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in 무비] 슬픈 왈츠,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클래식 in 무비] 슬픈 왈츠,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 강창호 기자
  • 승인 2019.12.02 0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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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처 Arts & Culture 12월호 (Vol. 167)
J.슈트라우스 2세, 황제 원무곡(The Emperor's Waltz Op.437)
영화 마지막 황제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영화 마지막 황제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더프리뷰=서울] 강창호 기자 = 외교를 가장한 일제의 수탈 속에 구한말 대조선의 몰락을 보는 것처럼 처연한 감정이 밀려오는 영화 ‘마지막 황제’는 푸이의 자서전 <황제에서 시민으로>를 바탕으로 새롭게 각색한 영화이다. 오랜 기억 속의 빛바랜 앨범을 들춰보듯 자금성의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망국의 슬픔이 그 자체로 다가온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최초로 허락을 받아 자금성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과도기 시대의 격변 속에서 296년간 존속해온 청나라(1616-1912)의 몰락과 이후 중국의 모습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냈다.

영화 마지막 황제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영화 마지막 황제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1908년 태황태후인 서태후에게 광서제의 후계자로 지명받아 어린 네 살에 황위에 오른 푸이는 즉위 3년 만에 중국 전역을 뒤흔든 신해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황제 칭호와 사유 재산만 인정받은 채 퇴위당한다. 자금성 안에서의 황제로 군림한 푸이는 황후와 후궁을 맞이하게 되고, 영국인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신사상에 매료된 그는 서양문물에 대한 동경과 영국으로의 유학이라는 꿈을 갖는다. 이후 황실 재산의 좀을 먹는 환관들을 축출하고 새로운 인물을 기용하는 등 나름대로 황궁 내의 개혁을 시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한다.

영화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어린 푸이의 황제 등극에서부터 유소년기를 거쳐 청소년기와 청년으로 성장한 푸이, 그리고 시대적 격변 속에 명멸하는 청나라와 황제로서의 위엄을 드러내는 푸이, 그리고 마침내 그의 앞에 등장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전범 수용소의 죄수로 전락한 푸이, 마지막으로 오래전 자신의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성 입장권을 구매해야만 하는 평범한 노인 푸이의 모습까지 스크린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의 오랜 추억 속에 남겨진 자금성을 시대의 빠른 변화와 함께 저무는 황혼의 빛깔로 쓸쓸히 그려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감독했으며 배우 존 론(John Lone)이 주연으로 열연한 이 영화는 이탈리아, 중국, 영국이 함께한 합작 영화이며 1987년에 개봉하여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의 상(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색상, 편집상, 녹음상, 의상디자인상, 미술상, 작곡상)을 휩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영화 마지막 황제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화려하지만 슬픈... ‘황제를 위한 왈츠’

러닝타임 2시간 42분가량 청 왕조의 몰락을 푸이의 시선에서 담담히 그려낸 이 영화는 음악 프로듀서로 참가한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유명한 곡 ‘Rain’을 비롯하여 18곡의 OST 음악들이 등장한다. 그중 클래식 음악은 단 한 곡,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제 원무곡(The Emperor's Waltz Op.437)’이 유일하다.

이 곡은 500여 곡의 왈츠를 작곡하여 ‘왈츠의 황제’라 불리는 J. 슈트라우스 2세가 1884년에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재위 40년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다. 제목에서처럼 ‘황제를 위한 왈츠’이다. 영화에서 이 음악은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녹음 음반(POLYDOR INTERNATIONAL GmbH)에서의 음원을 배경음악으로 제국주의의 침략을 화려한 춤곡으로 은유했다.

영화 마지막 황제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영화 마지막 황제_스틸 컷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파티장은 이미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열강들의 각축전장이다. 화려하지만 슬픔이 베인 이 음악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위한 왈츠인 것처럼 음악은 말 그대로 ‘황제를 위한 왈츠’ 일뿐이다. J. 슈트라우스의 왈츠는 굉장히 화려한 음악이지만 영화에서 만큼은 그 화려함과 즐거움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망국을 향해 가는 아슬아슬한 역사의 길에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푸이의 외로운 시선과 이미 아편 중독자로 전락한 황후의 모습을 통해 이미 청나라는 그 불꽃이 점점 스러져감을 스크린은 암시하고 있다.

교묘한 서구 열강들의 아부와 거짓말에 휩싸인 채 과거 두 번의 아편전쟁과 내전 속에서 청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질풍적인 패망의 길로 떠밀려 떠내려가듯 그렇게 선통제(宣統帝) 푸이(溥儀)의 청나라는 공중분해되고 마침내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이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시대를 직면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 대사로 진행된 이 영화는 개봉 후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국에서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색채감각이 풍부한 베르톨루치 감독의 압도적인 영상미와 장엄하고 화려한 즉위식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더불어 미국 아카데미에서 9개의 상을 받은 ‘마지막 황제’는 역사의 빛바랜 기억을 담은 명작으로 불후의 명화 속에 그 이름을 남겼다.

영화 마지막 황제_포스터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영화 마지막 황제_포스터 (사진제공=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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