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한국 문화예술 발전 '팔길이 원칙'에 달렸다
[더프리뷰 칼럼] 한국 문화예술 발전 '팔길이 원칙'에 달렸다
  • 이인권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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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천명
이 인권 예술경영 컨설턴트
이 인권 예술경영 컨설턴트

독일제국 초대 총리를 지낸 비스마르크는 ‘정치란 이룰 가능성의 예술이며 실현 가능한 차선책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완벽의 기술이 아니라 모두가 합의하고 공감하는 차선이지만 최고의 방법을 찾아낸다는 의미다.

한 국가의 문화예술은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국가의 제도적 바탕과 재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장 이상적인 문화예술 정책을 실현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정치 당파적 관점과 사회 계층적 이해관계의 상충에서 언제나 쟁점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어서다.

우리는 문화예술 분야 블랙리스트로 얼룩진 과거로부터 환골탈태하여 진정으로 선진화된 풍토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갈수록 그런 열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라는 말처럼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이 정말 한 단계 격상되는 변곡점이 되기를 희구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에 '暴風波過後 必復歸平靜(폭풍파과후 필복귀평정)'이라는 시구가 있듯이 “사나운 풍파가 지나간 후에 일상의 평온을 회복”한 것 같다. 하지만 문화예술계가 지난 블랙리스트 농단 이후 얼마만큼 혁신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물론 문화예술이 단숨에 선진형으로 도약한다는 것은 이상적인 것이지만 당장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최선책으로 현 정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취임하면서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라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천명했다. 과거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필칭 문화예술의 진흥, 융성, 창의를 부르짖었지만 그러한 목표가 제대로 구현되지를 못했다.

결국, 거창한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면에서는 문화예술을 관료주의적 잣대로 감독하고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 문화예술정책의 근간을 무엇보다 팔길이 원칙에 두겠다고 언명한 것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기에 충분했다.

앞서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문화예술의 정치적 농단이 있었기에 팔길이 원칙은 예술경영의 이론으로서가 아닌 당장 지켜져야 할 준칙이 되었다. 이미 선진 유럽 국가들은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예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예술은 정치로부터 분리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 국가는 대전 후 문화예술을 포함하여 정부 정책에서 권력의 부당한 간섭과 통제와 검열을 배제해야 한다는 팔길이 원칙을 제도화시켜 국가 공공행정의 전가 보도로 지켜오고 있다.

정부가 문화예술 정책에서 이처럼 명확하게 팔길이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한 것은 분명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곧 선진화된 문화예술 정책의 기본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50년대 팔길이 원칙을 적용해 독립예술기구로 캐나다예술위원회(The Canada Council for the Arts)의 창립을 발의했던 루이스 세인트 로댕 총리는 “정부는 국가의 문화예술 발전을 지원하되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형태로든 예술 활동을 제한하거나 그들의 자유를 훼손하려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공공재원을 지원받는 예술기관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스러운 만큼 재량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초대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는 “예술에서 정부의 역할은 지원은 하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일찍이 권력자들에게 문화예술은 그들의 이념과 철학을 국민에게 주입하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됐다. 또한, 유럽의 중세 귀족사회에서 예술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하비 피어스타인은 "예술은 사회를 변혁시키고, 계몽시키고, 교육하고, 신념을 주고, 행동하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라고 정의했다.

물론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가능한 최대한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민간영역의 효과성, 합리성,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진국과 같이 팔길이 원칙이 정착되려면 수평적인 패러다임의 민관협치 곧 예술거버넌스의 중심가치가 되는 ‘계도된 자율성’, ‘상대적 효율성‘, ’공생의 창의성‘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기본적으로 문화와 예술은 정체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며 발전해 나가는 다이내믹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한때 어떤 외부적 조건과 영향에 따라 침체되는 예도 있겠지만 그것은 한시적일 뿐 시대의 큰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상황에서 아직 문화예술이 관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곧 팔길이 원칙이 최고의 공공 가치 기준임에도 그것이 완벽하게 준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제야말로 시대의 문화 흐름에 맞춰 지난 촛불정신을 지키면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체계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겠다는 결의가 변함없이 생동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과거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으로 회귀하려는 관료적 타성을 떨쳐버려야 한다. 진정 문화예술의 미래 백년대계를 위해 팔길이 원칙을 구현할 최선책이 아니라도 실현 가능한 차선의 창의적 실천전략을 정치가 마련해 내야 한다. 우선 정치부터 팔길이 원칙의 준수를 솔선수범해야 한다.

20세기 미술의 혁명가로 불렸던 앙리 마티스는 "창의성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라고 했다.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팔길이 원칙을 존중하는 용기가 발휘되어야 한다. 선진국들은 그 팔길이 원칙을 정책의 기본정신으로 삼아 문화예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경제적 풍요에 앞서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 경제의 힘을 누렸는데도 국민의 행복지수가 낮은 수준이라면 이제는 문화의 힘을 키워야 할 시점이다.

올해 문화 분야 국가 예산이 최대 규모인 5조 9,233억 원으로 책정됐다. 중요한 것은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문화의 힘을 기르기 위해 그 예산을 얼마나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며,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팔길이 원칙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이인권 칼럼니스트
이인권 칼럼니스트
camter@thepreview.co.kr
예술경영 컨설턴트
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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