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성찰, 김흥숙의  ‘쉿,’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성찰, 김흥숙의  ‘쉿,’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5.19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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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언어와 천진한 상상력으로 이끄는 침묵의 여정
김흥숙 시산문집 '쉿,'(사진=)
김흥숙 시산문집 '쉿,'(사진=서울셀렉션)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지금도 바다 건너 이국 땅에서는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고, 사망자는 현재 30만 명을 넘어섰다. 다행히 우리 나라는 안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재확산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코로나는 우리 일상의 모습까지 바꾸면서 우리가 이제까지 지녀온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시인 김흥숙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의미를 한 마디로 나타낸다. 쉿! 그것은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것, 함부로 놀리던 입을 가리고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돈과 성공만을 좇던 일상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파괴한 것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시산문집 <쉿,>을 통해 시인은 지금 우리에겐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성찰을 위한 시와 산문과 여백의 향연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을 향한 진실함, 일상을 파고드는 담백한 문장, 순수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시산문집에서 오늘의 성찰을 시작해보자.

사회적 거리 덕에
저만치 선 그대
그대 목소리 타고 흐르는
짧은 시가 듣고 싶어요
악수가 하고 싶어요

- 〈궁금해요〉 중에서

 

책이 잔뜩 꽂힌 서가 앞에서
독서모임 사람들이 결석자를 흉본다
책 자리에 거울이 있었어도 저랬을까
… …
아 부끄러워, 책마다 거울이네!

- 〈북카페〉 중에서

 

너희를 대신해 죽은 자들을 위로하라
답은 언제나 문제 속에 있는 것
깨달은 자들은 두려워 말고 침묵하라
그믐달처럼
쉿!

- 〈쉿!〉 중에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삶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 김흥숙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요구한 변화들을 차근차근 그려낸다. 그러면서 이 사태를 기회로 인류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라 합니다.

온갖 부끄러움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무지는 인간 최대의 적. 마스크로 돈벌이 장난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그 어리석음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겁니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이제 그만 ‘손 씻으라’고 강권합니다.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 ‘손을 씻는 것’은 그가 하던 나쁜 일을 그만둔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으려면 비누로 손을 씻을 뿐만 아니라 그간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생각하라 합니다."

"'인맥관리’하지 말고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으라고 ‘사회적 거리’를 강요합니다. 이익을 구하는 ‘인맥’의 거리는 늘 변하지만 진정한 관계는 시공을 뛰어넘으니 만나지 못한다고 약해지지 않음을 가르칩니다. 그렇게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합니다."

김흥숙은 코리아 타임즈 기자로 출발해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를 거친 뒤 통신사 국제국 기자로 일하며 사람과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미국이 한국을 대등한 동반자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 애썼다. 코리아 타임스,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등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고, TBS 교통방송에서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를 5년여 진행하며 한국인과 한국어의 품격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했다. 어떤 일을 할 때나 쓰기와 읽기를 멈추지 않아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 <시선>, <우먼에서 휴먼으로> 등의 시집과 한영시집 <숲 Forest> 등을 펴냈고, <스키피오의 꿈>, <실낙원>,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등 10여 권을 번역했다.

김흥숙은 별것 아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자기성찰의 필요성과 휴머니즘 정신을 새삼 일깨운다. 그는 머리가 하얀 지금도 “읽는 한 살 수 있고, 쓰는 한 견딜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읽고 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사람만이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 그리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저 남에게 자기를 관철시키려 애쓰는 사람은 성장을 멈춘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176쪽, 서울셀렉션, 정가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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