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in 무비] 그것만이 내 세상
[클래식 in 무비] 그것만이 내 세상
  • 강창호 기자
  • 승인 2019.09.01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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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처 Arts & Culture 9월호 (Vol. 164)
배우 박정민과 한지민의 열연 & 피아니스트 송영민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스틸컷_천재 오진태 역을 맡은 박정민의 열연이 돋보인다. (사진출처=다음영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스틸컷_천재 오진태 역을 맡은 박정민의 열연이 돋보인다. (사진출처=다음영화)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기자 = 지금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 어떤 음악들을 만들고 연주할까? 이런 재미있는 상상을 이따금 해보지만 결코 상상의 세계만은 아니다. 음악을 배우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소리의 음계를 바로 찾아내는 능력, 음악을 듣고 단숨에 외워서 연주하는 것, 바닥에 흩어진 작은 콩들의 수와 배열에 따른 논리 등등 수학, 음악, 미술 등에서 고유한 능력을 발휘하는 특이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번트증후군(savant syndrome)’ 환자들이다.

이들의 뇌구조는 일반인과는 달리 창의력과 예술성을 주관하는 우뇌가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다. 따라서 브레이크 없는 그들의 창의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재능을 통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곤 한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스틸컷 (사진출처=다음영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스틸컷 (사진출처=다음영화)

‘서번트증후군’이라는 말은 그들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던 존 랭던 다운(John Langdon Down)이 1887년 런던 의학회의 강연에서, 의사 생활동안 발견했던 특이한 재능을 가진 환자의 사례를 통해 '백치현자(idiot savant)’라고 호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그들을 칭하는 '서번트'라는 말은 학자나 현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savant'을 차용한 말로, 일반적인 지적 수준은 백치에 가깝지만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환자를 표현한 호칭이었다. (Daum백과 참조)

이처럼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들로 가득 차있다. 비록 ‘정상인’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 그들이 비록 장애인으로 보일 수 있지만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그들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느끼는 세상은 오로지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포스터 (사진출처=다음영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포스터 (사진출처=다음영화)

작년 2018년 1월에 개봉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서번트증후군’ 오진태(박정민 분)를 중심으로 전직 복서(WBC 웰터급 동양 챔피언)인 형 조하(이병헌 분), 엄마 주인숙(윤여정 분) 그리고 피아니스트 한가율(한지민 분)의 휴먼 드라마이자 코미디 작품이다.

영화 ‘역린’을 감독한 최성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할리우드식 액션 영화도 아니고 유럽의 영화들처럼 많은 생각이 필요한 영화도 아니지만 이 안에 담긴 ‘가족’이라는 주제는 점점 잊혀가는 우리의 가족사를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스틸컷_배우 박정민과 이병헌 (사진출처=다음영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스틸컷_배우 박정민과 이병헌 (사진출처=다음영화)

세상 가장 유쾌한 케미스트리

오갈 데 없는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 우연히 17년 만에 헤어진 엄마 인숙과 재회하고,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따라간 집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뜻밖의 동생 오진태를 마주한다. 오로지 대답이라곤 “네” 밖에 할 줄 모르는 동생을 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감에 동분서주하는 조하의 장면에서 배우 이병헌의 연기가 다시금 빛난다.

그래도 이 영화의 주요 핵심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피아노 88개 건반으로 이해하는 천재 진태의 이야기가 전체를 아우른다. 진태의 장면은 마치 과거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샤인(Shine)'에서 동일한 ‘서번트증후군’을 앓았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David Helfgott)을 떠 올리게 한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방방 뛰는 데이비드와 진태는 ‘순수한 영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피아노 앞에서 어마 무시한 천재성을 마음껏 드러낸다. 그들이 연주했던 쇼팽이 순수한 아름다움과 감동 그리고 ‘천재성의 발현’이라면 스크린에 비치는 그들의 음악 또한 진정한 천재들의 외침이었다. 어린이의 맑은 눈동자를 통해 순수한 아름다움의 진리를 발견하듯 그들의 음악은 세상 논리에 빠삭한 얇은 지식과 한 줌 자존심에 이끌려 살아가는 세속인들을 구원하는 ‘천국의 음악’처럼 다가온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스틸컷_영화에서 오진태와 한가율로 열연한 배우 박정민과 한지민 (사진출처=다음영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_스틸컷_영화에서 오진태와 한가율로 열연한 배우 박정민과 한지민 (사진출처=다음영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은 타이틀에서 단연 록 그룹 들국화의 노래가 생각나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많은 클래식 음악들을 줄줄이 선보인다. 진태의 천재적 피아니즘과 아울러 숨겨진 화려한 과거를 가진 피아니스트 한가율의 복귀를 무대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쇼팽 <즉흥 환상곡>, <피아노 협주곡 1번 론도 비바체>, <녹턴 2번>, <발라드 3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 3악장>, 드뷔시 <아라베스크>, 브람스 <헝가리 무곡 (포핸즈) 제5번>,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터어키 행진곡> 그리고 보로딘 <젓가락 행진곡> 이렇게 11곡이 영화의 곳곳을 채워간다.

“박정민과 한지민 두 배우는 엄청난 노력파 배우들입니다. 특히 박정민 배우가 영화 후반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할 때 건반의 정확한 음을 집어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00% 노력인 거죠” -피아니스트 송영민

피아니스트 송영민
피아니스트 송영민

이 영화에서 클래식 음악이 많다는 건 이를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피나는 노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연주처럼 보이기 위한 트레이닝을 수개월 동안 받았다고 하는 배우 박정민과 한지민의 열연은 스크린을 통해 그들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본래 피아노를 저렇게 잘 쳤나?”라는 놀라움과 함께 전문 피아니스트처럼 보이는 그들의 열연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그들의 연기를 끌어올린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JTBC드라마 <밀애>를 통해 유명세를 치른 피아니스트 송영민이다. 대부분 그의 연주 음원으로 입혀졌지만 배우들을 티칭하는데에는 그의 손길이 곳곳에 있었다.

그는 영화에서 박정민 연기로 쇼팽 <즉흥 환상곡>과 <녹턴 2번>,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 드뷔시 <아라베스크>를 연주했고 한지민 연기로는 보로딘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했다.

제자는 스승을 닮아가듯 진태와 가율의 움직임에서 그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곤 한다. 어찌 보면 송영민의 아바타처럼 그들은 멋진 연기를, 송영민은 그들의 열정 위에 사운드를 입혔다. 옷이 날개라더니 사운드를 입은 그들의 동작은 진짜 피아니스트로 새롭게 탄생했다.

오진태와 한가율의 열정과 열연으로 다시금 태어난 송영민의 피아니즘은 군더더기를 제거한, 본질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현장의 거친 숨결과 음간의 울림 그리고 공간에 남은 엷은 여음마저 스크린의 감동으로 이어졌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출연진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출연진_박정민, 최성현 감독, 윤여정, 한지민, 김성령,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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