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꿰매주는 여인 - 최보결의 'I Love Nietzsche'
그림자 꿰매주는 여인 - 최보결의 'I Love Nietzsche'
  • 이강희 객원기자
  • 승인 2019.06.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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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이강희 객원기자 = 지난 6월 1일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열린 니체학회의 제목은 <니체 노래하고 춤추다>였습니다. 최보결의 춤의 학교의 최보결 대표는 작년 가을 열린 학회에서 <삶. 춤의 주체로서의 몸>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때 니체 철학에 춤으로 접근한 그녀의 발표에 함께한 학자들이 호응을 했고 올해 학회에는 음악과 춤을 결합하는 반가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작년에는 논문 발표자로 그녀를 초대하고 올해는 공연하고 춤 추는 무용가로 그녀를 초대한 학회측은 “춤꾼은 발가락에 귀가 있다”고 한 니체를 제대로 보여주기를 기원하기라도 하듯 정성스레 그녀를 위한 무대를 마련해두었습니다. <I Love Nietzsche>는 최보결 대표가 정한 니체학회 피날레 공연의 제목입니다.

니체학회에서 공연하는 최보결 대표(사진=이강희)
니체학회에서 공연하는 최보결 대표(사진=이강희)

최근 그녀의 솔로 공연을 몇 차례 본 터라 그날의 그녀가 확실히 다른 때와는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니체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공연의상을 정성들여 고르고 아침 일찍 광주로 가는 길이 바쁜데도 구김을 펴겠다고 다리미를 챙겼습니다. 무엇보다 춤을 출 때 그녀가 들어 올린 팔의 피부가 미세하게, 그리고 공중에 가만히 뻗어 올린 손가락이 섬세하게 떨렸습니다. 그 떨림에서 발견한 것은 정말 영락없이 니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바닥에 깔린 니체 그림에 키스를 하던 그녀를 보며 물었습니다. 니체가 그렇게도 좋으냐고.

최보결 대표의 공연 모습(사진=이강희)
최보결 대표의 공연 모습(사진=이강희)

“니체가 얼마나 아름다워요. 그 모든 모순들, 그 자체인 인간을 그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는 느껴요. 나는 그런 인간적인 니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그런 니체에게 바치는 춤을 추는데 어떻게 안 떨려..” 춤으로 사랑 고백을 마친 그녀는 “그림자는 내가 존재함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빛’의 선물이고 그림자는 삶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라는 학회 좌장 김정현 교수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머리에 떠오른 그림은 집 지키는 개 나나에게 그림자를 물어뜯기고 슬퍼하던 피터팬을 그린 삽화 한 편이었습니다. 피터팬은 그림자를 뜯기고 왜 그렇게 슬퍼했을까. 그림자가 존재를 빛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어쩌면 피터팬은 그동안 오해받아온 게 아닐까.

피터팬 증후군 VS 건강한 퇴행

최보결 대표는 지난 5월 30일 양평 블룸비스타에서 열린 대한정신건강의학과학회 워크숍에 초대되어 무려 150명이 넘는 정신과 의사들을 보결춤으로 안내했습니다. 대개 보결춤 안내는 원으로 서게 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150명이 손을 잡고 원으로 선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가볍게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양쪽 어깨를 번갈아 클릭하듯이 뺨까지 올리며 “이런 만남 흔치 않아 흔치 않아”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하되 각자의 버전으로 몸을 움직이며 인사하도록 안내했습니다. 다른 그룹에서 이 동작을 하면 보통은 두어 사람 지나가면서 어깨가 아닌 다른 신체 부위를 움직여 인사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각자 버전의 인사가 일어나는데 그때는 150명을 차례차례 거쳐가는 동안 거의 변형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서 빨리 그 시간이 끝나기 바란다는 메시지가 수시로 나왔습니다. 이럴 때 보통은 반응이 안 좋다 생각해서 힘이 빠질 수 있는데 최보결 대표는 차라리 그렇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괜히 ‘아닌 척’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거침없이 안내를 밀고 나갔습니다.

대한신경정신과학회 워크숍(사진=이강희)
대한신경정신과학회 워크숍(사진=이강희)

두 시간 가까이 되어갈 무렵 삼삼오오 짝을 지은 정신과 의사 150명이 ‘더하기 빼기’라는 무브먼트를 하며 바닥에 앉고 눕고 동료를 감싸고 손가락을 접촉하며 짓는 표정에는 영락없는 어린아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번 부산도시가스 임원들 워크숍처럼 열렬한 호응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반응을 이끌어내 다행이라고 자평하고 있을 때 협회 임원들이 찾아왔습니다. 웃고 장난 치고 서로를 놀리는 모습을 보며 정신과 의사들이 내뿜는 에너지가 상당히 밝은 것에 우선 놀랐습니다.

“저들을 저만큼 움직이게 한 건 기적이에요. 그동안 저들을 좀 반응하게 하려고 개그맨도 부르고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전국에서 와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런 데 오면 일단 쉬고 싶으니까 잘 안 움직이거든요. 근데 저렇게 다들 호프집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봐도 오늘 워크숍이 어땠는지 알 수 있어요. 이런 분위기는 정말 처음이에요.”

병원에서 환자들 돌보느라 쉴 틈이 없었을 후배들에게 어떻게든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임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또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신과에서 쓰는 용어 중에 ‘건강한 퇴행’이라는 게 있어요. 오늘 저는 그 실마리를 좀 찾은 것 같습니다.”

‘건강한 퇴행’이라는 말이 귀에 쏘옥 들어왔습니다. 그 날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의사들은 각각 조선(朝鮮) 호흡법, 음악, 명상 등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결국 건강한 퇴행이고 그 의지가 보결춤을 부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에게 뜯겨서든 스스로 그림자가 싫어 뜯어버렸든, 그림자가 없을 때 그 존재는 어떻게 되나요. 영화 속에 빛이 있는데 그림자가 없는 존재가 등장하면 관객은 공포에 빠집니다. 금세 알 수 있으니까요. 그 존재가 ‘귀신’이라는 것을. 그림자를 뜯기고 슬퍼한 피터팬, 어떻게 해서든 그림자를 다시 되찾아 자기 몸에 붙이려고 한 피터팬은 그동안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말로 오해받아온 게 분명합니다. 피터팬은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건강한 퇴행’을 누리는, 놀이하듯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자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터팬은 ‘그림자는 내가 존재함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빛’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 비극을 부정하는 대신 오히려 초월해 아이 같은 삶을 살고자 애쓰는 인간을 깊이 사랑한 니체 같은 자가 아닐까요.

(일러스트=김주리)

웬디

소중한 그림자를 다시 몸에 붙이는 게 쉽지 않아 슬픔에 빠진 피터팬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웬디에요. 비눗물로 그림자를 붙이려다 실패한 피터팬을 위로하며 피터팬의 발에 그림자를 꿰매어 붙여줍니다.

“결점이라 생각하는 게 있으면 그걸 그냥 드러내세요. 그러면 그게 나의 자원이 되어 나를 더 꽃 피게 합니다.”

보결춤을 안내할 때 그녀가 늘 하는 말입니다. 이제는 더 큰 지성의 시대, 몸지성의 시대라면서 발에서부터 감각을 깨우는 그녀는 피터팬의 발에 그림자를 꿰매어 붙여주던 웬디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게도 일찍 니체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 그녀에게서, 발달장애인과 짝이 되어 그 순수한 에너지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게 느껴져 좋아서 웃다가 나중에는 감동해서 눈물이 났다는 그녀에게서, 그녀와 그녀가 만든 보결춤이라는 메소드에서, 피터팬의 꼬질꼬질한 그림자를 보며 마음 아파했던 웬디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 그녀를 알아본 니체학회나 신경정신과학회에도 그런 마음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더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깁니다.

모순 덩어리 인간, 그림자를 붙이고 살아가는 인간, 바로 그 인간다움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최보결 대표는 오늘도 삶이 녹아 있는, 의지할 테크닉이 없어 더 순수할 수 있는 비전문인들의 몸짓에서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느라 신이 납니다. 최보결의 춤의 학교를 통해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니체학회로, 정신건강의학과학회로, 공근혜 갤러리로 커뮤니티 댄스 춤판을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일러스트=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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