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이유? 제1세계에 살고 싶어서”
"한국에 온 이유? 제1세계에 살고 싶어서”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4.18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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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 콜린 마샬의 ‘국뽕’ 컬럼
“한국인들의 열등감은 일본인들이 심었는지도...”
서울의 밤거리 Photo by Steven Roe on Unsplash
서울의 밤거리 Photo by Steven Roe on Unsplash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확산)에 접어들었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은 확진자 수가 감소하면서 안정세를 보이는 것 같다. 외신들은 한국인들의 코로나19 대처 모습과 이 와중에 총선까지 예정대로 치르는 한국사회의 모습에 연일 놀라워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수 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콜린 마샬(Colin Marshall)은 지난 14일자 뉴요커지 기고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또다른 한국 거주 외국인들의 글을 통해 한국은 이미 선진국일지도 모른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컬럼니스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로 도시와 문화에 관한 콘텐츠를 다루고 있다.

한국은 ‘제1세계’?
왜 미국에서 한국으로 왔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종종 "제1세계에 살고 싶어서"라고 답하곤 한다. 반은 농담이지만 최근 미국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점점 낙담 속에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 오는 미국인들은 늘 서울의 지하철을 부러워한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하철 시스템과 그 외 주요 인프라 시설, 일상의 편의를 위한 소소한 배려들이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 안 나게 하기 때문이다. 불과 몇주 전 미국의 친구들, 가족들, 심지어 편집자들로부터 한국 코로나와 관련한 주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미국이 더 안전할 거라고 믿은 건 당연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지금의 미국 상황은 그런 믿음을 버리게 했다.

김어준, “우리가 진짜 선진국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이제 코로나19 소식은 한국의 뉴스 매체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다. 지난 1월 한국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내가 매일 듣는 <김어준의 뉴스공장> 프로그램은 한국내 코로나19 사정이 호전되고 있음에도 다른 나라의 상황을 계속 전해주고 있다. 일전에는 미국질병관리본부(CDC)를 비롯한 미국 관리들의 연설을 들려주었다. 미국 관리들은 한국의 검사 및 제한조치 등을 칭송하면서 왜 우리는 못하느냐고 물었다. 유명 진행자인 김어준은 이 발언을 여러 번 인용하면서 “우리가 진짜 선진국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라며 미처 몰랐다는 듯 놀라며 만족해 했다.

물론 김어준은 한국말로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후진국의 반대말이다. 지난 10년 넘게 한국은 모든 선진국들 중에서 가장 맹렬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구촌 곳곳을 점령한 케이팝, 사회 전분야에 걸친 연결망, 오스카를 휩쓰는 영화의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후진국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연스런 열등감?
저명 경제학자인 한 한국인 친구는 이를 내게 국민적 열등감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즉 2014년 세월호 사건과 같은 재앙의 시대에 이러한 열등감이 생겨났으며 저개발국의 전형적인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을 보면 이런 현상을 모를 수가 없다. 여러 다양한 원인을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20세기 초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보기도 한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마이클 브린은 그의 책 <한국, 한국인>(원제 The New Koreans: The Story of a Nation)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선동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후진성이 자연스런 열등함의 결과라고 믿게 했다고 쓰고 있다. 동시에 그는 일본 식민지배자들이 한국인들을 강제로 전기와 전화, 기차가 있는 ‘문명화된 세상’으로 이끌어 식민지배를 의식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한다.

‘배추 열등감’
유니 홍은 저서 <코리언 쿨>(원제 The Birth of Korean Cool : How One Nation Is Conquering the World Through Pop Culture)에서 ‘배추 열등감’에 대해 쓰고 있다. 배추와 마늘을 주재료로 한 국민식품인 김치 특유의 발효식품 냄새가 ‘같이 놀고 싶지 않은, 이상한 냄새가 나는 하층민’의 이미지를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 스스로 새기게 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의 한국 특파원이었던 대니엘 튜더는 한국을 가리켜 ‘인정 받고 싶어하는 나라, 특히 미국에게’라고 표현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한국이 이제 “여러 면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한국인들이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며 더 많이 교육 받으며 실업 가능성도 낮고 빈곤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는 것이다.

짧고도 험난했던 한국 현대사에서 떠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떠났고 미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정착했다. 서울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 리(Krys Lee)의 유명한 책 <Drifting House(떠도는집)>은 ‘미스터 리’가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피해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이야기이다. 이후 그는 개발도상 국가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재앙의 뉴스를 본다. - 최루탄 세례를 받는 1986년의 학생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등 - 그리고 떠나오기를 잘했다고 확신한다. 한국이 번영하여 외국인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영화와 테크놀로지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말이다.

오늘날, 한국전쟁과 그 이후를 경험한 세대들은 미국의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보다 ‘글로벌화’된 젊은이들조차 내가 왜 ‘궁극의 선진국’인 미국에서 건너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에 대해 나는 서울은 미국의 가장 큰 도시들에조차 없는 걸 가지고 있다는 것, 즉 폭력범죄가 비교적 적고 공중화장실이 많다는 사실을 들고 싶다. 간단히 말해 두 나라의 코로나19 대응을 비교하고 싶다. 저널리스트 앤 애플바움은 디 어틀랜틱(The Atlantic)에 기고한 글에서 “오랫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최고이고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사회라고 생각된 나라가 이제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고 썼다.

팬데믹 속의 정상생활
바이러스로 인한 첫 사망 사례가 보도된 이후, 물론 서울 생활은 달라지긴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든 핸드폰에 정부의 안전안내 문자 메시지가 떴고 4월 초 확진자 수는 1만명을 넘었다. 이 숫자는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바이러스 확산은 안정되기 시작했고 이는 상당 부분 신속한 검사시설 확충, 그리고 전세계의 이목을 끈 드라이브 스루 센터와 같은 손쉬운 검역 시스템에 힘입은 것이다. 서울은 전면적인 봉쇄조치가 필요 없었고 그 결과 다른 글로벌 도시들과 달리 유령도시가 되지 않았다. 감염자나 감염 의심자들은 격리상태에서 정부로부터 손소독제, 마스크, 신선물품, 기타 필수품들을 공급받았다. 4월 1일부터는 해외입국자는 한국인, 외국인 모두 2주간의 자가격리 조치를 실시했다.

정부의 초기 대처는 일부 한국인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이 사태가 곧 끝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급한 발언, 늘 바뀌는 마스크 관련 정보, 대한의사협회의 중국인 입국금지 권고에 대한 무시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의 폐쇄조치와 감염률 증가, 주식시장 하락, 화장지 품절같은 뉴스들을 스크롤해 보면 ‘미스터 리’가 그의 '조국'의 풀리지 않는 상황에 고개를 저을 것 같다.

이제 눈을 들어 비교적 정상적인 서울 생활을 생각해본다. 김어준이 지난달 바이러스 전국전파를 일으킨 지역이라고 말했다가 핀잔을 들었던 대구에서 북쪽으로 150마일 떨어진 지역이다. 이 생활은 늘 계속되고 있다. 학교, 일부 공공기관, 상업시설, 체육관 등은 폐쇄 상태이다. 하지만 카페는 붐비고 거리와 공원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넘친다. 상점에는 화장지가 넉넉하고, 지하철에는 요즘처럼 자리 앉기 쉬운 때가 없었다. 갑자기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정말로 바이러스 때문에, 내가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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