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KBS오케스트라와 30년 (7)
[더프리뷰 칼럼] KBS오케스트라와 30년 (7)
  • 황순룡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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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의 어색한 만남...
황순룡 칼럼니스트
황순룡 칼럼니스트

정명훈 지휘자는 KBS교향악단 사직의 변에서 KBS교향악단과 음악적 관계는 가능한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의 참 뜻은 무엇일까? 자신이 요구하는 여러 조건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 KBS교향악단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많은 불만 중에 만족스러웠던 일정 부분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는 이야기가 떠올려진다.

그리고... 그 후 20년이 흐른 지난 2018년 8월! 정명훈 지휘자는 KBS교향악단과 다소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이 만남을 함께한 베토벤과 브람스 역시 다소 어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헤어진 이후 음악적 관계를 단 한 차례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 번의 강산이 변하는 동안 눈길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20년이란 세월이 서로가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음에도 생채기가 너무 뚜렷하게 남았던 탓일까? 20년이 흐른 지금 이루어진 이 만남에서 KBS교향악단은, 정명훈 지휘자는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얻었을까?

기대와 염려를 안고...

KBS교향악단과 정명훈 지휘자가 상호 필요에 의한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결실을 보게 되고 공식활동을 시작 한 때가 1998년 1월부터다.

이미 1984년경부터 서로 간의 접촉이 있었으니 그리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뜻한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국에서 활동 중이던 원경수(1928~)가 상임지휘자로 부임했다. 그 후 오랜 시간 서로를 동경하면서 기다림 끝에 KBS교향악단은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과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 관현악단 음악감독을 역임하며 지휘자로 명성을 알리던 정명훈을 상임지휘자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기대와 우려가 섞인 목소리와 함께.... 그러나 국가경제위기(IMF외환위기)로 나라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새로운 기대감과 함께 또 한 번의 도약을 기대하는 많은 음악애호가와 희망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정명훈 지휘자에 대한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한 놀라운 소식이었다.

이러한 그에게 KBS교향악단 지휘봉을 맡기기 위해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이가 있었으니, 정년퇴직 직후 불의의 질병으로 고인이 된 최충식 선배가 바로 그 숨은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세계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지휘자로 성장한 정명훈 지휘자에게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결국 그의 숨은 노력에 힘입어 정명훈 지휘자는 KBS교향악단에 입성했고 내외적 많은 기대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멋대로 ‘사직’ 통보

그러나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정명훈 지휘자는 기대와 희망을 저버린 채 1998년 4월을 끝으로 작별인사도 없이 KBS교향악단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지 불과 4개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방적인 너무나 일방적인 “그만두겠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긴 시간 쏟아부었던 수고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이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린 사무국은 뒤통수를 제대로 한 방 맞았다.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너무 황당하여할 말을 잃은 상황이었다.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언론이 취재한 내용을 들여다 보자.

 

.... 근본 원인은 KBS와 정명훈 측이 지향하는 밑그림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한창 기능이 성장해 가는 악단 측은 정명훈이 가능한 오랜 시간 동안 악단을 아우르며 역량 향상에 봉사해 주길 바랐다. 줄다리기 끝에 연주기간은 1년간 10주로 합의됐다.

정명훈 측이 밝히듯 국제적인 관행으로 볼 때 한 지휘자가 음악감독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연주기간이다. 그러나 뚜렷한 색깔의 앙상블을 조련해 나갈수 있는 시간으로서는 짧았다. 정명훈 측도 이를 의식해 부지휘자로 이탈리아 출신 주세페 메가를 추천, 본인 부재시의 악단 조련을 위탁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KBS 측은 경제난을 이유로 메가의 부지휘자 영입에 난색을 표했고 정명훈 측은 국내 대리인인 C사를 통해 일방적으로 ‘사직’을 통고했다.

양쪽 관계가 악화되는데는 C사의 이기주의와 KBS의 관료주의도 큰 몫을 했다. C사는 KBS와 협의 없이 5월주최 예정이던 환경음악회의 지방 매니지먼트 권을 ‘판매’하는 등 독단과 전횡을 거듭해 왔으며 정기연주회 프로그램 선정 등에도 KBS실무진의 의견을 무시했다. KBS는 KBS대로 부지휘자 영입에 대해 ‘절대불가’ 이상의 진전된 입장을 표시하지 못하며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동아일보 1998.5.8자)

 

언론의 세세한 분석력이 발휘됐음인지 정명훈 지휘자의 사직의 변명은 무척이나 다양했다(지난 호-KBS오케스트라와 30년(6)-에서 밝힌 내용 참고). 그의 사직은 국내외 음악계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걱정스러운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밝혀진 내용만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공개된 기사들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수많은 사람과 수없이 일어나는 다채로운 사실들에 대해 다 밝혀내거나 기록할 순 없다. 수많은 사실들은 그저 묻혀진다. 다만 몇몇 선택된 사실과 사건들에 대해서만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고 역사로서 남겨질 뿐이다.

필자가 다시금 20년이 지나 정명훈 지휘자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끄집어내는 것은 재차 이슈화해서 논쟁거리로 점화시켜 시류에 편승해 보자는 것이 아니다. 다신 점철되지 않아야 하고 세계무대에 내놓을 수 있는 또 한 명의 지휘자를 배출해 내야하는 시대적 사명감을 공유하자는 뜻이다. 그래서 과거의 사실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멀리 오랫동안 갈 수 있는 대망의 길을 찾는 현명함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또한 이미 많은 시간 포스트 정명훈 지휘자가 등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 모두 깊이 자성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정명훈 스스로도...... (다음호에 계속)

황순룡 칼럼니스트
황순룡 칼럼니스트
hsryong@kbs.co.kr
전 KBS교향악단 기획
안익태기념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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