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in 무비] 전율의 마지막 4분! 영화 ‘포 미니츠(Four Minutes)’
[클래식 in 무비] 전율의 마지막 4분! 영화 ‘포 미니츠(Four Minutes)’
  • 강창호 기자
  • 승인 2019.11.04 0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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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처 Arts & Culture 11월호 (Vol. 166)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Schumann, Piano Concerto a minor Op.54
제니의 마지막 4분, 영화 포 미니츠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제니의 마지막 4분, 영화 포 미니츠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기자 = 두 손이 수갑으로 뒤로 묶인 채 피아노를 연주하는 포스터가 있다. 2006년도에 개봉한 독일 영화 <포 미니츠(Four Minutes, Vier Minuten)>. 포스터의 이미지도 강렬하지만, 제목처럼 마지막 4분은 지금까지도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 4분을 위해 전체가 구성된 것인지도...

영화는 상처 많은 제니와 크뤼거, 서로의 공통점이라곤 피아노가 유일한 두 여자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주인공 제니는 여성 재소자로 경계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를 보이는 정신질환자이다. 불안정한 대인관계와 심한 감정기복 등으로 매우 폭력적이며 극단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선 대단한 천재성 발휘로 광적인 연주를 보이곤 한다.

또 한 사람이 있다. 60여 년 간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크뤼거,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랑했던 동성 연인이 처참하게 사형당하는 모습을 보며 평생 트라우마 속에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영화는 이 두 여인이 음악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며 내면의 상처들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영화 포 미니츠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영화 포 미니츠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제니 & 크뤼거, 그리고 음악

영화에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많은 클래식 음악이 배경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바그너가 악극에 많이 도입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v)처럼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캐릭터를 특징적인 음악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크뤼거에게는 슈베르트의 곡으로, 아니러니 하게도 동성애자 크뤼거에게 슈베르트는 어쩌면 서로 ‘동성애자’라는 오해 아닌 오해처럼 ‘동병상련’이라는 묘한 트릭을 내리깔고 있다.

그녀가 등장하면 슈베르트의 <즉흥곡(Impromptus No.2, D.935)>이 배경에 흐른다. 물 흐르듯 유연하고 감미로운 선율은 꽁꽁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만큼 그 속마음은 결코 차디찬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즉흥곡의 선율은 이를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제니의 주제곡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in a minor, Op.54)>이다. 이 음악은 클라라의 요청에 의해 슈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름다움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네 차례에 걸친 자살 기도와 정신병원 그리고 그의 죽음은 상처 받은 자신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영화 속의 제니처럼 슈만과 제니의 삶은 자연스럽게 서로 오버랩 된다.

마지막 4분! <Das Ist Meins>

영화의 마지막 4분을 장식한 제니의 연주는 이러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바탕으로 재탄생한 앙떼 포크(Annette Focks, 1964~)의 <Das Ist Meins>라는 곡이다. 과거 독일의 어두웠던 시대적인 자화상을 스케치하듯, 잿빛이 감도는 이 음악은 음향과 음색을 다루는 존 케이지의 프리페어드 피아노(Prepared Piano) 기법과 강렬한 리듬의 원시적인 어법이 얹어진 상당히 전위적인 형태를 보인다. 기존의 클래식 전통을 파괴하듯 새로운 창조를 향한 몸부림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다다이즘(Dadaism)처럼 서구 정통주의에 대한 반발이자 실존주의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다.

슈만의 낭만적인 선율은 마치 그가 파괴, 변형하고 싶었던 괴로운 자아에 대한 위로이자 ‘Das Ist Meins' 즉 “이것은 내 것이야”라고 항변하듯 예술성의 자유를 향한 제니의 절규처럼 보인다. 연주가 끝나고 잠시의 정적을 깬 청중들의 기립박수는 제니로 하여금 생애 처음 얻은 그 누군가로부터의 '인정' 속에서 무언가 답을 찾은듯한 표정과 크뤼거의 미소는 마치 행간의 의미처럼 사연 많았던 그들만의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를 순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다시 이어지는 감옥행 그러나 영화는 잿빛을 걷어낸 제니의 해피엔딩을 예고했다.

제니 역을 맡은 한나 헤르츠스프룽(Hannah Herzsprung)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제니 역을 맡은 한나 헤르츠스프룽(Hannah Herzsprung)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영화 <포 미니츠>에 1200대 1의 경쟁을 뚫고 천재 피아니스트 제니 역에 캐스팅된 한나 헤르츠스프룽(Hannah Herzsprung, 1981~), 그녀는 이 영화를 위해 1년 동안 피아노 개인 레슨과 혹독한 훈련을 통해 대역 없이 제니의 어려운 이중인격적인 연기와 연주 장면들을 소화해 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삶과 영혼을 음악 교육으로 치유했던 게르트루드 크뤼거(Gertrud Krüger, 1917-2004)는 실존 인물로 영화는 엔딩 크레딧을 통해 그녀를 기념하고 있다.

감독 이전에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 있던 크리스 크라우스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제작기간만 8년이 걸렸으며 크랭크 업이 되기 전, 2004년 바덴-뷔르템 베르크에서 시나리오 대상을 받았다. 이후 2006년 상하이 국제영화제에서 뤽 베송과 첸 카이거 감독으로부터 “결정 내리는 데, 단 4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라는 유머와 함께 극찬을 받으며 작품상과 최우수 영화상을 받았다. 또한 2007년 독일 아카데미 작품상 등 전 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영화 포 미니츠_포스터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영화 포 미니츠_포스터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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