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10 호모 퍼포먼스 - 공연하는 인간(상)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10 호모 퍼포먼스 - 공연하는 인간(상)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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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일루션 퍼포먼스, FRANZ HARARY (사진제공_FRANZ HARARY)
트랜스포머 일루션 퍼포먼스, FRANZ HARARY (사진제공_FRANZ HARARY)

호모 퍼포먼스 - 공연하는 인간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시드니 영화제에서도 최고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계의 연이은 낭보다. 이제 우리나라의 드라마 제작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선 것 같다. 한류 드라마가 세계적인 히트를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우수한 이야기꾼들과 제작 스탭이 만들어낸 결과인데, <기생충>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영화는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영화인들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지 , 그 매체의 성격을 잘 몰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풍경이나 뉴스, 여행 등 주로 다큐멘터리 성격의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가 드라마로 전향한 것은 영화가 탄생하고 약 10여년이 지난 뒤부터였다. 이로부터 영화는 대중문화의 절대적 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1950년대에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타고난 매체성을 바탕으로 이를 극복하고 점점 더 매력적인 예술로 발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제 평이한 오락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난해한 과학 분야에까지 진출하고 있고 높은 예술성도 지니고 있다. 지식과 정보, SF와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표현능력에도 한계가 없다. 20세기 이후에 도래한 영상시대를 영상적 전환(Pictorial Turn이나 Iconic Turn)이라고 부르는데, 영상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불가능한 판타지를 창조하고 있다. 영화의 성공의 바탕에는 이런 허구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여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영화의 성공요인이다. 프레데릭 제임슨은 20세기는 영화의 시대라고 하였는데 , 21세기에도 영화는 예술의 지배적 장르로 남을 것 같다.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현대사회를 ‘드라마화된 사회(Dramatized Society)’라고 불렀다. 도처에 드라마가 넘쳐난다. 과거에는 연극으로만 볼 수 있던 드라마를 이제는 텔레비전, 영화 등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PC나 모바일 등, 새로운 미디어에서도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전자매체의 발달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을 매우 풍부하게 하였고, 세상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

Walking with dinosaurs the experience 장면(사진_Walking with dinosaurs the experience 브로셔)
Walking with dinosaurs the experience 장면(사진_Walking with dinosaurs the experience 브로셔)

 

진화미학

지금까지의 미학은 한 시대의 관념의 이해, 작품의 해석 등을 주로 다루어 왔다. 낭만주의니 자연주의니 하는 예술사조의 연구, 시대정신, 장르 연구, 작가정신의 이해 등이 예술이해의 기본적 조건이었다. 그러나 예술이해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비롯된 본능적 행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술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고 인간의 본능적 행동이다. 예술이라는 개념은 불과 250여 년 전에 탄생하였지만 그 기원은 훨씬 더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구의 미학은 예술의 전체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한 한정적 대상으로 축소해 왔다. 우리는 그동안 유럽인들이 예술이라고 정의한 것만을 예술로 받아들여 왔다. 이제는 예술은 다른 영역과는 구별되는 고상하고 특수한 영역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예술도 보편적 인간행동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의 행동이 유전적이라는 것은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고 다만 그 정도가 문제라고 말한다. 예술 역시 다른 인간행동처럼 선천적인 인간행동의 한 종류다.

최근 진화론과 유전자와 연관된 많은 학문이 등장하고 있다.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진화경제학, 사회생물학, 행동유전학, 동물행동학 등등. 이들 학문들은 인간의 행동은 생존과 재생산을 위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연선택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누구나 언어를 사용하고 직립보행을 하며 추상화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행동들은 사회에 나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능력, 보편적 속성에 속한다. 이를 인간의 보편적 행동(Human Universals)이라고 부른다.

예술에서도 진화론이나 유전학적인 입장에서 연구하는 학문이 탄생하였다. 진화미학(Evolutionary Aesthetics) 또는 진화예술학이다. 진화미학에서는 예술도 인간의 선천적 행동의 하나이며 예술적 행동은 생존과 재생산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 예술이 오래되고 보편적이며 여러 문화에 각기 특유한 양식으로 두루 존재한다는 점은 생물학적인 뿌리가 있음을 시사한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균형과 대칭 등을 선호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인간에게는 타고난 예술취향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이 미학적 감동을 위해 또는 감상의 대상으로서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연구는 작품위주의 연구에서 벗어나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 시대의 확장과 범위의 확장이 동시에 필요해졌다.

진화미학은 공연예술분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제인 해리슨은 고대 그리스의 제의에서 공연이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의에서 출발하되 더욱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적 행동에서부터 출발해야 해야 할 것 같다. 공연은 극장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무대예술만이 공연이 아니다. 공연은 호모 사피엔스의 초기부터 있었고 우리의 일상 속에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이를 테아트룸 문디(Theatrum Mundi)라고 한다.

BEN HUR LIVE (사진_BEN HUR LIVE 브로셔)
BEN HUR LIVE (사진_BEN HUR LIVE 브로셔)

호모 픽투스

위키피디아에는 인간을 설명하는 50개의 용어들이 소개되고 있다. 놀이하는 인간(호로 루덴스), 만드는 인간(호모 파베르),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 그런데 위키피디아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간의 별칭으로 호모 픽투스(Homo Fictus)가 있다. 허구의 인간. 인간은 허구를 좋아하고 허구를 창조하는 동물이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문화는 허구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문화는 일반적으로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공적인 것, 사람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첫머리에는 ‘세계는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다’. ‘일어나는 것, 즉 사실은 사태들의 존립이다’. ‘그리고 사태는 대상들의 결합이다’. ‘존립하는 사태 등의 총체가 세계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말들은 무슨 뜻일까? 이 말들은 문화와 연관시켜 해석할 수 있다. 세계는 정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들, 물이나 산이나 바다나, 돌처럼 조용히 존재하는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그런 대상들을 결합한 동적인 사실들의 총체다. 자연에 반하는 동적인 활동들이 문화다. 한편, 사실들 또는 사태들의 존립은 사건을 말한다. 사실이나 사태는 사건을 말한다. 자연속의 대상들을 결합하는 것이 문화이고, 사건이다.

그런데 자연을 가공하는 데는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못을 하나 박더라도 몇 도의 각도로 어느 정도의 힘을 주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허구의 산물이고 마음과 정신의 작동의 결과인 것이다. 허구가 작동하는 영역은 이야기나 공연, 문학 등과 같은 예술에 국한하지 않는다. 전혀 상상이나 허구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법률이나 정치도 허구의 산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법을 제정하려면 이를 적용하는 사람과 적용받는 사람간의 관계, 사회라는 환경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규율은 인간이 허구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것이고, 경제생활에 필요한 화폐나 물건 값의 계산 등도 허구적인 활동에 속한다.

이처럼 허구는 문화의 기초이고, 문화는 허구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교과서보다 소설을 좋아하고 다큐 보다 영화를 좋아한다. 허구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하위징가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고 하였는데, 놀이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놀이의 허구적 성격 때문이다.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면서 아빠도 되고 엄마도 된다. 그러면서 아빠의 행위를 배우기도 하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한다. 놀이는 오락적이고 창조적이고 허구로 가득 찬 것이다. 아이는 혼자 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들은 이야기에 대해서도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말만으로 명료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상놀이에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자신이 이해한 이야기를 말로 정리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더 잘 표현한다. 아이의 사회적 가상놀이에서는 이야기나 드라마가 없다. 그저 노는 것이다. 아이들은 쉽고 자연스럽게 틀을 깨고 행동하고 이탈하며 마치 감독이나 대본작가처럼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놀이를 하면 도파민이 늘어난다. 반대로 텍사스의 사회 병리적 살인사건을 대규모로 연구하다보니 놀라운 결과가 드러났다. 범죄자들의 성장배경에서 유일한 공통분모는 유년기에 놀이의 경험이 없었거나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이야기의 기원, 257). 하위징가는 세상의 모든 영역이 놀이이고 놀이는 곧 문화라고 하였다.

이야기도 놀이의 일종이고 허구의 산물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인간은 가상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선천적 본능이 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나는 것 같다. 그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의 발로이고 이는 곧 문화의 창조로 이어진다. 허구는 지금 여기를 뛰어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을 가진다. 인간은 이야기와 함께 살아왔다. 세계의 모든 나라에 존재하는 신화는 그 대표적인 예다.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일리아드 오딧세이,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 페르시아의 서사시인 샤나메, 단군신화, 산해경, 수메르의 신화 등등, 종교 역시 이야기다. 성경은 최고의 이야기책이다. 거기엔 수많은 이야기꾼들의 이야기와 역사가 담겨있다. 성경은 예수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자 훌륭한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불경과 코란에도 석가모니와 마호멧의 이야기와 행적들이 담겨 있다. 종교는 일반적인 교리의 집합이나 설명체계라기보다는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다. 종교는 상상력의 축복이자 저주를 함께 가진 생물에게 위안을 준다. 역사 역시 이야기다 history나 historia 역시 story와 관련이 깊다. 이야기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인간들의 욕망의 표현이다. 우리의 메타 표현적 정신은 우리 자신의 죽음이나 사후세계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조차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이야기의 기원 p403).

헤르더라는 언어학자는 인간을 호모 로퀜스(Homo Loquens)라고 하였다.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또는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을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호모 로퀜스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인간은 의사소통을 위해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남의 말을 듣는다.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언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천일야화는 아라비아의 어느 왕이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여성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생겼는데 이 증오심을 세헤라자데라는 여성이 이야기를 통해서 풀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래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 일화를 바탕으로 <세헤라자데>라는 유명한 관현악곡을 썼다. 인간은 이처럼 이야기를 좋아한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진화’해 왔다. 이야기는 쾌감을 준다. 세상에서 더 잘 살 수 있도록 세상을 이야기와 비교해 보고 거기서 살아가는 교훈을 얻는다. 이야기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야기 속에는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다. 남들의 이야기에 슬퍼하고 이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야기는 지루하고 가혹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마약이다.

뒷소문, 유명인 숭배, 전기, 소설, 전쟁 이야기, 스포츠가 현대 문화의 일부가 되어 있는 이유는 남들에게 열중하는, 심지어 강박적으로 집중하는 상태가 늘 개인과 집단의 생존에 기여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유는 마음이 바로 그런 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과거의 시나리오와 미래의 대안 시나리오들을 끝없이 방랑한다(에드워드 윌슨, 인간존재의 의미 47-48). 이야기가 단순히 재미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사회적 규범을 강화하고 협력의 모델을 제공한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이타주의자와의 교류를 원하고 사기꾼이나 무임승차자는 피하게 된다. 이야기는 배신을 억제하고 협력을 권장한다. 우리가 이야기에 참여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인간의 인지, 협력, 창조성을 높인다. 소박하고 단순한 장화홍련전도 사회적 인지를 발전시키고 협력을 장려하며 상상력을 기르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발전시킨다.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즐기려는 욕망은 인간에게는 곧 이야기나 예술에 대한 본능적 뿌리, 생물학적 근원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야기는 삶을 재 조직화 하는 힘을 가진다. 오늘 일어난 사건들을 새롭게 구성하여 가족과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오늘의 삶을 반성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서로간의 기본적 소통의 방식이다. 이야기를 통해 사회성을 높이고 상상력의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가다듬으며 우리와 사회의 관계, 나와 너의 관계를 강화시킨다. 이야기는 사람간의 협력을 증진시킨다. 구성원들에게 서로의 생각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사회성을 최고조로 높인 조직화 현상을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 부른다. 이타주의가 이기주의를 이기는 것은 서로간의 소통을 통해 남의 생각을 파악하고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는 진사회성 대문이다. 우리가 이야기에 참여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Lord of the rings 영화홍보 이미지
Lord of the rings 영화홍보 포스터

이야기의 힘

이야기는 정신의 개방적 학습과 창조성에 도움을 준다. 특히 허구적 이야기, 픽션은 현재를 넘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준다. 미래는 허구의 소산이다.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은 이야기는 제2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하였는데 이를 레젠다리움(legendarium), 즉 신화의 세계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 작업을 ‘허구의 창조(subcreation)’라고 하였다. 실재의 세계가 아니라 가상의 세계 또는 허구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하위징가는 <호모 루덴스>에서 마법의 원(magic circle)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실재의 세계에서 벗어난 가상의 세계를 말한다. 그러나 하위징가가 살던 20세기 초의 가상세계와 오늘날의 가상세계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것은 디지털이 구현하는 가상실재다. 에드워드 카스트로노바는 현대 사회는 이미 가상과 실제의 경계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기 전에 인류는 이야기를 통해 가상세계를 만들어 왔다. 이야기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성을 지닌다. 인간은 이야기에 빠지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것 같다. 이야기는 현상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다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고 이는 곧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이야기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인간들의 욕망의 표현이다. 종교는 상상력의 축복이자 저주를 함께 가진 생물에게 위안을 준다. 우리의 메타 표현적 정신은 우리 자신의 죽음이나 사후세계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조차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1852년 출판된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엉클 톰스 캐빈>은 19세기에 성경 다음의 베스트셀러였다. 출간되자마자 미국에서 일 년 간 30만권이 팔렸고 영국에서는 100만권이 팔렸다. 이 소설은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링컨의 노예해방운동의 이념적 기원이 되었고, 남북전쟁 당시 영국군이 남부군에 합류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노예해방전쟁이 북부군의 승리로 끝나도록 하였다.

다니엘 오베르(Daniel Auber)는 1800년대에 유럽을 풍미한 그랜드 오페라의 창시자로 불리운다. 그랜드 오페라는 오늘날의 메가 뮤지컬과 유사한 형식을 가진 오페라로서 스펙터클한 무대와 5막으로 구성된 장대한 오페라였다. 그는 외젠 스크리브와 손잡고 많은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이 중에서도 1829년에 작곡한 『포르티치의 벙어리소녀』 는 유럽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1830년 8월 25일 브뤼셀의 왕립극장에서 오베르의 『포르티치의 벙어리 소녀』 공연 중 소요가 발생하였다. 이 오페라는 1600년대 중반 나폴리를 점령하고 있던 스페인의 침략에 항거하여 발생한 마사니엘로(Masanielo)의 항쟁을 그린 애국적인 오페라다. 이 오페라의 내용과 당시의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고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의 7월 혁명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던 브뤼셀 시민들은 네덜란드 통치에 반대하는 데모를 벌였고, 오페라 관객들도 여기에 합류하였다.

이야기는 현재에 대한 해석이자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다. 세상의 많은 사건들을 재조립하여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야기는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고 사실 뒤에 숨은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정신을 해방하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열쇠를 마련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행위를 이해한다.

서사몰입의 메카니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는 이야기 속에 몰입하는데, 그 몰입의 메카니즘은 무엇일까.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갈등들이 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들이 담겨있다. 이야기의 재미는 갈등과 문제해결의 연속에서 나온다. 칼 포퍼는 인생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라고 하였는데, 연극의 재미는 인생처럼 기승전결이라는 이야기의 변화무쌍한 전개방식에서 나온다. 그런데 인간은 허구의 이야기나 연극을 어떻게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일까? 허무맹랑한 텔레비전의 막장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것은 어떤 메카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일까? 미디어의 거짓 정보를 믿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야기의 힘이나 이야기에 몰입하는 메카니즘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은 아직 없다. 이야기의 힘은 무한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최근에 와서야 관련 이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야기는 연극과 같은 예술뿐만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학이나 광고에서의 광고 메시지 설득이론 등과 연관하여 연구되고 있다. 아무튼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야기 몰입의 메카니즘을 불신의 유보와 서사몰입(Narrative Transportation)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일루젼 뮤지컬 'TABLO' 장면(사진_ TABLO 브로셔)
일루젼 뮤지컬 'TABLO' 장면(사진_ TABLO 브로셔)

불신의 유보와 인지적 소격

악역 전문의 텔레비전 탤런트가 거리에서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 이덕무의 청장관 전서에는 소설을 읽어주던 전기수(傳奇叟)가 실제와 이야기를 혼동한 어떤 사내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독창자가 마리 앙트와네트의 박스석을 향해서 ‘나는 내 여주인을 부드럽게 사랑해요. 오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러자 혁명가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가수의 목을 졸랐고, 이어 동료 배우들이 그녀를 보호하려 뛰어나오고 무대는 난장판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순수예술의 발명, 282). 1817년 콜리지는 인간이 허구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방식은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실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를 불신의 유보(suspension of disbelief)라고 한다. 허구의 SF영화를 재미있게 볼 때, 처음부터 가짜라는 생각을 가지면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다코 수빈은 SF소설의 분석에서 ‘인지적 소격(cognitive estrangement)’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러시아 형식주의나 브레히트가 제안한 소격효과에서 차용한 개념인데, 소설이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새로운 장치 또는 기계로서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느낌 또는 소격효과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장르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는데, 장르는 세상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공하거나 움츠리고 있는 사람들을 저항하도록 고무한다고 주장한다. 수빈은 이런 전복적 사유를 인지적 소격이라고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는 연극을 관람할 때 극에 몰입하지 않고 깨어 있어야 비판적 관객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개념인데, 다코의 인지적 소격은 관객이나 독자는 SF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으며 세상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소격효과와 상당히 유사한 개념이다. 한편, 인지적 소격이론도 관객이 전혀 모르고 있던 세상을 사실처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불신의 유보개념과 유사하다. 인지적 소격은 불신의 유보와 소격효과를 합쳐놓은 개념이다. 공연에서는 무대 위 효과는 그렇게 리얼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무대 위에 펼쳐진 파란 천을 파란 바다로 간주하지 않으면 관객들은 극에 몰입할 수가 없다. 엔터테인먼트의 효과는 바로 이 불신의 유보에 있다. 불신의 유보 개념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 대표적인 학자는 겐달 월튼이다. 그의 주장은 만약 관객이 불신의 유보상태에 있다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상황을 보면 그 장면이 실제로 보이기 때문에 큰 소리로 위험을 알리는 고함을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이후 불신의 유보개념은 연극이나 이야기, 스토리가 많아지면서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가상의 이야기, 가상세계가 점점 많아지고 이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는 흥미 있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마술과 같은 눈속임, 서커스와 같은 실제 같지 않은 실제,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가상세계 등을 관람할 때 불신의 유보는 더욱 필요하다.

아스달 연대기 (사진_TvN제공)
아스달 연대기 (사진_TvN제공)

서사몰입

서사몰입(Narrative Transportation)이론은 어떤 이야기에 몰입할 때 우리의 태도와 의도가 바뀌고, 나중에는 그 이야기를 반영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몰입을 의미하는 영어는 많다. 위키피디아에서는 absorption을 삶의 경험에 몰입하는 일반적 경향으로, flow는 일반적 몰입으로(flow는 칙센트미하이의 용어), immersion은 이미지의 미적 요소에 대한 경험적 반응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공연에서는 presence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를 ‘현전’이라고 번역한다. 이 밖에도 optimal experience(최적경험)라는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 서사몰입에서 ‘운송’한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읽기를 여행에 비유하고 독자는 여행자에 비유해서 여행자가 여행에 의해 변화를 경험한 뒤 돌아온다는 것을 빗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용어와 달리 서사몰입은 태도의 변화와 그 변화된 태도는 이야기를 반영한다고 말하는 데, 이는 이야기의 강력한 변용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몰입은 그 대상에 몰입하고 마는 것이지만, 서사몰입에서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태도가 변하고 변화된 태도는 다시 그 이야기를 반영한다. 서사몰입이론에서는 몰입의 원인을 대개 텍스트의 시각화, 동일시, 이미지 작용 등으로 본다. 여기서는 멜라니 그린과 티모디 브록이 제안한 ‘몰입-이미지작용’ 이론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그린과 브록은 다섯 가지의 서사몰입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서사설득은 서사에 의해 이미지가 환기되고 이 이미지는 독자의 신념에 영향을 준다.

두 번째, 환기된 이미지가 심리적 몰입에 의해 구체화된다. 독자는 실제의 세계를 벗어나서 서사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세 번째 서사몰입은 수용자의 성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네 번째 서사몰입은 텍스트의 영향을 받는다

다섯 번째 서사몰입은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그린과 브록이 강조하는 것은 이미지다. 이야기는 단순한 서술의 모음이 아니라 스토리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로서, 이야기 속에 묘사되어 있는 잘 쓰인 텍스트는 이미지를 창조하고 이는 우리를 서사의 세계로 인도하고 신념을 변화시킨다. 즉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되면서 새로운 신념이 발생하고 의미가 생성된다. 이야기가 호소력을 가지려면 이미지의 구성요소와 스토리가 상호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들이 말하는 이미지의 구체화는 로만 잉가르덴의 구체화, 맥루헌의 완결화, 수용미학을 창시한 이저의 현실화의 개념과 유사하다. 이야기는 수용자가 스스로 만든 이미지에 의해 보충된다고 하는 개념들이다. 이야기가 단순한 서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독자에게 도달하면 머릿속에서 시각적 이미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이야기가 더욱 구체화되거나 현실화되거나 완결되는 것이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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