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KBS오케스트라와 30년 (6)
[더프리뷰 칼럼] KBS오케스트라와 30년 (6)
  • 황순룡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15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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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그리고 긴 긴 4개월!
황순룡 칼럼니스트

정명훈 지휘자가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재임한 기간은 불과 4개월! 그러나 사무국은 참으로 긴 4개월이었다. 그리고, 그는 왜 그리도 서둘러 KBS교향악단의 지휘봉을 놓고 말았을까? 무슨 까닭으로, 왜 4개월 만에 KBS교향악단의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을까?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음악적 수준 탓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서로의 음악성을 알아가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또 서로에게 익숙할 기회도 없었다.

수많은 기대와 관심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인데 왜 4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난 것일까? KBS가 그를 내몬 것일까? 그 스스로 무엇인가에 이끌려 지휘봉을 내려놓은 것은 아닐까? 그는 몇 가지 그만둔 이유를 언론을 통해서 밝히고 있다. 당시 정명훈 지휘자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한 내용을 보자.

“최소한 예술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KBS교향악단에서 음악 감독직을 계속하기 어려워 떠났다... 악단 조직과 운영 개선을 KBS측에 여러 차례 촉구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면 일 못하겠다고 3월중 통지했더니, 그러고도 한달간 소식없다가 부지휘자 건을 일방 결정하길래, 같이 일할 생각 없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였다.... 정단원 교체 같은 음악적 준비는 시간이 걸리니까, 우선 98시즌 홍보 마케팅 같은 협조사항을 사무국에 요청했는데, 이게 잘 풀리지 않았다.... 방송교향악단에 꼭 필요한 스튜디오나 악보정비 같은 기본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었고, 계약 때 약속한 청소년콘서트마저 못하게 됐다.... 제가 부지휘자로 추천한 메가씨는 강의하던 이탈리아 피렌체 콘서바토리를 1년간 휴직, 내년 시즌을 KBS를 위해 비워놓았다. 금년에 어려우면 내년, 내후년이라도 할 수 있으니 의논이라도 해보자고 했다. KBS는 한달간 말이 없더니 부지휘자는 안된다. 두어 차례 객원 지휘할 수 있느냐 내일까지 답해달라는 팩스를 메가씨에게 보냈다.. 제게는 카피만 보냈다. 바스티유처럼 하라는 대로 하라는 식에 모욕을 느꼈다.... IMF한파로 KBS가 힘든 점은 이해한다... 음악감독직은 떠났지만 음악적 관계 가능한 한 유지하고 싶다”(조선일보 1998.5.15.자)

예술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악단의 조직과 운영이 개선되기를 바랬다고 정명훈 지휘자가 말했다. 또 스튜디오, 악보정비가 해결 안 됐고 부지휘자건을 KBS가 일방 결정했다고까지 했다. 그리고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와 다를 바 없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KBS교향악단을 그만둔 이유치고는 너무 많고 다양해서 혹여 알리고 싶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혹이 가는 대목이다.

석연치 않은... 그만둔 사유!

그러나 정명훈 지휘자가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그 어느 것도 KBS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단언컨대 그 어떠한 것도 없다. 사무국과의 상견례조차 없었고 공식적인 협의테이블 조차 제대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세한 내용까지 그와 논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가 말하는 예술적 조건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부분까지 그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 계약서에 다 포함되어 있으니 최소한도 충족되지 않았다는 그의 변명은 어딘가 궁색해 보인다.

또 조직과 운영의 개선을 말하였으나 KBS교향악단의 조직과 운영은 철저히 검증된 내규와 규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지 그의 한마디 계획대로 고쳐지는 조직과 운영이 아니다. KBS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 속 언론의 조직이고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 외국 생활로 인하여 국내 사정과 사회적 제도, 관습 등에 미숙하거나 다소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의 사상, 철학, 문화, 역사 등 모든 부문에 관념의 다름이 있고 생활 관습과 제도, 문화의 수용태도와 가치 판단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폄하하는 것이 된다. 더욱이 앙상블을 가장 중요시하는 오케스트라에서야 더할 나위가 없다. 이방인이더라도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와 균형되지 못한 감각, 이데올로기에 몰입되어 있다면 그는 침략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면 그것은 그의 도덕성과 품격에 관한 일이다.

스튜디오 역시 이미 널찍한 방송 및 녹음겸용 스튜디오를 연습실로 사용하고 있었고 악보정비 또한 그가 취임하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된 작업이었다.

이러함에도! 분명한 설명이 되지 않은 무심히 툭 던져 본 낚시에 무엇인가 걸려들 것이라는 착각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면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포스트 정명훈을 기대했으나...

부지휘자 문제 역시 정명훈 지휘자의 명성과 위상 그리고 대한민국 음악계 미래를 위하여 한국인 출신의 부지휘자 선임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고 그 당위성을 수차례 밝혔음에도 느닷없이 외국인 지휘자 이름이 거론되자 사무국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부지휘자 문제만큼은 KBS교향악단으로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정명훈 지휘자를 제외하면 세계무대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인 지휘자가 뚜렷이 없었던 상황에서 한국인 지휘자를 부지휘자로 선임하여 전폭적인 후원자가 되어 준다면 차세대, 제2 정명훈, 포스트 정명훈으로 우리나라 음악계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는 중장기 포석이었다. 이는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였기에 그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되어 질 수 없는 일이었다. IMF라는 국가경제위기와 함께 KBS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며 타개책 마련을 위한 전사적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KBS교향악단은 이보다 더 먼 미래 대한민국의 음악계 나아가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가슴에 깊이 품으며 마스터플랜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 웅대한 계획에 대해 정명훈 지휘자가 부지휘자 문제를 거론하며 KBS교향악단 사직의 토를 단 것은 설득력 없는 명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 또한 대한민국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위기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은 정명훈 지휘자에 대한 자긍심과 기대속에 한결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황순룡 칼럼니스트
황순룡 칼럼니스트
hsryong@kbs.co.kr
전 KBS교향악단 기획
안익태기념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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