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올라간 ‘검은 물고기’ 쥘리에트 그레코
하늘로 올라간 ‘검은 물고기’ 쥘리에트 그레코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09.24 2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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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일기로 별세
말의 시성(詩性) 찾아준 샹송의 뮤즈
23일 타계한 가수 쥘리에트 그레코(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한 시대를 풍미했던 샹송 가수이자 영화배우 쥘리에트 그레코(Juliette Gréco)가 프랑스 생 트로페 부근의 자택에서 23일(현지시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전했다.

‘말하듯 노래하는’ 창법으로 잘 알려진 쥘리에트 그레코는 프랑스 몽펠리에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카페와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장-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자크 프레베르 등 문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파리 보헤미안들의 연인이자 '실존주의의 뮤즈'로 불렸고 검은 드레스를 즐겨 입고 조용히 몸을 움직이며 노래를 불러 ‘검은 물고기’로 불리기도 했다.

에디트 피아프 이후 최고의 샹송 가수로 꼽혔던 그녀의 꿈은 원래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부모가 독일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이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2년간 연기를 공부했다. 레지스탕스 대원인 할머니 밑에서 자라나며 그녀 자신도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가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어리다는 이유로 투옥은 면했는데, 이런 어린 시절의 배경으로 그녀는 정치적으로 확고한 좌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 그녀는 자신이 일하던 카바레 주인의 권유로 사르트르가 시를 쓴 <하얀 망토의 거리(La rue des Blancs-Manteaux )>를 불렀고 뜻밖의 큰 인기를 끌며 그녀의 목소리가 유럽에 알려지게 된다. 장 콕토 감독의 <오르페(Orphée)>(1949)를 비롯,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재능을 인정받았다.

에디트 피아프, 이브 몽탕과 함께 프랑스의 위대한 가수로 손꼽히는 그녀의 특색은 철학적 가사를 마치 읊조리듯, 목소리의 긴장 없이 말하는 듯한 억양으로 부르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그녀의 노래에 대해 “우리 본래의 말(언어)이 가지고 있는 육감적 아름다움을 일깨워 줬다”며 “천 편의 시를 읽는 것보다 그녀의 샹송 한 곡이 낫다”고 까지 했다.

60여 장의 앨범을 내며 수많은 히트곡을 낳았다. 레지스탕스 운동가였던 가수 샤를 트레네(Charles Trenet, 1913-2001)의 곡도 많이 불렀으며 원곡보다 더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녀의 수많은 대표곡들 중 <바다(La mer)>, <시인의 혼(L'âme des poètes)>, <길 모퉁이에서(Coin de rue)> 등이 모두 트레네의 곡이다.

그레코는 2016년 뇌졸중이 올 때까지 무대를 지켰다. 그녀의 유일한 자식이 그해 세상을 떠났다. 2016년 그녀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화예술공로훈장(Commander of the Order of Arts and Letters)을 받았으며 그녀가 받은 주요 상 가운데 마지막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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