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아시아문학상에 아크타르의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제3회 아시아문학상에 아크타르의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11.02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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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 성피해 당한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이야기
샤힌 아크타르(사진=ACC)
제3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자 샤힌 아크타르(사진=ACC)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이 주관하는 2020년 제3회 아시아문학상은 방글라데시의 여성작가 샤힌 아크타르의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 돌아갔다. 이 작품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기간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다음은 심사위원회가 발표한 심사경과 보고서.

아시아문학상은 서구에 의해 일방적으로 재단되고 편집되기 일쑤인 아시아 문학의 미학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 보려는 뜻에서 제정되었다. 이 뜻이 다만 서구문학에 대한 반발감이나 아시아 문학의 또 다른 배타성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시아 문학이 인류가 함께 꾸려가는 세계문학의 지평에 새롭고 창조적인 영감을 보태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시아문학상은 2017년 제1회 수상자로 몽골의 시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를 선정했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바람처럼 유장한 그의 시어를 높이 평가했다. 2018년 제2회 수상자는 베트남의 소설가 바오닌이었다. 그의 대표작 <전쟁의 슬픔>은 아시아의 대륙에서 무수히 벌어진 참혹한 전쟁을 다룬 또 한 편의 전쟁소설로 머무르는 게 아니라, 모든 전쟁은 오직 인간의 패배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새삼 아프게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좀 더 체계적인 아시아문학상 운영을 위하여 몇 가지 절차를 정비했다. 부득이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되, 좀 더 충실한 심사를 위하여 심사위원단을 일찍부터 구성해 운영한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하겠다. 올해는 특히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주제를 감안하여 대상 작가를 여성작가로 한정했다.

올해 대상 작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유심히 살펴본 작품은 총 네 편이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샤힌 아크타르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전승희·파르하나 라마 샤시 옮김)
츠쯔젠 <어얼구나강의 오른쪽> (김윤진 옮김)
츠쯔젠 <뭇 산들의 꼭대기> (강영희 옮김)
주톈원 <황인수기> (김태성 옮김)

중국 작가 츠쯔첸의 두 작품은 서사의 규모가 크고 중국 동북부 지방의 자연과 무속이 작품 속에 잘 녹아 있어 일견 신화적인 풍모조차 느끼게 했다. 아시아의 마르케스라 불러도 무방하리만큼 마술과 역사와 자연과 인간이 상호 작용하는 기이한 소설적 공간을 창출해내는 능력이 출중한 작가였다. 서정적이면서도 간결한 문체 또한 흠잡을 데가 없었다.

대만 작가 주톈원의 <황인수기>가 가진 최대의 장점은 내면적 사유의 섬세함이었다. 세기말 시기의 세계를 ‘수치심을 모르는 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 작가의 ‘황인적’ 내면이 미려한 수사를 통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은 놀라웠다. 게다가 각종 영화 텍스트들과 철학적 저작, 그리고 문학작품에서 인용된 장면과 문장들이 작가의 박학과 예민한 감수성을 증명해 주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이 두 작품이 남긴 진한 감동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아시아 문학상을 방글라데시 작가 샤힌 아크타르의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성폭력 피해 여성의 삶을 다룬 이 작품에 대한 호의가 단순히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 ‘광주’에서 아시아문학상을 주최한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한 한국에서도 이른바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첨예한 정치적 이슈라는 점 때문만도 아니었다. 오로지 ‘문학성’의 견지에서도 이 작품이 이룬 성취는 탁월했는데, 특히 소수자인 ‘여성’의 관점에서 아이러니 가득한 언어로 전쟁의 광기와 남성 중심 사회의 허위의식을 조롱하고 해체할 때 그러했다. 아크타르의 이 작품은 여성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을 다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루트 클뤼거, 마르타 힐러스 등의 저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그러나 유럽인인 그들의 저작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아시아 여성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반영된, 우리 시대 최고의 페미니즘 전쟁 다큐소설이다.

세 작가의 작품들 모두 상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므로, 심사위원들 간의 의견 또한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었다. <황인수기>는 발표 시점이 너무 오래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 한국어 번역이 너무 늦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어얼구나강의 오른쪽>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겼는데,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주제가 신화와 여성인 만큼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신화적 상상력에 끝까지 애착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결국 심사는 두 작가의 두 작품에 대한 긴 논의를 거쳤고, 기어이 투표 과정까지 거쳐야 했다. 그러나 수상작을 결정한 후, 심사를 마친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남은 것은 좋은 작품들을 읽고 오랜 시간 논의한 뿌듯함과 그토록 훌륭한 작품들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세 작가에 대한 고마움, 그것뿐이었다.

수상자에게 아시아의 많은 동료작가들, 또 많은 독자들과 더불어 축하의 말을 전한다. 이 상이 작가에게 또 다른 창작을 위한 격려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2020년 11월 1일
- 제3회 아시아문학상 심사위원 일동

샤힌 아크타르
샤힌 아크타르는 방글라데시 코밀라 출생으로 다카르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소설가로 데뷔한 뒤 인권기구인 에인 오 살리쉬 켄드라(Ain-o-Salish Kendra, ASK) 소속으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파키스탄군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이 작업은 그녀의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주요 작품으로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도망갈 곳은 없다> <쇼키 론고말라> <공작 왕자> 등 네 편의 장편과 <스리모티의 철학> <영원한 자매> <다시 한 번, 사랑> 등 다섯 권의 단편집이 있다.

그밖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벵갈 여성들의 글을 모아 펴낸 앤솔로지가 있다. 대표작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역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성폭행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인데, 이 작품으로 2004년 방글라데시 최우수도서상인 프로돔알로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방글라데시 아카데미 문학상을 수상했다.

샤힌 아크타르의 제3회 아시아문학상 수상 소감 전문.

제3회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 참으로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제 소설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중에 자행되었던 성폭력의 희생자이자 생존자인 여성들의 삶을 다룹니다. 그 시기에 저는 겨우 아홉 살이었지만 어렴풋한 기억은 있습니다. 그리고 20년 가량 후에 마침 그 전쟁에 대한 구술사와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는 등의 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록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저는 그 인터뷰들을 통해 전시 성폭력의 생존자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또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구술사 작업을 하면서 제게 분명하게 다가온 것은 그 시기의 폭력에서 비롯된 문제가 전후에도 해결되지 못한 중요한 이슈로 계속 남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남성들은 박수갈채와 환호의 대상이 됐지만, 성폭력을 견디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주변화되고 멸시의 대상이 되어 결국 공적인 세계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현실을 보며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쓰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제 작품의 많은 부분은 독립 이후의 삶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 여성 생존자들의 고통에는 끝이 없었거든요. 9개월의 전쟁 동안 그들을 강간한 것은 분명 파키스탄군이었지만, 그 이후 30년 동안 그들이 받은 대접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그리고 그건 대체 누구의 책임인지? 제가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일차적으로 탐구하고자 한 것은 그런 질문입니다. 그건 우리 사회가 역사와 역사의 유산에 접근하는 태도와도 떼어낼 수 없는 문제이고,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쓰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 저는 그것이 특정 국가만의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은 분쟁과 전쟁이 존재하는 곳 어디서나 성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고난을 겪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생존자들 중, 한국인들이 다수를 구성하는 ‘위안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구술사 연구 프로젝트를 막 마친 2000년에 도쿄의 여성국제전범법정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제 작품의 주인공 마리암의 이야기가 그 ‘위안부’들의 이야기와 겹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재판 이후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집필하는 동안 한국의 ‘위안부’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김학순 님이 그 재판에서 하신 말씀들이 계속 제 귓가를 울리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성폭력의 생존자들께 깊은 위로와 존경을 보냅니다.

이 영예를 몇 달 전 암으로 사망한 사랑하는 제 동생 마흐부불 하크 사르카르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또한 제3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회와 위원장 한승원 소설가님, 부위원장 박태영 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대리님, 방현석 소설가님, 심사위원 김남일 소설가와 심사위원님들, 페스티벌을 위해 애써준 이화경 집행위원님과 한국의 작가님들,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이 작품을 아름답게 번역해서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 주신 전승희 교수님께도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 어려운 시기를 겪고 계신 한국 독자 여러분들의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우리 모두 이 세계적 위기를 견뎌내고 창조적으로 극복해서 더 강하고 현명한 사람들로 거듭 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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