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엽 개인전- 'Aroma Therapy' 리서울갤러리
권경엽 개인전- 'Aroma Therapy' 리서울갤러리
  • 김영일 기자
  • 승인 2019.11.15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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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엽 개인전- 'Aroma Therapy'

[더프리뷰 =서울] 김영일 기자 = 진공에서의 향기 = 권경엽 작가의 캔버스는 진공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공기의 흐름이 없는 이 공간에는 항상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들은 나이나 성별 등 어떠한 정체성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규정하기 어렵고 경계 짓기도 모호하다.

​단, 창백한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하는 순간이 있다. 특히 붕대를 감고 있는 인물들이 눈빛으로 보내는 감정의 호소나 발갛게 충혈된 눈동자 밑에 맺힌 ‘눈물’이다. 온전한 인간이 아닌듯한 인상이 드는 이 인물은 인간이 아니면서 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걸까?

권경엽 작가의 진공 상태에 놓인 캔버스는 언젠가부터 꽃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장미, 백합, 오렌지블라썸, 라벤다 등 모두 아로마(aroma)의 원재료가 되는 식물이며 꽃이 주를 이룬다.

​최근 권경엽 작가의 작품에서 주제가 되고 있는 ‘아로마테라피’는 말 그대로 식물의 향과 약효를 이용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시켜 인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자연요법을 말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껏 치장하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꽃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꽃과 인물은 어떠한 가역·비가역 현상 없이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답게 존재하는 완벽한 상태로 비춰진다.

​이런 점에서 이전 인물의 눈물로 드러난 불안과 슬픔이 진정되고 치유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실제 진공 상태에서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향기가 나지 않고 냄새 또한 맡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 때문인지, ‘아로마테라피’를 표방하는 꽃과 인물의 조화는 온전히 ‘인공적’이다.

​이전의 인물이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만 같았던 눈물 한 방울은 주인공의 얼굴에서는 보석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권경엽 작가가 마치 모델의 눈에 보석을 붙인 후 그림을 그린 상황이 연상될 정도로 작가의 강렬한 연출력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모습은 더욱 가상적으로 드러난다. 이전의 인물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막연하게나마 작가의 기억에서 표출된 불확실한 슬픔과 공허함을 상징한다고 여겨졌다.

​그에 반해, 지금은 시각적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에 집중된 인물과 꽃의 이미지는 온전히 시각을 딛고 후각과 같은 공감각 단계로 진입한다. 그런 점에서 향기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아로마테라피는 성공적이다.

권경엽 작가는 “‘기억’에 대한 작가의 탐구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의 ‘순수지속’, ‘초시간적 순간’을 중요한 모티프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꽃의 여신 플로라와 봄의 여신 프리마베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상”이다.

​‘아로마테라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설적으로 기억이 가능한 인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기억이라는 지적 행위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개체라고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식물처럼 말이다.

​그래서 꽃과 인물들의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으며 오래 들여다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을 접하는 이들은 향기를 맡는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작가의 작품은 진공 상태의 기억할 것이 없는 영역에서 전해지는 후각적인 요소는 인간이 한 번도 가 닿지 않았던 곳에서의 막연한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킨다.

낭만주의자들이 시도한 ‘나와 우주와의 관계’를 직관적인 언어나 이미지로 떠올리듯이, 권경엽 작가가 그리는 일련의 행위는 그 직관의 과정을 비집고 들어가 기억의 틈을 만드는 현대적인 시도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후 진공의 향기는 직관적으로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 박정원(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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