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9, 박수부대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9, 박수부대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18 1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뮤지컬 ‘캣츠’ 이미지 포스터
뮤지컬 ‘캣츠’ 이미지 포스터

초기의 영화와 텔레비전은 고유의 제작방식이 없던 때에, 연극의 제작방식을 모방하였다. 세트나 무대장식, 배우들의 등퇴장 등등. 그런데 텔레비전은 연극의 라이브 공연방식이나 제작방식만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관객반응도 모방하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토크 쇼 등에 관객을 앉혀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높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연극의 영향이다. 19세기에 미국의 보드빌에서는 관객석에 사전에 약속된 사람을 앉혀서 공연분위기를 높이는 방법을 썼는데, 이를 스투지(stooge) 라고 불렀다. 바람잡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사전에 약속된 대본에 따라 정해진 순서에 등장해서 연극의 분위기를 높이는 역할을 담당했다. 오늘날 텔레비전에서 하는 방식과 같다. TV 프로그램에서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FD는 관객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한다. 녹화프로그램의 경우에 관객이 보이지 않는데도 관객의 웃음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 웃음트랙(laugh track)이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연극을 모방한 것이다. 이처럼 공연에서 공연장의 분위기를 높이는 것은 공연성패의 중요한 관건이다.

연극의 중요한 요소는 관객이고, 관객의 적극적인 관람태도는 공연분위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연에 참여하고 몰입하여 공연 분위기를 높여주는 건 관객들의 기본적인 관람태도에 속한다. 극장은 매우 의례적인 공간이다. 극장내에서의 행동은 통제되어 있고, 관객은 거기에 따라야 한다. 입장부터 퇴장할 때까지 부과되는 일종의 의무다. 극장내에서는 말을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때로는 공연분위기 제고를 위해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있다. 오페라에서는 아리아가 끝나면 성악가들을 격려하는 외침이 정해져 있다. 브라보(남성솔로에게), 브라바(여성솔로에게), 브라비(복수의 남성성악가), 브라베(복수의 여성성악가) . 우리의 판소리에서도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공연의 분위기를 높여주는 고수의 역할이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얼쑤’, ‘잘한다’ 추임새가 있는 판소리 공연, 김정민 판소리 ‘흥보가’ 장면 / 사진=더프리뷰 하명남 기자
‘얼쑤’, ‘잘한다’ 추임새가 있는 판소리 공연, 김정민 판소리 ‘흥보가’ 장면 / 사진=더프리뷰 하명남 기자

 

가부키의 가케고에

가문예능인 가부키에서는 각 가문별로 야고(屋號)라는 집안의 이름이 있다. 예를 들어 최고의 가부키 가문인 이치카와단쥬로(市川團十郞)집안의 야고는 나리타야(成屋)이고, 마츠모토고시로( 松本幸四郎)집안의 야고는 고라이야(高麗屋)다. (마츠모토고시로 집안은 우리나라와 뭔가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이들이 공연 도중에 뛰어난 연기를 하면 야고를 외친다. ‘나리타야. 기다렸습니다’. 이를 가케고에(掛け声)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도 기술이 있어 적절한 때에 나와야 그 효과가 높아진다. 가부키에는 또 ‘지와’라는 가케고에의 형식이 있다. 가부키에는 서양의 극장과 다르게 객석의 왼쪽에 객석과 무대를 가로지르는 하나미찌(花道)라는 등퇴장로가 있는데 이를 통하여 스타 배우가 등장한다. 이런 걸 보면 가부키가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시한 공연이고, 스타중심적 연극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때 관객들은 감탄사를 내는데 이를 지와라고 부른다. 지와는 배우에게는 커다란 힘이 된다. 가케고에는 우리나라의 추임새 또는 장단에 해당하는데, 야고와 맛데마시다(기다렸습니다) 이외에도 니혼이치(일본최고)등이 있고, 반대로 연기가 형편없는 배우에게는 ‘다이콘(大根)’이라고 외친다. 다이콘은 무우라는 뜻인데 무우를 먹으면 체하지 않는다. 이를 일본어로 ‘아타라나이(当たらない)’라고 하는데 이 아타라나이의 또 다른 뜻은 흥행에 실패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우를 조롱하는 말로 사용되곤 하였다. 이 밖에도 ‘헤타쿠소( へたくそ)’라고 외치기도 했는데 이 말은 형편없다는 의미다. 유럽에서는 오렌지를 던졌다.

일본의 전통예능에는 박수가 없었다. 가부키에 박수가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아마도 메이지 유신 때의 연극개량운동으로 극장이 서양식으로 바뀌면서 박수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의 전통예능에 박수가 완전히 없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가부키나, 노, 분라쿠 등에서 모두 박수를 치는 전통이 없었다. 특히 노에서는 박수를 쳐서는 안 된다. 노(能)에는 막도 없고 장치도 없다. 일상의 연장이자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박수를 친다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박수는 극의 흐름을 파괴하게 된다(渡邊保, 『歌舞伎』, p207-210). 물론 최근에는 노에서도 박수를 치고 있다.

바그너는 박수를 없애기 위해 아리아를 완전하게 정지시키지 않고 서서히 다음 곡으로 이동하도록 하였다. 그는 관객석의 중간통로도 없앴다. 이런 스타일의 극장을 대륙형 극장(continental theatre)이라고 부르는데, 관객들의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공연에 방해되는 행위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중간통로를 없앤 극장에 앉아보면 관객들은 매우 불편함을 느낀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그너는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관객통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객석 암전을 시작한 것도 바그너였다.

그러나 오늘날 연극에서는 박수가 매우 중요한 의례적 행동에 속한다. 박수는 극장에서 관객이 배우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응원방식이다. 배우들은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 하는데, 이 때 박수를 쳐주면 커다란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박수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른바 박수부대다.

1724년 볼테르의 <마리암>이라는 연극이 초호화 캐스팅에 의해 공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실패하고 말았다. 관객들은 첫 장면부터 냉담하였고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마리암의 죽음의 장면에서는 어떤 관객이 여왕이 독배를 집어들었을 때 ‘여왕이 술을 마신다’고 외침으로써 긴장감이 깨지고 말았다. 극후극(afterpiece, 과거에는 본공연 후에 작은 소품이 추가로 공연되곤 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공연의 오락성을 의미하는 것이다.)이 발표되었을 때 또 다른 소란이 생겼다. ‘연극 다시 하라’는 요구였다. 실망한 볼테르는 단 한 번의 공연으로 이 작품공연을 중단하였다.

볼테르의 실패는 아베 나달(Abbe nadal)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는 동일한 주제의 <마리암>을 그 다음 해에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공연하였다. 아베는 성서의 비극의 전문가로서 사울, 헤롯등의 작품을 공연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마리암>은 첫 공연에서 야유를 받았고 관객들은 볼테르의 작품을 재공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렇게 여론이 갑자기 바뀐 이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달은 볼테르가 박수부대를 동원하여 그의 작품을 비난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당시로서는 작가, 배우, 아니면 후원자들 간에 어떤 작품을 홍보하거나 라이벌 작품을 야유하기 위해 박수부대를 동원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볼테르는 1725년 4월, 코메디 프랑세즈에 복귀하여 이전의 작품과 나달의 작품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을 <헤롯과 마리암>이라는 제목으로 개칭하여 공연을 하였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로서 볼테르는 파리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Voltaire and the Theatre of the Eighteenth Century, p 16-17).

연극 ‘흑백다방’ 관객 모습 (사진제공=극단 후암)
연극 ‘흑백다방’ 관객 모습 (사진제공=극단 후암)

 

박수부대

프랑스에는 박수부대(claque)가 있었다. 로마의 네로에게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로망스(romans)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박수부대는 16세기 프랑스의 시인 장 도라(Jean Daurat)가 근대적인 의미의 박수부대를 조직한 것이 그 출발이라는 주장도 있고 , 프랑스 혁명등 프랑스의 격변의 시기에 태어났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박수부대가 유행했던 것은 19세기였다.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박수부대가 유행하였다. 박수부대는 전문적인 집단이었지만 일종의 팬덤처럼 선호하는 배우를 응원하는 팬클럽 같은 성격을 지니는 것도 있었다. 이런 아마추어 박수부대를 카발(cabal)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820년경부터 대부분의 극장이 상시고용형식의 박수부대를 운영했다. 박수부대는 군대와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부대장, 즉 chef de claque는 공식적으로 매월 월급을 받았다. 그 전에는 일급 배우들로부터 월급을 받았는데 이들의 연기를 응원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였기 때문이다. 부대장은 공식적으로 극장으로부터도 받고 배우로부터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초대권도 받았는데, 이들 초대권들을 할인해서 싼 값에 다른 관객들에게 팔거나 박수부대원들을 모집하는 데 썼다. 극장의 매니저는 공식적으로 박수부대를 동원할 수 있었다.

박수부대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자 관객들 사이에는 박수부대에 대한 반감도 커져갔다. 그래서 박수부대가 불법화된 때도 있었지만 다시 나타나곤 하였다. 박수부대 때문에 일반관객들의 태도는 소극적이 되거나 무관심해지기도 하였다. 반면에 박수부대는 소극적인 관객들을 대신하여 어떤 상황에서는 배우가 되기도 하였다. 그들의 행동은 연극 속의 또 다른 연극이었다. 박수부대의 중요한 임무는 관객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처음에 박수부대는 가스등 샹들리에 아래에 부대장을 중심으로 모인다. 이어서 관객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두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1층이나 갤러리로 올라간다. 어떤 경우에는 무대 위의 퍼포머들과 리허설을 하기도 하였다. 많은 극장에서 부대장은 리허설 동안에 박수부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메모하였다.

박수부대의 역할은 단순히 박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관객들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웃거나 기쁨의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하였다. 박수부대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었다. 대본을 공부한 뒤 언제 어디서 박수를 쳐야 할지 알려주는 대장이 있었는데 이를 코미세르(commissaire)라고 불렀다. 뢰르(Rieur)는 웃는 역할을 맡았고 비쇠르(bisseurs)는 앙코르를 외치는 일을 주임무로 하였다. 플뢰뢰르(Pleureur)는 우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주로 여성부대원이 많았다. 이들은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2층이나 3층 갤러리에 앉아서 슬픈 장면에서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도 하고 때로는 코를 풀기도 하였으며 흐느끼기도 하였다. 이런 모든 일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 눈물의 승리” 였다. 이들은 또 다른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박수부대를 제도화한 것은 루이 베롱(Louis Veron)이었다. 베롱은 1820년대 그랜드 오페라를 유럽의 인기 공연으로 만든 임프레사리오(공연기획자)였다. 그는 원래 약사였는데 우연히 파리 오페라 극장을 운영하게 되었고, 중산층을 오페라로 유인하기 위해 많은 개혁을 하였다. 그는 돈에 대해 타고난 후각을 지니고 있었다. 중산층의 기호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채고 극장 좌석의 개선, 티켓값의 인하 등을 단행하였고 스펙터클한 그랜드 오페라를 유행시켰다. 그리고 그가 만든 중요한 제도가 박수부대였다. 18세기 후반에도 프랑스에서는 많은 박수부대가 활동했지만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건 루이 베롱이었다. 관객석의 반응은 공연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차이를 낳았다. 루이 베롱은 오귀스트 르바쇠르를 고용하였다. 오귀스트는 모든 새로운 작품의 악보를 연구하여 어떤 종류의 박수가 언제 어디서 필요할지를 연구하였다. 이를 위해 리허설에도 참여하고 루이 베롱과 만나서 전략을 협의하기도 했다. 그는 음악에 매우 조예가 깊었다. “ 우리는 모든 아리아와 대부분의 듀엣을 ‘ 할 수’ 있다. 나는 4막의 듀엣에서 세 번의 박수를 치게 할 것이다”. 오귀스트는 특별한 퍼포먼스를 할 때는 300장의 티켓을 받았다. 보통은 이보다 적었다. 박수부대원들의 활동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대장은 두 명의 장교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들은 각각 4명의 분대장을 , 각 분대장은 10명의 분대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오귀스트는 1층 중앙의 좌석에 앉아 지팡이로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그의 장교들이 이 신호를 받고, 분대원들이 동시에 행동을 취한다. 이 공격적인 분대원들은 바닥을 두드리면서 브라보를 외쳐댄다. (베를리오즈는 마치 갱단같다고 말했다). 노란 장갑을 낀 부대원들은 박스석에서 안쪽으로 서서히 몸을 굽히면서 시선을 끌었고, 바이올리니스트 부대원은 활로 악기의 뒷쪽을 두드려서 분위기를 높였다. 꽃을 던지기도 했는데 이는 다시 그들에게로 돌아와 두 번 세 번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잘 진행되면 부대원들은 작곡가나 배우, 작가등으로부터 보수를 받았다. 그 중에서도 외젠 스크리브와 다니엘 오베르가 인심이 후했다. 관객들은 박수부대의 존재를 알았고, 이를 용인하였다(Listening in Paris, 246~248).

박수부대는 반드시 공연의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서만 운용되는 건 아니었다. 경쟁공연을 깎아내리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에르나니> 사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일치 법칙을 둘러싸고 벌어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작가들의 싸움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삼일치 법칙에 반대했고, 이로 인해 <에르나니 공연>은 고전파와 낭만파의 싸움터로 변했다. 에르나니 공연이 알려지자 고전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에르나니를 공격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그의 주장에 반대하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많은 고전파 지지자들이 몰려와 공연을 방해했고 위기를 느낀 위고는 친구들과 박수부대에 응원을 요청했다. 4개월간의 투쟁 끝에 위고는 승리했고 이로서 낭만주의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1800년대의 오페라의 중심지는 파리였다. 많은 작곡가들은 파리에서 공연하기를 원했고 바그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1861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런데 첫 공연에서부터 문제가 터졌다. 당시의 오페라에서는 대개 2막에 발레를 삽입하였는데 바그너는 1막에 배치한 것이었다. 당시에 자키 클럽이라 불리우는 신사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이들은 1막에 저녁을 먹고 발레가 시작될 즈음에 자리에 앉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다. 그러나 바그너가 이런 자키 클럽의 관례를 무시하고 발레를 1막에 배치한 것이었다. 그러자 극장의 박수부대는 야유를 퍼부었고 공연은 실패했다. 둘째 날에는 자키 클럽 멤버들은 호루라기를 가져와 불어댔고 공연은 3일째에 막을 내렸다.

박수부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과 비판적인 의견이 대립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박수부대의 위세에 눌려 점점 수동적이 되어갔다. 술에 취한 박수부대원의 보복 같은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대 위의 스펙터클보다 사회적 스펙터클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잘못 반응했다가는 바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수부대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적극적 반대파가 있었다. 이들은 박수부대에 야유를 보내거나 때로는 싸움을 하기도 하는 부류로서 주로 젊은이들이었다. 박수부대는 관객의 반응을 억제하고 취향을 획일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에서는 상당한 부작용을 낳았다. 연주를 방해하여 곡의 흐름을 끊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스카니니와 말러는 연주도중 박수를 금지하였다. 박수부대는 1900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박수부대의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TV에 웃음트랙이 도입되었고 얼마전 볼쇼이 발레 극장에 박수부대가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대부분 열렬한 발레 팬들로 구성된 이들은 무용수와 사전 협의에 의해 특정한 장면에서 박수를 쳐서 예술가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댓가로 예술가들에게 배정된 입장권을 받는다고 한다.

관객의 호응이 절대적인 라이브 공연, 워너원 콘서트 / 사진=더프리뷰 하명남 기자
관객의 호응이 절대적인 라이브 공연, 워너원 콘서트 / 사진=더프리뷰 하명남 기자

 

미디어로서의 박수부대

발자크는 96편에 달하는 소설을 <인간희극>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프랑스 제정말기, 왕정복고시기, 7월 왕정 시대를 아우르는 19세기 전반기의 프랑스의 사회상을 그려낸 방대한 저작이다. 이 중에 『잃어버린 환상』이라는 소설은 뤼시앙이라는 작가지망생이 시골에서 파리로 상경하여 신문기자가 되고 파리에서의 방탕한 생활 끝에 귀향해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당시의 극장풍경과 신문기자와 비평가의 모습들, 그리고 박수부대의 영향들에 대한 묘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발자크는 언론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 신문이 없다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 ‘신문은 성직이 되는 대신 당파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수단에서 장사가 되어 버렸다.’ 고 비판한다. 당시의 신문기자와 연극비평가는 공연의 성공을 좌지우지하고 연기자의 성공을 결정할 수 있는 큰 힘이 있었다. 소설 속에서 뤼시앙도 연극비평을 통해 자신의 애인인 코랄리가 좋은 극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하고 반대파에 대해서는 왜곡된 기사를 쓰기도 하였다. 신문기자는 ‘이 쪽의 죄는 하찮은 것으로 만들고 공격해오는 자들은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19세기에 신문산업이 발달하면서 공연의 취향의 형성과 작품평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신문기자와 비평가였다. 특히 비평가는 글쓰기에 대한 재능과 예술에 대한 특별한 감식안을 가지고 예술감상시장을 주도해 왔다. 이들의 역할은 정보의 전파는 물론이고 예술에 대한 평가를 통해 예술작품에 위계를 부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30년 전만 해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특별한 권위를 지니고 예술소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음악평론가들의 역할은 음악미학의 입장에서 음악을 비평하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비평가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들의 해석은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음악계에 유통되었고 이는 관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 예술비평가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7-8년도 단 2년 동안에 예술전문기자들의 25%가 해고되었다. 예술관련 기사가 줄고 있고 이것은 비평가들의 역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춤의 경우에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등 일부 주요 신문을 제외하고는 춤비평 코너가 사라졌다. 이는 신문과 방송 등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쇠퇴함에 따른 결과다. 비평가들의 비평은 때로는 지나치게 전문성이나 예술성에 치우치기 때문에 대중에게 크게 다가서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비평가들의 관객에 대한 태도는 그들의 저급한 취향을 높은 수준의 비평을 통해서 끌어올려야 한다는 태도를 가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들, 준전문가들, 매니어들의 비평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버라이어티 비쥬얼 퍼포먼스 ‘헬로 스트레인저’ 공연, 열광적인 관객(사진제공=극단 낯선사람)
버라이어티 비쥬얼 퍼포먼스 ‘헬로 스트레인저’ 공연, 열광적인 관객(사진제공=극단 낯선사람)

 

공연에서 관객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첫 번째로 현대사회에서 공연의 가장 큰 후원자는 관객이다. 중세시대에 왕과 귀족이 담당하던 후원을 이제 관객이 대신하고 있다. 일반관객의 증가는 산업혁명과 물질생산의 증대로 중산층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로서 예술시장은 대중들의 시장이 되었다. 두 번째로 관객은 공연의 중요한 평가자다. 과거에는 평론가가 공연의 질을 평가하는 역할을 담당했지만 평론가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 자리를 관객이 대체하고 있다. 뮤지컬의 경우에도 비평가들의 역할은 1980년대 이전만 해도 공연흥행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메가 뮤지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가 뮤지컬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는 <캣츠>다. <캣츠>에 대한 미국 비평가들의 평가는 문화침략이나 질낮은 대중문화로 폄하하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과거와 같았으면 이런 비평가들의 평가가 공연흥행에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였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대중들은 <캣츠>에 열광한 것이다. 음악이나 이야기, 그리고 공연의 분위기를 좋아하였고 특히 환상적인 의상이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관객과 비평가들 사이의 이런 균열은 예술과 대중문화를 보는 시각의 차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고루한 예술성만을 고집하는 비평가들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캣츠의 성공은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 때문이었다. 세 번째로 관객은 취향의 판단자이자 결정자다. 공연기획은 관객의 기호를 반영해야 한다. 현대음악보다 고전주의 음악이나 낭만주의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이 많기 때문에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편성해야 한다. 네 번째로 관객은 수행적 존재다. 관객은 그 자체로 수행적이다. ( 수행적 존재는 대상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수행성 performativity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다루고자 한다). 그로토프스키라는 연출가는 공연은 배우와 관객만 있으면 된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연극을 가난한 연극이라고 부른다. 관객이 없다면 공연은 불가능하다. 리허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공연이건 관객은 공연성립의 필수적인 조건이고 공연은 관객의 반응에 의해 공연의 성패가 결정된다. 메이어홀드는 관객의 역할을 누구보다도 중요시한 연출가였다. 그는 극장내 관객의 행위를 침묵, 소음, 웃음, 한숨, 박수... 등 20가지로 분류하여 각 행위들의 효과를 연구하였다. 그는 공연은 관객이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Susan Bennet, <Theatre Audiences>, 7). 그래서 관객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어 왔다. 우리는 극장의 힘을 일컫는 ‘ 극장 구속성’에 이어 관객의 힘을 ‘관객 구속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라이온 킹’ 이미지 포스터
뮤지컬 ‘라이온 킹’ 이미지 포스터

 

박수부대는 연극속의 연극이었고 관객의 반응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미디어였다. 그러나 박수부대도 점점 공연의 ‘엄숙주의’(공연장의 엄숙한 감상태도와 조용한 분위기를 엄숙주의라고 부르고자 한다)와 예술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클래식 음악에서 박수는 금물이다. 음악은 예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공연의 예술화 과정과 관계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작품위주로 그리고 작품을 샅샅이 분석해서 작품의 우열을 결정하는 비평과 매스 미디어의 기사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과거에는 평론가가 공연의 질을 평가하는 역할을 담당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들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 자리를 소셜 미디어와 관객이 대체하고 있다. 관객의 평가나 관객의 취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취향의 조종자들은 이제 비평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대중이고 관객들이다. 비평가들이 전하던 전문적인 예술지식이나 작품분석보다는 자신들의 감각에 호소하는 즉각적인 감성이 중요하다.

혹시 우리 사회에는 관객의 취향을 억지로 바꾸려는 박수부대는 없는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