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
  • 이종찬 기자
  • 승인 2019.10.01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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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댄스 해외초청작 - ALDES 무용단 내한
스펙터클의 시대, 이념적 문제 다룬 매혹적인 안무
신예 포스카리니, 마르티니와 함께 이탈리아 미니특집 구성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제22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SIDance) 해외초청작 코너에서 이탈리아의 알데스(ALDES) 무용단이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를 공연한다. 10월 5일(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작품 제목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는 라틴어 회문(回文, palindrome, 앞뒤 어느 쪽으로 읽어도 같은 문장)인 "In girum imus nocte et consumimur igni"를 번역한 것으로 정확한 의미는 번역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현대를 ‘스펙터클의 사회’라 진단했던 프랑스의 저술가, 영화감독이었던 기 드보르는 1978년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만들기도 했다.

기 드보르에 의하면 스펙터클이란 우리에게 각인되는 어떤 이미지, 스토리이다. 예컨대 무명 연예인의 성공기, 초인적인 체중감량 이야기, 성공한 벤처기업가, 이들의 이야기는 보는 이에게 부러움과 함께 목표와 욕망을 주며 세상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된다. 광고 속의 남학생이 지하철 안에서 "저 다음에 내려요"라고 말하면 두 사람의 눈은 마주보며 빛난다. 손을 잡고 내리는 두 사람. 현실이 그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펙터클은 현실 속의 관계가 되고 실제의 관계와 혼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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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DES 무용단,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c)Claudia Pajewski(사진=시댄스)

작품은 어두운 극장 안에서 불안하게 반복되는 리듬으로 시작된다. 나이지리아의 타악기 우두(Udu, 옹기처럼 생긴 타악기)의 독특한 음색 속에 검은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마치 좀비처럼, 혹은 스스로 태엽을 감는 자동인형처럼 끝없이 헐떡이며 움직인다. 기괴한 표정과 크게 뜬 두 눈으로 반복되는 리듬 속에 끝없이 스스로를 학대한다. 무대 위 무용수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들 자신을 보는 듯 기괴하면서도 한편으론 코믹하다. 작품은 마치 ‘우리 시대의 스펙터클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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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DES 무용단,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c)Cristiana Rubbio(사진=시댄스)

2015년 이 작품이 발표됐을 때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시공간과 움직임의 매혹적인 상호작용”(하노버 알게마이네), “무용의 걸작, 엄청난 엄청난 역동성으로 히스테리, 최면, 학대에 시달리는 인간의 몸을 표현한다”(라 레푸블리카), “형이상학적이고도 수수께끼 같은 작품. 화가 키리코의 작품을 연상시킨다.”(셰네에 콘템포라네) 등등.

ALDES 무용단의 설립자이자 예술감독인 로베르토 카스텔로는 1980년대 초 프랑스 누벨 당스를 이끌었던 카롤린 칼송(Carolyn Carlson) 무용단 소속으로 활동했고, 1984년 이탈리아 현대무용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소스타 팔미지(Sosta Palmizi)를 공동설립했으며 1993년 무용, 시각예술, 뉴 테크놀로지 등을 활용해 실험적 안무작을 만드는 자신의 무용단 ALDES를 설립했다. 그는 이탈리아 현대무용의 개척자이자 가장 관념적인 안무가로 불린다.

이탈리아 안무가 로베르토 카스텔로(c)G.Graziani(사진=시댄스)
이탈리아 안무가 로베르토 카스텔로(c)G.Graziani(사진=시댄스)

한편 이날 8시 공연에 앞서 오후 4시에는 중구에 위치한 CKL스테이지에서 이탈리아의 신예 프란체스카 포리니의 <뼈 위에서 노래하며>, <비대칭에의 소명>,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솔로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는 안드레아 코스탄초 마르티니의 <토리노에서 생긴 일> 등 세 작품이 공연된다.

<뼈 위에서 노래하며>는 마치 무용수가 스스로의 뼈를 만지려 애쓰는 듯한 모습을 통해 유일한 실체인 신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비대칭에의 소명>은 나와 전혀 다른 ‘타자’에 대한 윤리를 역설한 레비나스의 철학에서 동기를 얻어 솔로와 듀엣 사이를 구분할 수 없는 춤을 보여준다. <토리노에서 생긴 일>은 무용수의 모든 근육과 동작을 드러내는 듯한 춤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 따라 규정되는 ‘나’를 거부한다.

안드레아 코스탄초 마르티니, "토리노에서 생긴 일"(c)Michela di Savino(사진=시댄스)
안드레아 코스탄초 마르티니, "토리노에서 생긴 일"(c)Michela di Savino(사진=시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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