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KBS오케스트라와 30년 (2)
[더프리뷰 칼럼] KBS오케스트라와 30년 (2)
  • 황순룡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2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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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가로서, 지휘자로서 방송 예능(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은 금난새 지휘자가 처음
황순룡(전 KBS교향악단 기획, 안익태 기념재단 사무총장)
황순룡 칼럼니스트

1980년부터 NGO에 몸담고 있던 내가 1988년 KBS로 옮겨오면서 색다른 세계를 유랑하던 중 신세계나 다름없는 KBS교향악단 사무국을 통해 ‘음악’을 만나리라곤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1990년부터 시작된 나의 신세계, KBS교향악단 사무국은 내 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내 생각과 시각과 감정과 이성까지 신체적 변화까지도 모조리 뒤바꿔 놓았다. 이때부터 KBS를 그만둘 때까지(잠시 타 부서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나는 한시도 음악이라는 영역을 벗어난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었다. 10여 년 동안 서울 근교의 미술관에서 매달 한 차례씩 열리는 음악회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진행했던 외도까지 포함한다면 아마 더 오랜 기간 음악(양악, 국악을 포함한)과 함께한 반평생이었다.

해설 음악회의 태동

1990년 KBS교향악단 사무국에 첫발을 내딛자 이제는 고인이 된 강석흥 선배가 데스크를 담당하고 있었고 4명의 직원이 교향악단과 국악관현악단을 맡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내가 합류하면서 늘어난 인력 탓인지 이즈음부터 KBS교향악단은 연주횟수를 점차 늘리면서 다양한 형태의 음악회를 새롭게 기획하고 있었다. 특히 해설을 곁들인 음악회를 국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는 이후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아주 특별한 형태의 음악회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이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아이디어로 제안한 사람은 당시 KBS 1FM의 임주빈 PD였다. 우선 정규 음악회에서보다 특별히 개최되는 청소년음악회부터 적용해 보기로 했다. 주 관객층이 청소년인 음악회에서 청소년들이 알아듣기 힘든 클래식을 연주되는 곡마다 짤막하게 해설을 해 준다면 1시간여 동안의 음악회가 덜 지루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임주빈 PD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음악회 사상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음악회의 해설을 누가 하느냐가 가장 큰 숙제였다. 당시 몇몇 음악평론가들이 있었고 그들이 KBS 1FM에 자주 출연하고 있어서 그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KBS교향악단 사무국은 좀 더 신선한 변화를 주기로 하고 당시 KBS교향악단 전임지휘자로 있던 금난새 지휘자를 지휘 겸 해설자로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사무국에서는 금난새 지휘자에게 해설을 맡기기까지 많은 고민에 빠졌다. 다소 어눌하고 그다지 유창하지 못한 그의 말솜씨가 자칫 음악회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무국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한 듯 금난새 지휘자는 그의 어눌한 말투를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승화시키며 친절한 이웃 아저씨처럼 (덥수룩한 이웃 아저씨 이미지와 다소 거리가 있기는 하나) 잘 웃고 미소를 멈추지 않자 관객들도 조금씩 긴장감을 풀어내며 그의 연주곡 해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설이 있는 음악회가 시작됨으로써 관객, 매표, 호감도, 재미 등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한 점이 없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음악회가 새롭게 탄생하였다. 이후 KBS교향악단은 매년 여름방학이면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회를 지속해서 개최하였고 많은 청소년이 KBS홀을 찾았다. 그리고 이 영향은 KBS교향악단뿐만 아니라 전국 대부분 교향악단과 실내악단까지도 청소년음악회를 다양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리면서 클래식 음악은 점차 청소년들에게 가깝게 다가서고 있었다. 이는 금난새 지휘자의 노력과 함께 음악계의 부단한 관심, 관객들의 호응 등 삼박자가 호흡을 같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금난새와 자니윤 쇼

금난새 지휘자가 등장했으니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1970년대 미국의 유명 프로그램 ‘투나잇’에 단골로 출연했고 미국 NBC에서 ‘자니윤 스페셜쇼’ 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한국인 출신의 유명 코미디언 자니윤이 한국으로 돌아와 KBS에 이어 SBS에서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자니윤 이야기쇼’를 진행하고 있던 때였다.
이 ‘자니윤 이야기쇼’는 내가 오래전부터 일고 지내던 동생이나 다를 바 없는 이기진PD(현 알지비글로벌 대표)가 연출을 맡고 있었고 고공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날 이 PD에게서 내게 연락이 왔다. 뜬금없이 ‘자니윤 이야기쇼’에 금난새 지휘자를 출연시키고 싶은데 도와 달라는 것이다. 좀 황당한 제안이었다. 금난새 지휘자와 코미디 예능 프로그램이라니! 어딘가 매우 어색해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뒤집어 생각해 보니 KBS교향악단으로서나 금난새 지휘자로서나 크게 손해 볼 일은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왜냐하면, KBS교향악단으로서는 금난새 지휘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널리 알림으로써 보다 많은 관객을 확보할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었다.
방송 출연이 좋겠다는 판단이 서자 바로 금난새 지휘자를 찾았다. SBS ‘자니윤 이야기쇼’에서 출연요청이 와 있는데 어떤 생각인지 물었다.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금난새 지휘자는 잠시 어안이벙벙하더니 이내 무슨 영문인지 오히려 내게 궁금해 했다. 그래서 연출자인 이기진 PD의 의도를 간추려서 설명해 주며 방송 출연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며 출연하기를 권유했다. 물론 동생인 이기진 PD의 기를 살려주고픈 마음도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건 나의 권유에 금난새 지휘자는 흔쾌히 방송 출연을 승낙하였고 나는 곧 이 PD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아마 1992년쯤으로 기억된 금난새 지휘자의 ‘자니윤 이야기쇼’는 이렇게 성사되었고 이 출연을 계기로 금난새 지휘자의 인기도 레벨은 수직선을 타며 화려하게 상승하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가로서, 지휘자로서 방송 예능(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은 금난새 지휘자가 처음이었다. 아마 그 이후에도 클래식을 하는 음악인이 예능 특히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은 없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현재 활발한 지휘 활동을 하는 금난새 지휘자를 지켜 보고 있노라면 국내 많은 지휘자 중에서 그만큼 대중적인 음악인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늘 밝게 웃는 모습으로 관객을 대하는 그의 즐거운 마음이 나이를 잊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금난새 지휘자의 건승을 빈다. (두 번째 이야기 끝)

 

황순룡 칼럼니스트
황순룡 칼럼니스트
hsryong@kbs.co.kr
전 KBS교향악단 기획
안익태기념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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