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7 체험적 한류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7 체험적 한류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17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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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장금_포스터 (사진제공=MBC)
드라마 '대장금' 포스터 (사진제공=MBC)

한류의 성공요인은 다양하게 분석된다. 제일 중요한 요인은 미디어다. 만약 미디어가 없었다면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아이돌 그룹을 어떻게 알릴 수 있었을까? 특히 BTS는 미디어 프랜차이즈(Media Franchise)라고 불리는 매체혼합과 동일한 콘텐츠를 내용을 달리하여 다른 매체에 홍보하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등의 매체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사용가능한 새로운 미디어들과 유튜브, 뮤직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였고, 무엇보다도 노출의 빈도와 방식 등에서 기존의 홍보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전략이다.

모든 한류의 전파에는 미디어의 힘이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드라마의 전파는 방송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일본인들은 2004년 드라마 붐을 1차 한류, 2010년경 동방신기, 카라 등이 중심이 된 K팝 붐을 2차 한류, 그리고 BTS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K팝 붐을 3차 한류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시작된 드라마 한류의 원조는 배용준, 최지우, 박용하가 출연한 '겨울연가(일본명 겨울의 소나타)'였다. 겨울연가는 2003년에 NHK 위성방송을 통해서 방송되었는데 위성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당시 NHK는 위성방송 등으로 채널을 확장한 뒤 콘텐츠를 찾던 중이었고 마침 한국의 드라마들이 이런 사정과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겨울연가의 NHK

겨울연가(사진제공=KBS)
겨울연가 포스터 (사진제공=KBS)

지상파 최종회의 시청률은 무려 20.6%에 달했다. 한류 드라마 붐은 대만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글로벌하게 확산되는 데는 NHK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만약 NHK의 방송이 없었다면 한류 드라마가 그렇게 뜨거운 바람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장금의 경우에도 NHK 위성방송에서 먼저 방송하고 지상파에서 방송한 다음, 이어서 다시 위성방송에서 한국어에 일본어 자막을 입힌 ‘노컷 방송’까지 하였다. 이어서 수없이 많은 한류 드라마들은 모든 일본방송사들의 가장 좋은 콘텐츠가 되었다. 후지 텔레비전을 비롯한 NTV, TBS, TV아사히 등 민방들, 게다가 케이블 텔레비전까지 가세하면서 가히 한류드라마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였다.

겨울연가가 현대적이고 스타위주의 멜로드라마라면 대장금은 전통적이고 스토리텔링이 강한 역사드라마라는 차이가 있다. 대장금은 일본에 한국 역사드라마의 붐을 일으켰다. 태왕사신기(2007), 황진이(2008), 이산(2011) 등이 방송되면서 한국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1997년경 대만에서 시작된 드라마 붐도 방송의 힘이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붐도 역시 '유튜브(YouTube)'라는 미디어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필자는 일본에서 한류가 시작될 때 마침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류가 시작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드라마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순식간에 강풍이 되고 태풍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배용준이 있었다. 배용준은 일본 여성들의 우상이 되고 모든 언론사들의 뜨거운 취재대상이 되었다. 배용준은 2004년 봄, 일본에 왔다. 그의 도착장면은 일부 방송사들에 의해 생방송되었고 심지어 헬리콥터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하네다 공항에는 5천여명의 팬들이 운집했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외국 스타는 영국의 축구선수 베컴이었다.

그의 입국 때는 공항에 3천여 명의 인파가 몰렸는데 배용준 입국시에는 5천 명이 몰려서 역대 최고의 팬이 몰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언론들의 관심사였고 그가 체재하는 호텔에는 팬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팬 미팅이 있던 시부야 공회당은 약 2천3백 명을 수용하는 공간인데 무려 6만여 명이 신청하였고, 무료행사인 팬미팅의 암표가 15만엔에 거래되기도 했다. 배용준이 들렀던 어떤 빵집은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기 위해 곳곳에서 아줌마들이 밀려들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배용준은 많은 방송에 출연하였다. 필자가 본 배용준은 매우 예의바르고 말도 잘하는 스타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일본팬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팬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고 말투는 매우 겸손하였다. 필자는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게 바로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용준의 겸손함,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심 등이 우리나라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어서 박용하가 요코하마에서 팬 미팅을 가졌는데 5천여명의 팬들이 몰려들어 요코하마 거리가 마비될 정도였다. 최지우는 일본에 와서 당시 고이즈미 수상을 접견하였다. 신주쿠에는 한국음식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한류를 악용한 상혼도 나타났고, 우리 문화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조악한 상품들이나 높은 가격을 매겨 폭리를 취하는 장사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드라마는 한국을 품격있게 만든 주인공이었다.

이어서 대장금 열풍이 불었다. 이번에는 이영애가 스타가 되었다. 대장금을 방송한 NHK에서는 대장금 관련 상품을 줄줄이 내놓았고, DVD를 출시했는데 이 역시 불티나게 팔렸다. 대장금 열기는 중국으로 이어졌다. 대장금을 방송한 호남성 TV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관련상품을 수백가지나 출시했다. 호남성 TV에서는 중국에 대장금 공원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했다. 대장금은 홍콩과 대만 등 중화권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불법 대장금 식당이 생겨났고 수많은 가짜 상품도 나돌았다. 대장금은 세계 각국에 한국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이란에서는 대장금 시청률이 무려 70%가 넘었다고 하고 스리랑카에서는 90%가 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경기도 양주의 대장금 촬영지에는 대장금 테마파크가 조성되었다. 조성목적은 물론 한류의 확산이었다. 필자는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였다. 촬영당시의 궁궐과 각종 소품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문화와 오락을 추가하였다. 2004년 12월 개장하여 2011년에 용인 드라미아로 이전하였는데, 유료입장객만 130만명(내국인 47만명 외국인 83만명)이었다. 외국관광객은 주로 일본, 중국, 대만, 홍콩의 관광객이었고 말레이시아, 태국인들도 있었다. 이렇게 미디어와 관련된 의미있는 장소를 탐방하는 것을 닉 쿨드리는 ‘미디어 순례(Media Pilgrimage)’ 라고 명명하였다. 종교적 의미가 담긴 이 용어는 겨울연가와 대장금에 잘 어울린다. 한류 드라마 관광객에게는 남이섬과 경기도 양주의 대장금 촬영지는 일종의 ‘성지’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그 촬영지의 내용보다는 그 촬영지 자체가 중요하다. 벤야민의 용어를 빌자면 전시가치보다 예배가치가 더 중요한 것이다.

겨울연가 촬영지, 남이섬의 한류 관광객
겨울연가 촬영지, 남이섬의 한류 관광객(사진제공=2016 여행사진의 모든 것 외)

겨울연가와 대장금의 문화사적 가치

대장금이 이렇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된 것은 스토리의 재미, 보편성을 가진 제재, 그리고 한국과 일본, 중국 등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유사성 등이 작용하였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리고 제작진의 우수한 제작능력과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나오는 ‘대장금’이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뛰어난 상상력으로 이렇게 멋진 작품을 쓴 것이다. 문화는 허구에서 출발하고 문화 자체가 허구다. 겨울연가와 대장금 이후 동남아에서도 한국 드라마 쟁탈전이 벌어졌다. 대만의 어느 방송사에서는 우리나라에 드라마 전문가를 상주시키면서 시청률, 배우, 작가, 내용 등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조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없이 많은 드라마 제작관련자들이 방송사를 방문했고, 중국에서는 광전총국의 고위관계자가 방문하여 드라마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겨울연가와 대장금은 한류의 역사, 드라마의 역사에서 커다란 문화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겨울연가와 대장금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문화사에서 이 두 드라마만큼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작품이 있었던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 5천년 역사에서 한국문화를 이렇게 글로벌하게 알린 작품들이 있었던가? 그런데 우리는 이 두 드라마의 관련유물이나 유적의 보존, 기록 등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공적 기관에서 이런 데 대해서 보다 높은 관심을 가지고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리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얼마전 BTS의 병역혜택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국내의 작은 예술 콩쿠르 우승자들에게도 부여되는 병역혜택이 한류스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이런 현상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지녀왔던 ‘예술중심적’ 사고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한편, 200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활용하여 관광지를 조성하는 일이 많았었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의 인기의 지속기간은 불과 2~3년에 지나지 않는다. 대장금 테마파크 입장객도 4년차 이후에는 현저하게 줄었다. 해당 작품의 생명이 다하면서 ‘미디어 순례객’도 함께 줄기 때문이다. 촬영지의 위치도 중요하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벽지에 설치한 곳도 있는데 이런 발상은 무모하다. 지자체들이 거액을 들여 이런 관광상품을 만드는 것은 비경제적인 일이다.

드라마 대장금과 음식 한류(사진제공=MBC 외)
드라마 대장금과 음식 한류(사진제공=MBC 외)

이후 한류는 드라마에서 K팝으로 이동하였다. K팝의 인기는 전통적인 미디어와 함께 소셜 미디어의 힘이 컸다. 다양한 종류의 소셜 미디어는 매스 미디어를 능가하는 가벼움과 신속성을 지녔다. 그리고 모든 개인들이 소유할 수 있게 된 개인 미디어들이다. 개인들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전달하고 소비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는 많은 요인들이 서로 결합하여 이루어내는 혼종적인 것이다. 시대적 변화와 한국인들의 고유한 예능적 재능이 만난 것이다.

어느 일본의 대학교수로부터 일본 동경예술대학 성악전공 학생들의 무려 70%가(사실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큐슈지역 출신인데, 이는 큐슈는 한국인이 많이 이주한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타계한 극단 사계의 아사리 게이타도 한국인들의 가창실력이 매우 우수하다고 칭찬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우리 민족이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예술적 우수성이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근의 한류를 보면 우리에게는 그런 재주들이 있는 것 같다. 한류는 미디어의 변화와 한국인들의 예능적 재능, 한국식 교육체계들이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한류 아이돌의 육성방식이 우리나라의 교육체계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우리는 주입식 교육이나 사교육에 대해 비판적으로만 말하지만 외국에서는 이를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문화의 힘은 어머어마하다. 한류 드라마와 K팝의 인기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최고조로 높여 주고 있다. 한류가 시작될 당시 일본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매우 우호적으로 변했다. 여론조사결과는 이를 잘 보여주었고 이는 드라마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은 다양하다. 한국을 이해하려는 지한파들이 있는 반면에 한국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혐한파들도 있다. 이런 태도는 한일간의 정치적 관계가 변할 때마다 출렁이곤 했다. 한류가 일본에서 태풍이 되면서 특이한 사회현상들이 생겨났다. 그동안 한국계임을 드러내지 못했던 재일교포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나온 것이다. "나는 한국계다"라고. 필자 역시 한류 드라마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인임을 내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한글로 된 책을 의도적으로 들고 다니기도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문화가 아닌가!

이런 현상이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학생이나 재미동포들이 이제는 한국임을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학급 친구들이 한글을 해석해 달라고 해서 한국어를 말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졌다는 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BTS의 가사는 폭력이나 마약 등이 아니라 "너 자신을 사랑하라"처럼 건전하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다고도 말한다(매일경제,2019. 5.5일).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동남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동남아 국가들에 가면 한류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에 대해 물어보고 한국인에 대한 친밀감을 표시한다. 한류와 우리 문화가 주는 긍지는 정말 대단하다.

BTS WORLD TOUR 'LOVE YOURSELF' MOVIE (사진제공=BTS)
BTS WORLD TOUR 'LOVE YOURSELF' MOVIE (사진제공=BTS)

한류의 저변에는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가 있고, 그 심성이 한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고 믿는다. BTS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밝고 겸손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겸손함이 BTS의 오늘을 만들었다는 보도도 있다. 한류스타들의 일탈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즈음, BTS는 인성에 있어서도 최고라는 칭찬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체화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한류스타는 예능적 재능뿐만 아니라 멋진 인간성이 결합될 때 진정한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한류정신이 아닐까? 문화가 뒷받침된 한류만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막스 베버의 말을 한류에 적용할 수 있다. 막스 베버는 마르크스와 달리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였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적 발전에 앞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칼뱅주의(Calvinism)’라는 신교도의 청빈과 검약의 정신이 선행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한류 역시 한국인으로서의 기본적 심성, 겸손함과 예의와 같은 한류정신이 먼저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시누와즈리나 쟈포니즘이 물건이나 상품중심이었던 데 반해, 한류는 사람이 중심이고 스타가 중심이다. 이런 변화 역시 미디어의 발달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한류스타들의 행동과 말들은 한류와 바로 직결된다. 문화는 거창한 예술이나 정치, 육중한 물질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심성, 겸손함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한류 스타들처럼 드러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인들 특유의 ‘정’으로 우리나라를 드높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거대한 이념으로 무장한 정치인보다 나은 민간 외교관들이다.

1980~90년대의 일본대중문화가 세계적인 히트를 한 과정도 한류의 전개과정과 유사하다. 1980년대 중반 NHK의 <오싱>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인 히트를 하였고 이어서 J팝이 등장하였고, 여기에 패션이나 음식,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문화가 가세하였다. 뉴 쟈포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 이 무렵이다. 최근의 일본대중문화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뛰어난 분야는 없는 것 같다. 한풀 꺾인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일본의 아이돌들이 K팝 아이돌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한다. J팝의 아류라고 했던 K팝이 이제는 J팝을 넘어서 글로벌한 엔터테인먼트로 성장하였다. 문화는 경제력의 발전에 따라 변화한다. 우리 문화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미약했던 문화생산력이나 예술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한류도 그런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다. 앞으로는 새로운 분야의 한류도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류는 한국인에게 정말 커다란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우쭐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한류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한류 이전의 한국문화, 한류를 넘어서는 한국문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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