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12, 루소의 연극관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12, 루소의 연극관
  • 조복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2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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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Jacques Rousseau (painted portrait)
Jean-Jacques Rousseau (painted portrait)

루소는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관념들을 뒤집는다. 마치 니체가 기존의 사상을 ‘망치’로 깨부수려고 했던 것처럼 루소는 문명이 인류의 진보를 이루었다는 상식과 편견을 비판한다. 계몽적 사상의 기반으로 여겨졌던 이성보다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고 문명보다 자연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였다. 루소는 이런 점에서 반계몽적 사유를 한 학자로써, 낭만주의적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 루소의 전복적 사고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 중심을 이루는데, 이는 학문과 예술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된다. 루소는 1749년에 디종 아카데미가 공모한 < 학문과 예술의 부흥은 풍속을 순화하는데 기여했는가?> 라는 논문공모에서 대상을 받았다. 루소는 여기서 인간은 원래 고귀하고 단순하게 태어났는데 학문과 예술이 오히려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말한다. 과거의 남성은 씩씩하며 덕이 많았고, 여성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숙하였으며 인간은 지금처럼 잘난 체할 필요가 없었지만 학문과 예술이 인간을 오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계기가 되었다. 그의 반문명적 사상은 이후 『에밀』이나 『인간불평등 기원론』 등에도 동일한 표현으로 등장한다. 에밀의 첫머리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 선하게 태어나지만 사회와 문명에 의해 악하게 변해간다고 주장한다. 백지상태로 태어나 문명에 의해 바뀌어나간다는 존 로크의 빈 서판(Tabula Rasa) 이론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학문과 예술이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활동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루소는 거꾸로 학문과 예술이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말한다. 루소에 의하면 문명화되기 이전의 인간들은 특별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미개인은 모든 종류의 지식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기본적 충동만 경험한다. 자연상태의 인간의 욕망은 먹는 것과 이성과 휴식뿐이다( 『인간불평등 기원론』, 45). 그러나 도구를 발명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여가를 가지게 되면서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문명의 도구들이 신체와 정신을 나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명화된 인간은 세상의 복잡한 고통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타락하게 된다. 또한 소유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제기한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비판한 소유, 나중에 마르크스가 비판한 사적 소유는 루소에게도 불평등의 출발이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투쟁은 갈등의 출발이자 인류역사의 비극적 기원이 되었다. 농업혁명 이후에 토지소유와 잉여식량의 축적을 통해 발생하기 시작한 소유는 경쟁을 낳고 갈등의 출발이 되었다고 말한다(루소는 농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농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국가를 형성하여 문명발전의 기초를 닦았다고 주장하는 많은 문명론자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연상태의 인간이 최선의 인간이고 문명화된 인류는 오히려 인류를 타락하게 할 것으로 보았다. ‘ 자연으로부터 유래되는 것은 다 진실일 것이다’

루소의 연극관도 그의 반문명적 사유속에 자리잡고 있다. 플라톤 이래로 면면히 어어져 온 반연극적 사유가 루소에 이르러 종합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통해서 연극과 공연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루소가 연극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신엘로이즈 서문에서 ‘ 연극은 대도시에서 필요하고 타락한 민중들에게는 소설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편지>에서도 정상적인 연극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학문이 발달하면서 군인정신과 같은 강건한 기상이 사라지고 군인을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학문연마는 군인의 자질향상에 해가 되고 분별없는 교육이 인간의 정신을 치장하여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학식 공화국에서 불멸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저명한 사람들의 영광을 시샘하지 말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명예로운 구별을 두도록 하자. 옛날 사람들이 두 훌륭한 국민에 대해 말하곤 했던 구별, 다시 말해 한쪽은 훌륭하게 말할 줄 알았고 다른 한 쪽은 잘 행동할 줄 알았다는 명예로운 구별 말이다(『학문과 예술에 대하여』, 66)’. 학문은 오만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천문학은 미신에서 생겨났고 웅변술은 야망과 증오와 아첨과 거짓에서 태어났으며 기하학은 탐욕에서 태어났고 물리학은 공연한 호기심에서 생겨났다. 그처럼 윤리학까지를 포함하여 모든 학문은 인간의 오만에서 생겨났으며 학문과 예술은 우리의 악덕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위의 책, 49).

그는 학문하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한다. ‘ 학식있는 사람이 입만 벙긋하면 공정함과 절도와 미덕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들이 전혀 벌을 받지 않고 그들의 정념과 악덕에 탐닉하는 것이 바로 그 아름다운 말들의 신성한 보호 아래서라는 것도 보았다’(위의 책, 158). 예술가는 부자들을 위해 작품을 쓸 뿐이다. 예술가의 능숙한 솜씨의 결과물로 이득을 취하거나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은 할 일없는 부자들뿐이다. 그는 예술가들이 그렇게 순박하고 겸손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예술가들은 박수를 받고 싶어한다. 시민들의 칭찬은 그의 노력에 대한 가장 귀한 보상이다.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

루소는 <편지>에서 그의 고향인 제네바에 극장을 세우려는 계획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연극과 극장에 대한 그의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루소는 연극을 오락이라고 단언한다. ‘ 연극은 첫 눈에 오락이다. 오락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쓸데없는 오락은 짧은 인생에 오히려 죄악이 될 뿐이다. 인간은 그의 성격과 노동, 관계, 필요로부터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극장에 함께 간다고 생각하지만 극장은 오히려 분리되는 곳이고, 허황된 이야기에 빠져서 죽은 자의 불행을 슬퍼하고 삶을 낭비하면서 그들의 친구, 이웃, 관계들을 잊어버리기 쉬운 곳이 바로 극장이다. 무대는 인간의 정열을 그린 그림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그런 정열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면 관객은 금방 돌아서고 말 것이다’(『편지』, 16). 루소는 연극의 재현의 정확성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연극은 오락성을 강화하기 위해 잔혹한 행위나 구역질나는 장면들을 삽입하였다.

이 논문은 1758년 루소의 친구 달랑베르가 <백과사전>에 수록한 제네바에서의 극장설립문제를 다룬 글에 대한 반박문이다. 달랑베르는 제네바에 극장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다분히 볼테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볼테르는 자신의 작품을 연극으로 제작하기도 했고 검열 등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루소는 볼테르의 이런 생각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학문과 예술등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편지>는 또 루소의 개인적 연관성도 들어있는데 루소는 제네바 출신으로서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제네바의 고즈넉한 풍경을 해치는 극장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편지>에서 그의 고향에서 가까운 뇌샤텔(Neufshatel)의 평화로운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루소는 이런 자연에서의 삶을 동경해왔다. 연극은 이런 자연생활을 파괴하는 반자연적 문명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는 이성, 과학, 학문, 예술 등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감을 가졌었고 이는 그의 여러 저작에 나타난다. 문명을 비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 그의 유명한 명제와도 상통하는 사유였다. 그는 오히려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검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편지>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글은 극장과 극장에서 공연되는 것의 관계, 두 번째 글은 무대와 배우와 극장의 관계, 세 번째는 제네바에서의 극장설립의 문제다. 루소는 『편지』에서 연극의 해악, 배우와 연기의 문제, 여성과 연극의 관계, 사치, 공연의 경제성, 바람직한 오락의 형식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극장과 극장에서 공연되는 것의 관계

오락은 필요할 때는 수용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시간을 뺏거나 그들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라면 오히려 부담이 된다. 연극의 원칙은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것인데, 등장인물이 늘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희극이라면 내용은 덜 중요하고 비극이라면 영웅적 대상이 과장되거나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위치하게 된다. 비록 연극이 도덕적 이상을 잘 묘사하더라도 그것이 허구라는 걸 관객이 자각하게 되면 그 이상(理想)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연극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살인이나 부모살해와 같은 잔인한 장면을 삽입하기도 한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든가, 아버지가 아들의 피를 마시는 끔찍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검투사의 학살도 이보다 더 잔인할 수는 없다. 서커스에서도 피가 흐르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자연을 떨게 할 정도로 범죄를 상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스와 로마사회가 연극의 폭력적 내용을 잘 수용했던 것은 연극이 그 시대와 장소에 맞는 전통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프랑스적 맥락에 위치시키면 매우 위험해진다. 비극은 희극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등장인물이 프랑스 국민들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몰리에르의 『인간혐오자(Misanthrope)』는 관객이 부도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주인공 알세스트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고 정직하며 어수룩해 보이는데 반해 사기꾼 팔랭트는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루소는 이 작품이 천재의 작품이면서도 도덕적으로는 후진적이라고 비판한다. 비록 희극작가들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극을 쓰더라도 관객은 그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연극은 쓸 데 없는 일이다.

- 사랑과 여성

이어서 루소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동해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성은 관계성의 영역에서 남성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되고, 이 힘은 연극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데 연극에서 여성은 관객에 대해서도 같은 영향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제국의 확장은 자연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루소는 여기서 스파르타를 언급하면서 가장 덕이 높은 여성은 겸손하고 다른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 여성이라고 하였다. 반대로 퇴폐적인 프랑스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여성은 사회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내리는 권위적인 여성이다.

루소는 여성은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쥬네브 헌사에서도 여성을 ‘ 공화국의 절반의 행복을 만들어내고, 상냥함과 현명함으로 나라의 평화와 양속을 유지하고 있는 그 소중한 절반’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성이 없는 가정은 마치 영혼이 없는 신체와 같다(편지, 88). 루소는 정숙한 여성, 현모양처형의 여성을 강조한다. 여성은 가사일에 충실해야 하며 가정을 벗어난 여성은 자신의 가장 위대한 빛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이 정숙하지 못하거나 무절제하면 이는 사회의 비극이 된다. 남성이 와인을 과하게 마셔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무절제해서 문제가 발생한다(편지, 109).

연극은 모방의 행위다. 루소는 『에밀』에서 모방을 비판한다. 플라톤은 모방을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필요하다고 보았지만 루소는 이마저도 비판한다. 모방함으로써 얻어지는 미덕은 모두가 원숭이의 미덕이라는 것, 좋은 일이라고 여겨서 행동한 것이 아니라 남이 하니까 자기도 한다는 식의 선행은 도덕적으로 좋은 행위가 될 수 없다. 인간사회에서 모든 종류의 어릿광대들은 아름다운 것을 흉내내어 그 품위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한다. 미천한 감정을 가진 그들은 자기보다 값어치 있는 것은 자기와 똑같은 것으로 떨어뜨린다. 그들이 찬미하는 어떤 것을 흉내내려고 할 경우에도 그 대상의 선택에 있어서 모방자의 잘못된 취미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보다 우수한 자 보다, 영리한 자가 되려는 것보다, 도리어 타인을 위압하고 자기의 재능을 칭송받으려 한다. 우리 사이에 행해지는 모방의 근본은 항상 자기 밖으로 나가려는 욕망에 기인돼 있다( 『에밀』, 114)

배우와 무대와 극장의 관계

연극이 해롭지 않다고 하더라도 시간의 생산적 사용에는 해가 된다. 더욱이 연극은 시골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오락보다는 열심히 일한 뒤 조촐한 여유를 즐긴다. 연극은 제네바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할 것이다. 연극이 도시 대중들의 범죄를 줄이기는 하지만 원래 순박한 제네바같이 작은 도시에서는 별로 소용이 없다. 루소는 제네바의 기후와 지리를 언급하면서 그런 곳에서는 극장을 짓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약 극장이 지어진다면 좋든 나쁘든 극장은 제네바의 분위기를 바꿀 것이기 때문에 제일 좋은 방법은 예방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타락한 도덕을 도입하지 말고 그 법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와 여배우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방식과 약한 도덕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적 방종을 일삼으며 쾌락을 추구하며 무례하고 비도덕적인 어릿광대다.

로마와 그리스를 이상국가로 여기는 루소는 스파르타에서는 극장을 허용하지 않았고 로마도 배우라는 직업을 불명예스러운 직업으로 여겼다. 배우는 인공적이고 돈을 위해서 연기하며 불명예에 몸을 맡기고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다. 배우의 속이는 기술이 악의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유혹적이고 조직적인 연기의 성격은 극장 외부에서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하였다. 남자든 여자든 배우로서 일하는 것은 문제라고 하였다.

연극은 다섯 가지의 해악을 초래한다. 첫째는 일에 게을러진다. 두 번째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극장에 가려면 정장을 입어야 하고 린넨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며 면도도 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교환이 감소한다. 극장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이는 생산을 감소시키고 말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는 세금이 증가한다. 날씨에 관계없이 극장에 가도록 길을 닦아야 하고 공적 지출과 기부가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사치를 조장한다. 좋은 옷을 입고가는 사람을 보면 누구든지 그런 좋은 옷을 입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사치에 대하여

사치는 서민계층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과 예술을 통해 사치가 등장하였고 이로써 불공정함이 나타났다. 사치에 대한 취향이 점점 강해지면서 단순하고 용맹스럽던 생활은 사라지고 경쟁이 격화되었다. 루소는 『에밀』에서도 예술가들의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경멸한다.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사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치는 자기의 안일과 타인으로부터 받은 존경에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방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이 사회가 시작한 악을 완성한다. 그리고 본디 만들어내지 말았어야 할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준다는 구실 아래 사치는 모든 자를 가난하게 하고 국가의 인구를 감소시킨다. 사치는 악을 고친다고는 하나 그 악보다 훨씬 나쁜 요법이다. 모든 악 속의 최악의 것이다 (『인간불평등 기원론』, 76). 연극은 사치를 조장한다. 배우가 화려한 옷을 입으면 관객들은 이를 모방하게 된다(편지, 57). 물자가 부족했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물건의 낭비나 호화로운 생활은 매우 부적절한 사회적 해악이었을 것이다. 공연은 낭비를 조장하는 오락으로 비판을 받았고, 배우는 이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생각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사치금지법(Sumptuary Law)은 계급간의 신분을 구분하는 메카니즘으로도 악용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물자의 절약을 위해서 시행되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시행되었다.

제네바에 극장을 짓는 일

루소는 제네바를 매우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한다. 사람들은 매우 생산적이고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빈부격차도 심한 편이다. 인구가 적은 제네바에 극장을 세우면 운영하기가 어려워서 경제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한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파리나 제네바의 사적 공간을 비판하면서 여성은 그저 잡담이나 즐기고 남성은 도덕적으로 타락할 것이다. 남자들도 악덕이 있긴 하지만 여성보다는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지 않다. 공적 공간에서의 여성의 존재는 젊은 남성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여성화하고 애국심을 없애버린다. 반면 고대 로마나 스파르타의 도덕성은 매우 높았다.

극장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세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극장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큰 경제적 불평등을 겪고 있으면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 제네바로 오는 배우들은 제네바의 도덕성에 무관심할 것이고 쉽게 시민들을 타락시킬 것이다. 다른 오락도 많이 있지만 연극만큼 사람들의 좋은 취향을 파괴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극장에 대한 가장 좋은 대안은 자연속에서 벌이는 야외축제로서 이를 통해 단합하고 애국하는 정신을 기를 수 있다.

- 공연의 경제성에 대한 비판

루소는 그 동안의 반연극주의자와는 달리 연극의 비경제성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당시 파리의 인구는 60만 명이었고 일일평균 관객은 1,200명 정도였다. 한편 제네바의 인구는 24,000명이었고 파리의 관객을 제네바에 적용한다면 하루에 48명의 관객이 극장에 갈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초대권 관객은 제외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유료관객은 48명도 안 될 것이다. 48명으로 극장운영이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제네바 시민들은 전원생활을 좋아해서 일이 끝나면 한적한 교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연극관객 확보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부자가 후원하는 방법, 또 하나는 국가가 재정지원을 하는 방법이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국가예산은 이보다 더 급한 일에 쓰여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세 개의 극장( 파리 오페라 극장, 코메디 이탈리엔느, 코메디 프랑세즈 등)에 대해 왕실에서 재정지원을 하였고 때로는 한 개 극장을 추가하여 네 개의 극장에 지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제네바보다 5-6배 이상 큰 리용, 보르도, 그 밖의 항구도시들에서도 극장에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 대형극단들은 공연을 자주 할 수 있지만 소형극단은 더블캐스팅(understudy)이 불가능하여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다. 이처럼 작은 도시 제네바에 극장을 설립하는 것은 커다란 낭비일 것이고 시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편지, 93-95).

축제에 대한 루소의 생각

연극은 오락이다. 유랑극단의 공연과 마을의 상주극단의 공연, 광대들의 외설적인 이야기와 정상적인 연극공연, 장터에 설치된 무대와 점잖은 시민들이 앉아 있는 극장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 쪽의 공연은 하루만에 잊혀지지만, 다른 한 편의 공연은 정부의 관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여운이 남는 공연이 된다. 모든 지역에는 시민들을 위한 오락이 있어야 한다.

루소는 타락한 오락을 배척한다. 루소는 폴란드 정책 당국자가 오락정책에 대한 자문을 구하자, 모든 도박.연극.코미디.오페라 , 특히 궁정에서의 모든 오락을 금지하라고 권유하였다. 궁정은 모든 유행의 근원이기 때문이었다(Anthitheatrical Prejudice, 290). 대신 민주적 성격의 제도화된 축제, 야외 이벤트 들을 개최하여 민중들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축제들은 무대와 관객의 구분을 없애고 민중들의 총체적 참여를 유도한다. 모든 배우는 관객이 되고 관객은 배우가 된다. 민중들은 다른 사람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된다. 마치 사회계약론에서 주권은 다른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처럼 오락 역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가 즐기는 오락이어야 한다.

루소는 연극을 오락이라고 보면서도 오락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오락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루소가 말하는 오락은 ‘ 어두컴컴한 방안의 음울한 분위기에서 몇몇 사람들을 가두어두고 있는 배타적 오락’ 이 아니다. 거기서는 관객들은 침묵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불편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편지, 125). 루소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람직한 축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연극과 같은 스펙터클은 우리들의 축제가 아니다. 진정한 축제는 넓게 펼쳐진 야외에 있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달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여성적이고 상업적인 쾌락, 억압과 이기적인 독을 없애고 자유롭고 관대한 스스로를 느껴보라. 태양이 당신의 즐거운 오락을 비추면 당신은 가장 가치있는 자신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 위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수백 개의 보트가 신호와 함께 출발하여 결승점에 꽃혀있는 깃발을 차지함으로서 상을 받는 광경보다 더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그러나 그런 스펙터클은 비용이 많이 든다. 광장에 꽃으로 장식한 말뚝을 하나 박고 그 주위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라. 오락의 대상은 무엇인가? 오락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당신이 즐겁기만 하면 아무 것도 필요없다.

루소가 축제를 연극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연극은 어두컴컴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인간의 성정을 그르치는 오락이지만 축제는 밝은 곳에서 청춘남녀들을 자유롭게 하는 오락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즐거움은 대낮의 밝은 빛속에서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악덕은 그림자의 친구이다’(편지,129). 젊은이들은 지금까지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스스로를 감추고 몰래 사적인 만남을 가져왔다. 남녀가 매일 극장에서 만나는 일, 극장에서 집단을 형성하는 일, 연극에서 표현되는 삶의 방식들과 이를 모방하려는 사람들, 마치 상점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점원처럼 잘 차려입고 박스석에 앉아있는 여성들, 스스로를 자랑하면서 여성들을 찾아나서는 남성들, 이 모든 것들은 사회적 질서를 어지럽히고 정부에 대한 존경의 감정을 약화시킬 것이다(편지, 111). 바라건대 사적인 무질서가 숭고한 잔치로 변해서 모든 청춘남녀가 떳떳하게 즐기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부모님들은 같이 와서 그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할 것이다. 결혼한 여성도 같이 와서 그들과 춤추고 놀았으면 좋겠다. 편하고 명예로운 공간이 노인들에게도 개방되어 손자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좋겠다. 이런 축제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기쁨의 눈물이 흐르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연극에는 자신의 자유를 대리인에게 맡기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고 그의 감정과 행동에 동화되지만 대중적 축제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되고 우리를 지킬 수 있다. 모든 인위적 구별은 사라지고 같이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 이런 축제에서는 마치 와인을 같이 만드는 사람들처럼 사회적 차별이나 연령, 성별의 구분없이 모든 사람이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와인을 마신다. 같이 춤추고 노래하며 악기의 연주와 합창들이 동반된다. 연극이 불투명한 세상이라면 축제는 투명한 세상이다( AP, 291) 어두컴컴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야외에서 즐기는 축제는 서로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어준다.

루소는 매우 소박한 축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돈을 들여 겉으로만 화려하게 꾸미는 축제보다는 마을 사람들이 같이 모여 만들고 즐기는, 작지만 아름다운 축제들이 주민들을 단합시키고 애국심을 고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축제에는 인지적 과정이 담겨져 있지 않다

퍼포먼스와 축제에는 인지적 과정이 담겨있지 않다. 성공적인 상호작용 의례와 그렇지 못한 의례의 대비는 새해맞이 축제같은 데서 볼 수 있다. 자정을 알리는 타종이 울리는 순간 순수한 열광이 절정을 이루는 축제 , 아무런 각본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형태가 있는가 하면 밋밋하고 피상적인 연희도 있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낼까? 성공적인 새해맞이 축제는 자정이 되기 한 두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무리지어 온갖 떠들썩한 소음 , 예를 들면 휘파람 소리, 딸랑이 소리, 폭죽터뜨리는 소리를 내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축하를 나누는 자리다. 그런 소란이 사람들을 하나로 합류시킨다. 소리를 지르고 서로를 향해 리본을 던지고 낯선 이들을 끌어안고 친교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걷어버린다. 이런 상호작용에는 인지적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 랜들 콜린스, 『사회적 삶의 에너지』, 92). 상호작용은 곧 축제를 말한다. 축제에는 거창한 이념이나 지식이 아니라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놀이와 즐거움이 담겨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들을 생각해 보자.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태국의 쏭크란 축제, 우리나라의 머드축제나 빙어 축제 등등... 거기에는 인지적 과정이나 예술이 담겨있지 않다. 오로지 서로 즐겁게 모여서 노는 것이다. 루소가 진정한 축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런 축제들이었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소가 『편지』에서 주장하는 반연극주의는 제네바라는 작은 도시, 루소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 사랑했던 고향에 대한 충고였다. 루소는 불과 24,000명이 살던 작은 도시에 극장을 짓는 일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오락은 필요한 일이지만 오락의 향수와 극장을 짓는 일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한다. 연극의 비도덕성, 제네바라는 작은 도시에서의 연극의 경제성, 한적한 마을의 삶을 파괴하는 연극의 부정성 등을 파리와 대비하면서 검토하는 것이지 연극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루소는 행동과 생각이 불일치하는 모순적인 지식인이기도 했다. 『에밀』을 통해 사랑과 자기애, 자연과 본성에 충실한 삶,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올바른 교육을 말하면서도 정작 테레즈와의 사이에 태어난 네 명의 자식들을 전부 고아원에 맡겼고, 어느 귀부인의 도움을 받고도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비정하게 돌아서는 등, 이중적 행동을 하였다. 학문과 예술에 있어서도 이중성이 드러난다. 그는 일생을 통해 학문을 연구하고 소설(신엘로이즈)을 쓰고 희곡(나르시스)을 쓰고, 오페라(마을의 점장이)를 작곡하였으면서도 학문과 예술을 비판하였다. 그는 독학으로 학문에 일가를 이룬 천재적인 사상가였다. 『사회계약론』에 표현된 그의 정치사상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씨앗이 될 정도로 선지자적인 예지력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그의 사후,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루소는 많은 학자들의 모델이 되었으며 계몽주의의 씨앗을 뿌린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톨스토이의 예술관도 루소와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톨스토이는 루소의 여러 책을 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톨스토이는 그의 『예술론』에서 당시의 예술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예술이 대중과 분리되어 소수의 부자들과 엘리트들을 위한 활동으로 변질되었고, 부자들의 사치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고 비판한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빈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였지만 그의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이중적이었다고 한다. 지배욕이 강하고 크림반도에 참전해서는 전우애가 부족한 군인이었고 도박에 빠져서 거액의 돈을 잃기도 했고 섹스에 탐닉했다고 한다. 형제애도 없었고 아내에 대한 태도 역시 비인간적이었다고 한다. 루소와 톨스토이가 남긴 저작들은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보면서 작가의 인격과 작품의 내용이 동일성을 가져야 하는지 구별돼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아닐까? 많은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나중에는 회개하면서 죽어가는. 그래서 칼 융은 인간은 천 개의 가면을 지녔다고 말했고, 어빙 고프만은 인간의 연극적 자아를 두둔하기도 하였다.

루소의 반연극주의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연극에 대한 편견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시각을 전부 잘못된 것으로 보는 생각 역시 편견일 수 있다. 과거의 공연은 오늘날과 같이 말쑥한 극장에서 멋진 옷을 입고 엄숙하게 앉아서 보는 예술이 아니었다. 과거의 극장은 너무나 무질서하고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공간이었고 공연의 내용들도 미풍양속을 해치는 비윤리적인 연극, 괴담이나 기담, 잔혹한 사건 등도 많았다. 종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연극이 오늘날과 달랐던 것은 공연의 힘이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점이다. 과거의 공연은 오늘날의 텔레비전이나 영화와 같은 오락이었다. 물론 오늘날 텔레비전의 힘만큼 강력하지는 않았겠지만 당시에 가장 인기있는 오락이었다.

루소는 연극개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연극을 억제할 것인가를 말한다. 새로운 사회가 도덕적으로 새롭게 진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도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학문예술론에서는 줄기차게 스파르타의 강건한 교육을 반복한다. 모방은 쉽게 허물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철학적 주장이나 제도적 강제에 의해 없앨 수는 없다.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은 당시 극장의 경제성 문제다. 60만 명이 사는 파리의 공연인구가 불과 1,200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우리의 사정과 매우 흡사하다. 전국 모든 지자체에 설치되어 있는 극장들, 그 극장운영의 효율성과 경제성 등에 대해 루소의 비판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반예술론자로서의 루소

루소가 살던 시대는 예술에 대한 숭배가 강해지던 시기였다. 예술이라는 개념과 여러 예술제도들이 생기면서 예술가들이 우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루소는 예술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반예술적(Anti Art)태도는 오늘날의 반예술과는 내용이 좀 다르고, 실제로 본인은 예술가이자 학자였으면서도 예술을 비판한다는 측면에서 모순적인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루소의 시대에도 예술을 신성시하거나 예술가를 존경하는 풍조는 매우 강했던 것 같다. 루소는 그러한 예술과 예술가, 마치 종교가 된 문화와 예술, 신이 된 예술가를 비판하였다. 이런 면에서 반예술론의 시조는 루소라고 말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플라톤이 훨씬 먼저 반예술론적 주장을 하였지만 근대적 의미의 반예술론은 루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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