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27 '세계 4대 뮤지컬?'
[더프리뷰 칼럼]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27 '세계 4대 뮤지컬?'
  • 조복행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1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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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필의 신년음악회(사진=youtube.com)
빈필의 신년음악회(사진=youtube.com)

[더프리뷰=서울] 조복행 칼럼니스트 = 우리는 숫자는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숫자는 차이들을 드러내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애매한 차이들은 말보다는 숫자를 통해 구별이 가능하다. 가령 10개의 작품이 있을 때 이들을 일일이 언어로 객관화하기는 어려워도 숫자로 1등부터 10등까지 서열화하면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위계가 형성되고 객관적인 지표인 것처럼 여겨진다.

공연홍보에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 숫자와 비교급을 활용하는 것이다. 세계 O 대 등으로 표기하면 이 서열은 객관적인 차이로 인식된다. 관객들은 이들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접했다고 하더라도 이들간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숫자는 애매하던 정보에 확실성을 부여한다. 비교급 또한 많이 사용되는데 세계 최고의, 또는 세계 최대의 OOO이라고 말하면 이들 단체를 신뢰하게 된다. 홍보에는 자극적인 문구나 과장이 필요할 때도 있다. 관객이 모든 정보를 사전에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위 정보 비대칭을 이용하여 자극적 문구나 과장, 숫자로 관객을 유인하려는 전략이다.  

예술단체나 예술작품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경우가 많다. 무용, 음악, 뮤지컬 등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가끔 객관적인 기준이 없이 또는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 또는 과장된 정보를 전파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

그라마폰에서는 가끔 세계 10대 오케스트라를 발표해 왔다. 공연실적, 레코딩 실적, 지역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여도, 연주능력과 음악성 등을 심사하여 순위를 매긴다. 2008년도에 발표한 순위는 ①로열 콘서트헤보 ②베를린 필, ③빈 필, ④런던 심포니 ⑤시카고 심포니 ⑥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⑦클리블랜드 심포니 ⑧ LA 필 ⑨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⑩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순이었다.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c)Anyul Rivas(사진=wiki commons)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c)Anyul Rivas(사진=wiki commons)

오케스트라의 순위는 자주 변하고 조사기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2019년에 유니버설 뮤직에서 운영하는 <디스커버뮤직>이라는 잡지에서 발표한 순위는 ① 빈 필 ②베를린 필, ③ 런던 심포니 ④ LA 필⑤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⑥ 로열 콘서트헤보⑦시카고 심포니⑧오로라 오케스트라⑨뉴욕 필 ⑩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였다. 이들을 비교해보면 빈 필과 베를린 필을 제외하고는 그 순위가 대폭 변한 걸 알 수 있고, 그동안 베스트 10에 오른 적이 없던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오로라 오케스트라 등 신진 오케스트라가 베스트 5에 오른 것이 매우 이채롭다. 반면 그라마폰에서 12년 전에 1위를 차지했던 로열 콘서트헤보는 6위로 밀려났고, LA 필이 5위에 오른 것도 색다르다. 로열 콘서트헤보의 경우에는 거장 마리스 얀손스가 떠나면서 떨어진 것 같고, 반면 베네주엘라 <엘 시스테마> 출신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고 있는 LA 필은 그의 음악성에 힘입어 도약한 것으로 보인다. 오케스트라의 순위는 지휘자나 연주자의 변화에 따라 연주능력이나 음악성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과거에 뉴욕 필이 방한했을 때 세계 3대 오케스트라의 하나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보도는 그대로 언론에 노출되었고 뉴욕 필은 졸지에 세계 3대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물론 뉴욕 필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이긴 하지만 이는 과장된 표현, 거짓 정보다. 순위에 약간씩의 변동은 있지만 오랜동안 세계 3대 오케스트라는 빈 필, 베를린 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였고 여기에서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이들은 전부 유럽에 있는 오케스트라들이다. 그런데 주최측에서 여기에 뉴욕 필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이런 보도자료가 나가면 언론에 기사화되고, 이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사실로 굳어진다. 지금도 그런 기사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세계 4대 뮤지컬

흔히 우리나라에서 <캣츠>(1981년), <레미제라블>(1985), <오페라의 유령>(1986), <미스 사이공>(1989)을 세계 4대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4대 뮤지컬은 뮤지컬 빅 포의 잘못된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세계 4대 뮤지컬과 빅 포 뮤지컬은 어떻게 다른가? 이런 주장은 언제 어떻게 나온 것인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1) 작품성인가? 그 판단은 누가 한 것인가? 평론가인가? 아니면 관객들인가?  작품성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2) 롱런 기록인가? 2020년 7월 기준으로 본다면 캣츠와 미스 사이공은 여기에 포함될 수 없다. 브로드웨이에서 캣츠는 4위이고, 미스 사이공은 13위다. 웨스트엔드에서는 캣츠는 6위, 미스 사이공은 18위다. 
 3) 박스 오피스 기록인가?  2020년 7월 기준으로 보면 브로드웨이의 총매출 1위는 라이온 킹이고  이어서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의 순서다. 캣츠는 10위이고 미스 사이공은 13위다.
 

금년도에 웨스트엔드 닷컴이 평가한 10대 뮤지컬은 ①레미제라블 ②해밀톤 ③라이온 킹 ④북 오브 몰몬 ⑤마틸다 ⑥맘마미아 ⑦오페라의 유령 ⑧위키드 ⑨제미이야기(Everybody’s Talking about Jamie) ⑩스쿨 오브 락이다.

런던의 공식 관광잡지인 비지트 런던(Visit London)에 따르면 웨스트엔드의 베스트 10는 ①라이온 킹 ②위키드 ③오페라의 유령 ④메리 포핀스 ⑤맘마미아⑥레미제라블 ⑦메리포핀스 ⑧북 오브 몰몬 ⑨티나(티나 터너의 일생을 다룬 뮤지컬) ⑩ 디어 에반 한센이다.

우리가 말하는 4대 뮤지컬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부 다 카메론 매킨토쉬가 제작한, 1980년대 작품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이후 <오페라의 유령>을 필두로 <캣츠>, <레미제라블> 등의 카메론 매킨토쉬 작품들이 많이 공연되었다. 뮤지컬 붐이 시작될 때였다.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말은 2000년 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나온 말로 기억한다. 이 말은 상당기간 언론에서 사용되었다. 그러자 이는 뮤지컬 빅포의 잘못이라는 기사가 등장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이런 용어들이 어디에서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많이 줄어든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도 언론에서 뮤지컬 빅 포니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아예 4대 뮤지컬 작품을 해설한 기사도 있다. 이들 용어는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세계 4대 뮤지컬은 뮤지컬의 역사에서 불변의 순위인가? 이들 이전의 뮤지컬과 이후의 뮤지컬에는 이들보다 훌륭한 작품은 없었을까? 앞으로도 영원히 이들보다 더 나은 작품들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작품의 순위는 끊임없이 변할 수 밖에 없다. 혹시 이들을 1980년대에 나온 카메론 매킨토쉬의 4대 뮤지컬이라고 하면 맞을지 모른다. 뮤지컬 빅 포와 세계 4대 뮤지컬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스포츠처럼 예술에도 강한 경쟁이 작용한다. 스포츠에서 그 경쟁의 결과가 객관적인 숫자로 나타나는 것처럼 예술에서도 객관적 통계로 우열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성의 평가는 주관적이어서 숫자로 표기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전문가나 관객의 평가를 통해 이를 객관화해야 한다. 물론 그들의 평가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뮤지컬 <캣츠>였다. 스포츠 경쟁의 결과가 매번 달라지는 것처럼 아티스트의 순위는 변하게 마련이다. 변화하는 서열이 객관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출처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예술단체나 아티스트의 서열은 관객유인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정보, 관객의 무지를 악용하는 왜곡된 정보는 관객판단에 영향을 미칠뿐더러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오페라의 유령'(사진=broadwaydirect.com)
'오페라의 유령'(사진=broadwaydirect.com)

 

메가뮤지컬
 
4대 뮤지컬이나 빅 포 뮤지컬을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는 메가뮤지컬이 있다. 대규모의 뮤지컬을 메가뮤지컬, 블록버스터 뮤지컬, 스펙터클 쇼, 엑스트라버간자(Extravaganza)등으로 말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용어는 메가뮤지컬이다. 이 말은 뉴욕타임즈에서 1980년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Jessica Sternfeld, 『Megamusical』, p1). 우리가 4대 뮤지컬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캣츠>나 <오페라의 유령>은 마치 코카콜라나 맥도널드처럼 세계인 모두가 아는 글로벌한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메가뮤지컬은 많은 비평가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국의 비평가들의 눈에 웨버는 정통 뮤지컬의 본류에서 벗어난 프로듀서이자 상업적 음악가였다.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이 주도했던 예술적 뮤지컬을 더럽힌 이류 연극인이었다. 1950-60년대에 비틀즈가 일으킨 영국 팝의 미국 침공(British Invasion)에 이은 또 하나의 영국의 문화침공이었다.

메가뮤지컬이라는 용어는 숫자화되거나 위계화되지는 않았지만 뮤지컬의 규모나 내용 등을 비교할 수 있는 용어다. 그러나 메가뮤지컬은 단순히 거대한 규모만을 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메가뮤지컬은 뮤지컬과 연극의 흐름을 반영하는 연극형식이다. 나아가서 현대사회 또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화적 경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중요한 뮤지컬 형식이다. 그리고 메가뮤지컬은 공연이 처한 경제적 딜레마의 한 돌파구가 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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