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 하명남 기자
  • 승인 2019.06.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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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2일~2020년 1월 10일,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8 (통의동 10))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2019년 6월 22일~2020년 1월 10일,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8 (통의동 10))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2019년 6월 22일~2020년 1월 10일,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8 (통의동 10))

[더프리뷰=서울] 하명남 기자 = 지난 7년간 2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은 ‘라 카페 갤러리’가 오는 6월 22일(토)에 종로구 통의동에 새롭게 문을 엽니다. 개관 첫 전시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하루>입니다. 지상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인 하루. 저마다의 다른 이야기를 써나가는 하루.

여명이 밝아오면 에티오피아의 여인은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고 버마의 소녀는 아침 들꽃을 꺾어 성소에 바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대지에서 자기만의 리듬으로 노동하고, 햇살 좋은 날 아이들은 만년설산 아래서 야외수업을 하고, 축구를 하고 야크를 몰다 귀가하는 아빠를 마중하는 오후. 노을이 물들면 “얘야, 밥 먹고 내일 또 놀으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한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짜이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밤. 그리고 폭음이 울리는 땅에서 오늘도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는 그런 하루까지.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에 눈부신 세상이 있고 나에게 또 하루가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큰 경이인지. 나는 하루하루 살아왔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박노해) 지난 20여 년간 지상의 가장 높고 깊은 마을 속을 걸어온 박노해 시인. 티베트, 볼리비아, 파키스탄, 인디아, 수단, 페루 등 11개국에서 기록해온 37컷의 작품이 이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정통 흑백 아날로그 인화’로 전시된다. 세계의 하루를 만나며 내가 살고 싶은 하루를 그려보는 시간,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은 2019년 6월 22일부터 2020년 1월 10일까지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8 (통의동 10))에서 열린다.

 

여명에 물을 긷다

Lalibela, Ethiopia, 2009

 

여명은 생의 신비다.

밤이 걸어오고 다시 여명이 밝아오면

오늘 하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하루의 시작은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 오는 것.

이 물로 밥을 짓고 몸을 씻고 가축의 목을 축이리라.

짐을 진 발걸음은 무겁고 느리지만

이 삶의 무게에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감내할 힘이 생겨나느니.

나는 하루하루 살아왔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여명에 물을 긷다(Lalibela, Ethiopia, 2009) ‘라 카페 갤러리’ 종로구 통의동 첫 전시,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사진제공_라 카페 갤러리)
여명에 물을 긷다(Lalibela, Ethiopia, 2009) ‘라 카페 갤러리’ 종로구 통의동 첫 전시,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사진제공_라 카페 갤러리)

 

 

인레 호수의 고기잡이

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버마의 심장’이라 불리는 인레 호수는

고원 지대에 자리한 ‘산 위의 바다’이다.

희푸름한 물안개 속에 햇살이 빛나면

인레 어부들은 가만가만 외발로 노를 저어간다.

“리듬에 맞춰야 해요. 고유한 리듬에 맞춰야 해요.”

그물을 당겨 은빛 물고기를 거두어 받는 시간,

청년의 노동은 우아한 춤이 된다

인레 호수의 고기잡이(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라 카페 갤러리’ 종로구 통의동 첫 전시,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사진제공_라 카페 갤러리)
인레 호수의 고기잡이(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라 카페 갤러리’ 종로구 통의동 첫 전시,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사진제공_라 카페 갤러리)

 

 

찻잔에 햇살을 담아

Palaung village, Kalaw, Burma, 2011

 

높은 산마을의 일과는 ‘해 뜨기 전에’이다.

여명 속에서 물을 긷고 나물을 따고 가축을 먹이고

마당을 쓸고 오늘 할 일을 훌쩍 해내버린다.

이윽고 태양이 떠오르면 몸을 씻고 차를 끓인다.

모닥불 연기에 물고기가 고소하게 말라가고,

식구들끼리 찻잔을 건네며 담소를 나누는 아침.

어둠 속을 떨며 걸어온 인생은 알리라.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에 눈부신 세상이 있고

나에게 또 하루가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큰 경이인지.

햇살을 담은 차를 마시며 서로의 웃는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찻잔에 햇살을 담아(Palaung village, Kalaw, Burma, 2011) ‘라 카페 갤러리’ 종로구 통의동 첫 전시,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사진제공_라 카페 갤러리)
찻잔에 햇살을 담아(Palaung village, Kalaw, Burma, 2011) ‘라 카페 갤러리’ 종로구 통의동 첫 전시,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사진제공_라 카페 갤러리)

 

 

박노해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4년 현장 노동자로 활동하던 중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군사독재의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금서 조치에도 불구하고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노동의 새벽』은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1989년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3년 옥중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하고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2010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국내외 현장에서 쓴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2년부터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좋은 삶의 문화 공간 ‘라 카페 갤러리’에서 글로벌 평화나눔 사진전을 상설 개최하고 있다. 2014년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展(세종문화회관) 개최와 함께 사진집과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출간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마을’을 세워가며 새로운 사상과 대안 혁명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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