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정부는 지금 '문화와의 전쟁'중
헝가리 정부는 지금 '문화와의 전쟁'중
  • 이종찬 기자
  • 승인 2019.12.1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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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성향 오르반 행정부, 문화예술지원 대폭축소 추진
시민과 예술인들 극렬반발, 거리로 나서
헝가리 예술단체들, 세계 각국 동료들에게 지지 호소
새 극장 법안에 반대하는 헝가리 시민과 예술가들. 9일 시위에 약 1만 여명이 모였다.(사진=트라포 예술극장(Trafó House) 페이스북)
새 극장 법안에 반대하는 헝가리 시민과 예술가들. 9일 시위에 약 1만 여명이 모였다.(사진=트라포 예술극장(Trafó House) 페이스북)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지금 헝가리에서는 '문화전쟁(Cultural War)'이 벌어지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가 헝가리 공연예술계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새로운 법안을 발의, 지난 수요일(11일) 의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이 법안은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게 된다.

새로운 법안 내용에 의하면 헝가리 인적자원부(Ministry of Human Resources)는 다음 세 가지 주요 개정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1. 독립 공연예술계 운용자금 삭감 : 헝가리 예술계는 이같은 조처가 극장 및 무용단, 예술가집단 뿐 아니라 모든 독립 공연단체와 제작단체에 일종의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현재 예술기금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문화기금(National Cultural Fund)의 재편성 : 이는 사실상 기금의 폐쇄를 의미한다고 전해졌다. 국립문화기금은 지금까지 예술프로젝트를 지원해 왔으며, 이의 중단은 유럽연합(EU)의 문화·창조 프로그램인 CE Project 자금조성 지원, 신작지원, 배포 등의 지원도 끊긴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당초 복권판매 수익금으로 충당되던 국립문화기금은 2010년 1월 의회가 문화부문 지원부분을 없애고 복권, 도박세의 90%를 문화기금으로 대체했었다.

3. 시립극장 감독 임명권을 현재 지방자치단체 장에서 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이전 : 교육 및 과학분야에 이어 헝가리 정부는 독립문화를 공격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예술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중앙화의 여파는 이제 공연장 및 다른 문화분야에까지 미칠 것이며 정부는 어떤 종류의 보조금이든 절대적인 정치적 충성을 전제조건으로 만들 계획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헝가리 트라포 예술극장(Trafó House)(사진=트라포 예술극장 페이스북)
헝가리 트라포 예술극장(Trafó House)(사진=트라포 예술극장 페이스북)

헝가리의 비영리 예술단체인 신아트 센터(SÍN ARTS CENTRE)와 L1협회 등은 본지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전하고 아울러 법안 철회요청 메일(메일 본문은 맨 아래)을 개인 및 예술단체 이름으로 헝가리 정부와 문화부에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L1의 마르타 라잔스키 예술감독이 이달초 텔아비브에서 열린 이스라엘 무용 플랫폼 행사 기간에 이같은 헝가리 문화계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호소하는 등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헝가리 정부의 이같은 문화계 압박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극우 성향의 포퓰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오르반 총리는 지난해 한 연설에서 자신의 총리직 재선출과 당시 집권여당인 피데스당의 재집권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며 “한 시대란 하나의 정신적 질서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한 문화의 시대에는 정치적 질서가 새겨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2014년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예로 들며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 국제적으로 분노를 사기도 했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 총리(사진=위키 공용)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총리(사진=위키 공용)

오르반 행정부는 뮤지컬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의 공연을 금지하기도 하고 일부 대학의 젠더 연구를 ‘정부 노선에 반하는’ 행위라며 금지하기도 했다.

행정부 내부 인사들도 현 정부에 비판적일 경우는 제재를 당하기도 한다. 헝가리 국립 오페라 하우스 관장인 실베스테르 오코바츠(Szilveszter Ókovács), 페퇴피 문학박물관(Petőfi Museum of Literature) 사무총장인 게르게이 프뤼헬(Gergely Prőhle)은 모두 오르반 총리측의 인물이나 오르반 총리의 노선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친정부 성향 보수지인 헝가리안 타임즈(Magyar Idők)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비영리 문화예술 신문인 캘버트 저널(calvertjournal.com)은 지난해 헝가리의 ‘문화와의 전쟁’을 다룬 한 기사에서 헝가리 문화정책 전문가인 페테르 인케이(Péter Inkei)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문화 이슈를 가지고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문화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예컨대 젠더 연구를 금지한다든지 하는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조치는 커피숍에 앉아 안경 걸치고 떠들어대는 지식인들에게 막말을 쏟아낼 배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게 정치적 자본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헝가리 예술가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달력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르반 정부의 문화와의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새 극장법안과 관련, 토론을 하고 있는 헝가리 예술인들. 좌로부터 마틴 보로스 감독, 헝가리 독립공연예술 연합 대표, 안나 안나 렌기엘, 극작가, 헝가리 독립공연예술 연합 대표, 로버트 알푈디 감독/배우, 전 헝가리 국립극장 감독, 사회자 아니타 고차, 저널리스트.(사진=HowRound TV 동영상 캡처)
새 극장법안과 관련, 토론을 하고 있는 헝가리 예술인들. 좌로부터 마틴 보로시 감독, 헝가리 독립공연예술 연합 대표, 안나 안나 렝기엘, 극작가, 헝가리 독립공연예술 연합 대표, 로베르트 알푈디 감독/배우, 전 헝가리 국립극장 감독, 사회자 아니타 고차, 저널리스트.(사진=HowRound TV 동영상 캡처)

한편 법안 철회요청 메일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개인 및 예술단체는 다음 본문을 복사, 메일을 보내고 (수신 : info@emmi.gov.hu, peter.fekete@emmi.gov.hu,
peter.fulop@emmi.gov.hu) 참조 수신인에 titkarsag@fesz.org를 기입하면 된다.

 

Dear Mr. Secretary of Culture,

We have heard the worrying news about the complete reorganization of the cultural funding system in Hungary in the immediate future.

We are concerned that the drastic cuts for the operational funds of independent performing arts organizations — venues, umbrella organizations and companies — will lead to the quick collapse of the independent performing arts scene, jeopardize the safe operation of the venues and threaten the livelihood of artists.

We are concerned that the planned rather unclear and unjustified reorganization of the Hungarian Cultural Fund without any prior discussion with the stakeholders shall endanger many, if not most, of the international cooperations planned and contracted by Hungarian organizations.

We are concerned about giving the Minister of Human Resources the right to appoint directors to city theatres around the country. These theatres are, to a great extent, funded by local taxpayers. Therefore all decisions regarding them must remain with the elected representatives of local communities rather than be handed over to a centralized authority.

We advocate for a diversified performing arts field with transparent, decentralized, built-in decision-making mechanisms, which allow for the freedom of expression in both art forms and content. We ask you to urgently launch a thorough discussion about these issues with representatives of the professional field and allocate necessary time for the proper and professional preparation of any changes agreed upon with them.

Best regards,
XY
Title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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