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전통의 스위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800년 전통의 스위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 김경명 기자
  • 승인 2019.06.17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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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전례 도우미에서 지역문화 발전의 숨은 주역으로
유럽 전체 1천600개 단체에 6만5천명이 연주활동중

[더프리뷰=리히텐슈타인] 김경명 기자 = 지난 5월 12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리히텐슈타인 베르덴베르크 오케스트라(Orchestra Liechtenstein Werdenberg, OLW)의 공연이 열렸다.

오전 10시 30분 리히텐슈타인 에셴회관(Liechtenstein Eschen Gemeinde Saal)과 오후 6시 스위스 북스시 복음교회(Buchs Evalgelischen Kirch)에서 열린 공연은 봄철 정기공연으로 인근 주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OLW는 40여년의 역사를 지닌 지역 오케스트라로 지역민들의 문화생활 향수와 지역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단체이다. 매년 7회의 정기공연을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중심으로 열고 있고 연간 2천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하고 있다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의 이 교향악단은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에서 모인 아마추어 음악인들의 모임으로, 규모는 작지만 유럽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큰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게는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에 활력을 주고 젊은 음악가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크게는 유럽오케스트라협회(EOFed)에 상당한 힘이 되고 있다.

이번 봄 공연에서는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 서곡,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보로딘의 <이고르공> 프로베츠인의 춤 서곡, 라벨의 <볼레로>가 연주되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소화하기에는 힘들어보이는 프로그램 구성이었으나 진지하고 완성도가 높은 연주였다. 전체적으로 풍부한 현의 역할이 필요한 멘델스존의 서곡이나, 다양한 관악기의 높은 연주기량이 필요한 라벨의 곡까지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연주의 완성도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들의 조직력과 행정력은 전문 프로단체의 수준이었다. 핵심 멤버인 7명의 이사진이 연간 정기연주를 위해 전문가처럼 움직이고 있었고 단원들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이들 7명은 각기 대외협력, 내부조직 관리, 행정, 홍보, 재정, 악보 및 악기관리, 미디어기술 등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구조를 운영하고 있었다.

리히텐슈타인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주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활동하고 있는 OLW는 유럽의 대표적 커뮤니티 오케스트라의 모범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슈테판 주자나(Stefan Susana)는 10년 가까이 OLW와 함께하며 악단의 기량을 전문가 수준으로 향상시켜 주었고, 취리히에서 비디오 제작사를 운영하는 오케스트라 회장 페터 묄러(Peter Möller)는 오케스트라의 전반적 운영은 물론 바순 파트의 연주에까지 몸소 참여,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보통 스위스 지역의 공연에는 입장료가 있지만 OLW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 대신 공연 후 기부를 받는다. 이 날 공연의 수익은 약 5천300스위스프랑(CHF, 한화 약 598만원)이었는데 이는 단체의 활동 예산으로 적립된다. OLW는 매년 스위스 장트갈렌주(St. Gallen Kanton) 정부와 리히텐슈타인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받고 있으며(한번 지원이 결정되면 3년간 지속된다). 이와 함께 지역의 크고 작은 기업의 정기적 후원과 개인 기부 등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지원금은 공연 프로모션, 함께 연주하는 전문 연주자들에 대한 사례, 협연자 및 지휘자 활동비 등으로 쓰인다. 개인 연주자의 단체 가입비는 아마추어의 경우 일인당 매년 10CHF(한화 약 1만1천원)을 받는다.

악장과 각 파트의 솔리스트는 보통 프로 연주자가 맡고 있는데, 이들은 단체로부터 소정의 사례비를 연주회마다 받고 있고, 지휘자에게는 매달 사례비가 지급된다. 정기공연시 부족한 객원 단원들 역시 프로 연주자로 충원하는데, 대개는 지역의 연주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연주시 필요한 협연자의 경우 지역의 젊은 연주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려고 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역시 협연 사례비가 지급된다.

봄 정기공연이 끝난 후 OLW는 바로 가을 정기연주 준비에 들어갔고, 이사진도 공연의 기초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공연의 좋은 점과 고쳐야 할 사항을 점검하면서 다음 공연을 위한 준비로 임원회의를 소집했고, 단원들과 지휘자는 매주 수요일 오후 정기 연습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공연은 9월 29일(일) 리히텐슈타인 파두츠회관(Gemeindesaal Vaduz)과 스위스 플룸에 있는 플룸홀(Flumsrei)에서 열린다.

스위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거의 8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 교회의 각종 전례에 참여하던 아마추어 예술가들은 그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1715년 장트갈렌 지역 빌(Wil)시의 오케스트라연맹(Orchestraverein)을 시작으로 처음 역사에 등장한다. 이들의 직업은 다양했으나 음악적 재능을 나누는 일에는 쉽사리 하나가 되었다. 그후 1737년 라퍼스빌(Rapperswil), 1808년 빌리사우(Wilisau), 1813년 빌 드 프리부르(Ville de Fribourg), 1817년 아르가우주 부르크(Burgg AG), 1832년 렌츠부르크(Lenzburg)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설립되었다.

스위스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은 많은 새로운 지역에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설립을 촉진했다.

1857년 말터스(Malters), 1860년 라이덴(Reiden), 1863년 라 쇼-드-퐁(La Chaux-de-Fonds), 1865년 르 상티에(Le Sentier), 1866년 아인지델른(Einsiedeln)과 랑나우 임 엠멘탈(Langnau im Emmental), 1867년 부르크도르프(Burgdorf), 1870년 루체른(Luzern), 1873년 빌/비엔(Biel/Bienne), 1879년 라인펠트(Rheinfeld), 우스터(Uster), 1880년 벨린쪼나(Bellinzona), 델레몽(Delemont), 생-티미에(Saint-Imier), 1884년 아르가우주 볼렌(Wohlen AG), 1885년 빈터투어(Winterthur), 1889년 아라우(Aarau), 1890년 니옹(Nyon), 탈빌(Thalwil), 툰(Thun), 1891년 브룬넨(Brunnen), 1892년 고사우(Gossau), 1894년 뒤딩엔(Duedingen), 마일렌(Meilen), 올텐(Olten), 1895년 참(Cham), 주어제(Sursee), 바트빌(Wattwil), 1899년 프라우엔펠트(Frauenfeld), 1900년 플라빌(Flawil)과 포렌트루이(Porrentruy)에 설립되었다.

최근까지도 자신의 마을의 음악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50-70대, 심지어는 100세 단원이 가입해 있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모임과 연주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스위스의 지역 오케스트라들은 상생과 협력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고, 1917년 연합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체리셴 음악신문(Zerischen Zeitschrift Fuer Instrumentalmusik)은 1917년 1월 기사에서 “스위스는 작은 시골 마을에까지 음악을 위한 조직이 있다.

신학교를 제외하고 모든 곳에 협회가 있고, 한 곳의 회원 수가 평균 20여명으로 아주 많다.”고 적고 있다. 이들은 연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스위스 오케스트라협회(EOV)내에 200여개의 오케스트라와 8000명이 넘는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스위스의 전체인구가 800만인 것을 생각하면 인구의 1% 이상이 공식적으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아마추어이지만 10년째 매년 그슈타트(Gstaad) 음악축제의 프로그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계적인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이다.

툰 음악학교 1737년(Collegium Musicum in Thun Anno 1737), Grisaillescheibe im Bernischen Histotischen Museum
툰 음악학교 1737년(Collegium Musicum in Thun Anno 1737), Grisaillescheibe im Bernischen Histotischen Museum

사실 스위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적으로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깊다. 그들의 관심과 열정이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의 기본을 만들었다.

현재 유럽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연합은 1985년 유엔이 정한 ‘음악의 해’를 계기로 스위스의 그뤼네발트(Gruenewald)에서 유럽오케스트라연합(EVL, Europaeische Vereinigung von Liebhaberorchestern)으로 출범했다. 당시 독일(BDLO), 리히텐슈타인(OLW), 프랑스(AFoA), 네덜란드(FASO), 스위스(EOV)가 함께했고, 그들은 3년마다 오케스트라 축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그 후 체코,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이 가입했고, 2009년 EOFed(European Orchestra Federation)로 명칭이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88년 독일의 프리드리히스하펜(Friedrichshafen)에서 제1회 유럽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페스티벌 개최를 시작으로 제2회 스위스 솔로투른(Solothurn), 체코의 브루노(Bruno), 그리고 2018년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까지 모두 11회의 페스티벌을 개최했으며, 2021년 불가리아 플로브디프(Plovdiv)의 제12회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유럽 아마추어오케스트라연합(회장 Daniel A. Kellerhals)에는 총 21개국 1천600개 오케스트라, 그리고 6만5천 명이 넘는 연주자가 함께하고 있다.

EOFed
EOFed
Daniel A Kellerhals
Daniel A Kellerhals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순수 아마추어 조직인 EOFed는 유엔 산하의 작은 조직이지만 유럽 음악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음악애호가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함께 즐기며, 스스로 생산자과 소비자가 되어 활력 있는 음악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2019년 5월 12일 북스 복음교회에서 열린 리히텐슈타인 베르덴베르크오케스트라(OLW) 연주회 모습/사진=김경명 기자
2019년 5월 12일 북스 복음교회에서 열린 리히텐슈타인 베르덴베르크오케스트라(OLW) 연주회 모습/사진=김경명 기자
​리히텐슈타인 베르덴베르크 오케스트라(OLW)/사진제공=OLW
​리히텐슈타인 베르덴베르크 오케스트라(OLW)/사진제공=OLW
OLW 봄맞이 콘서트 프로그램
OLW 봄맞이 콘서트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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