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기록’-내가 만난 한국, 사진 속 순간들
‘추억의 기록’-내가 만난 한국, 사진 속 순간들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3.21 2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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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한국학 권위자 마르티나 교수의 한국회상록
50년 전 한국의 전통의례와 풍습, 사람들, 생생한 모습 담아
인류학적 관점으로 한국과의 첫 만남을 추억하는 사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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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추억의 기록'-50년 전 내가 만난 한국, 사진 속 순간들(서울셀렉션 출간)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도서출판 서울셀렉션에서 한 외국 학자의 한국 회상록 <추억의 기록>을 펴냈다. 김우영 옮김, 208쪽, 정가 1만8천5백원.

스위스 태생의 세계적인 한국학자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교수는 역사학자이자 외국인 며느리 신분으로 50여 년 전 한국에 도착했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는 짚신을 신은 소가 달구지를 끌고 있었고, 추운 겨울 충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동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방인에게 이런 이국의 풍경은 분명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한국’을 방문한 저자는 그 풍경들을 놓칠세라 재빨리 카메라 셔터를 눌러 커다란 추억의 저장고를 만들었다. 거기에는 삼실 잣는 할머니, 양주산대놀이, 정교한 장례행렬, 안택고사, 작두를 타는 만신 등 이제는 우리에게도 빛바랜 역사가 돼버린 한국의 전통의례와 풍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남편의 나라를 향한 애정과 학자적 날카로움으로 그 순간들을 통찰한다. 이 책은 그의 추억에서 길어 올린 사진들로 담담하게 풀어 쓴 회상록이자, 50년 전 한국의 풍속을 진정성 있게 기록한 한 편의 민속지이다.

저자인 도이힐러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19세기 말 한국 외교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런던대 아시아·아프리카 대학(SOAS) 교수를 지내며 한국사를 강의한 한국학 권위자이다. 이 책은 그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수록된 사진과 기록은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한국 사람에게도 낯선 50년 전 한국의 모습은 그 자체로 역사적 차원의 가치가 있다. 특히 이문동의 만신, 50년 전 제주도와 울릉도, 동제의 모든 순서를 기록한 사진은 오늘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본으로 자료적 가치가 크다. 저자는 또한 그가 포착한 순간들에 대해 단순한 감상뿐 아니라 인류학적 관점의 후기를 제공함으로써,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 책은 정감 어린 시선으로 50년 전 한국을 바라보며 우리의 과거를 추억하는 독창적인 사진집이다.

추억 속에서 길어 올린, 생생하고 이채로운 '전통한국'의 순간들
이 사진집에는 유교적 가례와 한국의 전통 유학에 관한 저자의 관심이 깃들어 있다. 여성이라 제례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저자는 그 광경을 충실히 관찰하며 예복을 차려입은 제관들이 제례를 봉행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 전통 차례와 같은 장면도 놓치지 않았다. 이 책에는 전통풍속과 민간신앙에 관한 자료들도 생생하게 수록되어 있는데, 깊은 밤 봉사할매가 북을 치며 부엌에서 안택고사를 시작하는 순간이나 공수(신의 말씀)를 내리는 만신의 모습 등 이채로운 장면이 많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너와집이 애처롭게 자리 잡은 울릉도의 모습도 들어 있다.

도이힐러 교수는 1935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라이덴대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 규장각에서 연구했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런던대 SOAS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런던대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한국의 유교화 과정: 신유학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너머북스, 2013), <조상의 눈 아래에서: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너머북스, 2018) 등이 있다.

옮긴이 김우영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코넬대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역사학과 인류학 분야의 책을 한국어로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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