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폴란드의 조각가들
[단독] 폴란드의 조각가들
  • 이종찬 기자
  • 승인 2019.05.26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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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대신 설치작품으로 거부감 없애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공공장소에 기념물을 세우는 일은 때로 논란을 일으킨다. 미관상 꼭 보기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무엇을 기념하는가에 따라 입장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적인 조각작품으로 기념물을 세운다면 어떨까. 최근 폴란드 언론은 기념물 설치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폴란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했다. 이 작가들은 모두 폴란드의 뛰어난 예술가들이다.

브와디스와프 하쇼르-<Organy>

폴란드 망명정부를 위해 싸우다 사라져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이다. 날카로운 구조물을 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토대 위에는 수의를 입은 죽은 군인들이 조각돼 있다. 톱니 모양의 구조물은 원래는 파이프로 만들어 바람이 불면 오르간처럼 소리가 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등산로 주변에 설치되어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난다.

"Organy"-Władysław Hasior
"Organy"-Władysław Hasior, 상판부분 (c)Rafał M. Socha, Wikipedia

브와디스와프 하쇼르(1928-1999)는 조각가이자 화가였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4원소(물, 불, 흙, 바람 )에 매료됐던 모양이다. 이 작품은 바람에 소리가 나게 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주춧대 위에 불을 피울 수 있게 계획됐었다.

"Organy"-Władysław Hasior, 전체모습
"Organy"-Władysław Hasior, 전체모습 (c)broart

마우리치 고물리츠키-<Melancholia>

마우리치의 작품중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되는 것으로 처음에는 많은 조롱을 받았다. 원래 공공장소에 설치됐으나 이후 공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녹색공간은 나의 자연의 서식처이다”라는 말은 기억할만하다. 이 작품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명 목판화에 나오는 모습과 같은 다면체 형태를 띠고 있다. 뒤러 작품의 고물리츠키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추상작품은 오팔과 같은 색채를 뿜어내며 보는 각도에 따라 핑크에서 퍼플로 색이 바뀐다. 추상작품이면서도 신비스런 페티시즘의 느낌을 준다.

"Melancholia"–Maurycy Gomulicki
"Melancholia"–Maurycy Gomulicki (c)Andrzej Otrebski, wikicommons

다니엘 리하르스키-<Monument to a Peasant>

<농부에 바치는 기념비>에서 다니엘 리하르스키 또한 듀러를 참조하고 있다. 그러나 약간 다른 방식이다. 리하르스키는 고향인 쿠로프코 마을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은 16세기 토마스 뮌처가 이끈 농민혁명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관계의 미학도 나타나 있는데 보는 사람보다 높게 솟은 기념물이면서도 한 곳에 꼼짝없이 서 있는 청동조각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 움직이는 기념비는 쿠로프코에서 처음 공개되어 여러 장소로 옮겨다녔다. 이 작품은 시골 지역의 사회관계룰 표현할 뿐 아니라 여러 마을로 이동하면서 마치 공연작품을 보는 것 같은 효과도 있다.

Melancholia – Maurycy Gomulicki 마우리치 고물리츠키
"Monument to a Peasant"-다니엘 리하르스키(사진=폴란드 국립미술관)

미로스와프 바우카-<Auschwitzwieliczka>

크라쿠프를 방문하면 멜렉스(Melex)사의 작은 전기차를 볼수 있다. 이 차는 주변 지역으로 관광객들을 이송해 준다. 양쪽 종점을 차에 표시해 놓고 사람들을 태워 주는 것이다. 미로스와프 바우카는 여기에 아우슈비츠(수용소)와 비엘리츠카(소금광산) 두 목적지를 써 놓았다.

미로스와프 바우카는 아트붐 페스티벌에서 이를 통해 통과의례로서의 작품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터널 형태로 된 이 작품은 터널 천정부에 'Auschwitzwieliczka' 글자를 따라 홈을 파서 햇빛이 터널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나치 희생자와 그 역사를 암시하는 이 작품은 동시에 역사를 관광거리로 만드는 무분별한 행태를 경고한다.

Auschwitzwieliczka – Mirosław Bałka 미로스와프 바우카
"Auschwitzwieliczka"–Mirosław Bałka (c)Jakub Sliwa for Project Bly

파베우 알트하메르-<Guma>

파베우 알트하메르는 거의 혼자 작업하는 법이 없다. 옥외 조각을 포함한 그의 많은 작품들은 여러 예술가들, 그룹들과 만들었다. 바르샤바 프라가-푸노츠 거리에 있는 <Guma>(지우개) 는 이름 모를 평범한 술꾼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가장 자연스러운 곳에 있다. 술집과 상점들이 있고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평범한 거리에 있는 것이다.

"Guma"-Paweł Althamer, (c)Bartosz Stawiarski(사진=폴란드 국립미술관)
"Guma"-Paweł Althamer, (c)Bartosz Stawiarski(사진=폴란드 국립미술관)

처음에 이 아이디어는 논쟁을 일으켰다. 지역 이미지가 나빠질 거라고 주민들이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 계획은 받아들여졌다. 이 술꾼의 모델이 프로젝트 도중 사망했는데 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Guma"-Paweł Althamer, (c)Bartosz Stawiarski(사진=폴란드 국립미술관)
"Guma"-Paweł Althamer, (c)Bartosz Stawiarski(사진=폴란드 국립미술관)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그 모델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되었다. 겨울철이면 주민들은 친절하게도 이 동상의 머리 위에 모자를 씌워 주기도 한다. 친근하고 재미난 모습에 주민들이 끌려 소소한 이야기거리를 만들며 공동체의식을 다져주는 모양이다.

"Guma"-Paweł Althamer, (c)Anna Brzezińska
"Guma"-Paweł Althamer, (c)Anna Brzeziń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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