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무용의 대부 윌리 차오, CCDC와 결별
중국 현대무용의 대부 윌리 차오, CCDC와 결별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2.08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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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중국본토 무용교류에 힘쓰겠다"
지난 여름 시위사태에 실망, "홍콩 무용가들, 예술적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홍콩 현대무용의 대부 윌리 차오(Willy Tsao)(사진=Beijingdance/LDTX)
홍콩 현대무용의 대부 윌리 차오(Willy Tsao)(사진=Beijingdance/LDTX)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중국 현대무용의 대부 윌리 차오(曺誠淵, Willy Tsao)가 자신이 창립, 40여 년간 이끌었던 홍콩현대무용단(City Contemporary Dance Company, CCDC)을 지난해 말 그만두었다. 자문으로 남아 새로운 감독의 업무인수를 돕겠지만 사실상 예술 및 경영에 대한 관여는 전혀 하지 않기로 했다.

안무가이자 무용수, 예술감독인 윌리 차오는 CCDC 외에도 중국 최초의 현대무용단인 광동현대무용단(Guandong Modern Dance Company)을 1992년 창립했으며 2005년 중국 최초의 민간 현대무용단인 Beijingdance/LDTX를 출범시켰다.

차오는 1973년 미국에서 무용을 공부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는 귀국 후 가족을 설득, 50만 홍콩달러와 비어있던 공장용지를 지원받아 1979년 CCDC를 설립했다. 홍콩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는 CCDC를 홍콩발레단,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같은 국가수준급 단체로 키워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CCDC는 연간 10만 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으며 지금까지 전세계 30개 도시에서 66회의 순회공연을 가졌다. 대만의 린 화이민이 이끄는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과 마찬가지로 CCDC를 홍콩, 혹은 중국의 대표적인 무용단으로 세계무대에 올려놓은 것이다.

홍콩의 현대무용단 CCDC(사진=CCDC)
CCDC단원들과 윌리 차오의 모습(사진=CCDC)

서양예술인 현대무용이 아시아에서 꽃피려는 지금, 그의 소식은 아시아 무용인들에게 늘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결코 모르고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직접 창단하고 긴 세월 심혈을 기울였던 CCDC를 떠난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차오는 새로운 무용단인 HongKongDance/FLSH를 창단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홍콩의 문화예술 전문지 zolima city mag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진정으로 관심있는 것-홍콩과 중국 본토 사이의 무용교류 증진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차오의 중국본토 무용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 CCDC를 창단한지 6년도 안되어, 그는 광저우와 베이징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최근 2년간은 무용수들이 공연하고 워크숍을 열 수 있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중국내 40여개의 ‘무용기지’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것들은 모두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으며 독립기관들이다. 우리는 돈이나 상을 주지 않으며 단지 그들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도울 뿐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차오는 그동안 현대무용을 바라보는 중국정부의 눈이 크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30년 전, 관리들은 현대무용이라는 개념에 대해 매우 생소해 했으며 회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성의 함양, 사회상황에 대한 적극적 언급등은 허락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부 관리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차오의 작업을 지지하고 나섰다고 한다. 관리들이 문화교류와 국제 페스티벌에 중국 작품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Walks of Life' 한 장면(사진=Beijingdance/LDTX)
'Walks of Life'의 한 장면(사진=Beijingdance/LDTX)

차오는 시진핑 체제하에서 중국 당국의 태도가 권위주의적으로 변한 것과 이것이 문화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영화산업, 인터넷에서 언어로 된 것들은 매우 민감하다”고 전하며 그러나 현대무용은 그 추상적인 특성 때문에 보호를 받게 되며 대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물론 작품에 있어서 우리는 공식적인 지원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대개 그들은 테입을 보내보라고 말하고 작품 속에 누드 장면이나 대만 국기만 없으면 대개 오케이다”라고 변화된 현실에 대해 전했다.

그는 또한 앞으로 중국이 보다 개방적인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중국의 일반적인 경향은 국제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테크놀로지 뿐 아니라 문화, 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차오의 창작철학은 개인들과 그 시대 및 환경에 대한 개인들의 반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보고 "이해가 안 가"라고 말하는 것은 관객들이 작품에서 뭔가 현실적인 것을 보기 원하기 때문이지만 현대무용은 개인성, 현대적 사고, 창조성에 관한 것이며 모든 작품이 서로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차오에게 있어 이는 적당주의를 넘어선 예술적 소명이다. 현대예술은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며 자신이 중국인이라거나 홍콩 출신이라거나 하는 것 따위를 입증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표현이란 우리가 사회에 대해 느끼는 것, 이 상황, 시대에 관해 느끼는 것을 기초로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 말은 자신이 홍콩보다는 중국의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일에 보다 관심이 간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문화적 관점에서 보아, 정부지원의 예술, 예술발전위원회와 같은 조직의 지원 증가는 지난 몇 십 년 간 많은 사람들에게 경력을 쌓을 기회를 주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홍콩 예술계의 모험심 부재가 30-40년 전보다 홍콩을 작업하기 심심한 장소로 만들었다고 느낀다.

CCDC의 40주년 기념 포스터(사진=CCDC)
CCDC의 40주년 기념 포스터(사진=CCDC)

“사람들은 홍콩공연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자동적으로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을 줄로 안다”고 그는 지적한다. 즉 "모험할 필요 없어, 기다리면 돼. 정부에 지원금 좀 신청하고, 그리고 유럽이나 호주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 때문에 홍콩의 예술가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뭔가 색다른 작품, 아직 시장이 없는 작품을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그들이 가진 것을 간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내게 있어 이는 그저 그들이 변화하기 원치 않는다는 것의 반증이며 그들은 늘 이 특권층에 남기를 원하며 서양의 가치체계를 누리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했다.

차오가 CCDC를 설립했을 때 홍콩의 시대적 환경은 매우 달랐다. “1980-90년대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까지는 예술가가 탐구해야 할 많은 정체성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진행중인지 아무도 몰랐다. 홍콩은 정확히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정말로 중국인이었나? 우리는 영국인이었나?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었나?”

1997년 프루트 챈 감독의 영화 '메이드 인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그렸다.(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1997년 프루트 챈 감독의 영화 '메이드 인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그렸다.(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그에게 1997년은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는 “이 자본주의 도시가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두려웠는가, 그렇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관심과 우리 예술창조의 일부가 되었다. 이야기할 것이 너무 많았다. 이는 홍콩에서 현대예술을 하기에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러나 일단 홍콩의 지도자들이 반환조건에 합의하자 차오의 관심은 본토로 옮아갔으며 그 훨씬 큰 가능성의 장에 관심을 갖게 된다. “문화를 보려면 크게 생각해야 한다. 문을 닫고 인구 700만명의 도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홍콩 문화는 결국 중국의 보다 큰 문화와 합쳐질 것이다. 이는 불가피한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홍콩이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한다. “홍콩에 돌아올 때마다 여전히 1997년인 것 처럼 느껴진다. 그닥 많이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방식도 어떤 시점에 멈춰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송환법을 둘러싼 홍콩의 시위사태와 관련한 것이다. 차오는 자신이 이번 여름 시위에 실망했다고 말한다. 중국을 받아들이는 것이 홍콩이 그 정체성을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톈진, 베이징, 우한, 상하이, 이 도시들을 가만히 보면 모두 다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지난해 11월 홍콩 시위현장 모습. 홍콩시위에는 CCDC 단원들도 상당수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종호 기자)
지난해 11월 홍콩 시위현장 모습. 홍콩시위에는 CCDC 단원들도 상당수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더프리뷰 이종호 기자

하지만 동시에 그는 홍콩이 여전히 이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장 현대화되어 있고 가장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중국 젊은이들이 현대예술, 현대무용에 대해 생각할 때 그들은 여전히 홍콩을 선두주자로 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자유가 있다고 본다.”

차오는 올해 65세가 되지만 은퇴 계획은 없다. 새 무용단뿐 아니라 Beijingdance/LTDX를 위한 작품도 계속 작업중이다. 사마천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올해 베이징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베이징 댄스 페스티벌 포스터(사진=Beijingdance/LDTX)
2019년 베이징 댄스 페스티벌 포스터(사진=Beijingdance/LDTX)

저간의 사정과 인터뷰 등을 살펴볼 때 결국 차오는 자유롭지만 작은 도시인 홍콩에서의 무용발전 작업을 일단락 짓고 중국 본토를 무대로 본격적으로 예술적 작업을 펼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홍콩 무용계에서 그는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며 이는 예술가로서의 그의 업적과 기록만 보더라도 확실한 사실이다. 그의 가장 큰 공헌은 그가 육성한 기관들, 그리고 그 기관들이 예술가들에게 제공한 기회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일본의 무용계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본토라는 큰 무대가 주는 매력, 홍콩 무용계의 안일함(?)에 대한 실망만이 CCDC를 그만두는 이유인지는 확실치 않다. 홍콩사태를 둘러싼 단원들간의 갈등도 한 이유인 것 같다. 홍콩과 중국의 무용 관계자들에 의하면 현재 CCDC 단원들 중에는 홍콩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또한 중국계 단원들과는 대화도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윌리 차오와 함께 오랫동안 작업했던 웨스트 코울룬 무용감독 카렌 장에 의하면 차오는 오랫동안 이끌었던 베이징 댄스 페스티벌도 지난해를 끝으로 더 이상 맡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CCDC는 윌리 차오 소유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으나 조만간 이곳을 비워주어야 하는 실정이다.

홍콩 웨스트코울룬 문화지구에 들어선 현대무용 전용극장. (사진=이종호 기자)
홍콩 웨스트코울룬 문화지구에 들어선 현대무용 전용극장. /사진=더프리뷰 이종호 기자

윌리 차오의 CCDC 사임은 홍콩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 홍콩 사태가 어떻게 해결될지와 상관없이 중국 본토와의 문제는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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