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의 웃음 '만담 漫談'
조선인의 웃음 '만담 漫談'
  • 김영일 기자
  • 승인 2019.11.01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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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 漫談' 재미있고 우스운 말로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이야기.
협력: 만담보존회, 박춘재 기념사업회,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반재식(만담 백년사 저자)

[더프리뷰=서울] 김영일 기자 = ‘만담’은 말장난을 하거나 재미있고 우스운 말로 사회를 풍자하며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한다. 코미디나 개그가 알려지지 전 이 땅에는 만담이 있었고 그 뿌리는 서울 경기 일대의 연희 예술이며 소리와 춤 사이에서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유쾌한 말 잔치인 ‘재담’에서 출발하였다.

조선시대 고종_高宗,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재위 1863∼1907)를 웃기며 농담하던 가무별감(歌舞別監) 재담가 박춘재, 일제 치하 찰리 채플린에 비견되는 만담의 귀재 신불출,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대 만담 스타 장소팔 등은 한국 코미디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예인이며 선구자였다.

​일제강점기 근대적 삶의 수용과 역사적 질곡에서 한국인의 애환을 웃음으로 대변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기쁘거나 슬프거나 웃음은 늘 우리 곁에 함께 하였다.

‘조선인의 웃음_만담_漫談’ 전시는 조선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웃음이 어떻게 형성되며 변모하였는지 고찰하며 대화로 웃음을 유발하는 언어적 유희였던 한국 만담의 발자취를 시각화 하려 한다.

또한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복원시키며 모든 사람을 환하게 웃게 만드는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현태준’의 작품을 통하여 만담의 언어적 유희에 예술의 시각적 웃음을 배가하려 한다.

한편, 전시는 롯데갤러리 영등포점에서 11월 1일-25일까지, 롯데갤러리 청량리점에서 11월-29일-1월 5일까지 펼쳐진다.

만담의 발자취

한국 코미디의 뿌리, 재담과 만담의 시대

가무별감 박춘재(朴春裁 1883-1950)의 재담은 고종 황제를 웃게 했고 한국 만담은 민중들의 웃음 문화인 재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담이란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신불출(申不出)이 처음 쓰기 시작하였다. 오사카의 만재(漫才, 만자이)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담이란 용어를 차용하였다고 우리나라의 웃음의 역사마저 변질(왜색화)되는 것은 아니다. 신불출 자신도 ‘웅변과 만담’이라는 글에서 자기는 결단코 일본의 만담을 모방해서 조선에 수입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다.

​신불출은 유성기 음반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근대 코미디를 개척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만담은 음반을 통하여 많은 대중들을 웃게 하였다.

여류 만담가 김윤심

신불출로 대표되는 초기 만담 시대와 이후 장소팔로 대표되는 만담 전성시대를 잇는 만담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여류 만담가 김윤심이다. 1933년 극단 ‘신무대’에 입단한 그녀는 20대 초반 만담가로 변신해 크게 성공하였다.

​특히 판소리나 잡가, 민요에 능하여 만담 중간에 소리를 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불출의 유일한 여성 제자로 해방 직전까지 전국 순회 공연을 함께 하였다.

초기 만담 시대

초기 만담 시대(1950-1960)에는 민요를 곁들인 민요 만담이 유행 하였으며 라디오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라디오 만담의 시대가 열렸다. 대표 만담가로는 장소팔, 고춘자, 김영운 등이 있다. 장소팔과 고춘자 만담은 해방 후 어려웠던 시절 온 국민에게 웃음과 지혜가 담긴 만담으로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방송 시대, 방송 코미디의 태동

1960년대 들어 텔레비전의 보급이 시작되며, 방송사들은 희극인 들을 모아 코미디 프로를 자체적으로 제작 방송 하였다. 1964년 TBC TV에서 방영된 한국 최초의 코미디 전용 독립 프로그램인 웃으면 천국, 1969년 MBC TV 에서 방영된 본격 방송 코미디의 시작을 알린 웃으면 복이와요가 대표적이다.

개그 시대의 출발

TBC ‘살짜기 웃어예’는 MBC ’웃으면 복이 와요’와 TBC ‘고전 유모어 극장’등 인기 프로그램 사이에서 젊고 새로운 형식의 콩트를 선보이며 개그맨 전성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소재나 내용의 반복과 저급함, 코미디언들의 겹치기 출연 등 방송 코미디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기 또한 이 시기이다. TV의 오락적 기능에 대한 비판이 가해질 때마다 코미디 프로그램은 도마 위에 올랐고 1977년에는 유신정권에 의해 코미디 프로 전면 폐지 소동까지 일어났다.

인기 절정의 개그맨 시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KBS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 MBC ‘청춘 만만세’와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폭발적으로 많이 생겨나기 시작 했다. 당시 배삼룡, 이주일, 백남봉, 임희춘, 심철호 등 선배 코미디언들과 함께 전유성, 고영수, 임하룡, 엄용수, 김보화, 이성미, 최양락, 심형래, 김형곤 등 많은 새롭고 젊은 개그맨들이 등장 하였다.

개그맨 전유성, 김미화는 대학로에서 유행하던 무대 코미디 형식을 빌어 TV 공개 코미디 ‘개그 콘서트’를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은 방송사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이후 연예인들이 연예, 도전, 여행 등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리얼리티 코미디가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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