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공연이야기 - 21 디즈니 뮤지컬과 라이온 킹 이야기
재미있는 공연이야기 - 21 디즈니 뮤지컬과 라이온 킹 이야기
  • 조복행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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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산 메가뮤지컬의 퇴조와 디즈니 뮤지컬의 등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카메론 매킨토쉬가 중심이 된 영국 메가뮤지컬은 1980년대 브로드웨이를 석권한다. <캣츠>에 이어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웨버는 이에 고무되어 사업다각화를 도모하고,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왕국 건설의 꿈을 키운다. R.U.G를 통해 출판, 게임, 영화 사업에 진출하고 라스베가스에는 복합극장들을 구축하며 런던에 종합 엔터테인먼트 센터의 건립을 추진하려는 구상이었다. 특히 런던 엔터테인먼트 센타에는 라이브 공연이 가능한 극장, 스포츠센터, 레스토랑, 나이트 클럽, 영화관 등을 건립하여 디즈니에 못지 않은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웨버는 그동안의 성공을 바탕으로 3편의 메가뮤지컬을 제작한다. 그러나 결과는 대참패였다. 그 첫 작품은 <Aspects of Love>였다. 여기에도 트레버 넌과 질리안 린이 참여했고 8백만 달러(약 100억원)를 투입했는데 불과 1년을 계속하지 못하고 막을 내려야 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메가뮤지컬은 공연제작비의 지속적인 상승을 초래했고 역설적으로 웨버는 직접적으로 이의 영향을 받았다. 편당 천만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소요되었고 주간 운영비도 50만 달러가 넘었다.

이런 작품의 흥행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동안, 완판에 가까운 흥행성공이 없으면 비용회수(recoup)가 불가능했다. 뉴욕 타임즈는 당시까지의 가장 큰 흥행참패라고 보도했다. 1997년에는 천 3백만 달러(약 150억 원 정도)를 들여 <선셋 불르바드(Sunset boulevard)>를 제작했는데 이 역시 실패했고 1996년에는 천백만 달러(약 130억 원)를 투입하여 <휘슬 다운 더 윈드(Whistle down the wind)>라는 작품을 제작했지만 작품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어 한 차례 개막을 연기하였고, 1997년에 가서야 워싱턴에서 트라이아웃 (tryout : 브로드웨이 공연 전에 다른 도시에서 공연해보고 관중들의 반응이나 작품완성도 등을 체크하는 방식)으로 다시 점검해 보았지만 이 역시 실패였다. 이어서 1998년에 런던에서 2년 정도 공연한 후 결국 브로드웨이에는 입성조차 하지 못하고 중단하고 말았다.

카메론 맥킨토시(사진 =
카메론 맥킨토시(사진=en.wikipedia.org)

웨버는 메가뮤지컬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메가뮤지컬의 종말이 아니라 영국산 메가뮤지컬의 종말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다. 웨버의 자리를 대체할 강력한 임프레사리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로 디즈니다. 디즈니는 영화와 공연 , 미디어, 테마파크, 소비자 직접 서비스(OTT등) 등 크게 네 개의 사업부문을 가진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끊임없이 기업들간의 인수합병을 통해여 몸집을 불려가고 있고, 시대적 흐름을 따라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작년에는 디즈니 플러스라는 OTT(동영상)서비스를 시작하여 넷플릭스의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다. 공연부문에서는 1993년에 월트 디즈니 공연프로덕션(DTP)을 설립하여 디즈니 아이스 쇼 등을 제작한 바 있고 뮤지컬은 1994년 <미녀와 야수>를 시작으로 <라이온 킹>, <알라딘>, <타잔>, <인어공주>, <겨울왕국> 등으로 이어가고 있다. 모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본으로 한 뮤지컬이다. 2000년에는 하이페리온 시애트리컬을 설립했는데 여기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아닌 작품을 기반으로 하는 공연을 제작한다. 그 첫 작품이 뮤지컬 <아이다>였다.

디즈니는 1989년부터 대략 10여 년간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알라딘>, <타잔>, <노틀담의 곱추> 등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성공시킨다. 또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서도 많은 히트작들이 나와서, 디즈니의 전성시대를 구가하는데, 이를 ‘디즈니 르네상스’라고 말한다. 당시의 CEO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는 디즈니 공연 프로덕션(DTP)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뮤지컬 제작에 나선다.

DTP(Disney Theatrical Productions)는 월트 디즈니 캄퍼니의 자회사인 월트 디즈니 공연 그룹 산하에 속해 있으면서 연극과 뮤지컬을 제작한다. ‘브로드웨이 공연의 재활성화’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1980년대부터 메가뮤지컬이 큰 성공을 거두자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를 활용해서 이를 무대화하고 돈을 벌어보려는 목적이 더 컸을 것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도 아이스너에게 뮤지컬의 경제성에 대한 조언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웨버와 동고동락한 팀 라이스도 디즈니에 합류했다. 웨버의 영국산 메가뮤지컬이 퇴조하고 디즈니산 메가뮤지컬로 힘이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디즈니의 뮤지컬 진출은 마이클 아이스너의 추진력 때문에 가능했다. 디즈니는 1994년에 뉴 암스테르담 극장을 49년간 사용할 수 있는 장기 임차계약을 함으로써 안정적인 극장확보에 성공했다. 이 극장은 1982년 이후 거의 버려지다시피한 극장이었는데,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부동산 회사가 구입해서 소유하고 있던 참이었다. 디즈니는 1992년부터 약 400억 원을 들여 극장 리모델링을 실시하고 첫 작품으로 미녀와 야수를 제작하였다. 사실 이 극장인수에 대해 디즈니는 처음에 부정적이었지만 아이스너가 결단한 것이다.

디즈니랜드(사진=
디즈니랜드(사진=en.wikipedia.org)

비평가들은 디즈니의 뮤지컬 산업진출을 디즈니화(Disneyfication)라고 비판했는데, 이는 디즈니가 오락산업이나 위락시설등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회학 용어다. 공연은 대부분 개인 임프레사리오들이 주도해 왔는데, 기업형 임프레사리오, 그것도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가 참여함으로써 뮤지컬 시장이 더욱 경쟁적이고 상업적인 싸움터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여하튼 디즈니의 뮤지컬 참여는 공연산업의 중대한 변화다.

디즈니의 강점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난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뮤지컬 제작에 필요한 많은 요소들을 최적화할 수 있다. 공연제작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자금문제인데, 필요예산을 조달하기도 어렵지만 설령 조달한다 해도 예상치 못한 추가지출이 많이 발생한다. 공연도중에 기획이 바뀌거나 연습기간이 길어지거나 추가로 시설과 장비, 인력, 세트 등이 필요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공연이 제조업과 달라서 기계적으로 조립하는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즈니 같은 거대기업은 이런 자금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라이온 킹은 당초 예산이 1천 8백만 달러였는데, 두 배가량으로 늘어났다. 자금이 부족한 민간제작사로서는 이를 갑자기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풍부한 자금력은 충분한 작품의 숙성기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워크숍, 트라이아웃, 오프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로 이어지는 어려운 과정을 돌파하려면 자금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력확보 역시 자금력과 관계가 있다. 풍부한 자금력과 디즈니의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디즈니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최고의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여러 작품을 통해 그런 결과가 나타났다. <해밀턴>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린 마누엘 미란다와는 앞으로 공동작업을 하기로 약속한 바 있는데, 디즈니의 자금력은 앞으로도 더 많은 좋은 창작자들을 확보할 것이다.

또 하나의 큰 강점은 디즈니 소유의 애니메이션 저작권이다. 소위 지적 재산(IP)이라고 부르는 많은 애니메이션 원작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이들을 바로 뮤지컬화할 수 있다. 이는 대단한 장점이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만들고 영화에서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기도 하고, 이를 디즈니랜드 등에서 팔 수도 있고 OTT로 유통할 수도 있다. 소위 우리가 OSMU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 디즈니 플러스와 <해밀턴>

뮤지컬 <해밀턴>은 디즈니에 7,500만 달러에 판매되어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금년 7월부터 OTT서비스를 하고 있다. 디즈니는 2019년에 훌루(Hulu)라는 OTT 업체를 인수하였고, 여기에 자사의 풍부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디즈니 플러스를 설립하였다. 훌루는 넷플릭스보다는 규모는 작지만 미국에서는 영향력있는 OTT 서비스다. 해밀턴은 원래 2021년 10월부터 OTT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앞당겨졌다. 2015년 이후에 세 번에 걸쳐 촬영해 두었던 공연실황을 편집한 것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 다른 미디어에 탑재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공연 흥행에 지장을 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콘텐츠를 미디어에 노출시킬 때 시차를 두는데 이를 홀드백(Holdback)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디즈니와 린 마누엘 미란다는 특별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클래식 분야의 공연 영상화에 이은 또 하나의 중요한 공연산업의 변화다. 특별한 작품에 한해서 이루어지는 경우이고 코로나로 인해 홀드백이 짧아지기는 했지만, 공연이 라이브 위주에서 벗어나 영상공연과 함께 투 트랙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 그 파급효과가 주목된다.

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라이브 인 HD와도 다르다. 라이브 인 HD는 한 작품의 라이브 공연을 동시에 라이브로 전송하고 나면 종료되기 때문에 굳이 홀드백을 둘 필요도 없고 카니벌라이제이션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밀턴>은 롱런하고 있는 공연을 OTT로 서비스하는 것이기 때문에 클래식 분야의 영상서비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다. 이렇게 공연을 계속하고 있는 뮤지컬을 동시에 영상으로 전송할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 지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디즈니의 뮤지컬 참여는 늘어날 것이고, 이는 공연산업의 양극화, 또는 승자독식의 강화로 이어질지 모른다.

'라이온 킹'
'라이온 킹'(사진=todaytix.com)

* OSMU라는 용어에 대해서

이 말은 하나의 원재료를 여러 용도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고 논문이나 서적에도 등장하고 있어서 이미 우리말이 된 듯하다. 우리나라의 위키사전에는 일본 전자공학분야에서 만든 용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말은 아니다. 서양에서는 Media Franchise와 Transmedia Storytelling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실 이 두 용어의 차이도 애매하기는 한데 이들은 이렇게 구별한다.

Media Franchise(MF)는 말 그대로 동일한 콘텐츠를 프랜차이즈처럼 여러 용도로 사용한다는 뜻을 지닌다. 예를 들면 <대장금>이라는 원천 드라마를 영화, 애니메이션 , 테마파크로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를 통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것은 1996년에 출시된 <포케몬>으로 지금까지 무려 1030억 달러, 한화 110조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자료:Wikipedia).

Transmedia Storytelling(TS)은 하나의 개념이나 브랜드, 이야기를 여러 미디어에서 약간씩 변형하여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마블> 시리즈다. 마블이라는 하나의 타이틀 아래에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이를 영화화하거나 머천다이징으로 만드는 것이 그런 예다. 이야기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자유롭게 변형하되 원래의 개념을 지키는 전략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용어는 헨리 젠킨스의 『컨버전스 컬처』라는 책에 나오는데, 젠킨스는 그 예로 포케몬을 들으면서 앞으로의 콘텐츠 산업이 나가야 할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위키피디아에서는 MF의 예로 포케몬을 들고 있고, 젠킨스는 TS의 예로 포케몬을 들고 있는데, 아마도 포케몬이라는 콘텐츠를 보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다.

OSMU는 이런 차이에 관계없이 두 개념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약간은 투박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라이온 킹 이야기

라이온 킹의 뮤지컬화도 마이클 아이스너의 추진력이 작용했다. 1994년에 라이온 킹이 대히트를 하였다. 그러자 아이스너는 이를 뮤지컬로 만들고 싶어했고 DTP의 사장 토마스 슈마커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제작팀과 합동회의를 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부정적이었다. 동물이 춤을 춘다고요? 하는 반응들이었다. 아이스너는 오페라 및 연극연출가 줄리 테이머를 생각해냈다. <캣츠>에서 트레버 넌이 발탁된 것처럼 라이온 킹에서는 줄리 테이머가 기용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엘튼 존과 팀 라이스의 콤비가 그대로 뮤지컬에도 합류했고 노래도 대부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영화를 연극화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동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웠다. 애니메이션처럼 동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동물역할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물을 어떻게 의인화할 것인가? 동물의 동작을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등 복잡한 과제들이 있었다. 테이머가 도입한 표현방법은 동물의 모습을 한 인간 드라마였다. 테이머는 이를 ‘이중사건(double event)’이라고 불렀다. 동물과 사람을 동시에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퍼핏과 마스크, 죽마 등 동양연극의 각종 장치들을 동원했다. 라이온 킹에 등장하는 그림자극이나 퍼핏, 가면, 죽마(竹馬) 등은 전부 인도네시아의 와양(wayang) 인형극과 일본 분라쿠(文樂)의 인형극 등 동양연극에서 따온 것들이다. 퍼핏이 200개 이상 등장하는데 가장 큰 퍼핏은 코끼리로, 네 명의 성인이 조종한다. 동물, 새, 물고기, 곤충, 풀과 초원 등의 퍼핏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의상이나 퍼핏을 넘어 하나의 시각적 볼거리를 형성한다. 세트가 되고 무대를 지배하는 스펙터클이 된다. 테이머는 다양한 실험과 모험을 하고 싶었고 디즈니는 이를 허락했으며 심지어 예산사용에서도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라이온 킹은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이지만 아프리카 음악만 사용하거나 아프리카 춤에 한정되지 않는다. 엘튼 존은 아프리카 음악 이외에도 팝 등 다양한 음악을 사용하였고, 춤에서도 힙합, 모던 발레, 아프리카 댄스 등을 혼용하였다. 라이온 킹을 성공시킨 테이머는 여성 연출가로는 처음으로 1998년에 토니상에서 베스트 디렉터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실패한 것처럼 줄리 테이머도 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된 <스파이더 맨>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인도네시아 '와양'(todaytix.com)
인도네시아 '와양'(출처:britanica.comoday)

- 매출액 1위

라이온 킹은 현재의 전세계 뮤지컬 중 매출액이 가장 많은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매출액 순위는 다음과 같다(wikipedia).

1. 라이온 킹(1997) 82.5억 달러
2. 오페라의 유령(1986) 60.6억 달러
3. 위키드(2003) 35억 달러
4. 캣츠(1981)28.6억 달러
5. 레미제라블(1987) 27억 달러

라이온 킹은 1997년에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86년에 시작한 오페라의 유령보다 월등하게 매출액이 높다. 현재까지의 총매출액이 거의 10조원에 이른다. 이 매출액을 영화와도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영화의 매출액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마블 시리즈(23편) 225.8억 달러
2. 스타워즈(12편) 103.1억 달러
3. 해리포터 마법의 세계(10) 99.2억 달러
4. 어벤저스(4) 77.7억 달러
5. 스파이더맨(9) 72억 달러

뮤지컬 라이온 킹은 영화 어벤저스와 스파이더맨보다 더 매출액이 크다. 영화의 경우에는 한 편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시리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마블시리즈는 23편이고 스파이더맨도 9편임을 감안하면, 라이온 킹 한 작품의 총수입이 82억 달러라는 숫자는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2019년에 디즈니가 만든 뮤지컬 영화수입은 라이온 킹이 16.5억, 겨울왕국 2가 14.5억, 겨울왕국 1이 12.9억 달러에 달했다. 디즈니가 공연산업에 나선 이유를 알 수 있다.

- 가격정책

상품의 가격은 원가, 소비수요, 경쟁상품의 가격, 목표이익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결정한다. 가격의 운용방식도 다양해서 처음부터 정해진 가격을 유지하는 정찰제, 처음에 높게 매겼다가 낮추는 방법(스키밍), 낮게 책정했다가 높이는 방식(침투가격정책),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탄력가격제(Dynamic Pricing) 등이 있다.

관객들은 티켓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가격정책은 중요하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티켓가격은 비싸고 작품별 차이도 큰 편이며,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2009년도의 평균가격은 80.5달러였는데 2019년도에는 122.7달러로 50% 이상이 올랐다. 가장 비싼 공연은 해밀턴으로 1,150달러(약 130만원)까지 상승한 적이 있고, 가장 싼 좌석도 199(22만원)에 달한다. <북 오브 몰몬>은 1층 정중앙은 774 달러에 달한다.

반면 최고의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는 라이온 킹의 가격은 저렴하고, 독특한 가격정책을 펼치고 있다. 탄력가격제(Dynamic Pricing)다. 이는 기준가격을 설정해놓고 요일별로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방식이다. 2021년 기준가격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227달러를 고수해 왔고 이를 기준으로 요일별로 탄력적인 가격을 적용한다. 300달러를 상회하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다른 공연에 비해서 상당히 싼 편이다. 디즈니의 탄력가격제는 오랫동안 수집한 관객의 소비패턴과 가격의 관계를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2012년도부터 시행한 제도다. 이른바 <빅 데이터>를 활용한 정책이다. 디즈니의 전략은 가격을 싸게 책정함으로써 수요를 최대한 높이고 빈 좌석을 없애는 것이다. 라이온 킹에서는 거의 빈 좌석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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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해밀턴'(사진=smh.com.au)

- 극단 사계의 라이온 킹 서울공연

일본의 극단 사계는 1980년대 <캣츠>의 성공에 힘입어 커다란 도약을 이룩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일부 지역에서 관객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연간 관객수가 오사카 시의 인구에 필적하는 250만 명 정도였던 것이 230만 명 정도로 떨어졌고 홋카이도의 가설극장에서 있었던 미녀와 야수에서는 30% 정도를 밑도는 저조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아사리 게이타로서는 새로운 수익원의 개발이 필요했다. 그는 늘 사계는 수입 뮤지컬 중심의 공연에서 탈피하여 창작극도 제작해야 하고, 시장을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사계에서 동양의 사계로 키워나가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직접 연극이나 뮤지컬을 제작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1991년에 제작한 <이향란(李香蘭), 일본명 리코란>이라는 뮤지컬이다. 이향란은 1920년 만주 봉천에서 태어난 야마구치요시코(山口淑子)라는 이름의 일본여성이었는데, 성장해서 이향란이라는 중국이름으로 활약한 배우 겸 가수다. 이향란은 이국적인 미모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중국과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일본찬양 영화에 출연하는 등의 부역을 했다고 하여 중국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일본국적자임이 밝혀져 가까스로 풀려나 일본으로 추방된다. 그 후에는 정치가가 되기도 한다. 아사리 게이타는 이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극단 사계의 중국진출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리 게이타는 이향란을 ‘중일 전쟁이라는 불행한 역사의 피해자’라고 보았다. 뮤지컬의 테마는 전쟁과 평화였고 ‘중국을 향한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자 하였다. 1991년에 아오야마 극장에서 첫 공연을 하였고 다음해에는 장춘, 심양, 대련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하였다. 순회공연의 창구는 중국 문화부였는데, 아사리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현지 공연관계자들을 접촉하여 중국 공연을 타진하였다. 1999년에는 <미녀와 야수>를 중국어로 번역하여 북경에서 공연하였다. 이 때에는 50여명의 중국인 배우를 일본에 데려와 연습을 시켰다. 그의 중국 진출열망은 오페라로도 이어졌는데 2012년에 오자와 세이지와 함께(아사리는 오자와 세이지와 절친한 사이엿다) 북경에서 중일 국교정상화 30주년 기념 오페라 <나비부인>을 연출하였다(紺野一彦 ,『劇團四季の謎』, 2003, 211-221). 아사리는 라 스칼라에서도 <나비부인>을 연출한 적이 있었다.

아사리 게이타의 첫 서울공연은 1994년 9월 국립극장에서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였다. 그는 늘 아시아를 큰 시장으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우리나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990년대 후반에 관객이 감소하고 , 반면 1997년부터 시작한 <라이온 킹>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같다. 이미 1980년대 이후 <캣츠>를 필두로 세계적인 뮤지컬 붐이 일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 붐이 일던 때였다. 마침 필자는 일본에 체류하고 있을 당시 극단 사계로부터 라이온 킹의 한국공연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 때부터 서울공연에 대한 협의가 시작되었고 2006년에 샤롯데에서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샤롯데는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이다. 뮤지컬 협회는 우리나라 첫 뮤지컬 전용극장의 첫 작품을 일본에서 제작한 작품을 공연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극단 사계의 국내공연에 반대했다. 아마도 국내 뮤지컬 시장의 잠식도 걱정하였을 법하다. 그러나 글로벌한 유통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외국작품의 국내공연을 막는다면 우리나라 작품의 해외공연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때는 또 일본에서 한류가 시작되어 엄청난 붐을 이루던 때이기도 했다. 우리만 한류의 과실을 취하고 일본에 대해 문을 닫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사리 게이타는 2005년에 여러 차례 서울을 방문하여 샤롯데를 대관하고 MBC와 공동주최를 요청하였고 공연기간은 2006년 10월부터 1년간으로 하였다.

라이온 킹 엠블럼(출처:seeklogo.com)
라이온 킹 엠블럼(출처:seeklogo.com)

아사리 게이타는 우리나라에서의 공연을 중국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생각이었다. 아사리는 서울에서의 공연이 성공하면 중국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지나친 비유일지 모르지만 임진왜란 당시에 명나라를 치도록 길을 비켜달라고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가도(征明假道)가 떠올랐다. 아사리는 동양의 공연시장 진출에 대한 야심이 있었다. 마치 네덜란드의 공연기업인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사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이용하여 독일이나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 글로벌한 공연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아사리도 해외에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는 서울에서 뮤지컬을 교육하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기도 하였다. 일본인들은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공연미학을 가진 나라라고 말한다. 가부키나 노, 분라쿠와 같은 전통예술은 다른 어느 나라의 예술보다 우수하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아사리 게이타는 일본공연예술을 대표하는 연출가, 프로듀서라는 평판을 들어왔고, 한국은 일본에 비해 공연예술이 뒤떨어져 있으므로 이를 자신이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리 게이타는 자신의 극단운영 전략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스타보다는 앙상블을 위주로 하고 티켓 가격도 1만엔 이하로 한다고 하였다(지금은 1만엔을 넘어섰다). 또한 ‘모음법’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발성법도 개발한 바도 있다.

라이온 킹은 실패로 끝났다.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들이 있다. 작품의 완성도 부족, 홍보부족, 현지화 실패 등을 꼽는데 물론 이런 평가가 틀린 건 아니다. 확실히 일본의 라이온 킹보다 완성도나 배우들의 역량도 떨어졌고 홍보전략도 미흡했다. 그러나 초반에는 많은 관객이 들어왔다. 관객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약 6-7개월 지난 뒤부터였다. 필자의 생각에 가장 큰 실패이유는 우리나라의 뮤지컬 시장 규모가 아직 1년 이상 롱런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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