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노화' 말고 '순노화' 하세요" 이시형 박사의 '어른답게 삽시다'
"'항노화' 말고 '순노화' 하세요" 이시형 박사의 '어른답게 삽시다'
  • 이종호 기자
  • 승인 2019.08.05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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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 멈추는 건 시드는 게 아니라 성숙해지는 것"
어차피 길어진 인생, 멋지게 제대로 살아야
이시형 박사의 '어른답게 삽시다' 표지
이시형 박사의 '어른답게 삽시다' 표지

[더프리뷰=서울] 이종호 기자 = 1998년 제1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전야제에서 축사를 마친 문화계 원로 박용구(1914-2016) 선생께 누군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늘 젊어 보이시는데 비결이 궁금합니다.” 선생은 그때까지도 매일같이 물구나무서기와 철봉을 할 정도로 건강하셨고, 여러 가지 새로운 구상에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즐거워하시곤 했다.

“비결이랄 건 없고... 호기심이지요. 난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요. 하나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또 하나는 여성에 대한 호기심.” 좌중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요양병원으로 찾아뵈었을 때에도 “여기 있으면서 좋은 걸 하나 봤어. 환자들끼리, 보호자들끼리 서로 챙겨주는 인정 말야, 인정. 딴 나라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거야. 이걸 서양에 수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봐.” 하시던 분이었다.

그렇다. 요즘같은 백세시대에 호기심 없이 주저앉으면 인생 끝이다. “재수 없으면” 120세까지 살지도 모른다는데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으면 그 인생은 얼마나 무기력하고 지루할 것인가.

이번주에 나온 이시형 박사의 에세이집 ⟪어른답게 삽시다⟫의 첫 번째 키워드도 호기심이다(특별한서재, 248페이지, 14,000원). 사는 게 신나고 재밌어서라기보다는 호기심 때문에 더 오래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호기심은 인간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상에 대한 관심을 팽팽하게 유지해야 한다. 뉴스도 보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호기심의 끈을 놓아 버리면 뇌도 생기를 잃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늙는 것이 감성이다. 감성이 퇴화할수록 더 늙는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이시형 박사는 ‘화병(Hwa-byung)’을 세계 최초로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이다. 첫 저서 ⟪배짱으로 삽시다⟫ 이후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 건강한 정신과 자연체로 살아가는 법에 대한 화두를 던져오며 ‘국민 의사’로 불렸다. 그런 그가 올해 86세의 나이로 새롭게 ‘나이듦’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가 아니라 ‘살 날이 부담스러워서’ 이 숙제를 풀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으면 인생 계획을 다시 세웠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어른답게 삽시다⟫는 저자 자신의 에피소드와 철학을 통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어른’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될까? 나는 진짜 어른일까? 어떻게 나이를 들어가야 제대로 나잇값을 하는 것일까? 책은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과 나이 들어가는 나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는 법을 들려준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나이 들어 갑자기 위축되고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대며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은 때문이란다. 나이가 들고 삶의 경험이 늘수록 자기 자신을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나의 삶과 나 자신에 대한 예의다.

성장이 멈추었다고 해서 시드는 게 아니다. 이제 성숙해질 차례다. 올바르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간을 고독한 감정놀이에 허투루 쓰지 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깊은 사유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나이가 든 다음이다.

어느 날 문득 살아갈 날들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보다 멋지게, 그리고 지혜롭게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궁금할 때, 한창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한숨 쉬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 책은 곱씹을 거리를 제공한다. “몸은 어쩔 수 없이 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늙을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숫자가 보태지는 만큼 더 풍요로워지고 깊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 이시형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이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ㆍ서울의대(외래)ㆍ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5년 주기로 ‘배짱’ ‘여성·청소년’ ‘세계화’ ‘건강’ 등의 화두를 던지면서 우리 사회의 핫이슈로 만들어왔다.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 특히 학교부적응, 저소득층, 결손가정 등 정서 및 행동상의 어려움을 겪는 청소녀을 대상으로 드럽클럽 활동을 통한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요즘은 ‘병원 없는 마을’을 건립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나이에 대한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활동을 하며 평생 공부하고 도전해서 배운 삶의 지혜를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한다.

(삽화=이시형)
(삽화=이시형)

이번 책 ⟪어른답게 삽시다⟫에서 인상적인 몇몇 구절을 소개해본다.

“세상은 넓고, 여든여섯 해를 살았어도 내가 아는 세상은 그 세상에 앉은 먼지 한 톨 만큼일 뿐, 아직 내가 모르는 무한한 것들이 저 밖에 존재한다. 그러니 낯선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낯선 일에 부딪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낯선 것을 해보는 일을 멈추지 말라. 지속적인 자극으로 전두엽을 지키지 않으면 나이든 몸뚱어리처럼 감정에도 빠르게 깊은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파이고 만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두근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볼 일이다.”

“인생의 즐거움은 애써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어떤 선택이라도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러려면 멈춰서야 한다. 열심히 하는 일을 잠시 접어두고 그 자리에 멈춰서보라. 그래야 새로운 것을 볼 여유가 생긴다.”

“제 앞가림을 한다는 것은 나 하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주변 모두를 위한 일이다. 진정한 홀로서기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남김없이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끝까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다 죽을 수 있는 삶의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나이가 드는 것은 농밀하고 풍요로운 것이다. 사고와 사유가 깊어지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도 깊어진다. 내면의 삶은 더 부유해진다. 그래서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사실 진짜 감성은 나이가 들어서 제대로 발현되는 것이다. 삶의 정점을 찍고 하산기에 접어들면 꼭대기만 바라보던 시선이 발 아래를 내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모든 문명도 시들어갈 때 가장 감성적이다.

감성이 회생해야 인간다움이 돌아온다. 감성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우리의 살아 있음을 깨우치게 하는 증거다. 그리고 살아 있는 한 감성은 무한히 깊고 넓어질 수 있는 영역이다.”

“나이 들어 ‘여사친’이 웬 말이냐고 하기보다 성별에 관계없이 골고루 친구를 사귀는 것이 좋다. 나이 들수록 우아하고 섹시하게 자신을 다듬어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친구로서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

“늙어서 굳이 돈 욕심을 낼 일은 없어도 사람 욕심은 부릴 만하다. 사람을 얻는 일은 하나의 세상을 얻는 일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친구들을 주위에 두고 함께 늙어갈 수 있는 것만큼 큰 축복은 없다.“

”나는 나이가 들어 외로움을 타는 심리를 ‘노수(老愁)’라고 부른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게 나의 삶이 다소 한적해졌으면 좋겠다.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며 가끔 몇몇 사람들과 밀도 있는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면 나의 인간관계는 좁아진 것이 아니라 깊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을 표현하는데 인색해질 것이 아니라 더욱 후해져야 한다. 그것은 그들을 위함만이 아니라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는 이별 앞에 끝내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함이다.”

(삽화=이시형)
(삽화=이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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