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경남도립극단 창단공연 '토지 1'
[공연리뷰] 경남도립극단 창단공연 '토지 1'
  • 남정숙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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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중한 연출과 뜨거운 연기로 빚어낸 대작
어려운 코로나시대 지자체예술단의 결단에 박수
'토지 I' 공연모습(사진=경남도립극단)
'토지 1' 공연 모습(사진=경남도립극단)

[더프리뷰=진주] 남정숙 칼럼니스트 = 경상남도 도립극단 창단공연 <토지 1>이 드디어 화려한 첫 선을 보였다.

지난 10월 9일 진주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된 <토지 1>은 박경리의 소설 <토지>를 연극으로 각색해 공연한 것으로 경남도립극단의 첫 작품이다. 경남도립극단은 김경수 도지사의 민선 7기 공약으로 추진한 경남도립예술단 창단의 결과물로, 이후 음악, 미술, 무용 등 타 예술단 설립을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며, 이번 도립극단의 성공으로 김 지사는 임기 내 공약이행을 추진할 동력을 확보했다고 하겠다.

경남도립극단은 박경리 원작소설 <토지>를 1, 2부로 나눠 공연할 계획이다. 1부는 9일에 이어 오는 23일 통영, 31일 창원에서 두 차례 더 공연될 예정이고, 2부는 내년에 공연할 계획이다.

<토지> 1부는 1897년부터 1900년 초까지 경남 하동 평사리 마을 최참판댁의 몰락 과정을 그린다. 대지주와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으로 봉건 가부장적 신분질서, 한말 농업경제의 패러다임 전환기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면서, 개인의 특정한 사건들의 연속이 역사가 되고,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도하게 흘러가는 우리의 근대사를 펼쳐 보이고 있다. 내년 2부에서는 1911년 간도로 간 서희로부터 평사리 마을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서사적 공간이 확장될 것이다.

창단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웅장하고 토속적인 무대장치들로 당시 하동∙진주 지역 대지주와 소작농들의 정서와 삶의 애환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최참판 대가집과 전형적인 농촌 민가, 산과 들판의 풍광 등을 가변적인 무대장치와 조명∙그래픽 등을 적절하게 활용해 보여 주었으며, 특히 시골에서나 봄직한 아름다운 보름달과 초승달이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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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공연 장면(사진=경남도립극단)

전반 1시간 20분, 후반 1시간 20분 동안 배우들은 얼마나 연마를 하고 피나는 연습을 했는지,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 몰락의 원인이 된 며느리와 노비의 도망, 아들 최치수 살해사건, 최참판댁의 정신적 지주였던 윤씨 부인의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 최씨 집안의 재산을 노리는 귀녀와 조준구의 악행, 마을 사람들의 이산, 서희와 임이네의 간도 이주 등을 물 흐르듯이, 배우들끼리 합을 잘 맞추면서 끝까지 지치지 않고 열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고른 역량을 보여 주었고, 발성과 대사처리 또한 투입된 연습량과 시간을 보여주는 듯 우수했다.

특히 조명 연출이 뛰어나서 진주문화예술회관의 그 큰 무대가 공허할 틈 없이 적절하고 완벽하게 연출되었다. 음향과 특수효과도 큰 무대를 채우기에 허전함이 없었으나 당시 풍속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상여와 상여소리는 매우 우수한 콘텐츠이자 역량 있는 소리꾼이 출연했지만 짧게 등장해서 아쉬운 감이 있었다.

'토지 I' 공연모습(사진=경남도립극단)
'토지 1' 공연 장면(사진=경남도립극단)

이번 공연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역시 노련한 박장렬 예술감독의 연출력으로, 원작이 연상될 수 있도록 전환기 근대 한국농촌의 서정적인 모습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대작이면서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절제된 서사미(敍事美)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하모니의 아름다움과 통일성과 조화로움은 오랜 연마와 연습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오랜 시간 준비했을 예술단의 노고와 서비스 정신에 대해 관객의 입장에서 고마움과 공연예술에 대한 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 다른 의미로도 코로나 정국의 연극 <토지 1> 공연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첫째, 코로나 이전 우리는 개인의 역사가 곧 사회적∙역사적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인식 속에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역사를 잊고 살았다. 코로나는 유사 이래 전 지구와 전 인류를 동시다발로 덮친 미증유 글로벌 사건이지만, 우리는 지금 코로나가 역사적∙사회적 과정이라는 인식보다는 단지 고립된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비록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팬데믹이라는 현재의 선택될 사건과 시간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어떤 목적이 될 것이며, 어떤 가치와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소설과 연극이 <토지>를 통해 근대와 대화할 수 있게 했듯이, 코로나 시대와 과정을 어떻게 그려가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토지 I' 공연모습(사진=경남도립극단)
'토지 1' 공연 모습(사진=경남도립극단)

둘째, 코로나로 인해 특히 문화예술계는 단절되고 차단되고 억압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남 도지사의 출중한 결단에 의해 도립극단도 탄생되었고, 근래 보기 힘든 대작이 공연되어 경남도민과 국민들을 문화예술로 기쁘게 하고, 지역민들의 문화향유 기회와 수준을 높여 주었다. 정치는 그런 것이다. 리더십은 환난에 주민들의 눈치나 보고 주민 뒤에서 겉치레 궁상을 떠는 것이 아니라 자괴감에 빠진 주민들을 위로하고 자립할 수 있는 동력의 계기를 만들고 리딩해 나가는 것이다.

'토지 I' 공연모습(사진=경남도립극단)
'토지 1' 공연 모습(사진=경남도립극단)

경남도의 과감한 결정을 보고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경남도립극단을 만들어서 공연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단지 몇 명의 배우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문화향유권 향상, 지역문화의 창작역량 강화,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 활성화, 지역 문화와 역사의 이해와 교육 및 계승 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인 것이다. 이번 경남도의 옳은 결정이 타 지자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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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공연 모습(사진=경남도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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