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탄생하는 것"
"창조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탄생하는 것"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7.13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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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아이리스와 안무가 다미앵 잘레의 대화
"완전한 독창성은 허구, 무(無)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아이리스의 컬렉션 'Sensory Seas'(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아이리스의 컬렉션 'Sensory Seas'(사진=유튜브 동영상 캡처)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패션 디자이너 아이리스 판 헤르펜(Iris van Herpen, 1984, 이하 아이리스)과 안무가 다미앵 잘레(Damien Jalet, 1976, 이하 다미앵)가 뉴욕 타임즈의 철학대담 시리즈 'The Stone'에서 예술창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리스와 다미앵은 각자의 분야에서 경계를 허무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네덜란드의 패션 디자이너 아이리스는 전통적 수작업 방식만을 고집하는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쇼에 3D 프린팅과 같은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사용한 작품으로 초대 받았다. 가수 비욘세, 비요크 등의 의상을 디자인했으며 파리 오페라, 미국 뉴욕시티발레의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벨기에/프랑스 안무가인 다미앵은 종종 실험적 관점을 작품에 시도하며 시각예술을 자신의 공연에 혼합한다. 가수 톰 요크, 마돈나, 영화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작업했으며 영화 <서스페리아>(Suspiria, 2018)에서 안무를 맡았다.

영화 '서스페리아'의 춤 장면(사진=다음 영화)
영화 '서스페리아'의 춤 장면(사진=다음 영화)

실험적이면서 현대적인 작품성으로 인기가 높은 두 사람은 창작과정에서 독창성(오리지낼리티)의 중요성과 우리 시대에 왜 예술이 중요한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이들의 대화를 요약, 편집한 것이다.

다미앵 : 당신의 작품을 보면서 당신이 얼마나 안무가, 혹은 무용수처럼 생각하는지 보고 놀랐다. 당신은 어린 시절 무용수로 출발했다. 그 점이 디자이너로서의 당신이 신체를 보는 관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이리스 : 무용수가 되고 싶었었고 오늘날 내 작품에도 여전히 움직임에 대한 매료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처럼 나도 신체를 일종의 조각(sculpture)처럼 본다.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마음 속에 어떤 모습과 정체성을 지닌 여성을 그린다. 하지만 나의 뮤즈는 좀 추상적인 의미에서 인체의 구조(human anatomy)이다. 춤을 배울 때 내 자신의 몸이 가진 놀라운 변형능력(transformative power)에 대해, 그리고 정신과 신체의 공존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춤의 변형하는 능력, 이것이 내가 정말로 매력을 느낀 것이다. 춤은 변형이라는 관점에서 패션을 보도록 해 주었다. 나의 디자인 작업은 춤 작품, 즉 3차원의 미세동작 안무를 의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미앵 : 옷의 흐름이 어떤지 보기 위해 직접 입어보기도 하는지?

디자이너 아이리스 (c)Christopher Macsurak(사진=wiki commons)
디자이너 아이리스 (c)Christopher Macsurak(사진=wiki commons)

아이리스 : 당연하다. 작업과정은 늘 입어보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대개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 마네킹에 옷을 걸쳐 볼 때 나의 손과 옷들은 정말로 일종의 춤을 추는 것 같다. 작업을 시작할 때 결과가 어떻게 될지 정말로 모른다. 작업이 너무 통제되거나 계획적이면 안된다. 개방성이 중요하다. 작업에는 어떤 혼란, 카오스의 순간이 필요한데 그 순간이 바로 옷을 입혀보는 순간이다. 옷을 입혀본 후 그 옷을 직접 입고 시험해 본다. 그리고 그 옷과 서로 교감하면서 옷이 움직이는 방식을 본다. 이런 드레이핑 과정은 나의 다음 동작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패션과 예술은 단순히 우리가 누구인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은 패션을 보다 협력적으로, 보다 지적으로 하는 것이며 과학, 예술, 건축, 생물학, 공학에서 여성과 패션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다미앵 : 컬렉션을 시작할 때 각 요소들이 어떤 결과를 낼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단지 직관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마치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당신의 팀을 이끌고 당신 자신도 명확하게 모르는, 하지만 어떻게든 느끼고는 있는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리스 : 당신과 당신 무용수들도 비슷하지 않은지? 이는 의식과 무의식의 평행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것 같다. 최소한 당신 작품을 볼 때면 나는 그렇게 느낀다. <Lucid Dreaming>이라는 나의 컬렉션이 떠오른다. 언젠가 자각몽(lucid dream)을 자주 꾸던 때가 있었다. 그 꿈들, 그 무의식의 장소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꿀 때 내 마음 속의 그 불분명한 경계를 사용해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 컬렉션을 회상하면 내가 왜 창조하는가 라는 질문에 더 다가가게 된다. 자신을 위한 것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인가 등등.

안무가 다미앵 잘레(c) (사진=다미앵 잘레 홈페이지)
안무가 다미앵 잘레(c)Mats Bäcker(사진=다미앵 잘레 홈페이지)

다미앵 : 꿈과 창조 사이의 평행관계, 정말로 흥미롭다. 나는 작품을 만들 때,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실로 내 깊은 직관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잠들기 시작할 때, 혹은 천천히 깨어날 때는 매우 흥미로운 순간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두 세계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반은 무의식, 반은 의식. 이는 백일몽처럼 가장 가벼운 형태의 일종의 다른 의식상태이다.

이를 정말로 극단까지 밀고 가면 어떤 황홀경, 즉 완전히 무의식 상태이지만 여전히 깨어 있는 어떤 곳으로 가게 되며 이는 사실 인간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테크닉이다. 나는 우리가 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춤추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동남아의 어떤 의식(ritual) 같은 것을 보면서 일종의 황홀경(trance)이 나타나는 경우를 경험했다. 내게 이런 무의식의 장소는 기본적으로 모든 신화가 기원하는 곳이다. 무의식적인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포착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으로 되돌아오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작은 연결고리가 있다. 그리고 이는 직관을 사용할 때 우리에게 온다. 내가 무용수들에게 어떤 아이디어에 관해 즉흥과 규칙을 모두 사용해 춤 추도록 할 때, 무용수들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 발생한다. 이는 늘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뭔가를 탐구하고 당신의 의식을 그런 경험을 통해 확장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나의 작품을 공유할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탄생이란 대단히 친밀하면서도 폭력적인 것이다. 힘과 연약함이 뒤섞인 무엇이 있다. 당신이 예술을 창조할 때 당신은 자신의 작은 구석구석들을 탐색한다. 가장 내밀한 생각들을 그 안에 넣는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공유하고 표출할 때, 이는 매우 신나는 일이기도, 혹은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세계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갑작스레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연히 뭔가를 창조하겠지만 뭔가를 처음 공연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아이리스 : 정말로 그렇다. 처음 시작할 때 이처럼 직접적인(personal)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것은 뭔가 내가 발견해 낸, 깊게 다다르지 않고는 절대 창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또한 우리가 작품을 창조하는 것인지 혹은 작품이 우리를 창조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내가 작품을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정말로 내 작품과 그 창작과정이 나를 창조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작품들을 돌아보면 그것들 때문에 내가 정말로 뭔가 다른 사람이 됐다고 느낀다. 즉 창작과정은 당신에게 보다 개선되고 당신 자신을 넘어선 것을 성취하도록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과정이 실로 하나의 '기브 앤드 테이크',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내가 창조하는 만큼이나 이 세계는 나를 재창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재순환은 힘든 과정이지만 동시에 매우 짜릿하고 중독성있다.

다미앵 : 예술가와 그 작품은 때로 분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우리는 그것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파리 테러 때 바로 3m 앞에서 테러리스트가 총을 쏘고 있었다. 겨우 도망쳐 위험을 피했지만 너무 떨리고 정신이 없어서 더 이상 창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게 내 첫 번째 본능이었다. 하지만 곧 “작품에 이 체험을 넣어 말로 할 수 없는 걸 표현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미앵 잘레 'Thr(o)ugh'(사진=다미앵 잘레 홈페이지)
다미앵 잘레 'Thr(o)ugh'(사진=다미앵 잘레 홈페이지)

그래서 어떤 이미지, 원리에 집중하기로 했으며 그 중 하나는 “만일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와 같은 것이었다. 긴 터널이 있어서 그 안의 무용수들이 위협당하며 앞뒤로 구르고 그 안에 갇혔다가 추방되는 작품이었다. 이 터널은 내가 통과해야 할 그 무엇이었음을 이 작품(2016년작 <Thr(o)ugh>)을 끝냈을 때 깨달았다. 나는 이 작품에 강한 정서적 반응을 보였는데 정말로 나의 무의식이 나를 밀어붙여 어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로 내가 그 트라우마-바로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때로 우리는 완전한 암흑을 뭔가 다른 것으로 직관을 이용해 변화시킨다. 이게 우리가 하는 일의 카타르시스적 힘이다. 창조적이 되기 시작할 때 이는 당신이 말한 것처럼 매우 중독적이다. 그것이 구현되는 순간이 바로 당신이 추구하던 것이다. 창조자이자 관객으로서 당신의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는 어떤 발견의 순간이다.

아이리스 : 정확하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모든 층위에 있어 중요하고도 무한한 순간이며 우리 세계를 형성하는 모든 보이지 않는 힘들이다. 많은 다른 현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감각은 대개 첫 번째 층위에 맞춰진다.

다미앵 : 당신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친 예술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리스 : 너무 많지만 하나만 꼽는다면 로렌조 베르니니의 조각 <아폴로와 다프네>(1622-1625년 경)를 들겠다. 처음 봤을 때 여성이 변화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순환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우리의 생명이 자연에 의해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한 순간에 포착된 변용의 순간이며 그 솜씨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작품은 내가 인간을 이 지구와 관련해서 보는 방식을 형성해 주었다. 우리가 이 땅과 얼마나 관계 없다고 생각하든 결국 언제나 이 별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베르니니 작, '아폴로와 다프네'(c)Architas(사진=wiki commons)
베르니니 작, '아폴로와 다프네'(c)Architas(사진=wiki commons)

다미앵 : 알 것 같다. 당신의 변형적 디자인을 통해 당신은 우리가 얼마나 인간 이외의 생명들과 서로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표현하려는 것 같다. 이것이 인간본위적 관점에서 눈을 돌리는 방식인가? 동굴 속의 최초의 그림들을 보면 주로 동물을 중심적으로 묘사하고 인간은 마치 부수적인 듯 서툴게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겸손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자연을 지배하는, 혹은 자연과 단절된 인류’라는 개념을 해체하려는 예술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확실히 내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 동기가 된다. 당신도 창작자로서 그런 접근을 하는지?

아이리스 : 아주 많이. 자연의 형태 속에 숨어 있는 힘을 생체모방(biomimicry)의 힘을 빌려 본다. 자연의 이 끝없는 신비는 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만드는 많은 3차원 패턴은 삶의 리듬을 울려주며 기하학적 패턴은 자연에 숨은 수학적 논리를 드러내 준다.

당신의 이전 질문으로 돌아가서, 만일 내게 영향을 미친 다른 예술작품을 든다면 네덜란드 민속무용단(Folkloric Dance Company)을 들겠다. 안타깝게도 이젠 없어졌지만. 어린 시절 나는 별로 여행하지 않았었다. 휴가는 국내에서만 보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 무용단을 보러 암스테르담에 자주 갔었다. 이 무용단은 어떤 문화나 공동체를 현지에 가서 연구했고, 현지의 춤, 악기, 의식, 음악과 의상 등을 배워 모든 것을 공연에 집어넣었다. 실로 이게 내가 세계여행하는 방법이었다. 즉 춤, 음악, 의상을 통해서였다. 내게 아주 큰 인상을 남겼고 이를 통해 네덜란드라는 우물을 벗어나 이 지구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다미앵 : 예술 자체가 탈출구였다?

아이리스 : 그것은 자유였던 것 같다. 나는 예술은 때로 정말로 우리에게 자유의 느낌을 주며, 우리는 어느 곳 어느 장소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미앵 : 중요한 질문 한 가지가 있었는데, 이것이다. 스탠리 큐브릭은 20세기의 어떤 예술적 실패들은 ‘완전한 독창성’이라는 망상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혁신은 당신이 배운 고전 형태의 예술을 포기하여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도 말했다. 당신도 거기 동의할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신이 패션에 부여한 장인정신이란 의미 때문이다. 당신이 하는 것은 오뜨 꾸뛰르이지만 이는 어떤 전통적인 옷 만들기에서 나온다. 당신은 창조과정에서 “내가 하는 것이 독창적인 것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는지?

아이리스 : 그렇다. 좋은 질문이다. 당신 말에 무척 동의한다. 내 작품에서 나를 인도하는 것은 꾸뛰르의 역사다. 무(無)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마스터하는 수작업 기술은 우리의 오랜 수작업의 진화된 결과이며 그 수많은 세기동안 많은 혁신들이 결합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늘 바라본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원조(originality)란 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보다 새로운 기법과 3D 프린팅, 사출성형, 레이저 커팅과 같은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만들어낸다. 전통 장인의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이 새로운 테크닉들을 전혀 통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말로 서로 필요하다.

오늘날의 새로운 기술도구들과 전통적 기술을 모두 알지 못하면 정말로 아름다운 것, 조화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다. 내게 있어 이 전통기술의 진화는 정말로 중요하다. 하지만 순수한 독창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훈육과 문화과정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생애동안 보아 온 그 모든 예술에 의해 프로그램되고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작업과정에서 나는 분명 나만의 독특함과 여성성을 추구하지만 그 독특함은 내가 창조해 내는 정체성 속에서, 내 이전에 이루어진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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