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행위예술가 울라이(Ulay) 타계
세계적 행위예술가 울라이(Ulay) 타계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3.06 0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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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세기의 커플’로 활동
만리장성, MoMA 프로젝트로 화제와 명성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행위예술가이자 시각예술가인 울라이가 지난 2일 림프계 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

울라이(Ulay)의 본명은 프랑크 우베 라이지펜(Frank Uwe Laysiepen)으로 1943년 독일 졸링겐에서 태어났다. 폴라로이드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주로 자신의 정체성이나 크로스드레싱(cross dressing, 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 것)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했다. 독일 통일 후에는 통일과는 별 관계 없이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현실을 고발한 사진을 찍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역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를 만나면서였다. 구 유고슬라비아(현 세르비아)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신체를 도구이자 매체로 삼아 극단적 표현도 서슴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유명한 행위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피로 얼룩진 유고 내전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우리 나라에는 2017년 제1회 제주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했다.

'행위예술의 대모'로 불리는 마리나와 울라이가 만났을 때 이들은 즉시 서로에게 끌렸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이들은 연인이자 소울 메이트로 네덜란드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선구자적 예술가 커플인 이들의 작품은 도발적이고도 위험해 서로를 극단으로까지 몰아붙였다.

젊은 시절 울라이와 마리나의 모습(사진=비메오 동영상 캡처)
젊은 시절 울라이와 마리나의 모습(사진=비메오 동영상 캡처)

1980년작 <Rest Energy>에서는 마리나가 활을 잡고 울라이는 몸을 뒤로 기대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그녀의 가슴에 겨누기도 했다. 팽팽한 균형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그녀에게 화살이 날아갈 판이었다.

<Inhale/Exhale>(1978)에서는 두 사람 모두 담배 필터로 코를 막고 키스를 하듯 서로 입을 맞물린 채 기절할 때까지 상대방의 숨결만으로 호흡을 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1981-87년 시리즈로 발표된 <Nightsea Crossing>에서는 테이블에 서로 마주 앉아 7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리나는 이 작품이 영적 관조를 시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그들의 작품은 위험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들의 유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마지막 작품은 <The Lovers : The Great Wall Walk>(1988)였다. 당초 이들은 중국 만리장성 한가운데서 결혼하기로 하고 여행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허가가 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이 프로젝트가 성사됐을 즈음 이들의 연인관계는 끝나고 말았다. 각자 만리장성 약 2천500km를 양쪽에서 90일간 걸어와 마침내 포옹하는 것으로 끝나는 이 프로젝트는 매우 시적인 감동을 안겨줬지만 결국 이들에게는 결별의 징표가 되고 말았다.

퍼포먼스 'The Lovers : The Great Wall Walk' 에서의 모습(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퍼포먼스 'The Lovers : The Great Wall Walk' 에서의 모습(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이후 20년 이상 만나지 않던 두 사람은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마리나의 프로젝트 <The Artist Is Present>에서 마리나는 테이블 한 쪽에 앉고 맞은편 의자에는 관객들이 한 사람씩 앉아서 서로 1분간 바라본다. 공연 규칙은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을 하거나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

매일 7시간씩 석 달간 진행된 이 마라톤 공연에는 레이디 가가, 샤론 스톤, 가수 비욕, 이자벨라 로셀리니 등 많은 유명인들이 참석하며 화제를 모았다. 관객들은 울기도 하고 화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어느 날, 눈을 감고 다음 관객을 기다리던 마리나가 눈을 뜨자 뜻밖의 인물이 의자에 앉는다. 바로 옛 연인이자 동료였던 울라이였다.(영상 1분 10초부터)

복잡한 감정에 북받치며 마리나는 눈물을 흘렸고 울라이는 미소와 약간의 고갯짓으로 모든 말을 대신한다. 마침내 마리나는 자신이 만든 공연 규칙을 어기고 테이블 위로 손을 뻗고 울라이는 그 손을 잡는다. 감미로운 음악에 맞춘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1천700만 뷰를 기록중이다. 2016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울라이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울라이는 2015년 마리나를 네덜란드 법정에 고소하기도 했다. 함께 창작한 작품에 대한 1999년의 계약사항을 마리나가 위반했으며 적절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법정은 마리나에게 소송비용 2만3천 유로와 로열티 약 25만유로를 울라이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마리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오늘 그의 죽음을 알고 커다란 슬픔에 잠겼다. 그는 뛰어난 예술가이자 한 인간이었고 그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그의 예술과 유산이 영원히 살아있으리란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고 울라이를 추모했다.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c)Mark Hartman(사진=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페이스북)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c)Mark Hartman(사진=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페이스북)

울라이의 스튜디오는 페이스북을 통해 "비교할 수 없는 아티스트이자 한 인간이었다. 온화한 영혼이자 전달자였으며 개척자, 선동가, 행동가였다. 또한 멘토이자 동료, 친구, 아버지, 남편이자 가족이었고 빛을 찾는 사람이자 삶을 사랑한 여행자였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또한 "빛나는 사상가로서 늘 한계를 밀어붙이며 어려움을 극복했다"며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수많은 '우리'들이 그를 늘 그리워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리처드 설튼 갤러리(Richard Saltoun Gallery)측은 "그의 타계 소식에 매우 슬프다. 자유로운 영혼이자 개척자, 선동가였던 그는 사진과 개념중심적 접근방식의 교차점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사했다. 그의 공백은 쉽게 메꿀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그의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을 우리는 마음 속 깊이 끌어안고 싶다"고 슬픔을 전했다.

울라이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마시는 물의 몸의 순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우리 몸은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고 이로 인해 자신의 몸과 행위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레나(Lena)와 3명의 자녀가 있다.

한편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은 오는 11월부터 내년 4월까지 그의 주요작품 회고전을 열 예정이다.

행위예술가이자 시각예술가였던 울라이(Ulay)(사진=울라이 페이스북)
행위예술가이자 시각예술가였던 울라이(Ulay)(사진=울라이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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