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댄스2020 프리뷰] 국내 프로그램-4 (11월 9-10일 방영분)
[시댄스2020 프리뷰] 국내 프로그램-4 (11월 9-10일 방영분)
  • 이종찬 기자
  • 승인 2020.11.08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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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씨어터틱, <비극(非劇) - 내일을 위한 우화>, 김영태 추모제 - <누군가 다녀갔듯이>
댄스씨어터 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댄스씨어터 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더프리뷰=서울] 이종찬 기자 = 제23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시댄스 온라인’이 6일(금)부터 22일(일)까지 시댄스 홈페이지와 유튜브채널, 네이버TV를 통해 개최된다. 더프리뷰는 시댄스 공연일자에 맞추어 작품 내용과 안무가들의 인터뷰를 간략히 소개한다. 인터뷰 전문은 시댄스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9일 공연작품들(9일 오후 8시부터 10일 오후 8시까지)

댄스씨어터틱, <비극(非劇)-내일을 위한 우화>

“과거로부터 이어진 오늘의 비극(悲劇)은 극(劇)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悲劇)은 춤, 음악, 시가 어우러진 종합극이었다. <非劇 비극–내일을 위한 우화>는 한국 전통연희의 가무악(歌舞樂)을 결합시켜 비극은 ‘당함의 비극(悲劇)’이 아니라 우리가 행함으로써 발생하는, 우리가 선택한 현실의 사건과 운명이며 ‘드라마가 아님(非劇)’을 말한다. 동작의 긴장과 이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질감은 나와 타자가 춤을 통해 연대하는 극중극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턱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이겨내며 질주하는 저항의 춤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행함으로서의 비극(非劇)이며,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내일을 위한 우화로서의 비극(非劇)적 만남이다.

Q : 작년 10월 초연 이후 1년 만에 다시 공연하게 됐다.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다룬 작품인 만큼 올해는 더 의미가 새롭다. 현 상황에서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면?

A : 초연작을 재공연할 때마다 초연 때 보지 못했던 것들과 새로운 감상을 접하게 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창작활동은 물론 일상도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초연 당시보다 더 신중해지고 디테일이 많아졌다. <비극 非劇-내일을 위한 우화>는 주제도 주제지만 이 시기가 주는 심리적 상황까지 더해져서 리허설 한 번 한 번이 너무도 소중하고 비장하기까지 했다. 마스크를 쓴 채 거친 호흡을 참아가며 연습해야 했지만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만나야 한다는 소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댄스씨어터틱 '비극-내일을 위한 우화'(c)하태민
댄스씨어터틱 '비극-내일을 위한 우화'(c)하태민

Q : 비극적인 감정과 상황들을 표현하기 위해 각 무용수들 스스로의 고통을 꺼내 놓는 작업과정을 거쳤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안무가와 무용수 사이의 감정공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A : 늘 그렇지만 주제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출연자들과 창작 기간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연극은 있는 텍스트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무용의 경우는 참여하는 모두에 의해 텍스트가 구축되어 가는 식이다. 주제 이상의 다른 것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최대한 열어 놓는다.

특히 <비극>은 <내일을 위한 우화>라는 부제에서처럼 과거로부터 온 비극이 오늘날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갖는 의미, 구체적 경험과 상황을 공유한다. 그리고 지금의 비극은 내일 어떤 의미가 될까 하는 각자의 생각까지. 머리나 논리보다는 여러 차례 움직이고 그 다음에 피드백을 공유하고 그것을 텍스트로 만들어보며 구체적으로 의논한다. 이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텍스트가 완성되어 가기 때문이다.

댄스씨어터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댄스씨어터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Q : 무용극이기는 하지만 대사도 꽤 있어서 연극적이라고도 느껴졌다. 연극 안무도 많이 하셨는데 연극과 무용에서 안무는 각기 어떻게 접근했는지? 그리고 이 작품에서 대사 사용은 연극과는 어떻게 달리 접근했는지?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는 우리 전통연희(演戱)와 비슷
A : 늘 악가무(樂歌舞) 일체의 전통연희(演戱) 양식을 적극 수용한다. 하지만 악가무는 음악, 노래, 춤만이 아니라 대사, 연기, 그리고 다양한 재주들이 포함된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 이 요소들 중 “어떤 것을 중심에 둘 것이냐”를 놓고 연극, 무용, 서커스 등으로 나뉘는 것이다.

연극작업을 할 땐 대사가 중요하면 대사를 더 잘 들리게, 혹은 리드미컬하게 하거나 배우 목소리에 움직임이라는 옷을 입혀 배역의 성격과 배역들 간의 관계를 창조하는 데에 집중한다. 대사나 배역의 개성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새로운 움직임과 가능성 또한 적용해 본다. 만약 배우가 말하기를 불편해하면 몸이 문제일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배우의 연기에 몸 움직임을 코디네이트하는 것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댄스씨어터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댄스씨어터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텍스트가 동작을 압도하지 않도록 늘 조심
연극이 텍스트로부터 시작된다면 무용은 반대로 텍스트가 (나중에)만들어지거나 혹은 텍스트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비극> 작업은 이전과 달리 이미 있는 텍스트(그리스 비극)를 녹여서 몸을 중심으로 표현하고자 한 작업이었다. 그런 점에서 연극작업의 경우와 비교해 안무가로서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텍스트에 대한 해석과 장면연출에 대해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출연자들 배경도 다양해서 연극, 전통연희, 무용, K-pop 등 전문분야가 다른 출연자들간의 개성이 어떻게 자유롭게 드러나면서도 전체 앙상블을 이룰 것인가를 두고 정말 많은 수정 과정을 거쳤다. <오이디푸스> 대사 대부분이 삶과 운명, 그리고 비극에 관한 것으로,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그런 대사의 강렬함이 움직임의 표현을 압도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대사와 몸이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풀어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집중했다.

댄스씨어터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댄스씨어터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Q : “드라마 같은 현실과 드라마를 목적으로 하는 극을 분리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드라마를 목적으로 하는 ‘극’을 창작할 때와 어떻게 달랐는지?

A : ‘현실이 드라마 같다’는 것은 제 작업이 ‘나와 우리’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이고, ‘드라마를 목적으로 하는 극과 분리하지 않겠다’는 말은 연극이나 무용이 극이나 공연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정도로 이해하셨으면 한다. 제 작업 대부분은 사회현상에 대한 비틀기와 시사와 메시지를 담은 작업이다. 당연히 작업시에는 관객을 대상화하고 메시지를 주입하려는 폭력성을 띠지 않도록 늘 조심한다. 아울러 극과 춤을 마냥 즐기기만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말하려 하는 것이다.

Q : ‘우리 식의 현대적 춤극’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우리 식’과 ‘현대적 춤극’에 대한 안무가님만의 정의는?

모든 시대가 당대에는 현대, 지금 우리의 ‘극’ 살리고파
A : 지난 25년간 작업하면서 ‘할 수 있을 때’와 ‘해봤을 때’ 중에 해봤을 때를 가지고 말하자면, ‘우리 식’에서 ‘우리’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다. 어요. ‘나’라는, 우리의 가능성을 가진 안무자로서의 ‘나의 방식’, 그리고 조금 확장하면 나와 함께하는 ‘틱무용단의 방식’, 조금 더 나아가면 한국의 현대춤 역사의 과정에 교육을 받고 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무용의 방식’, 그리고 한반도라는 물리적 공간에 함께 살아가는 ‘한국에 사는 우리’까지 다 포함된다.

과거에는 민족적 양식, 전통연희, 우리 것 등 관념적인 부분이 강했다면 지금은 내 식으로, 틱무용단 식으로, 라고 스타일과 색깔을 넘어서는 창작정신 같은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현대적인’이란, 특정 시대가 아니라 ‘현재적(성)’ 혹은 ‘동시대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 식의 현대춤’이라는 말은 ‘우리의 방식으로 오늘을 춤추자’로 풀어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끝으로 ‘춤극’이라는 것이 남는데, 이는 마당극 혹은 마당춤 이후에 각 대학이 서구식 장르로 나누고 분리하는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극’을 말하는 것이다. 제게는 이 부분이 바로 춤의 원형, 극의 원형, 전통양식에 매료되어 있는 저의 미션이었다. 장르가 구분된 춤극이 아니라 가무악 일체의 원형으로서의 춤극을 말한다. 이는 전통적 창작방식과 연희양식과 관련한 것이기에 음악극, 뮤지컬과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

Q : 댄스씨어터틱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워크숍 및 창작활동을 진행하셨다. 이 중 특별한 작업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 시민 참여 워크숍을 하시는 이유와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A : 1997년 당시 공단지역 순회공연을 기획하며 1-2회의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을까 고민하며 오늘날 시민예술로까지 이어졌다. 즉흥춤이 중요한 매개였는데 ‘흥에 즉하는 몸’, 달리 교육이나 배움이 중요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경험하지 않고는 드러나지 않는 현장성과 공동체성까지, 즉흥춤을 공부하고 그 워크숍을 진행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2000년대부터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워크숍과 공연을 해왔고 최근에는 60대 이상의 중년여성 열 다섯 분과 매주 워크숍을 하는 중이다. 다양한 연령층 분들과 워크숍 공연을 진행해오며 특별히 중년 이상의 분들에게 관심이 많아졌다. 이 분들은 인생의 사회활동을 일정 정도 마치고 예술가로 진출하려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예술활동을 동호회 수준에 머물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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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씨어터틱 '비극 내일을 위한 우화'(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Q :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어떠한 것을 얻어갔으면 좋겠는지?

현실을 느끼고 배우지 않으면 미래는 비극(悲劇)이 될지도
A :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작품들이 아직도 공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슬플 비(悲)가 아닌 아닐 비(非)의 비극(非劇)으로 바꾼 것은 한 영웅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운명과 비극’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의 주변 혹은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의 비극적 아픔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사용된 대사들은 모두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의 텍스트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 대사들이 모두 오늘날의 사건과 맞아 떨어짐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품 <비극非劇-내일을 위한 우화>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많은 사건들과 오버랩된다.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마주한다는 것은 분명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의 <비극>을 공연하는 것은 ‘내일의 우리에게 우화’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영태 추모제 - <누군가 다녀갔듯이>

시인이자 평론가, 미술가였던 고(故)김영태 (1936-2007) 선생을 기리는 두 작품.
<멀리 있는 무덤>은 김영태 선생이 생전 존경했던 선배 시인 김수영의 기일에 쓴 자작시에 국악 작곡가 김영동이 곡을 붙여 이른바 '시와 국악가요의 만남'을 선보인다. <초혼제>는 50대 중견무용가들(최지연, 장은정, 박소정, 복미경)이 공동안무, 김영태 선생을 기리는 마음을 라이브 연주 아래 제의의 춤으로 갈무리한 작품이다.

김영태 추모제 '누군가 다녀갔듯이'(사진=국제무용협회)
김영태 추모제 '누군가 다녀갔듯이'(사진=국제무용협회)

전방위 예술인이었던 시인 김영태는 음악평론과 연극평론으로 출발했으나 발레리나의 사진집에 매료된 후 1969년부터 무용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무용은 인체의 시입니다. 그만큼 압축적이고 상징적이죠.”라던 그의 시적 문체는 안무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조승미의 <꽹과리와 아라베스크>(1983), 황인숙의 <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우울하게>(1989), 윤덕경의 <매혹>(1990), 박명숙의 <결혼식과 장례식>(1990), 박인자의 <가을저녁의 시>(1992) 등 많은 춤작품들이 그의 시를 바탕으로 창작됐다.

김영태 선생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고 김영태 선생(c)최영모

<갈색 몸매들, 아름다운 우산들>(1985)을 시작으로, <저녁의 코펠리아>(1988), <눈의 나라 사탕비누들>(1993),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있다>(2002), <살아 있는 춤, 눈으로 쓴 시>(2004) 등 열세 권의 평론집을 남겼다. 그 밖에도 인물소묘집, 산문집, 음악평론집 등 총 6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독특한 필체는 일명 ‘봉두난발체’로 불렸는데 그 필체로 자신의 저서의 표지 또는 다수 무용인 작품의 팸플릿을 장식했다.

2005년에는 평생 모은 무용 자료 2만여 점을 아르코예술정보관에 기증했고, 암 투병 중에도 공연장을 지켰다. 오랫동안 춤 공연을 보았던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 가열 123번은 언제나 극장 측에서 비워둔 '김영태 지정석'이었다. 그가 남긴 무용평론집을 통해 무용과 함께한 그의 30여 년 세월이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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