디어는 마사지다>, P125)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촉각성은 신체와 신체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감각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투사되는 메시지가 강하게 시청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은 맥루헌의 미디어의 촉각성 담론은 벤야민에게서 빌어온 느낌이 강하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영화의 카메라를 외과의사에 비유하면서 화가는 주어진 대상에 자연스러운 거리를 유지하지만 카메라맨은 주어진 대상의 조직에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감각을 뒤흔든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시각의 촉각적 성격을 눈으로 만진다고 말한다. ‘광학적 공간은 밝음과 어둠, 빛과 그림자의 대비에 의해 정의되지만 눈으로 만지는 공간은 따뜻함과 차가움의 상대적 대비에 의해 팽창적이거나 수축적인 운동에 의해 정의된다’(들뢰즈, <감각의 논리>, p153 )고 하였다. 미디어는 우리 신체의 내부에 침투하고, 시각은 우리를 만지면서 감각체계를 뒤흔든다. 사실 지각이론에서는 촉각성은 단순히 피부접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체 전체가 대상과 마주하고 서로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K팝은 매우 촉각적인 공연양식이다.

다양한 매체들이 혼합된 K팝은 매체간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하여 감각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감각은 감각간에 상호작용을 한다. 이를 <상호감각성>이라고 부른다. 메를로 퐁티는 감각이 상호적으로 작용하여 감각작용을 높이는 것을 <상호감각성>이라고 하였는데 K팝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BTS의 영상들 또한 매우 촉각적이다. 영상속의 퍼포먼스와 노래도 팬들의 감각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들의 동작은 일반적인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욱 강하게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 그것은 그들의 음악과 춤이 갖는 특징 때문이다. BTS는 이성보다 감성이 중시되는 시대, 문자보다 영상이 중시되는 시대적 흐름을 간파한 것이다. 과거의 음반이 청각적이었던 데 반해 BTS의 영상은 시각과 청각과 촉각을 결합한 다감각적 매체다. 거기에 최신 조명기술은 그들의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준다.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한류의 신체성은 신체의 선발과정과 훈련과정, 신체가 생산하는 퍼포먼스, 그리고 신체성이 생산하는 소통 등이 결합된 총체적 효과다. 한류의 신체성은 그 신체성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그 효과가 발생하는 지점까지의 전과정에 걸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신체성을 생산하는 방식은 아이돌의 신체 자체와 원격현전을 통한 아미들과의 소통이다. 그들의 신체성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원격현전을 통해 머나먼 타국에 있는 팬들에게 전달된다.

한류의 파생소비 중에서 특이한 현상은 화장품의 소비다. 화장품은 나를 아름답게 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한류팬들의 화장품 소비는 좀 다르게 보아야 할 것 같다.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은 한류스타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다. 화장품은 매우 촉각적인 물건이다. 나의 피부에 바르는 물건을 넘어 화장품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스타와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이다. K뷰티는 한류의 신체성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돌에 대한 애정은 이 화장품을 통해 표현되고, 반대로 아이돌의 남성성은 화장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화장품은 아이돌과 팬을 이어주는 미디어다. 화장품은 나의 신체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과 최대한 가까이 있다는 촉각적인 표현이 아닐까? 어쩌면 많은 한류상품들의 성공은 이 한류의 신체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박종원댄스컴퍼니, ‘일몰’/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는 1990년대 후반 영국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의제였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 말은 영국의 예술, 패션, 디자인 등의 르네상스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정부는 국가의 재활성화, 역동화를 내걸었고, 젊은 국가, ‘젊은 영국’을 표방하였다. 이를 위해 블레어 정부는 창조산업 태스크 포스(CITF)를 조직하여 문화산업의 발전과 젊은 문화의 육성에 나섰다. 젊은 영국 만들기에는 팝과 대중문화가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우리 한류는 우리 문화를 젊고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젊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류 아이돌의 춤을 따라 추는 커버댄스는 새로운 문화현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춤의 축제. 인류가 이렇게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집단적으로 춤을 춘 적이 있었던가? 한류 아이돌의 신체성이 지구상에 거대한 축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제안을 하고 싶다. 전세계를 동시에 연결하는 커버댄스는 어떨까? 아니면 아시아에서 먼저+먼저? 순수한 민간 주도로. 이제는 매체의 발달로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축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런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축제. 지구를 젊게 할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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