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제2의 천성’인가 - 전쟁과 폭력, 춤의 기억
폭력은 ‘제2의 천성’인가 - 전쟁과 폭력, 춤의 기억
  • 이종찬 기자
  • 승인 2019.08.03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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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청소와 정원 가꾸기의 공통점은 '선택과 분류'

"Second Nature"(c)Michae Ramus(사진=인스타그램 캡처)
"Second Nature"(c)Michae Ramus(사진=인스타그램 캡처)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지난 4월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Erbstücke Festival이 열렸다. 전통과 정신적 유산을 주제로 하는 이 축제에서 폴란드의 아가타 시냐르스카는 설치무용 <Second Nature>를 발표했다. 제2의 자연, 제2의 천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 작품의 배경에는 폴란드 모던댄스(Modern Dance)의 아이콘 폴라 니렌스카가 있었다.

서양 현대무용은 미국과 독일에서 이사도라 던컨, 로이 풀러, 마리 비그만 등에 의해 발전됐지만 20세기 초 폴란드에도 중요한 인물이 여럿 있었다. 니진스키의 동생 브로니스와바 니진스카, 발레 무용가였던 마리 램버트, 그리고 현대무용가인 폴라 니렌스카 등이다.

폴라 니렌스카(Pola Nireńska, 1910-1992)는 유태계 폴란드인으로 독일에서 표현주의 무용의 대모 마리 비그만의 지도아래 공부했다. 3일간 단식투쟁 끝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무용공부를 했지만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유태인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고 이후 1949년 미국으로 이주, 정착했다. 교사로서, 안무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녀는 <홀로코스트 4부작>을 초연하고나서 2년 후 81세의 고령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미 다섯 번의 자살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생애가 <Second Nature>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폴란드 무용가 폴라 니렌스카의 "비명(Krzyk)"-1933년(사진=wiki commons)
폴란드 무용가 폴라 니렌스카의 "비명(Krzyk)"-1933년(사진=wiki commons)

안무가 아가타 시냐르스카는 니렌스카의 무용작품 영상을 연구하여 제스처, 안무구성 등 모든 면을 현대예술가의 눈으로 되살려 자신의 작품 <Second Nature>를 만들었다. 이는 작은 정원을 몇 군데 설치하고 공연자들은 정원에서 춤을 추며 관객들은 자유롭게 걸어다니거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설치무용 작품이다.

폴란드 문화예술 매체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는 작가 마르첼리나 오바르스카(Marcelina Obarska, MO)가 <Second Nature>의 세 예술가를 만나보았다. 안무 및 공연을 맡은 아가타 시냐르스카(Agata Siniarska, AS)와 카타지나 볼린스카(Katarzyna Wolińska, KW), 그리고 콘셉트와 설치를 맡은 카롤리나 그쥐프노비치(Karolina Grzywnowicz, KG)가 그들이다. 물론 이 젊은 예술가들은 니렌스카를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유태계 폴란드 무용가, 폴라 니렌스카

MO : 당신이나 동료들은 니렌스카의 비극적 생애를 미리 알고 있었는지?

AS : 아니, 전혀. 친구나 가족들도 잘 모른다고 했다. 대개는 남편인 얀 카르스키(Jan Karski, 1914-2000, 폴란드 지하정부 대사이자 독립운동가)를 떠올렸다. 그녀는 남편에게서 벗어나 독립된 개인으로 살지 못했다. 아내로서만 살았다. 내가 아는 것은 그 정도이다.

(니렌스카와 카르스키는 평생 유태인 수용소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기로 했다)

독립운동을 했던 니렌스카의 남편, 얀 카르스키(Jan Karski)(c)Lilly M(사진=wiki commons)
독립운동을 했던 니렌스카의 남편, 얀 카르스키(Jan Karski)(c)Lilly M(사진=wiki commons)

MO : 니렌스카는 자유로운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현대예술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느꼈을까?

AS : 우리는 현대예술과 니렌스카의 안무를 연결, 모던댄스의 의미를 구현하려 했다. 모던댄스는 따분하고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카타지나와의 협업을 통해 모던댄스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알았다.

MO : 카타지나, 댄서로서 당신에게 니렌스카는 어떤 의미인가?

KW : <홀로코스트 4부작>은 니렌스카의 증언이다. 대단히 개인적인 프로젝트이고 이런 작업에서는 어떤 신체여야 하는지가 결정적이다. 모던댄스의 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니렌스카의 교육과 그녀의 무용에 대한 태도를 연구하여 섬세한 디테일을 찾는다. 이건 재구성이 아니라 오히려 부분적으로 이미 죽은 것을 되살리는 것이다. 되살리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춤추는 몸이 필요하다.

특정 역사적 맥락에서 작품을 하는 경우, 안무 자체와 그 뒤에 있는 작가 모두가 연구대상이다. 무용이란 독자적인 예술분야이며 스스로의 의미체계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폭력에 대한 안무언어의 역할은 매우 현대적인 것이다. 니렌스카의 이야기는 아주 슬프고, 비극적이다. 그녀를 정당하게 다루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AS : 이 이야기를 공간화하고 기억의 저장고로부터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먼지 쌓인 박물관 작품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KW : 니렌스카가 10년간 춤을 그만뒀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동작이란 가장 어린 나이부터 그녀가 자신을 표현한 언어이다. 우리는 이 오랜 휴식기간에 대해 숙고하고 정확히 이 언어를 잃었다가 되찾은 과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AS : 이 휴식기간에 그녀는 매우 힘들어했다. 그녀는 입원했고 전기치료를 받았다. 우울증과 공포로 매우 고생했다.

폴란드 안무가 아가타 시냐르스카(Agata Siniarsk)(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폴란드 안무가 아가타 시냐르스카(Agata Siniarsk)(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Second Nature>와 환경위기

MO : 당신 프로젝트에서 자연환경은 핵심이다. 그러한 생태적 비전이 어떻게 작품을 형성시켰는가?

KG : 우리는 무대배경 없이 공연하되 공연과 설치로써 대화하고 서로의 콘텐츠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니렌스카의 ‘생애’를 가지고 작업하지 않는 이유이다. 대신 다른 종류의 무대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만드는 설치는 독립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관객에게는 열린 공간이며 공연관람과 관계없이 꽃이나 밭을 볼 수도 있다.

나는 정원같은 것을 만들어 나치가 사용했던 폭력의 도구와 같은 개념으로 식물을 사용하려 한다. 즉 자생종이 아닌 모든 식물종은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선택과 분류는 폴라 니렌스카 생애의 연결고리이다. 그녀 역시 마리 비그만의 학교에서 추방당했다. 나치는 정원을 타자를 위한 공간이 전혀 없는 이상사회같은 개념으로 보았다.

정원 가꾸기는 선택과 분류

MO : <Second Nature>는 매우 어렵게 들린다. 좀 더 설명을...

KG : 폭력이 언제 시작됐는지 생각했고 그게 제2의 천성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관습은 매우 흔해서 사실상 그것이 폭력일 때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기도 한다. 정원이나 정원 가꾸기도 이와 비슷하다. 결국 우리는 선택종만 배양한다. 작품 제목은 사람의 제2의 천성에 대한 반추(反芻)이다. 이는 ‘인간적인 것’의 개입되는 순간이란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첫 번째 천성은 전혀 길들여질 수 없는, 이론적인 것이다.

AS : <제2의 천성>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이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연구될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발견될 수도 있다.

KG : 지금 만들고 있는 정원은 이중성에 대한 사고방식이다. 이는 유쾌한 초대공간이며 시간이 지나면 폭력과 관련된 역사를 드러낸다.

비주얼 아티스트 카롤리나 그쥐프노비치(c)Adam Stępień/Agencja Gazeta)(사진=warszawa.wyborcza.pl)
비주얼 아티스트 카롤리나 그쥐프노비치(c)Adam Stępień/Agencja Gazeta)(사진=warszawa.wyborcza.pl)

홀로코스트가 현재에 주는 의미, 폭력은 계속되는가

MO : <홀로코스트 4부작>은 어떤 특정한 시대의 안무작품이다. 2차대전 발발 8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AS : 결국 홀로코스트 자체에 대한 질문과 유사하다. 즉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던댄스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시도해 보려 한다. 우리는 세계를 바꾼 이 주제를 어떤 가르침도, 선동도, 위선도 없이 홀로코스트가 어땠는지, 우리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 등에 대해 정직하게 이 주제를 다뤄보려 한다. 이는 오늘날 폴란드인들의 행위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위험한 태도일 수도 있다. 흘러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경험하지 않고 그것을 할 권리는 없다.

MO : 그것이 당신이 지금 살아있는 ‘우리’의 파국을 암시하는 이유인가? 당신은 이 작품을 생태위기라는 맥락에 포함시키려는 것인가?

KG : 우리는 자연을 향한 태도에 관해 많이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칼 린네(18세기 스웨덴 식물학자. 오늘날 사용되는 생물분류 체계의 기초를 확립함)는 식물계를 분류할 뿐 아니라 인간도 세분하여 인종(race)으로 만들었다. 나치는 몇 가지 용액을 만들어 자연에 실험했고 이 같은 사고방식을 사람에게도 적용했다. 이는 쇼킹하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생태위기라는 짐을 지게 된 이유이다. 폭력은 계속된다.

쇼아(Shoah, 홀로코스트의 히브리어)는 새로운 멸종엔진의 작동결과가 아니라 이미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폭력의 이동일 뿐이다. 증언자, 희생자, 가해자라는 구분 또한 자연환경 훼손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지,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규모적인 것들을 규탄하는 것이다.

AS : 무용은 매우 단일한 표현형태이지만 관계와 의미에 대한 언어를 공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안무를 통해 우리는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려 한다. 무용은 현대의 폭력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이는 신체를 어떤 방식으로 모델화하며 사물의 존재방식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모든 서양무용은 계몽시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틈새를 들여다보면 서양문화에 뿌리박은 어떤 질서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즉 정신과 신체의 분리같은 것이다. 현대철학은 이를 한데 결합하려 한다. 도나 해러웨이의 용어인 '자연문화'가 그 좋은 예이다. 우리는 작품을 ‘트라우마가 거(居)하고 축적되는 장소로서의 몸’이라는 개념 위에서 시작했다.

공연자인 카타지나 볼린스카(c)Kateřina Barvířová(사진=operaplus.cz)
공연자인 카타지나 볼린스카(c)Kateřina Barvířová(사진=operaplus.cz)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 사용하는 것이 문제

MO : 당신은 컬렉티브 형태로 작업한다. 민주적 작업모델은 또한 폭력의 구조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비(非)위계적으로 협동하는 것이 가능한지?

AS : 감독으로서 먼저 말할 것이 있다(웃음). 내 경험상 이런 류의 작품에는 수개월의 준비와 어떤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냥 몇 사람을 골라서 ‘좋아, 이제 수평적으로 작업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유토피아적인 것이다. 우리 예술가들은 서로 다른 경험과 미학을 가지며 나는 위계를 뭔가 당연히 잘못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는 책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 사용하는 것이 문제다.

연극작품의 경우 남성감독과는 어떻게 일해야 한다든지 하는 속설이 있다. 이런 종류의 관행은 현재 우리 프로젝트에는 없다. 우리는 함께 어떤 한 가지 형태로 작업하며, 카롤리나와의 작업은 다른 장르와의 만남이다.

KG : 우리의 협력은 신뢰, 서로의 공간을 주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 누구도 무언가를 강요한다는 느낌은 없다.

KW : 동작연구는 토론을 요구하진 않지만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우리는 무언가 함께 창조하며 이는 독특하다. 이것은 협력작업의 힘이며 신체들 사이에는 콩쿠르에는 없는 무엇이 존재한다.

나치의 대학살에서 영감을 받아 정원 가꾸기에 담긴 '선택과 분류'라는 인간의 사고방식에 주목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우리나라의 현대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기억과 상처들은 충분히 살펴지고 치유됐을까, 남의 힘으로 해방된 나라에서 치열한 생존을 위해 여전히 선택과 분류를 우리끼리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Second Nature>는 오는 11월까지 몰도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지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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