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비정규직 예술가들의 어려운 삶
뉴욕 비정규직 예술가들의 어려운 삶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4.03 17: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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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극명히 드러나는 경제의 틈바구니
광대분장을 한 공연자가 담배를 피우고있다.(기사내용과 무관함)Photo by Den Trushtin on Unsplash
광대분장을 한 공연자가 담배를 피우고있다.(기사내용과 무관함)Photo by Den Trushtin on Unsplash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면서 저소득층, 일일노동자, 노숙자 등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사정은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기본적인 생존조차 위협 받는 상황에서 무슨 예술가 걱정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예술가, 특히 공연예술가들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자신들의 예술작업만으로는 기본생활조차 어려웠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체가 유일한 자산인 대표적인 ‘육체노동자’ 계층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각종 공연과 이벤트가 취소되면서 이들은 할 일이 없어지고 있다.

이런 사정은 선진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예술의 본거지라 할 뉴욕도 사정은 마찬가지. 2001년 9.11 전후, 2007년 경기침체기, 그리고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왔을 때 뉴욕 예술계는 큰 타격을 받았지만 지금처럼 기약없는 침체는 전례없는 일이라고 뉴요커지가 최근 보도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발생했다.
뉴욕의 연극배우 에밀리 맥도넬(Emily Cass McDonnell)은 지난달 12일 동료들과 공연 연습 중이었다. 얼마 후 극단 대표가 오더니 공연이 취소됐으며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발 입국 금지조처가 내려진 지 하루만이었다. 에밀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동료들은 적은 관객만으로 공연할지 스트리밍을 할지 등을 의논했다. 그러나 3월 11-12일 사이, 뉴욕주에서 5명 이상의 모임이 금지되면서 이제 동료들끼리 모이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브로드웨이 극장들이 문을 닫았고 뮤지컬, 코미디쇼, 나이트 클럽, 영화관, 북 론칭, 정치모금 행사 등이 잇따라 취소됐다. 에밀리는 과거 친구들이 직장을 잃는 것은 종종 봐 왔지만 지금처럼 24시간만에 수 십 명의 친구들이 생계수단을 잃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는 여러 가지 신청이 이어졌다. 티켓값 정도 없어도 괜찮다면 극장에 기부해 달라, 혹은 라이브 콘서트를 갈 수 없다면 밴드캠프(BandCamp, 음원판매 사이트)에서 앨범을 사 달라 등등.

대부분의 도시들에서처럼 뉴욕 예술계는 서비스 및 이벤트 제작 산업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바와 레스토랑, 커피숍의 폐쇄와 결혼식, 회의, 각종 대형 이벤트 취소로 인해 창작 노동자들의 생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뉴욕 데뷔의 꿈도 사라지고...
대니얼 골드스타인(Daniel Goldstein)은 뮤지컬 <Unknown Soldier>를 공동 집필했다. 초연은 했지만 시즌 장기공연은 취소됐다. 최근 초연된 브로드웨이 쇼 <Come from away>의 협력감독직도 상실했다. 그는 자신의 많은 동료 및 프로듀서들이 그 작품을 못 볼 거라며 “배우들은 슬프다. 그들이 사랑하던 작품들, 대부분 뉴욕에서 데뷔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작품들이다”라고 전했다.

브로드웨이의 Playwrights Horizons 극장. 많은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c)Paul Sableman(사진=wiki commons)
브로드웨이의 Playwrights Horizons 극장. 많은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c)Paul Sableman(사진=wiki commons)

대니얼은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경제 문제"라며 “모든 극장 사람들(제도권에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은 긱 피플(gig people, 한시적 고용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잡역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극장이 문을 닫으면 우리는 말 그대로 실업자”라면서 자신이 아는 모든 이가 실업자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추락은 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사이의 간극을 전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뉴욕에는 유급병가법(paid-sick-leave law)이 있지만 계약직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뉴욕 예술계의 많은 프리랜스 노동자들은 높은 자가고용 세금을 내며 의료보험 비용도 자신이 지불한다. 보험료가 준조세인 우리와 달리 미국은 회사와 근로자가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인 예술가들은 이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독립 예술가들에게는 고용주보장 장애보험이 없으며 일이 취소됐을 때 연금도 없다.

많은 자구책들을 강구해 보지만...
현재 뉴욕 예술가들은 각종 사이트를 개설, 온라인 수업을 만들기도 하고 물품을 판매하기도 하며 지원을 호소하기도 한다. 체불임금 상담창구도 있고 기부를 받기도 한다. 사이트 접속은 활발하지만 실질적인 지원성과는 빈약하다.

“이런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무지와 모욕이다. '왜 석달치 저축도 없는 거야? 이런 지경에 이른 건 기본적으로 본인 책임 아닌가?' 같은 말들이다." 워싱턴에서 인종주의 철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니콜 브루어의 하소연이다.

드러나는 경제의 민낯
앞서 말한 에밀리는 정부는 위기상황에서 기업에게 구제금융책을 쓰기도 하지만 자신과 같은 독립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리허설을 취소하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을 때 자신과 동료들이 앞으로 딱 1주일분의 급여만 받게 될 것임을 알게 됐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노동국과 1시간 동안 통화했지만 4월 4일에야 자격이 되므로 그때 다시 통화하자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에밀리는 4일에 전화 받을 직원이 있기나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 직원은 컴퓨터가 없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사무실에도 오지 못하면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에밀리는 이제 “그들이 뭔가 하겠지”하는 생각은 접었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인가? 그녀 자신의 안전과 보호는 그저 한 가지 일일 뿐이며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은 미국 경제의 단층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에밀리는 모두가 모여 (연기를 통해) 세상을 생각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뉴요커지는 그녀가 자신의 연기활동에 대해 이미 과거시제로 언급하고 있다는 말로 기사를 끝맺었다. “그건 희생이었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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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주 2020-04-03 21:17:55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예술인들에게 응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