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북한 여성들의 '성의 역사'
평범한 북한 여성들의 '성의 역사'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7.27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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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영웅적 조선 녀성의 성과 국가’ 
북한여성의 성을 둘러싼 사회체제와 일상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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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옛날에는 누가 몸을 판다거나 이러면 정말 때려잡아 죽일 듯 이랬는데 이제는 그게 없어졌어요. 살아나가기 위한 방식을 제 몸에서 찾았으니까. 어느 날부터 서서히 인식을 바꾼 거예요...북한 사회에서 성에 대해 알게 되고 눈을 뜨게 되면서 그걸 더 갈망하게 된 것 같아요.”

북한 땅에서 엄청난 아사자를 발생시키면서 근본적 사회변화를 초래했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몸소 겪었던 한 탈북 여성의 말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북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최근 서울셀렉션이 펴낸 권금상의 <영웅적 조선 녀성의 성과 국가>는 이런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룬 사실상 첫 번째 저작물이 아닌가 한다. ‘인류학계의 마지막 미답지인 북한 사회의 가장 내밀한 세계를 이데올로기적 편견 없이 섬세하게 그려낸 세계 최초의 연구서’라는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일통일 문제 전문가)의 찬사는 그래서 결코 과장이 아니다.

위협적으로 권력을 과시하는 김여정, 단아하고 세련된 젊은 영부인 리설주.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북한 여성을 떠올릴 때면 으레 등장하는 이미지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가 과연 북한 여성을 대표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북한 여성의 삶은 통제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통치체계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국가는 특히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며 체제에 순응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북한 권력은 국가 건설기부터 지금까지 제도와 문화를 통해 국가의 성 통제와 억압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신녀성’을 만들어왔다.

다른 한편, 북한 여성은 그러한 국가의 통치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성적 주체로서의 삶을 영위해갔다. 이 책은 문헌 연구와 탈북 여성 수십 명의 방대한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북한의 여성정책과 사회문화를 분석하며, 그 평범한 여성들의 ‘성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구성하는 국가

사회주의의 진보성과 봉건적 권력세습이 혼합된 ‘봉건적 사회주의’ 체제. 이러한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 바로 섹슈얼리티다. 사회주의적 신여성과 봉건적 가부장의 기이한 모순적 결합이 북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규정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남녀평등법을 제정하는 등 진보적으로 제도를 정비했지만, 일상의 남성중심 문화가 온존한 가운데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구조가 지속돼왔다. 소녀들은 월경을 숨겨야 했고,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처녀성을 입증해야 했으며, 결혼한 여성들은 살림과 육아와 가정경제는 물론이고 때로는 후방의 군인들까지 자식처럼 책임져야 했다. 이 책은 북한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구성하는 제도와 문화를 통해 국가 권력이 성을 통치하는 전략과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굶주림과 체제불안 속에서 새로운 성적 주체로 발돋움한 북한여성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사상 최악의 식량난으로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여성들은 권력의 성 통치에 본격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장마당에 나가 사경제 활동을 벌였고, 자신의 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황색바람’이라는 자본주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는 등 지평을 넓혀갔다. 연애와 결혼생활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국가와 가족에 속박되지 않는 자기만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체제의 변두리에서 부유하는 탈북 여성들

'고난의 행군' 이후 급증한 탈북여성들은 남한에서도 여전히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정착금을 브로커 비용으로 소진하고 빈곤한 상태에서도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달린다. 노동시장 진입의 어려움은 결국 그들을 성 서비스 영역으로 내몰고 있으며 남한사회의 주변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성은 자신과 북에 있는 가족을 위한 마지막 생존전략인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러한 탈북여성의 삶을 조명하며 체제의 변두리에서 부유하는 탈북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한다.

저자 권금상은 1960년 출생으로 분단사회, 이주민사회에서 사회변화와 통합에 관심을 가져왔다. 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장으로 서울시 가족정책 지원사업을 수행 중이며 문화연대 분단문화 연구위원회장을 맡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남북한마음통합연구단 연구교수 시절에는 분단으로 구성된 남북 주민들의 마음을 연구했다. 저서로는 현대사회의 양육자들을 위한 <외로운 아이로 키우지 마라>가 있으며 <분단된 마음의 지도> <분단 너머 마음 만들기> <10가지 접근 다문화사회의 이해>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232쪽, 1만4천원, 서울셀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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