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문화전쟁, 말의 전쟁(상)
[더프리뷰 칼럼] 문화전쟁, 말의 전쟁(상)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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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쇼이발레단 '스파르타쿠스' 포스터
볼쇼이발레단 '스파르타쿠스' 포스터

문화는 차이다

1952년에 크뢰버(Kroeber)와 클럭혼(Kluckhorn)은 그때까지 나온 문화의 정의가 162개라고 하였다. 그런데 2006년도에 존 볼드윈 (John Baldwin)등은 300개가 넘는다고 하였다. 문화는 곧 인류의 삶과 마찬가지니까 그럴 만도 하다. 게오르그 짐멜은 문화를 이야기하려면 그 정의를 압축해야 한다고 하였다. 최대한 문화의 정의를 압축해 보자. 자주 통용되고 있는 문화의 정의로는 ‘지식, 신념, 예술, 도덕, 법률, 관습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획득한 능력과 습관들을 포괄하는 복합적 총체’(E.B.타일러), ‘의미화 실천(signifying practice, 스튜어트 홀)’이나 의미를 생산하는 활동(클리포드 기어츠), 상징을 생산하는 활동(에른스트 카시러), 특정한 집단의 총체적인 생활양식(마빈 해리스)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문화에 대한 보다 다양한 해석을 가한 것은 레이몬드 윌리엄스다. 그는 『키워드』에서 문화는 정의하기 어려운 두 세 개의 단어라고 말했다. 이런 용어를 우산용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사회나 예술도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그는 여러 저술을 통해서 문화를 정의하고 있는데 『기나긴 혁명』에서는 기록이나 가치, 삶의 방식으로 『문화와 사회』에서는 (1) 자연스런 성장 (2)인간을 육성하는 과정(cultivate, Kultura), (3)인간완성, (4)사회 전체에 있어서 지성적 발전의 상태, (5)예술의 총체, (6)물질, 지성, 정신에 걸친 전반적 생활방식 등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키워드』에서는 보다 간결하게 (1) 지적.정신적.미적 발전과정 (2)특정한 삶의 방식 (3) 지적 활동, 특히 미적활동의 작품과 실천으로 정의하고 있다. 레이몬드 윌리엄스가 강조한 개념은 삶의 방식이라는 개념이었는데 이는 크뢰버와 클럭혼의 개념을 빌린 것이라고 한다.

문화를 더 넓게 정의하자면 자연과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상태에 있던 호모 사피엔스가 황량한 자연과 무서운 맹수들을 피해 점점 자연상태에서 문명상태로 변한 것이 문화다. 그래서 문화를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인류는 문화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져 왔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직도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없다. 문화의 정의가 이렇게 많은 것은 아직도 문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몬토바니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서구 사회에서 아직도 문화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고, 그래서 급변하고 있는 다문화적 세계에서 문화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기가 어려웠다’(Redefining culture : Perspectives Across disciplines, 3)

문화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해 왔지만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를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사회의 변방에 있던 문화가 중요해진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실증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실험이나 증명을 통한 과학적 진리만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유다. 또한 산업생산의 급격한 증가는 사물을 보는 시각에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과 여성의 권리신장 등 소외되고 억압받아온 소수자들이 자유를 얻기 시작했는데, 이는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하는 혁명적 전환이었다. 이로써 이성보다 감성이 중시되게 되고 의미나 해석들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매우 유사한 개념이다. 서양에서는 문화학이 탄생하고 문화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화를 매우 긍정적 의미의 개념으로 이해해 왔다. 교양이나 도덕, 높은 예술적 식견과 동의어로 인식해 온 것이다. 문화국가, 문화도시, 문화인 등은 모두 다 수준높은 교양과 학식을 지닌 나라나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문화는 이와는 매우 다른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지역, 국가, 인종, 젠더와 같이 특정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들 정체성이 그동안 탄압을 받아온 것들이라는 점이다. 오랜 식민지 생활을 견뎌온 인종과 국가, 성차별에 시달린 여성의 문제등이 그런 예들이다. 많은 나라들이 2차 대전후 독립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을 무엇보다 중시하게 되면서 자신들을 통치하던 식민국들과의 갈등이 심해졌다. 영토를 되찾기는 했지만 진정한 해방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도 문제가 되었다. 소위 포스트 식민주의(postcolonialism)는 그래서 탄생하였다. 일본의 경제도발 문제도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와 포스트 식민주의라는 문화적 관점의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페미니즘 역시 1960년대 이후에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 포스트 식민주의 운동등은 거의 같은 시기에 출현하여 문화와 사회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나갔다. 인권의 문제도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미국에서의 흑백갈등도 1950년대에 시작되어 60년대 이후 법적으로 흑인의 권리가 보장되었지만 아직도 갈등은 상존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흑인은 미국에서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화장실에 갈 때도 식당에 갈 때도 다른 공간을 사용해야 했고 버스를 탈 때도 앞자리에는 앉지 못했다.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할 때도 흑인들은 백인구역을 넘나들 수 없었다. 1955년 로자 파크스의 민권운동은 버스에서의 차별문제로 발생한 사건이었고 이로 인해 1876년부터 거의 100여년 동안 유지되어 온 흑인차별법인 짐 크로법이 폐지되었다(1965년).

우리는 현대에 살고 있다보니 오늘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쉽지만 과거의 ‘인간’은 일부 귀족이나 돈 있는 사람들에 한정된 세상이었다. 노예들, 여성들, 어린이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조차 그의 『정치학』에서 노예를 일하는 도구 정도로 여겼으며 칸트도 여성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성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다.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고린도전서 14: 34-35). 여성들은 예술활동에 참여하지 못했고, 여성참정권이 보장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였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억압에서 해방되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면서 문화투쟁이 시작된다. 문화는 오히려 투쟁의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해결에서 문제로, 화합에서 갈등으로 숭고함은 대중성으로 바뀌게 된다. 문화는 서로 다른 이념들의 전쟁처가 되었다.

문화투쟁은 현대사회에 와서 발생한 현상일까, 아니면 과거에도 있었던 현상일까?

문화투쟁에 대해 알아보려면 우리는 다시 문화의 의미로 돌아가야 한다. 구조주의의 중요개념은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이다.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에 기원들 두고 있는데, 그는 언어는 서로 다른 기호들의 체계라고 하였다. 레비 스트로스는 세상은 이항대립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립하는 힘들의 투쟁으로 보았다. 남과 여, 선과 악, 뜨거운 사회와 차가운 사회, 삶과 죽음, 실재와 허구, 하늘과 땅 등의 이항대립은 대립을 낳고, 이것이 사회를 조직하는 힘이 된다. 이항대립은 세상을 조직하는 구조이자 세상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원리이다. 선을 설명하려면 악을 대비시켜야 하고, 죽음은 삶과의 대비속에서 그 의미가 드러난다. 이항대립은 대조를 포함하기 때문에 대상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한다. 밝음과 어두움은 쉽게 대비된다. 심지어 상호간의 이해를 도모한다는 긍정적 의미의 상호작용도 이항대립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있고 네가 있다는 건, 깊은 소통의 상호작용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립적인 관계가 된다. 세상은 이렇게 이항대립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항대립은 경계를 만들고 차이를 만들어낸다.

대립하는 힘들 간의 사이와 차이에는 권력이 발생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신체적 힘이 세고 부자는 빈자보다 돈이 많다. 힘의 차이는 권력의 차이가 되고 , 권력의 차이는 투쟁을 낳는다. 문화는 힘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양상이다. 그러나 이항대립만이 차이가 아니다. 낮과 밤 사이에는 저녁도 있고 아침도 있다. 아이와 어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도 있고 노인도 있다. 이런 다차원적 차이가 곧 문화고, 이들간에는 더욱 격렬한 투쟁이 벌어진다. 가치와 이념들 역시 모두 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들은 서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투쟁한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다르다. 지구상에는 6800여 개의 언어가 있는데 이들 역시 전부 다르다. 종교는 1만개 이상이 있는데, 이들 중 100만 이상의 신도를 거느린 종교가 150개 이상이다. 이들 종교의 차이는 곧 차이와 대립을 낳는다. 문화적 진화의 과정은 같은 생각이나 같은 기능을 가진 집단끼리 한정된 공간을 차지하려는 영역다툼의 역사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것을 구분하는 성향이 있다. 데이비드 버스는 이를 '차이탐지적응(Difference Detecting Adaptation)'이라고 불렀는데, 인간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얼굴 생김새가 다른 사람을 구분한다. 그들은 이를 '차이평가의 심리학'이라고 부른다(The Evolution of personality and Individial differences, 2011, 33).

들뢰즈나 데리다의 입장에서는 이항대립적 차이는 차이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지평위에서 발생한 동일성이다. 데리다는 이항대립은 서구중심적 사유로서 사회질서를 위계화하고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단선적 사유방식이라고 하였다. 복잡한 세상을 이항대립으로만 해석할 수 없고, 오직 차이만이 있을 뿐이며 이를 차이들의 끊임없는 변주, 이를 '차연'이라고 불렀다. 들뢰즈는 진정한 차이는 반복에서 발생하고, 차이야말로 생성을 낳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이항대립도 문화를 설명하는 충분한 논리를 지니고 있고 이항대립 역시 차이다. 우리는 이항대립을 통해 문화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문화에 있어서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배와 저항의 관계를 '문화정치학'이라고 부른다. 문화는 매우 정치적이다. 오히려 정치보다 더 정치적일 수 있다. 문화가 정치적인 이유는 차이와 의미를 둘러싼 싸움 때문이고, 무엇보다 차이에는 불평등이 내재하고 있어서 계급적인 투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는 문화 다양성을 낳는 중요한 요인이다.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서로 다른 종류의 상품들, 서로 다른 생각, 언어, 종교, 학문 등은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차이는 투쟁의 원인, 그 중에서도 의미투쟁의 원인이 된다. 내가 믿는 종교나 신념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미에 대한 투쟁이 되고 이를 통해 문화는 발전한다. 차별화 전략은 자아를 타자와 구별하고 하나의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구분지어서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이다. 짐멜은 유행도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 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인간의 많은 활동들은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전략들이다. 그래서 현대철학이 강조하는 것은 차이의 철학이다. 같은 것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내는 동일성의 철학이 아니라 다른 것들끼리 경쟁하고 협조하면서 다른 것들을 만들어내는 차이의 철학, 차이의 생산이 중요한 것이다. 차이는 갈등을 조장하고 불화를 낳는 주범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들뢰즈는 차이나는 것만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반복은 새로운 생산의 근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적인 의미의 차이와 달리 일반적으로 차이는 다른 것과의 투쟁을 유발하고, 계급적 관계를 생성한다. 차이는 힘의 차이이며 이는 권력관계를 만들고 투쟁을 유발한다. 빈자와 부자는 커다란 힘과 경제력의 차이를 만들고 이는 계급투쟁을 유발한다.

십자군전쟁을 다룬 영화, KINGDOM OF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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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쟁

부르디외는 문화를 투쟁으로 사유한 대표적인 사회학자다. 그는 문화를 계급투쟁으로, 계급의 사이를 구별짓는 구별짓기의 기제로 보았다. 문화투쟁은 계급적인 싸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존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세력간의 거대한 사회적 투쟁이다. 문화투쟁은 특정한 이슈에 대한 대립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립하는 힘들간의 가치관의 싸움, 그 집단의 전체의 행위양식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화투쟁이라는 용어는 어느 날 문화전쟁이라는, 보다 전투적인 용어로 바뀌었다.

'문화전쟁(Culture War)'은 이제 매우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다. 문화전쟁은 원래 독일통일을 이룬 재상 비스마르크가 수행한 '문화투쟁(kulturkampf)'에서 비롯된 용어로서, 통일독일(1871년)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1872년부터 1878년까지 벌인 카톨릭과의 싸움을 말한다. 영어에 도입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 미국인 제임스 헌터가 쓴 <문화전쟁: 미국을 정의하기 위한 투쟁>이 그 기원이 된다. 문화투쟁이 문화전쟁으로 바뀐 것인데 그 의미는 유사하다. 헌터는 낙태, 총기문제, 종교와 정치의 분리, 마약, 동성애, 검열 등에 등장하는 뜨거운 주제들을 문화전쟁의 요소로 보았다. 이들 문제들은 주로 미국의 국내 문제였다. 그러나 테리 이글턴은 문화전쟁은 이제 글로벌한 이슈가 되었다고 말한다. 문화전쟁은 학문적 영역에서 벗어나 현실정치가 되었고 예술이 아니라 인종청소와 같은 국제적 문제들이 되었다(Idea of culture 51). 문화전쟁은 새로운 시대의 세계 정치학이 되었고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투쟁, 국가간의 문화적 투쟁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무역전쟁, 경제전쟁도 문화와 연관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같은 종끼리 대량살상을 하는 종이다. 홉스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하였는데, 그만큼 인간의 본성은 투쟁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는 15세기 이탈리아의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사회상들이 묘사되어 있다. 가문간의 보복, 결투, 청부살인, 간통이나 남녀의 부정행위, 심지어는 군주와 정부당국이 살인에 의존해 통치하던 당시의 폭력성들이 적나나하게 나타나 있다. 어떤 수도사는 많은 사람을 죽였고, 어떤 두 집안에서는 한 어린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한 달만에 34명을 서로 죽이는 파괴적인 일도 있었다. 과거의 인간들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살인을 예사롭지 않게 저질렀던 것 같다. 인류는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엄청난 인명살상을 저질렀다. 1, 2차 세계대전과 각국에서 자행된 식민통치와 그로 인한 살인, 인종청소, 국가간의 전쟁, 민족간의 갈등 등에 의해 인류는 수없는 희생을 경험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와 인간의 폭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사망원인의 약 15퍼센트가 인간의 폭력이었던 반면, 20세기에는 그 비율이 5퍼센트에 불과했고 21세기 초에는 약 1퍼센트로 줄었다(호모 데우스, 31)"고 말한다. 2012년 전세계 사망자수는 약 5600만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62만명이 폭력으로 죽었다. 반면 80만명이 자살했고 150만명이 당뇨병으로 죽었다. 많은 학자들은 인간은 서로를 배려하는 공감이 폭력성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을 공감하는 인간(호모 엠파티쿠스)으로, 현대 사회를 '공감의 시대'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물리적 폭력이나 전쟁이 문화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역설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고도의 전쟁무기를 가지면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의 전쟁이나 폭력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문화투쟁이나 문화전쟁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전쟁은 이제 매우 국지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에까지 침투하였다.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차이들이 전부 문화전쟁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화전쟁은 언어가 촉발하는 투쟁이라고 생각된다. 언어를 둘러싼 싸움은 모든 영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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