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Deep Dish' 안무자 크리스 하링 "내 작품 보고 나도 눈물"
[인터뷰] 'Deep Dish' 안무자 크리스 하링 "내 작품 보고 나도 눈물"
  • 이상희 기자
  • 승인 2019.06.18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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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Deep Dish' 공연, 크리스 하링 인터뷰
"내 작품 보고 나도 울었다, 우리네 인생이 보이는 것 같아서..."

[더프리뷰=서울] 이상희 기자 = 제38회 국제현대무용제(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 Korea, Modafe) 가 지난 5월 열렸다. 총 27개 작품 가운데 해외 6개국의 작품이 초청되었으며 그 안에는 국내외 무용수들과의 협업작품도 포함돼 더욱 폭넓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 오스트리아 빈 소재 무용단 리퀴드 로프트(Liquid Loft)의 <Deep Dish>가 5월 19일 아르코 대극장에서 2회 공연되었다. 티켓은 한참 전에 매진되었고, 혹시 티켓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로비를 서성이는 관객들도 보였다.

무대 사각 테이블 위에는 각종 과일과 채소, 와인이 탐스럽게 올려져 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다른 무언가도 식탁의 풍성함을 더한다.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스크린에는 무대 위의 소품들을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무용수들이 화면 가득 포착된다. 음식을 씹는 소리의 최대치 음향과 함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어우러지고, 카메라의 움직임은 테이블 위의 음식들에 클로즈 업되어, 그걸 집어서 씹어삼키는 소리, 웃음소리가 더해지며 화려한 식탁 만큼이나 풍요로운 현실의 삶에 잠시 위안을 얻게 한다.

모다페 (Deep Dish) 공연 모습
모다페 'Deep Dish' 공연 모습 (사진제공=Liquid Loft)

카메라는 쉴새없이 테이블 위를 탐험하며 음식을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존재의 새로운 자태를 통해 우리를 현혹한다.

겹겹이 쌓인 파인애플 본체의 미로 속, 산산이 썰려 나가는 붉은 토마토의 싱싱한 과즙, 새빨간 자태로 오만하게 유혹하는 딸기의 탱탱한 육감….

그 안에서 시작되는 무용수들의 처연한 독백은 흔히 말하는 ‘잘 먹고 잘 사는’ 인간의 욕망에 대조되는 이중성, 그리고 풍요로운 현실에서마저 결국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의 한계를 조명하는 듯하다.

현대무용 무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다채로운 소품들과 더불어 시각적, 청각적으로 재미있는 연결고리를 쉴 새 없이 만들어내어 관객을 몰입시키는 이 작품은 공연 전부터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었다. 공연이 끝난 후 예술감독이자 이 작품의 안무자인 크리스 하링(Chris Haring)을 만났다.

크리스 하링 예술감독 (사진=이상희 기자)
크리스 하링 예술감독 (사진=이상희 기자)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Deep Dish의 공연 소감은 어떤가

(활짝 웃어보이며) 아주 좋았다!

지금까지는 춤동작 위주의 공연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작품은 은유적인 표현에 초점을 맞추고자 시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표현’이나 ‘움직임’을 ‘몸’에 국한시키지 않고 영상, 음향, 소품 등 모든 것에 동작을 입혔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몸’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 조금 생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카메라 기법과 소품과의 관계, 이 모든 것은 나에게 안무에 속한다.

나의 작품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려 하지 않고 그들의 느낌이 흘러가도록 길을 터 주는게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관객과의 대화 때 여러 다른 의견과 느낌들이 나왔는데, 그래서 더욱 좋은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이 여러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무척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젊은 관객층이 많았는데, 재밌고 유쾌했다는 반응부터 우울하고 슬펐다는 반응까지 느낌의 폭이 무척 넓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무척 예술적이고 동시에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존중’을 느꼈으면 하는게 나의 바람이다.

나는 나의 작품에 관여된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뿐 아니라 무대 위의 소품조차도 존중 받아야 한다. 일단 모든 소품들의 보관방법이 모두 다르다. 이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과 소통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게 필수이다. 해외공연을 다닐때는 그 나라의 기후와 조건에 맞게 소품을 구입하기도 하고 가져가기도 하는데 그 모든 과정을 현지의 스태프들과 소통해서 협력해 나가는 게 무척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특히 소품 중 하나인 실지렁이는 무척 보관이 어려운 생명체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들의 존재는 어딘가에 분명히 쓸모가 있고, 무엇보다 내 작품 안에서 그들의 움직임은 정말 흥미롭다. 공연 후에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

말하지 않았는가? 존중한다고 (웃음).

소품마저 보관방법이 이렇게 다 다른데, 사람들과 소통하며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더할 나위도 없이 중요한 일이다. (참고로 이번 공연에 참여한 Liquid Loft의 무용수들은 10년째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다. ) 관객과 함께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클이 형성되었으면 하는게 나의 바람이다.

Deep Dish 에 대해 소개해 달라

Michel Blazy와 공동작업하고 있는 ‘Perfect Garden’ 시리즈 중 하나이다.

가든을 시작으로 했던 첫번째 작품에서 점점 공간을 최소화해서 탄생한 마지막 시리즈,

테이블 위주의 작품으로 꾸며 보았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다같이 먹고 마시는 행위는 이미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있어왔던 일상이다. 그 오랜 일상의 역사가 은유적으로 춤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일 써는 행위조차 바로크 음악과 함께라면 우아한 춤이 된다는 게 흥미롭지 않은가? 써는 사람도, 썰린 토마토조차 나에게는 춤의 일부가 된다. 그 가운데에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웃음 뒤에 감춰진 시기와 질투어린 속내, 우아한 테이블 위에서 품위있어 보이려 하지만 테이블 밑에서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탐하며 욕심내는 천박함까지.

모두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적인 요소까지 춤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

동시에 무용작품이라 당연히 시각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각종 소리와 음악을 통해서 청각적인 요소를 최대한 끌어올려 그 가운데에 인간의 존재와 갈등을 표현하고자 했다. 무대 위에서 들리는 각종 사운드, 씹는 소리, 숨소리, 대사, 독백… 모두 사전 녹음 되었고, 유일하게 라이브로 진행된 소리는 물방울 소리이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공연 내내 라이브로 진행된다. 우리의 일상도 결국은 하루하루가 인생영화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오늘 내 모습이 영화화되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지 않는가?

어차피 우리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일 수 있으니까.

모다페 'Deep Dish' 공연 모습
모다페 'Deep Dish' 공연 모습 (사진제공=Liquid Loft)

Liquid Loft의 작품은 늘 무대 위에서 많은 볼거리를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다. 색다른 영상기법과 소품들이 그중 하나인데, 당신만의 생각에 영감을 받는 무언가가 있는지 알고 싶다.

90년대 뉴욕에서 현대무용을 공부할 당시, 무용과 영상을 컬래버레이션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그 시기에 맞춰 여러 소품도 실험적으로 사용해 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비디오 작업은 초기기술 이었는데, 춤에 접목해 보았더니 생각보다 매우 다양한 모습이 나오는 데에 매력을 느꼈다. 같은 동작을 해도 카메라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춤이 나오는 것을 보며, 사각 무대 위의 한계라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보는 시점 외에 다른 각도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했다.

핸드폰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듯이, 새로운 기법은 더 이상 IT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 같은 예술가에게 IT는 ‘춤’을 관객에게 이해 시키는 ‘도구’ 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은 곧바로 일상이 된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예술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작업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한참 생각 후) <Deep Dish>. 울었다. 나 원래 내 작품 보면서 울고 그러지 않는데…

뭐랄까… 그 안에 우리네 인생이 보여서…, 참을 수 가 없었다.

한국 관객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의 천국을 믿으세요.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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