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호모 퍼포먼스 - 공연하는 인간(하)
[더프리뷰 칼럼] 호모 퍼포먼스 - 공연하는 인간(하)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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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ARDIA(사진_ARCARDIA 브로셔)
ARCARDIA(사진_ARCARDIA 브로셔)

호모 퍼포먼스 - 공연하는 인간

인류학자였던 빅터 터너는 퍼포먼스 이론을 연구하여 리차드 쉐크너와 함께 퍼포먼스 학(Performance Studies)을 개척하였다. 퍼포먼스를 개략적으로 정의하면 ‘연극으로만 한정할 수 없는 연극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연극이나 공연이라고 하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조직화된 예술행위들을 말한다. 그러나 퍼포먼스는 이런 예술로서의 연극을 넘어서서 다양한 연극적 행위를 포괄한다. 여기에는 의례나 스포츠, 정치가의 연설 등 연극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많은 행위들이 포함된다. 최근 이 학문은 서양에서 매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그것은 퍼포먼스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공연이나 퍼포먼스를 좋아하는 것일까?

빅터 터너는 인간을 호모 퍼포먼스(Homo Performans), 즉 공연하는 인간이라고 하였다. 공연하는 인간이라는 정의는 인간의 특성을 매우 적절하게 정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빅터 터너(1983)는 생애 말기에 ‘나의 세대, 그리고 이후의 몇 세대의 인류학자들이 따르도록 교육받은 공리.., 모든 인간행동은 사회적 조건화의 결과라는 믿음과는 정반대로 믿게 되었고 인간에게는 조건화를 거부하는 선천적인 어떤 것, 즉 타고난 행동잠재력과 경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고백했다.‘(엘렌 디사나야케, 미학적 인간, 60) .

터너는 인간이 퍼포먼스를 선호하는 현상을 본능적인 것으로 보았다. 터너는 호모 퍼포먼스의 의미를 규정하지는 않았는데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우선 말 그대로 연극이나 퍼포먼스와 같은 예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예술로서의 연극이나 무용 등을 수행하거나 스포츠나 대중연설 등을 행한다. 이런 행위들은 필요한 훈련을 통해 사전에 잘 조직하여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들이다. 두 번째의 뜻은 의사표현행위를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행위를 통하여 표현한다. 하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 말처럼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고 싶어 하고 때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다. 또 하나의 뜻은 행위 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물도 먹이를 사냥하거나 무언가를 먹는 행위들을 하지만 이런 행위들은 매우 본능적인 행위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매우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갈망하면서 행위 한다. 인간의 삶은 행위로 구성된다.

인간의 행위는 재귀적(reflexive)인 성질을 띤다.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나의 행위는 나에게 드러나고 나는 그것이 어떤 행위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또한 나의 행위가 아닌 다른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나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연하는 인간’이라는 말은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알게 된다는 것과 다른 사람이 조직한 퍼포먼스에 참여하거나 이를 관찰함으로써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뜻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더 줄여서 말하자면 인간은 행위를 통해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가 퍼포머, 즉 공연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공연 역시 허구의 산물이다. 우리는 보통 공연을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예술로 이해하고 있다. 콘서트, 무용이나 발레, 연극 등을 말한다. 이를 때로는 무대예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없이 다양한 공연이 있다. 무대예술만으로 공연을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된다. 퍼포먼스 학을 창시한 사람은 리차드 쉐크너와 빅터 터너인데 쉐크너는 연극전문가이고 터너는 인류학자였다. 터너는 인류학적 입장에서 공연으로 전환하였고 쉐크너는 연극적 입장에서 인류학적 관점으로 선회하였다. 인간의 많은 행위들이 퍼포먼스에 속한다. 쉐크너가 정의한 퍼포먼스에는 연극 등 무대예술은 물론이고 스포츠, 축제, 주술적 행위, 심지어 병원에서의 치료행위등도 퍼포먼스라고 부른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퍼포먼스고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것도 퍼포먼스가 된다. 그렇다면 퍼포먼스는 세상의 모든 행위들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 것일까?

쉐크너가 이런 행위들을 퍼포먼스라고 한 데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그동안 퍼포먼스 이론은 주로 연극이론에 의지해왔고 , 실제로 연극이 퍼포먼스의 중심을 이루어 왔지만 공연에는 수없이 다양한 종류와 형식이 있다. 따라서 공연은 연극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폭넓은 시각으로 퍼포먼스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 쉐크너의 주장이다. 퍼포먼스 학은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학문이다. 우리가 공연이라고 이해해 온 무대예술의 이해에도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런 행위 또는 공연은 개인적인 측면과 집단적인 측면이 있다. 공연은 물론 개인적인 공연도 있지만 집단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집단적인 성격을 띠는 행위 중에 대표적인 것이 연극적 퍼포먼스다. 물론 모든 연극적 퍼포먼스가 집단성을 띠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연극이 집단성을 띤다. 연극의 집단성은 사회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고, 이는 상호성을 말하기도 하다.

FUERZA BRUTA(사진_FUERZA BRUTA 브로셔)
FUERZA BRUTA(사진_FUERZA BRUTA 브로셔)

행동근대성 - 퍼포먼스의 기원

존 로크는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고 말했다. 이를 빈 서판(Tabula Rasa)이라고 말한다. 이를 이어받아 인간의 본성을 백지로 보는 많은 주장들이 나타났다. 루소는 에밀의 첫머리에서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자라나면서 악하게 변한다고 하였다. 행동주의 이론은 인간은 빈 서판 상태로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주장이다. 행동주의 이론의 대표적 학자인 왓슨은 자기에게 아기 12명을 주면 이들의 성격이나 능력, 조상의 영향등과 관계없이 이들을 의사, 변호사, 상인, 예술가, 심지어 거지나 강도로까지 원하는 대로 키워낼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인간은 교육과 후천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가는 것이지, 선천적인 본능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을 백지로 본 관념은 오랫동안 서양의 지성사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 반기를 든 많은 이론들이 등장한다. 인간이 백지상태에서 외부의 조건만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인간의 능동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삶을 구성할 수 있고, 환경과 상호작용을 통하여 감각적 인상을 변형하며, 스스로의 인식작용에 의해 인식체계를 재 조직화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주장은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를 주장하는 진화심리학적 이론들이다. 인간의 문화는 진화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고,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본성이나 유전자가 있어서 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같이 진화해 왔다는 주장이다. 리차드 도킨스는 이를 밈(meme)이라고 불렀다. 유전되는 문화적 단위를 말한다.

인간의 행동은 전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까? 삶의 필요에 따라 걷고 먹고, 잠자는 것일까? 아니면 인류의 오랜 문화가 집적된 역사적 행위들일까? 걷고 먹고 잠자는 일들은 매우 일상적이지만, 거기에도 오랜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걷는 것은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특이한 행동양식이고, 먹는 행위에도 문화가 담겨 있으며, 잠을 자는 행위도 그렇다. 인간은 날 것을 아무렇게나 먹는 것이 아니라 불에 데워서, 거기에 양념을 치고 때로는 예술작품처럼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처럼 인간의 대부분의 행위들에는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다. 유전자는 역사에서 어떤 역할도 맡을 수 없는 것일까? 최근의 진화생물학 등에서는 문화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인간이 유전적으로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를 사용한다. 이는 인간의 선천적인 신체능력, 즉 후두의 구조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고 타고난 언어능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침팬지는 아무리 언어연습을 시켜도 말을 하지 못한다. 촘스키는 인간은 보편문법을 타고났다고 말하는데 이는 인간은 문법을 배우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직립보행 역시 인간만이 하는 행위들이다. 다양한 문화에 실재하는 피상적 차이 속에는 보편적인 정신적 메카니즘이 있다. 여기에서 인간만이 지니는 보편성(Human Universals)이 나타나고 이와 함께 보편적인 인간행동이 나타난다. 이를 ‘행동근대성(Behavioral Modernity)’ 이라고 부른다. 19세기 이후 인간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회구성주의가 강하게 회자되었다. 문화에는 유전적이고 본능적인 요인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들에는 누적적인 문화가 집적되어 있다. 인간의 집단적 행위도 마찬가지여서 호모 사피엔스는 점점 큰 집단을 이루면서 집단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한다. 포식자에 대한 집단적 대응, 집단의 힘을 이용한 먹이 찾기, 협력하여 일하기 등이 그런 것들이다. 집단행동은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의 가장 중요한 행동패턴이다.

행동근대성은 호모 사피엔스를 다른 영장류와 구분하는 행동특성이기도 하다. ‘근대성’이라는 개념은 원래 전통적 사유방식이나 이념, 행동들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바꾸어나간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근대성은 17세기 이후 유럽의 계몽주의의 발달, 자본주의의 확립, 민족국가의 수립, 산업혁명 등을 통한 경제의 발전과 시장경제체제의 확립,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난 세속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이나 유럽의 시민혁명등 기존의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인권운동이 이에 속한다. 근대성이란 과거의 전통을 버리고 합리적이고 이성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시기적으로는 근대에 일어난 합리주의 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행동근대성은 원시시대부터 있었던 합리적 행동방식이다. 행동 근대성의 주요한 내용으로는 추상적 사고, 깊이 있는 계획, 상징적 행동(예술이나 장식 등), 음악과 춤, 거대한 사냥감 포획, 날(blade)기술의 사용, 교역 등이다(Wikipedia). 행동 근대성의 배후에는 인지적이고 문화적인 기초가 있다. 인지능력이 향상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점점 다른 호미닌이나 영장류를 능가하는 행동양식을 가지게 된다. 네안데르탈인이나 다른 동물들의 멸종은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근대성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행동근대성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 하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서서히 발전해왔다는 주장과, 기원전 4~5만년전에 갑자기 등장했다는 주장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미 다이어몬드는 약 5만 년 전에 인류는 대도약을 했다고 말하는데, 그 때 호모 사피엔스가 갑자기 커다란 발전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대도약설을 비판하는 샐리 맥브리어티와 앨리슨 브룩스같은 학자는 대도약설이 유럽중심주의적 사고라고 비판한다. 대도약설은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 사피엔스는 매우 원시적이었고 기원전 4~5만 년 전에 유럽과 중동지방을 중심으로 ‘인간혁명(human revolution)'이 일어났고 이 때 문명이 갑자기 발달했다고 주장한다.(사실 제레미 다이어몬드는 특정 지역의 우위 설을 부정하고 문명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했다고 했는데 맥브리어티등이 다이어몬드의 대도약설을 유럽중심주의로 비판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그들은 문명의 발전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하여, 혁명(Revolution)이 아니라 진화(Evolution)라고 본다(Sally McBrearty , Alison S Brooks, The Revolution that wasn't : a new interpretation of the origin of modern behavior, 453-563).

행동근대성에는 의례, 춤과 노래 등도 포함되는데 이런 퍼포먼스 적 속성들은 문화적 유전자에 속한다. 오늘날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수많은 퍼포먼스들은 이미 인류의 오랜 문화적 전통 속에 잠재해 있어서 인류와 함께 발전해 온 것이다. 퍼포먼스의 발전은 인류의 고단한 삶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농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대사건이었다. 농업은 유목생활을 정주생활로 바꾸고 식량의 잉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여성들의 다산을 촉진하게 되었다. 이로서 인구가 증가하고 큰 집단을 이루게 되고 나아가서는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인간간의 갈등을 유발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질서의 유지에 필요한 강제력과 규범이 필요해진다. 법률과 도덕 등의 문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잉여식량 또한 교역을 촉진함으로써 문화의 발달에 기여하게 되었다. 농사에 필요한 각종 도구의 발전,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협력활동의 증가 역시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반면 잉여식량은 사유재산제도를 초래하였고 불평등을 낳으면서 계급이 생겨나고 국가와 왕이 탄생하게 된다. 1만 년 전에 시작된 농업혁명은 호모 사피엔스의 퍼포먼스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더욱 왕성하게 했을 것이다. 변변한 농사도구도 없이 거친 자연과 싸우면서 힘든 농사일을 하다보면, 집단적으로 어떤 의례나 퍼포먼스가 필요했을 것이다. 춤이나 노래 같은 퍼포먼스들도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때로는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내거나, 병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수많은 종교적 의례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Hello Stranger /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Hello Stranger /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문화적 집단선택

자연선택은 다윈 진화론의 핵심적 개념으로서 동물이 경쟁적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자연선택에는 개체선택과 혈연선택, 집단선택 등이 있는데 혈연선택은 혈연적으로 가까운 동물들의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고 집단선택은 혈연보다 큰 집단의 차원에서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문화적 집단선택은 집단선택이 문화와 연관을 맺는 것, 문화에 있어서의 집단선택을 말한다. 이는 혈연보다 더 큰 사회집단이 즉 문화 안에서 생존하기 위한 적응화 과정이다. 각 집단들은 집단의 생존을 위한 독특한 문화적 관습들이 있다. 이를 통해 집단내의 개체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집단생활을 규제하기 위한 각종 규범과 법률, 도덕 등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인간은 어떤 규범이나 행위가 생존에 유리하면 그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게 되고, 이것이 문화적 유전자가 되어 후대에까지 전승된다. 반대로 어떤 행위들은 집단에 불리한 영향을 주면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하거나 다른 행위에 흡수되거나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이것이 문화적 집단선택의 과정이다. 개체들은 집단의 문화적 관습에 스스로의 행위를 적응해가야 한다. 인류는 수렵채집기 시기부터 집단을 이루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 시기의 집단은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거대한 숫자의 무리를 이루면 이동에도 불편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협력관계와 함께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에 필요한 것이 문화다. 집단의 구성원은 그 집단의 지향성(이를 집단지향성이라고 한다)에 동조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나아가서는 집단과 동일시를 이루게 된다.(마이클 토마셀로, 도덕의 기원, 225-242). 호모 사피엔스가 현재의 문화를 이룩한 데에는 집단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퍼포먼스는 삶의 실천적인 행위다. 인간의 행위는 무작위 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많은 행위들은 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동물들은 의례를 행하거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집단적인 정치적 세리모니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신학기가 되면 어린이들은 모여서 선생님과 인사하고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고 입학식이라는 세리모니를 한다. 인간들은 왜 이런 패턴화된 행위들, 계획적인 행위들을 수행하는 것인가? 퍼포먼스는 어떤 사실이나 시퀀스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시간적 순서가 있고 공간이 있으며 등장인물이 있다. 그리고 이들 요소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의미를 창출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종이 진화해 온 역사나 동물의 유전적 구조에 주목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다. 만약 행동이 계획에 따라 조정된다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빈 서판 5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행위를 계획하고 이를 패턴화 한다. 그것은 퍼포먼스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간의 행위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퍼포먼스는 삶을 지탱하고 타인과 화합하며 세상의 발전을 추구하는 실천적인 행위가 된다. 퍼포먼스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집단성 속에서 발현된다. 이는 곧 사회적 사건이 된다. 동물은 한정적인 행동 패턴을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다양하고 무제한의 행동패턴이 가능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행동패턴을 개발하고 있고, 이는 새로운 퍼포먼스와 문화로 이어진다.

그러나 모든 퍼포먼스는 일회적 사건으로서 사건이 끝나고 나면 소멸한다. 내가 참여한 입학식은 그 날 이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퍼포먼스는 누적되거나 축적되지 않으며 역사와 무관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퍼포먼스는 반복된다. 그러나 반복되는 퍼포먼스는 전부 새로운 것들이다. 여기에 퍼포먼스의 창조성이 있다. 퍼포먼스의 일회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퍼포먼스는 인류의 오랜 진화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온 문화적 유전자의 유전형(genotype)으로 볼 수 있다. 유전자는 인간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고, 그 유전형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 표현형(phenotype)이다. 브랜드가 있고 그 브랜드 밑에 여러 가지 가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퍼포먼스를 하는 유전형을 지니고 있고 이를 다양한 개별적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문화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연극적 행위 역시 인류와 함께 존재해 왔다.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연극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연극이다. 연극적 행위는 인류의 기본적 조건이다. 인생은 연극이고 세상은 무대다(테아트룸 문디). 타인과의 대화, 선생이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행위들은 모두 연극적 행위들이다. 따라서 연극은 인간의 선천적인 행위능력이고 진화와 함께 발전해 온 것이다. 인간은 연극적 행위를 통해 공통관심사를 공유한다. 나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가 합쳐져서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이룬다. 그런 작은 이야기들을 신체적으로 재현하여 조직화한 것이 무대연극이다. 연극은 세상의 사건들을 재해석하여 명료하게 전달한다. 잡다한 사실들은 연극적 과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인간은 연극적 행위들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된다.

연극적 행위는 이야기의 나눔이나 신체적 동작만이 아니다. 연극은 보는 것이고 보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보아주는 이는 많지 않다. 보기는 관심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대상을 유심히 보고 이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갖게 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가치관의 생성이다. 또한 본다는 것은 공감의 표현이고 이로서 사회는 공동체를 이루는 기초가 된다. 연극적 행위는 사회를 통합하는 기초다. 연극적 행위는 우리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공감을 강화하고 상상력을 최대한 고양시킨다. 친구와의 심각한 대화를 통해 세계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연극적 행위들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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