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in 무비] 설경의 카파도키아... 슈베르트가 흐르는 영화 '윈터 슬립'
[클래식 in 무비] 설경의 카파도키아... 슈베르트가 흐르는 영화 '윈터 슬립'
  • 강창호 기자
  • 승인 2019.07.02 0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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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처 Arts & Culture 7월호 (Vol. 162)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 D.959
DECCA 1993년 알프레드 브렌델 Duo CD
2015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_포스터 (c)네이버 영화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_포스터 (c)네이버 영화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기자 =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 화제가 된 가운데 과거 동일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던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 2014)>이 영화 마니아로부터 꾸준히 회자 되고 있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심도 있게 다룬 이 영화는 터키 출신 누리 빌게 제일란(Nuri Bilge Ceylan, 1959) 감독의 작품으로 2015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외계 행성의 어딘가를 상상하게 하는 특이한 지형과 영화 스타워즈와 개구쟁이 스머프의 배경이기도 했던 설원의 카파도키아, 찬 공기가 느껴지는 터키의 겨울 카파도키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색다른 흥미와 오랜만에 사색의 미(美)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_배너 (c)네이버 영화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_배너 (c)네이버 영화

“3시간 16분의 전적인 행복”

설원의 신비한 아름다움과 함께 영화 ‘윈터 슬립’은 "3시간 16분의 전적인 행복"이라는 찬사처럼 긴 호흡을 담은 영화이다. 달리는 차창으로 던져진 돌멩이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세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그려낸 영화로 배우이자 작가로 분한 주인공 아이딘(할룩 빌기너)이 젊은 아내 니할(멜리사 쇠젠)과 이혼한 여동생 네클라(드멧 아크백)와의 반복되는 갈등과 삶의 진실 그리고 내면의 세계를 통한 ‘인생의 고뇌’를 담아낸 작품이다.

“모든 말과 감탄사조차 사라지는 곳”이라는 은유가 스며있는 로즈밸리의 세상,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탄압을 피해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신앙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카파도키아 지역은 예부터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요한 무역의 요충지였으며 하나의 제국이 일어설 때마다 카파도키아는 그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으로 변했다. 이렇듯 카파도키아는 아름다운 절경과 함께 비극과 고통의 한(恨)이 공존했던 땅이기도 하다.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_스틸컷 (c)네이버 영화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_스틸컷 (c)네이버 영화

잔잔하지만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 D.959>의 2악장을 줄곧 들려주곤 한다. 영화에서의 사운드트랙은 1993년에 DECCA 레이블을 통해 듀오CD 음반으로 출시된 ‘사색하는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진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 1931)의 연주로 입혀졌다. 무엇보다 이 곡을 연주한 수많은 아티스트 가운데 브렌델을 선택한 감독의 디렉션이 남다르다. 마치 영화를 위해 작곡하고 연주한 듯한 이 음악은 우리를 보다 더 영화 속으로 몰입경에 빠져들게 한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났던 1828년에 작곡한 이 소나타(D.959)는 그의 깊은 내면적 고통과 외로웠던 삶을 투영해내듯 낯설게 들리는 잔잔한 멜로디가 감성과 이성을 묘하게 섞어 놓은 듯한 영화의 스토리와 잘 어우러진다.

영상과 음악 그리고 설경의 카피도키아... 3시간동안 영화를 본 게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읽은 느낌. 늘 머리속에 숨 쉬고 있었던 자아와 함께하는 또 다른 ‘나(我)’를 보고 있는 것 같았던 긴 시간 속에 들려오는 슈베르트의 멜로디는 이국적인 향을 내며 카파도키아의 눈바람처럼 가슴을 휘저어 놓았다.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_포스터 (c)네이버 영화
영화 윈터 슬립(Winter Sleep)_포스터 (c)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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