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이스라엘 현대춤의 유산과 네트워킹 구축의 현장
[축제리뷰] 이스라엘 현대춤의 유산과 네트워킹 구축의 현장
  • 김혜라 무용평론가
  • 승인 2019.12.30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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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텔아비브 인터내셔널 익스포저(International Exposure Tel Aviv)
(왼쪽) IE 포스터, (오른쪽) Suzanne Dellal Centre 전경  ⓒ김혜라
(왼쪽) IE 포스터, (오른쪽) Suzanne Dellal Centre 전경 ⓒ김혜라

[더프리뷰=텔아비브] 김혜라 춤비평가 = 인터내셔널 익스포저(International Exposure, 이하 IE)는 매년 개최되는 이스라엘 현대춤의 대표적인 축제이자 국제교류를 겨냥한 플랫폼이다. 올 해 25주년을 맞이한 IE는 지중해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텔아비브(Tel Aviv)의 수잔 델랄 센터(Suzanne Dellal Centre)에서 4일간(12월 4-7일) 열렸다. IE는 40개국 200여명의 예술감독, 프로그래머, 공연 관련 기획자들이 모여 국가 간 교류와 이스라엘 안무가와 작품을 선보이는 마케팅에 최적화된 자리였다. 이스라엘 외교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델리게이트들에게 편의와 토론의 장을 제공하였고, 올 해 리노베이션한 센터에서 이스라엘 안무가 42명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왼쪽) Suzanne Dellal Centre Hall 입구, (오른쪽) Studio Zehava & Jack ⓒ김혜라
(왼쪽) Suzanne Dellal Centre Hall 입구, (오른쪽) Studio Zehava & Jack ⓒ김혜라

중극장 규모의 수잔 델랄 극장과 소극장(Yerushalmi Hall), 그리고 3개 스튜디오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쉴 틈 없이 꽉 짜인 스케줄은 이스라엘 현대 춤의 과거와 현재를 집약해서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리셉션에 모인 각국 관계자들과 축제 스태프들은 올 해 은퇴하는 센터의 예술감독 야이르 바르디(Yair Vardi)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한편, 이스라엘 춤이 센터를 통해 더욱 발전되기를 희망하면서 춤의 고유한 힘인 무목적적 가치를 나누고자 했던 센터 창설자 수잔 델랄(Suzanne Dellal) 가문의 의지가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왼쪽)2019 IE 개막식, (오른쪽) 40개국의 델리게이트들 ⓒ김혜라
(왼쪽)2019 IE 개막식, (오른쪽) 40개국의 델리게이트들 ⓒ김혜라

축제의 프로그램은 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바체바무용단 영 앙상블의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신진들에게 기회를 주는 커튼 업(Curtain Up), 대표적 중진들(Kibbutz Contemporary, Yasmeen Godder, Fresco, Vertigo Dance Company 등)의 작품들, 선구자적 이스라엘 안무가들의 레퍼토리를 유지하는 ‘Maslool’ 프로그램, 이스라엘 현대춤의 정체성과 축제의 방향성에 대한 토론, 그리고 마지막 저녁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의 신작이 대미를 장식하는 순서로 구성되었다.

'The Look' Sharon Eyal ⓒAscaf
'The Look' Sharon Eyal ⓒAscaf

바체바무용단의 영 앙상블은 오하드 나하린의 레퍼토리인 <George & Zalman>(2006), <BlackMilk>(1985)와 샤론 에얄(Sharon Eyal)의 신작을 선보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러브 챕터 Ⅱ>로 소개된 샤론 에얄은 세계적으로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안무가이다. 신작 <The Look>(12월 4일, Dellal Hall)은 간디의 “어느 누구도 나의 허락 없이는 나를 해칠 수 없다. Nobody can hurt me without my permission””라는 명언에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트레이드 마크인 극도로 긴장된 정서와 신체성을 토대로 구성된 작품이다. 사회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 작품으로 샤론 에얄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개성 있는 안무가임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게 되었다. 하지만 총 42명 안무가들의 작품은 수준 편차가 심하였고, 이미 다년간 우리 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로 이스라엘 중진 단체들의 스타일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작품을 선보이는데 머물렀다. 그러나 과거 IE를 통해 인발 핀토(Inbal Pinto), 바체바 무용단, 키부츠 무용단 등과 현재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호페쉬 셱터(Hofesh Shechter), 임마누엘 갓(Emanuel Gat)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통로가 되었다. 따라서 제 2의 도약을 향한 신진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커튼 업’ 프로그램이 매일 집중적으로 진행되었고 그중 몇 편은 인상적이었다.

'Like a sex machine' ⓒAscaf
'Like a sex machine' ⓒAscaf
​​'Pink Smoke' ⓒRan Yehezkel
​​'Pink Smoke' ⓒRan Yehezkel

오 마린(Or Marin) 안무가의 <Like a sex machine>(12,4. Studio Zehava & Jack)은 신선한 측면이 있는 작품으로 언뜻 보면 직설적인 남녀의 섹스를 연상시키는 무드를 연출하지만 실제로는 남녀간 정신적인 관계를 역설적으로 짚고 있다. 감정의 정점과 섹스의 운동성을 교차시키며 몸으로 도달할 수 있는 남녀간의 섹스 행위를 저속하지 않고 재미나게 풀어낸 기억할 만한 작품이다.

다나 마커스(Dana Marcus)의 <Pink Smoke>(12,5. Della Hall)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종속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남자의 하반신 아래에서 여자 댄서의 처절하게 길들여진 움직임 표현이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정교한 교감 방식이었다. 남자 무릎 아래에서부터 바닥 표면으로 연결되는 시퀀스 흐름의 위계가 집중력 있게 조명되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남녀의 상반되는 관계는 거친 행위와 제한된 움직임 공간설정으로 주제를 각인시켰다. 백 마디 말보다 춤으로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 다시 말해 불공정한 관계를 공감할 수 있게 보여준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Place to be' ⓒ Oren Fait
'Place to be' ⓒ Oren Fait

국적이 다른 세 명의 이스라엘, 독일, 한국 출신(원진영)의 트리오가 춤춘 <Place to be>(12,7. Dellal Hall)는 다른 이스라엘 단체와는 다른 색채를 띤 작품이었다. 특별한 의도 없이 세 명의 댄서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나누는 대화라는 인상이었다. 그 나이에 맞는 고민, 우정, 현재의 상황을 자신들이 습득한 몸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A Good Citizen' ⓒEyal Hirsch
'A Good Citizen' ⓒEyal Hirsch
'Leela' ⓒRam Katzir
'Leela' ⓒRam Katzir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무용단인 키부츠 댄스 컴퍼니, 버티고 댄스 컴퍼니, 야스민 고더 컴퍼니의 신작은 자신들의 고유한 개성을 심화시킨 작업들이었다. 라미 베어(Rami Be’er)의 <A Good Citizen>(12,7. Della Hall)에서는 키부츠 무용단만의 장점인 역동적이고 현란한 움직임으로 내적 긴장감을 드라마틱한 극성으로 표현해 내었다. 한국 댄서인 김수정과 석진환이 주요 댄서로 활약하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또한 버티고 댄스 컴퍼니의 안무가 노아 베르트하임(Noa Wertheim)의 <Leela>(12,7. Studio Ara)는 델리게이트들의 호감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으로 탄탄한 작품의 내러티브와 안정된 테크닉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조명의 색감과 무대 설치물도 시간차에 따라 적절하게 변형함으로써 시적 해석의 공간성을 염두한 안무가 느껴졌고 성공적이었다.

'Praccticing Empathy #1' ⓒTamar Lamm
'Practicing Empathy #1' ⓒTamar Lamm

야스민 고더의 작품은 다른 이스라엘 안무가들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안무적 개념을 보여주었다. 축제에서 선보인 대부분의 작품들이 피지컬한 움직임 문법을 기초로 주제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인 반면 야스민 고더는 <Practicing Empathy #1>(12,6. Studio Zehava & Jack)에서 신체가 놓인 현장성과 본연성에 집중한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여러 명의 댄서가 한 댄서의 갈비뼈를 누르며 터져 나오는 소리를 기점으로 각 댄서의 몸이 반응하는 숨소리와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몸의 무브먼트가 주요 진행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인위적인 춤이 아닌 비설정적인 상황에서 발견되는 깊은 내면의 소리의 절정을 향해 탐색하는 안무적 접근인 것이었다. 사실 야스민 고더의 안무법은 이미 한국과 유럽에서는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있기에 필자에게는 아주 새롭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안무가들의 작업방식과는 대조가 되어 상대적으로 독특하게 보였다.

'2019' ⓒAscaf, Batsheva Dance company Website
'2019' ⓒAscaf, Batsheva Dance company Website

오하드 나하린의 오픈 리허설 신작 <2019>(12,7. Studio Varda)도 역시 주목할 만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무대 공간 설정이었다. 먼저, 마당 공간처럼 오픈된 양쪽 벽면에 관객들은 마주보며 댄서들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또한 가르디 차호르(Gardi Tzahor)가 디자인한 캡슐을 연상시킨 공간은 현장성, 움직임의 역동성, 과거의 역사성과 동시대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패션쇼를 연상시키듯 현란한 의상을 입고 런어웨이를 하듯 등장하는 댄서들의 걸음걸이와 몸짓은 현실과 추상의 오묘한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과장된, 격앙된, 초월된 듯한 여러 감정과 이미지를 탄탄한 테크닉과 신선한 무대 연출로 흥미롭게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2019' ⓒAscaf, Batsheva Dance company Website
'2019' ⓒAscaf, Batsheva Dance company Website

한편 무대 벽면에 히브리 언어가 투사되고 전통음악이 연주되는 장면은 전통과 2019년 자신들이 바라보는 민족 정체성의 현재적 의미를 상기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안무가는 공연이 끝난 후 히브리어와 히브리 민속춤 그리고 노래를 연구하며 그 정서를 오늘의 의미로 환원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한 점이 이번 신작의 주요 테마였다고 설명했다. 로컬과 글로벌의 보편성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민속적 소재를 이국적인 신선함과 보편적 감성으로 세련되게 조명할 수 있음을 오하드 나하린의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Panel Discussion “Navigating Resistance and Complicity”
Panel Discussion “Navigating Resistance and Complicity”

작품 이외에도 IE가 주최한 패널 디스커션에서는 내셔널 댄스 플랫폼(NaDaP)이 글로벌한 플랫폼이 되기 위한 탐색이라는 주제로 패널들의 발제와 델리게이트들과 토론이 이뤄졌다. 이스라엘 춤의 ‘내셔널‘과 ‘인터내셔널‘의 의미, 그리고 정부 입장에서는 현대춤 교류를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생각하여 이스라엘 민족문화의 돌파구를 찾아보려 한다는 주제의 논의였다. 다시말해 NaDaP가 이스라엘 현대춤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가시적 효과를 통해 국가 홍보를 목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축제를 지속시킬지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Maslool‘프로그램 레파토리 재현 현장ⓒ김혜라
’Maslool‘프로그램 레파토리 재현 현장ⓒ김혜라
’Maslool‘프로그램 레파토리 재현 현장ⓒ김혜라
’Maslool‘프로그램 레파토리 재현 현장ⓒ김혜라

또한 인상적인 프로그램은 ’Maslool‘ 시연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무용전문학교 프로그램으로 18세에서 21세의 학생들이 2년간 주 5일 수업을 하며 전문무용수의 꿈을 키우는 과정이다. 센터에서는 이스라엘 안무가들의 주요 작품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레퍼토리를 보존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 일부를 5분 이내의 소품으로 구성하여 학생들이 시연하였고, 앳된 젊은 학생들의 테크닉과 열의가 대단하였다. 학생들은 에얄 다돈(Eyal Dadon), 인발 핀토, 바락 마샬(Barak Marshall), 샤론 에얄, 가이 베하르(Ga Behar) 등 선배 안무가들의 레퍼토리를 이수하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안무법과 기술을 전수받고 있었고, 몸을 통해 전수하는 아카이빙 현장을 보여준 것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연습중인 학생들 ⓒ김혜라
스튜디오에서 연습중인 학생들 ⓒ김혜라
Fresco Dance Company 'Genderosity'/ Kaiser Antonino Dance Ensemble 'L’état des choses' ⓒEli Karz,
Fresco Dance Company 'Genderosity'/ Kaiser Antonino Dance Ensemble 'L’état des choses' ⓒEli Karz,

그 이외에 대다수의 작품들은 댄서들의 테크닉은 뛰어났으나 신선한 작가적 시각을 갖춘 작품은 많지 않아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움직임에 기초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안무 작품들이 대다수였고 작품의 메시지나 흐름의 전환을 미국적 올드 팝송으로 일괄하는 점이 비슷했다. 퍼포먼스적 경향인 타장르와의 적극적 협업으로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시각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현 컨템포러리 춤의 방향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시각적 자극이나 오브제의 활용, 영상 자료 같은 매개체 사용이 적고 피지컬에만 집중되어 있는 안무적 접근이 다소 이스라엘 춤이 과거에 비해 다양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었다. 물론 자신들의 움직임 철학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도 있겠다. 추정해 보면 경제적·사회적 환경의 영향으로 해석되며 더불어 이스라엘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작업들 또한 발견하기 어려웠다. 반면 우리 나라 댄서들이 바체바나 키부츠무용단에서 변함없는 기량을 뽐내고 있어 반가웠고, 공연 인터미션마다 열심히 네트워킹하며 다양한 인맥과 경험을 쌓고자 하는 안무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반가웠다. 이렇게 총 4일간 열린 축제에서 선보인 안무가들의 작품은 이스라엘 현대춤의 미래를 향한 참가자들의 열띤 네트워킹으로 장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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