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얼굴 화가' 김상표의 회화세계
'얼굴없는 얼굴 화가' 김상표의 회화세계
  • 서봉섭 기자
  • 승인 2020.06.29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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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를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생명사상에서 찾다

[더프리뷰=서울] 서봉섭 기자 = 화가 김상표는 얼굴 그림을 통해 인간 실존의 내밀한 공간을 탐구해온 작가이다. 지난 6월 22일에 방송된 KBS문화스케치 <얼굴없는 얼굴 화가 김상표> 편에서는 권력에 예속화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삶에 저항하고자 하는 인간 실존의 애처로운 모습을 파고드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농밀하게 다루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화가 김상표는 기존의 회화적 틀을 완전히 벗어난 그림그리기 방식을 통해 수행성으로의 회화를 실험한다. 화가-되기의 과정에서 그는 사회적 코드에 의해 탈취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기 자신으로 탄생하려는 저항적 몸부림을 온 몸으로 실행한다.

김상표_얼굴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김상표, '얼굴' (캔버스에 유채, 40.9×31.8cm, 2018)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 생명력을 그려내려는 화가 김상표. 그의 그림은 무위당 장일순의 관념과 실천의 모험에 감화받은 바 크다. 무위당 장일순이 난초를 인간의 얼굴처럼 그려서 모든 존재에 깃들인 생명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면, 화가 김상표는 인간의 얼굴을 난초처럼 그려서 사회의 어떠한 길들임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원초적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김상표_얼굴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2018
김상표, '얼굴' (캔버스에 유채, 72.7×60.6cm, 2018)

화가 김상표는 무위당 장일순의 관념과 실천의 모험을 기리는 혁명가의 초상 시리즈를 100호 그림 18점의 연작으로 그렸다. 여기서 그가 무위당 장일순을 혁명가로 다룬 점이 이채롭다. 화가 김상표는 그 이유를 계간지 『무위당사람들71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무위당사람들 71호 표지
무위당사람들 71호 표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혁명가라고 하면 총칼을 들고 기존 질서와 체제를 전복하거나 권력을 탈취하는 거칠고 강인한 모습을 떠올리는데, 진짜 혁명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고, 인류의 삶의 조건을 바꾸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는 물론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삶을 보다 혁명적으로 사는 것도 포함되겠지요. 이런 점에서 장일순선생님이야말로 진짜 혁명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실천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신 선생님을 ‘삶의 혁명가’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역사와 시대를 바꾼 ‘혁명가의 초상’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는데 그 첫 번째 인물로 장일순 선생님을 그린 것이죠. 선생님의 외모를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선생님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꼈던 사상의 이미지를 표현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김상표_혁명가의초상-무위당9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8
김상표, '혁명가의초상-무위당9'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2018)

화가 김상표는 사회운동가이자 생명사상가인 무위당 장일순의 삶과 자신의 삶이 어떤 점에서 닮았다고 생각할까? 그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자.

“과정공동체는 나와 타자들, 나 자신과 세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발생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내용을 설명한 것입니다. 제가 과정공동체의 핵심 요소로 ‘타자, 배려, 돌봄, 상호의존성, 연결성과 개방성’을 들었습니다. 이 내용 역시 ‘함께 가라’고 하신 무위당 선생님의 말씀과 맥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정공동체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존중입니다. 서로 잘 알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 끼리끼리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외부자와 접속하고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차이와 변화를 긍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질적이고 우연적, 뜻밖의 것들에 대한 연결성과 변화에 대한 개방성, 나와 타자의 상호관련성 속에서 나는 타자에게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타자로부터 영향을 받는 가운데서로 협동하는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무위당 선생이 강조하신 공생시도(共生是道)와 같은 것이죠. 저는 과정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서 다섯 가지의 관념,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중에서 평화를 저는 생명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평화사상 중 가장 중요한 것은‘내어줌’, 즉 하심(下心)이거든요. 무위당 선생님은 나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이 평화라고 보고 있습니다. 큰 평화는 내가 내 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내어주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대립하고 배척했던 것을 긍정하면서 조화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죠. 무위당 선생님은 우리가 적으로, 나쁜 것으로, 타자로 규정했던 것을 품어내지 못하면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신자유주의 사고가 만연하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이 남았어요. 우리 사회는 이런 것들을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어요. 이 시대의 문명과 혁신은 이 다섯 가지 관념,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 ‘평화’를 추구할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다섯 가지 관념을 실천으로 감행한 분이 장일순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무위당 사람들 71호)

김상표_혁명가의초상-무위당13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8
김상표, '혁명가의초상-무위당13' (캔버스에 유채, 162.2×130.3cm, 2018)

수행성으로서 화가-되기의 관념과 실천의 모험에 나서는 화가 김상표와 무위당 장일순의 공통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두 사람 모두 삶을 하나의 수행과정으로 여기면서 그 삶 속에서 진리를 붙잡고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위당 장일순은 이미 한국의 성자라 불리는 분이므로 아직은 화가 김상표에게는 우러름의 대상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KBS문화스케치 프로그램을 보면서 화가 김상표가 무위당 장일순을 닮으면서 넘어설 것을 기대하게 된다. 코로나사태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속성과 생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생명사상에 바탕을 두고 존재의 의미를 회화적으로 탐구해가는 화가 김상표가 우리에게 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화가 김상표는 단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가 그동안 감행한 모험의 궤적을 정리하여 경영, 철학, 예술 등 세 분야에 대한 책을 관념의 모험 시리즈 3권으로 출간한 바 있다.이제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이 세 분야를 하나로 묶어내면서, 개인과 공동체에 얽힌 난제들을 지치지 않고 진정성있는 회화로 담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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