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왈 <예술경영 이야기> 북콘서트
정재왈 <예술경영 이야기> 북콘서트
  • 하명남 기자
  • 승인 2019.05.15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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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예술경영 현장 넘나든 경륜 돋보여
“이렇게 알차고 진지한 북콘서트는 처음”

[더프리뷰=서울] 하명남 기자 = 북콘서트가 정치인들이 유행시킨 형식이어서 그런지, 북콘서트 한다면 사람들은 대개 정치와 연결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출직 출마를 앞둔 정치인들이 으레 하는 단골 메뉴다 보니 그리 짐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 7일 화요일 저녁 저널리스트 출신 예술경영자 정재왈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서울 강남 7호선 학동역 인근 복합문화공간 로얄라운지 6층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인사들이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80석 의자는 빈 자리가 없었고,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앞뒤 서 있는 공간도 축하객들로 빼곡했다. 예정 시간에 정확히 맞춰 7시30분에 저자의 인사말과 연극배우 손숙의 축사로 시작된 ‘정재왈의 예술경영 이야기’ 북콘서트는 두어 시간 동안 알차게 진행됐다. 축하 공연과 저자와의 대화로 엮인 1시간 가량 본무대가 끝난 뒤 정겨운 다과와 담소가 이어졌다.

정재왈 '예술경영 이야기' 북콘서트/사진제공=노승환
정재왈 '예술경영 이야기' 북콘서트/사진제공=노승환

 

북콘서트와 정치의 관계를 의식한 듯 저자도 정공법을 택하며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는 인사말에서 “정치가 북콘서트의 순수성을 오염시킨 면이 있다”며 “이거 정치 그런 거와 전혀 상관없다. 오해하지 말라”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 대신 저자는 “비교적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한 것들을 언제가 일관된 주제로 정리하고 싶었고, 더 늦기 전에 실천에 옮긴 결과물”이라며 “척박한 이 땅의 문화예술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는 예술가와 예술경영인들에게 책을 바친다”고 밝혔다.

언론(평론)과 공연장, 국공립 단체와 기관, 대학교 등을 넘나들며 광폭 행보를 보인 저자는 ‘예술경영’을 키워드로 신간 <예술경영 이야기>를 구성했다. 저자가 활동했던 분야를 통시적으로 따라가며 내용을 구성했다. 제1장 ‘저널리즘과 예술경영’을 비롯하여 ‘극장경영의 양상’(2장), ‘공연예술의 이면’(3장), ‘예술경영과 여러 쟁점들’(4장), ‘세계로 열린 창, 국제교류’(5장), ‘문화예술과 지방분권’(6장) 등 문화예술에 대한 전방위적인 관심사를 다루었다. 총 40여 개의 에피소드를 길지 않게 일정한 분량으로 엮은 에세이 모음이어서 일반 독자들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책의 크기와 디자인도 대중들이 좋아할 만큼 깔끔하고 세련됐다.

연극배우 손숙씨의 축사 장면/사진제공=노승환
연극배우 손숙씨의 축사 장면/사진제공=노승환

 

연극배우 손숙씨는 축사에서 “오래 전 저자가 기자로 있을 때, 좀 잘난 체해서 밉기도 했다”면서 “이후 현장에서 꿋꿋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심을 알고 그만큼 좋아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예술경영 1세대의 ‘지존’ 이종덕 전 예술의전당 사장도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건배사에서 “잘 나가던 언론사를 관두고 현장으로 왔을 때, 어떻게 험로를 헤쳐 나갈 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고 회고하며 “그런데 맡은 곳마다 성과를 내면서 예술경영자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고, 뜨거운 학구열로 지적인 이런 저작까지 내는 것을 보니 무척 대견스럽다”고 치하했다.

이날 ‘정재왈의 예술경영 이야기’ 북콘서트에서는 젊은 남성 색소폰 콰르텟 앙상블 프로젝트 S가 개막 전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베르탕고> 등을 연주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오프닝 프로그램임에도 ‘앙코르!’를 이끌어 낼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젊고 신선했다. 저자와의 대화 직전에 선보인 정상급 소프라노 김민지와 테너 류하나의 축하 공연은 여느 공연장 무대를 능가하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다소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열창으로 북콘서트를 축하했다. 김민지는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삽입곡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를, 류하나는 <딜라일라>를 선보였다. 두 사람은 듀엣곡 <Tonight>를 함께 불러 북콘서트의 성대한 ‘이 밤’을 축하했다.

여느 북콘서트가 그렇듯이 아무래도 이날 하이라이트는 책에 얽힌 저자의 생각을 들어보는 ‘저자와의 대화’ 시간이었다. 중견 예술경영 명망가인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가 진행자로 나선 북콘서트는 그의 유머스럽고 재치 있는 진행으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책 인쇄가 다소 늦어져 pdf 파일로 책을 봐야 했다”며 너스레를 떤 뒤, 준비한 대여섯 가지 질문을 책 구성에 따라 차례로 저자에게 던졌다. 첫 질문은 역시 언론에 관한 것이었다.

'예술경영 이야기' 저자 정재왈/사진제공=노승환
'예술경영 이야기' 저자 정재왈/사진제공=노승환

 

신간 <예술경영 이야기>는 예술경영(연구) 대상으로서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매우 설득력 있게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저자의 출신지답게, 최근 위기에 몰린 ‘신문’에 대한 애정이 깊게 배어 있다. 인터넷 기반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신문의 미래, 특히 문화예술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문의 앞날을 전망해달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저자는 “핫(hot)미디어적인 장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응수했다.

마셜 맥루언에 따르면 흔히 신문은 독자 참여가 제한적인 공급자 중심형의 ‘핫미디어’에 속하는데, 정보전달의 양과 속도에서 인터넷과 SNS, 또한 각종 방송통신 융복합 미디어와의 경쟁에서 게임이 안 되는 신문은 정보전달보다 사안에 대한 해석(평가)과 깊이 있는 분석 기사로 승부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논지다. 특히 문화예술은 신문의 그런 과정을 통해 권위를 획득하는 한편, 예술가들의 인정욕구도 실현된다고 저자는 일갈했다.

이어 진행자는 일반론적인 입장에서, 한국의 극장(공연장) 현황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물었다. 저자는 극장을 바라보는 여러 방식 가운데 공연예술 장르와의 관계에 집중해 우리 극장의 문제점을 짚었다. 형태적 측면에서의 다양성 부족을 큰 문제로 지적했다. 저자는 “극장의 (무대)형태가 내용(공연의 형식과 스타일)을 좌우한다”며 “한국 공연예술의 다채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프로시니엄 무대 일변도의 획일적인 극장문화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무대 형태의 극장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진행자는 문화예술의 국제교류를 논하는 대목에서 “공연예술 장르와 ‘문화할인율’의 관계를 주의 깊게 읽었다”며 우리 공연예술의 국제교류 전망을 물었다. 이른바 ‘문화할인율(cultural discount rate)’은 어떤 문화예술 작품(상품)이 국경을 넘을 때 감수해야 하는 걸림돌의 정도로, 연극 같은 자국 언어 중심의 예술은 ‘번역’같은 까다로운 여과과정을 거쳐야 걸림돌이 제거된다. 이런 장르는 문화할인율이 높다고 한다. 반면 <난타> 같은 비언어(nonverbal) 퍼포먼스는 그게 낮아 국가 간 넘나들기가 좀 쉽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문화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외국의 관심도는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게 경험치”라면서 “문화할인율의 고저를 떠나 우리 것은 물론 외국의 문화예술에 대해서도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열린 자세,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진행자는 지역의 문화행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닥치게 되는 ‘지역텃세’에 대해서도 물었다. 현재도 그렇고, 직전 지역 문화재단의 대표를 맡은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신간은 ‘문화예술과 지방분권’이라는 별도의 장을 구성하여 지역 문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마주치는 여러 어려움 가운데 ‘텃세’도 언급했다. 저자는 “지역에서 텃세는 피할 수 없는 상수(常數)”라면서 “강건한 전문성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규정했다. 예술경영인의 전문성과 관련해서는 토크쇼가 끝난 뒤 질문 과정에서 강도 높게 제기됐다.

진지한 방청객으로서 시종일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저자와의 대화를 지켜본 이종덕 사장으로부터 질문이 나왔다. 특히 ‘전문가와 낙하산’이라는 제목의 글을 예로 들면서 둘의 차이를 물었다. 저자는 “특히 정치적 변화기에 기승을 부리는 ‘낙하산’(정치적 배경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비전문가를 이름)이라는 용어는 전문성을 부각하기 위해 끌어온 말”이라며 “예술경영(인)의 전문직주의(professionalism)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기자)을 전문직으로 봐야 하느냐는 저널리즘 연구의 오랜 화두로 이젠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라며 “예술경영인도 그런 관점에서, 특히 공익의 수호자라는 측면에서 전문직으로서 사회적인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의 연구와 논리를 차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인식이 확립되면 낙하산의 설자리는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정재왈의 '예술경영 이야기' 책 커버
정재왈의 '예술경영 이야기' 책 커버

 

이날 행사는 책 내용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진지한 경청 자세도 좋았다는 평이 많았다. 북콘서트 참가자 가운데 한 사람은 “의무감 때문에 왔다 가는 뜨내기 손님 때문에 북콘서트의 의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여느 행사에 비해 참여자들의 진지한 경청에 놀랐다”며 “문화예술계 특유의 이런 문화가 새로 정착됐으면 한다”는 소감을 내놓았다. <예술경영 이야기>, 372쪽, 1만8000원,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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